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나약한 인간의 선택 - 연극 라스트 세션 [공연]

글 입력 2020.08.09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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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이 끝나고 극장을 나오면서 참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인생에서 종교의 의미, 전쟁 앞 인간, 이념의 대립, 두 사람의 토론, 그리고 이를 모두 해내는 무대 위 삶의 관록을 물씬 풍기는 2명의 배우까지. 극이 끝나고 어두워진 먹구름 가득한 물 비린내 나는 거리를 걸으며 나약한 인간의 삶과 신에 대해 곱씹어본다. 정답은 없다. 프로이트의 라스트 세션은 우리에게 무엇을 전달하고 싶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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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년 9월 3일. 프로이트의 집에 초대손님 C.S. 루이스가 방문한다. 종교적 신념을 일종의 강박으로 여기며 무신론적 세계관을 일생에 있어 펼쳐온 프로이트가 여러 책을 통해 기독교 변증을 펼친 유신론자 C.S. 루이스를 자신의 집에 초대한다. 구강암을 앓고 있는 프로이트가 자신이 죽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도 반대되는 의견의 대명사를 초대한 이유는 무엇일까?

 

 

C.S. 루이스는 프로이트의 생각에 동의하고 프로이트의 책을 읽으며 철저히 무신론자의 삶을 살았던 적이 있다. 하지만 어느 날 사이드카에 타고 동물원에 가는 동안 신을 믿게 되었다고 한다. 오랫동안 지독하게 프로이트처럼 신의 존재를 거부했던 모습과는 달리 신을 믿고 예수를 외치는 것은 정말 순식간이었다면서 프로이트와 신에 대해 논쟁을 벌인다.

 

 

[라스트세션] 공연사진_이석준(2)(사진제공_파크컴퍼니).jpg

 

 

그가 왜 기독교인이 되었는지에 대한 과정은 자세히 다루지 않았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결국엔 신의 존재에 대한 설전으로 이어진다. 서로의 말을 꼬집으며 반박하고, 웃으면서 유머를 던진다.

 

유머 속엔 그들의 주장이 은근히 스쳐 간다. 루이스는 성서, 복음서에 있는 과학으로 설명되지 않는 것에 집중하기보다 그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아는 것을 중요시하며 지적인 언어로 설득력 있는 반박을 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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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신실한 종교인이었다면 이 극을 어떻게 바라볼 수 있었을까 싶기도 하고, 무신론자 입장에서 프로이트처럼 따끔하면서 재치 있게 의견에 반박하고 표현할 수는 없지만, 그의 말에 동의하면서 그들의 대화가 어떻게 진행될지 매우 흥미진진하게 보았다. 흉흉한 세상에서 무언가 종교를 믿고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이 내가 얻고자 하는 것을 얻고자, 자신의 잘못과 죄를 용서받고자 하는 일이라고 느낄 때가 많다. 그래서 더욱 프로이트의 냉정한 상황 파악과 유머가 마음에 들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면서도 작가로서 논리적으로 어떻게 신의 존재를 변증할 수 있는가에 대해 확실히 보여준 루이스의 주장 또한 색다르게 다가왔다. 고통이 있는 이유도 이를 통해 상대적으로 소중한 가치들을 느끼고 더욱 중요시하기 위해서라고 말하는 그의 말에도 어느 정도 동의하기도 하면서 두 사람의 핑퐁에서 나 또한 움직여가며 극을 보면서 생각보다 시간이 빠르게 흘렀다.

 


 

나약한 인간



[라스트세션] 공연사진_남명렬(1)(사진제공_파크컴퍼니).jpg

 

 

그들은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언제 터질 줄 모르는 공습과 폭격에 불안에 떨며 유일한 매개체인 라디오에 의존하며 살아간다. 기차 일정표가 아무런 소용 없듯 그들의 일상은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져 버린 것이다. 그런 상황 속에서도 그들의 신념과 생각을 정립하고 쌓아간다는 게 대단하다고도 느꼈지만, 그들 대화의 끝은 결국 사이렌 소리, 공습 소리다.

 

당황하며 무서움에 떨고 방독면을 끼고자 노력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이런 이념 대립과 토론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었다. 그 당시 상황에서 아무리 신을 외쳐도, 혹은 부정하는 그들을 포함한 대부분이 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의 현실을 걱정하며 전쟁에서 자신이 죽을까 봐 두려워서 벌벌 떠는 것 아닐까. 결국 나약한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회의가 든다.

 

나약한 인간의 무력함을 느낀 건 당시 상황뿐만 아니라 프로이트의 죽음을 향하는 과정을 직접 눈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극이 진행될수록 신을 부정하며 아파서 어쩔 줄 모르는 노년의 한 박사가 슬프게 다가온다. 프로이트는 자신의 말을 통해 사람들의 마음을 치료하고, 정신을 분석하는 의사다.

 

하지만 지금의 그는 심각한 구강암에 걸려 심각한 악취를 풍기며 말도 제대로 잇지 못하는 죽음을 앞둔 노년일 뿐이며 루이스와 대립을 펼치며 자신의 주장을 펼치려고 해도 가장 에너지가 폭발해야 할 시점에 입이 아파서 끙끙대고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구강교정기도 뺄 수 없고 약이 없으면 견디지 못하는 그런 사람이 되었다.

 

 

[라스트세션] 공연사진_신구(2)(사진제공_파크컴퍼니).jpg

 

 

그 모습으로 '신이 있었다면 내게 이런 암 덩어리를 주지 않았겠지'라며 신을 부정하는 프로이트의 모습을 보면, 기독교를 포함한 모든 종교의 존재를 나 또한 흐리고 싶어진다.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이러한 봉사심 출중하고 따스한 이야기가 현실에 존재하는가에 대한 프로이트의 의문에 참 동감한다.

 

특히 제 2차 세계대전의 무자비한 폭력을 넘어 대량 살상을 일상에서 아무렇지 않게 저지르는 상황 속에서 그런 말을 외치는 사람이 있다면, 나 같아도 프로이트처럼 웃기지도 않은 유머를 던지는 게 더 낫다고 생각했을 것 같다.

 

그렇게 이해심 많고 모든 이를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았던 C.S. 루이스도 계속해서 그와는 상반된 모습을 보인다. 전쟁의 현실을 극도로 두려워하고 할아버지의 입에서 나는 악취에 인상을 찌푸리며, 구강 교정기를 빼달라고 외치는 할아버지의 말에 놀라서 어쩔 줄 몰라 한다. 그럴수록 저런 사람이 이웃을 사랑하라고 외치며 기독교 변증을 펼친다고? 의문이 쌓여간다.

 

*

 

프로이트와 루이스가 마지막으로 헤어지면서 유머 이야기 하나를 나눈다.

 

 

신을 믿지 않는 보험관리인이 죽기 전날 밤, 동네 목사를 초대해 밤새 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보험관리인은 무신론자인 채로 죽고 다음 날 목사는 보험을 들고 집에 걸어간다.

 

 

결국 신을 믿지 않든, 믿든 현실에서의 고통과 죽음은 두려운 대상인 걸까? 식견이 좁은 나에게는 아직 그렇게 보인다. 아직 고통이 두렵고 현실이 무섭고 죽음을 피하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구강암 말기로 제대로 일상생활조차 하기 어려우면서도 마약성 진통제는 자신의 정신을 흐린다면서 거부하고 자신의 죽음을 당당히 선택하고 싶다며 자살을 암시해 루이스를 분노케 한 프로이트가 너무나 충격적으로 강렬하게 느껴졌다.

 

끝까지 자신만의 생각에 의한 선택으로 삶을 살고자 한 그의 태도와 모습에 압도되어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1939년 9월 25일 모르핀 과다 투여로 사망'이라는 글자로 마무리되는 이 극의 결말까지. 프로이트의 라스트 세션에 함께 했다는 희열과 가슴 뜨거움이 각인된 마음과 함께 극이 종료된다.

 

각자의 생각, 이론, 개념들이 서로의 주장에 첨예하게 맞쌓아지고 어우러지면서도 강렬히 대립한다. 종교가 생길 때부터의 논쟁을 하루아침에 끝낸다는 건 예견된 미완성이었지만 그 속에서 얻을 수 있던 것은 관객들의 생각에 의한 선택과 합쳐져 풍부한 완성이 된다.

 

하나의 사건이 주어져도 논리정연하게 상반된 의견을 낼 수 있는가에 대해 이를 온전히 상상으로 만들어낸 작가 마크 세인트 저메인과 무대 위 온전한 프로이트와 루이스를 만나게 해준 배우들에게도 박수를 보낸다. 지적인 대화 속에서도 위트를 잃지 않는 두 사람의 논쟁 자체에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심장 떨리는 연극이다.

 

 

20라스트세션_티저포스터(사진제공_파크컴퍼니).jpg

 

 



[이수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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