[아임 파인, 아트] 레드 셔츠 - 을지로 of

완전한 노출露出의 시작
글 입력 2020.08.18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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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호선 을지로3가역에서 6번 출구로 나오면 평범한 건물들이 늘어서 있다. 지도가 찍힌 곳을 향해 가기 위해 골목에 들어섰다. 허름한 간판들 사이로 내가 찾는 간판은 눈을 씻고 봐도 보이지 않았다.

 

졸졸졸 물소리를 따라 어느 골목 사이를 흘끗 쳐다보니 골목에서 작업하고 있던 상인 한 분이 저기로 가라며 손짓을 한다. “감사합니다.” 어느 곳을 찾는지 말하지도, 묻지도 않았는데 단박에 알아차린 상인은 나와 같은 사람을 한두 번 보는 게 아닌지 시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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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잿빛의 시멘트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드디어 전시 공간이 나왔다.

 

이곳이 바로 <을지로 of (오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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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의 습도를 온몸으로 느끼며 5층까지 쭉 올라오라는 표시를 따라 계단을 올라갔다. 가는 동안 계단 곳곳에 놓인 오브제들. 역시 소품 하나하나 대충 놓은 것 같으면서도 묘하게 조화로운 것이 '을지로 힙플레이스'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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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개관한 <을지로 오브>는 월세를 내던 옥탑방을 개조하여 전시공간으로 만든 복합문화공간이다. 이곳에서는 매달 3명의 작가가 전시를 열며, 전시관의 이름은 501호, 502호, 503호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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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1호, 이정빈 작가의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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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뜻 보면 풀잎 같고 언뜻 보면 마구 낙서한 캔버스들. 그것들이 사각 큐브에 걸려있고, 놓여있다. 작가는 여성의 살갗과 몸을 그려내는 과정에서 생긴 선입견과 편향성을 고민했다.

 

그러한 고민은 더욱 유의미한 방향으로 발전했다. 특히 영국 어느 작가가 그린 여성의 분만 과정 그림이 선정성을 근거로 전시를 거부당한 사건은 젠더와 편견이라는 고민거리를 던져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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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피부를 묘사하지 않는다면?’


작가는 인물의 형태를 조각조각 내어 뼈대만 남기고 해체하였다. 젠더를 의식한 상태에서 그려내는 피부결의 표현이란 선입견을 아주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근육을 묘사하는 것 또한 일반화된 편견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했다. 형태를 날려버리고, 묘사하지 않음으로써 결과적으로 보이는 것은 해골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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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인간의 형상을 해체하는 작업이 으레 그렇듯 인생에 대한 염세나 허무주의로 점철된 것은 아니다. 작가의 그림 안에서 낱낱이 파괴된 근육과 형상은 고유의 색을 통해 생명력을 되찾았다.

 

그 자체로 힘을 가진 형태는 모종의 운동성을 띄며 그것을 바라보는 관객과의 건강한 관계를 형성하려 말을 걸어온다.

 


 

502호, 오세애 작가의 쇼룸



작가는 말한다. 살갗에 덮인 기관만이 신체인가? 그렇다면 그것만 신체라 인정하는 것은 또 다른 폭력이 될 수 있다고.

 

누군가는 셀카 보정 필터가 아니면 남들과 대화조차 할 수 없고 그것이 자신만의 신체 기관의 일부라 여길 수도 있다. 이는 현대사회의 인터넷 부작용이라고들 하지만, 누군가에겐 콤플렉스를 보완하는 자신감이자 진짜 얼굴이라 믿는 것일 수도 있다.

 

부정적인 비판만 가득했던 기존의 편견을 던져버리고 오세애 작가의 ‘신체 장기 착장회’에 참여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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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화면엔 젊은 세대에게 익숙한 인스타그램 스토리 화면이 켜져 있다. 의자에 앉아 잠시 마스크를 벗으면 머리 위로 새로운 장기들이 떠다닌다.

 

인스타그램의 필터리얼 매체를 활용하여 방문객들에게 네 개의 신체 장기 필터를 간접적으로 장착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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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 자해! 이불킥이 즐거워지는 EYE BALL>

 

암흑 속에서 이불을 걷어차 본 적이 있나요?

흑역사는 착각에서 만들어집니다. 

정확히는 80%의 착각과 10%의 우매함,

그리고 10%의 몸개그로 이루어졌습니다.

 

<중략> 

 

당신의 흑역사를

EYEBALL이 해결해드립니다.

 

<중략>

 

화창한 날에는 라켓을 챙겨 야외로 나가세요.

친구와 함께 EYE BALL을 주고받아 보세요.

핑, 나 아이돌의 코딱지를 돈주고 산 적이 있어.

퐁, 돌았네.

 


작가가 고안한 이 4개의 신체 장기는 각각의 역할을 하는데, 위 발췌문의 EYE BALL처럼 흑역사를 지워주거나, MBTI로 대변되는 성격을 마음대로 바꿀 수 있게 도와준다.

 

작가가 만들어낸 신체 기관은 그래픽 영상과 사용설명서로 전시되어 있다. 그것들은 하나의 세계관을 형성하여 스토리 텔링으로 관객에게 전달된다. 거대한 세계를 조성하여 관객을 그 안에 동화되게 만드는 소설인 셈이다. 작가 특유의 재치와 젊은 세대의 트렌드를 반영한 창의력이 돋보이는 작업이었다.

 

 


503호, 정고요나 작가의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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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고요나 작가는 때로는 무심하게 지나칠 누군가의 '셀피'를 거대한 캔버스에 옮겨내어 이질적으로 만드는 것에 성공했다.

 

셀피는 불특정 다수에게 ‘나’라는 사람의 모습을 보여주며 은근슬쩍 어필하는 일종의 자랑이다. 나의 기호를 드러내며 내가 이런 사람이라는 과시이기도 하고, 어쩌면 이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페르소나의 표출인지도 모른다.

 

이러한 자아표현은 시간의 포착인 사진에서부터 일상 전체로 번져 브이로그로 업그레이드되었다. 단순히 누군가의 사진을 보는 것에서 시작하여 이제는 누군가의 일상, 인생 전체를 감상하게 된 것이다. 그러한 유행은 종종 감상이 아닌 ‘관음’으로 변질되었다. 작가는 이러한 지점을 예리하게 짚어낸다.

 

'사실 오늘날 우리가 즐기는 콘텐츠 중 대부분이

그저 CCTV 감상에 지나지 않는다'

 

기획자 오웅진의 소개글 중 위 문장은 온라인 문화를 어떻게 소비할 것인지에 관한 질문을 던진다. SNS 상에 노출된 누군가의 페르소나를 어떻게 받아드릴 것인가. 우리는 때로 너무 안일하게 그것들을 관음하고, 소비한다.

 

 

 

Red Shirts


 

세 명의 작가가 다른 매체와 다른 주제를 이야기한다고 여길 수 있지만, 사실 이정빈, 오세애, 정고요나 작가가 말하는 것은 하나이다.

 

 

몸이 아닌 무엇과 무엇이 서로 닿을 수 있을까? 그 지점부터 고민하기 시작한 기획은 ‘통신’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SNS와 커뮤니티를 통한 소통이 이제는 몸에서 몸으로 직접 맞부딪히는 것을 대체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생각은 특이한 전시명으로 이어졌다. 'Red Shirts'는 미국대학스포츠협회의 풋볼 용어로, 고교에서 풋볼 명문 대학으로 들어가기 전 피지컬을 키우려고 일부러 유급하는 것을 말한다. 풋볼이라는 스포츠는 엄청난 피지컬과 한계를 넘어선 신체역량을 요구하기 때문에 대학 무대에 진출하는 전 상당수는 이 과정을 겪는다.

 

새로운 세계에서 두각을 드러내기 위해 스스로 진급을 포기하는 ‘레드 셔츠’. 이것은 비단 풋볼에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더 나은 내일을 위한 도약을 준비하며 하염없이 '레드 셔츠' 하는 중일지도 모른다.

 

이번 전시는 또 이렇게 이야기한다. 레드 셔츠는 사실상 ‘완전한 노출 露出’의 시작이라고. 노출 露出. 고등학생에서 벗어나 사회로 한 발 나아가는 것을 말하기도 하고, 몸속 깊은 곳에 잠재해있던 가능성을 끄집어내는 것이다. 혹은 예상한 대로 작동하지만 언제고 손상되기 쉬운 기능이 포함된 위태로운 상태를 일컫는다.

 

우리는 주어진 몸으로 관계를 맺고, 끊을 수 있다. 손가락 하나로 SNS를 공개 / 비공개할 수도 있고, 아주 쉽게 누군가가 더는 말 걸지 못하도록 차단할 수도 있다. 최첨단의 세계가 이제 노출을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게 만들 수도 있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관계를 맺고 말하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기에 계속해서 소통을 갈구한다.

 

몸을 한계치로 성장시키기 위해 레드 셔츠를 결정하며 완전한 노출로 나아가는 것. 이정빈, 오세애, 정고요나. 세 작가의 작업은 그들이 각자 어떤 레드 셔츠를 거쳤는지 상상할 지점을 마련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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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재이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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