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감각하고 연결되기, 서울환경영화제에서 만난 '바람을 심다'

2020서울환경영화제 <바람을 심다>
글 입력 2020.08.08 0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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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기변환]제17회 서울환경영화제_메인포스터.png

 

 

문화예술 행사들이 연달아 취소되면서, 기대했던 서울환경영화제도 상영이 어려워질까 조마조마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기후위기, 기후재난, 환경파괴 등의 이유로 벌어진 파국으로 인해 이를 이야기하는 ‘서울환경영화제’의 개막이 어렵다면, 그보다 슬픈 상황이 어디 있겠나 싶었다. 다행히 약 2주간 진행된 영화제는 온라인과 오프라인 모두에서 관객들을 만났다.

 

환경, 영화, 축제로 묶이는 시공간은 그곳에서 또다시 새로운 생각과 연결을 피워낸다. 영화는 흥미로운 관점들로 이미지를 제시하고, 축제는 즐거움의 감정을 공간 곳곳에 품고 있으며, 그 모두가 환경과 그 환경 속의 당사자 목소리를 내는 태도를 지녔다. 내가 19년에 방문했던 서울환경영화제는 환경, 영화, 축제 모두를 말하고 있었다. 환경을 마주 보는 태도를 영화를 통해 표현하고 나눴다. 1년 뒤, 올해의 영화제 모습은 조금 달라졌을지언정, 그 속에 담은 이야기들은 더 넓고 풍부하게 외치고 있었다.

 

18년과 19년, 15·16회 서울환경영화제는 특히 플라스틱, 쓰레기, 제로웨이스트 지향적 삶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작년에는 특히 플라스틱 프리 운동이 활발했으며, 미세플라스틱의 위험성에 대한 목소리도 높았다. 2020년 제 17회 서울환경영화제의 포스터는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염원하는 영화제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끊이지 않는 산불과 대학살, 기후위기, 쓰레기, 올해 많은 피해를 불러온 홍수와 장마까지. 인간은 발전, 경제 따위의 단어들에 집중했지만, 그 ‘눈부신 발전’ 뒤에 철저하게 배제되고 잔인하게 착취했던 자연은, 결국 가득 찬 인간의 이기심을 버티지 못하고 피고름과 신음을 토해냈다.

 

“포스터는 인간이 초래한 환경 문제의 피해를 고스란히 받아온 동·식물들을 더는 일방적으로 고통 받는 존재가 아닌, 엄연히 지구의 한 부분을 이루고 있는 인간의 동등한 이웃으로 그렸다.”

 

무엇보다 환경이라는 태도, 영화제의 모든 이들이 함께 고민하는 태도라는 점에서, 축제에 함께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힘이 나고 든든한 마음이 생긴다. 서울환경영화제는 이번 포스터, 카탈로그 등의 인쇄물에서 종이 유실을 최소화했다. 종이를 사용할 경우, FSC종이를 사용한다. 특히나 문화예술 전공자로 항상 고민하던 것은, 행사 소개 등의 카탈로그 인쇄 시 사용되는 종이로 환경파괴가 어마어마하다는 것이었는데, 서울환경영화제에서는 온라인 파일로 영화제 정보들을 볼 수 있어 마음이 한결 편했다.

*FSC 종이 : 비영리 국제 NGO 단체인 산림관리협의회에서 인증한 지속가능조림활동을 통해 생산된 목재로 제작된 종이

 

또한 영화제에 사용된 현수막, 배너 등 제작한 옥외홍보물은 모두 수거해 업사이클링 제품을 만든다. 업사이클이라는 것이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이 되지 못하기에 마냥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는 없지만, 특히 축제나 행사에서 많이 사용되고 그냥 버려지는 것들을 다시 사용한다는 점에서, 익숙하던 것들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는 그들의 태도는 언제나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고, 한결 편한 마음으로 축제를 즐길 수 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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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 경영학을 전공하는 21살 니카는 학교를 자퇴하고 남부 이탈리아 풀리아주에 있는 고향으로 삼 년 만에 돌아간다. 니카가 없는 사이, 아버지는 빚더미에 올랐앉았고, 마을은 오염되고 황폐해졌으며, 올리브나무는 해충에 잠식되었다. 마을 사람들은 이 엄청난 생태학적 재난을 포기한 듯 보이고, 아버지는 보상금을 받기 위해 올리브나무숲을 갈아엎는 일에 사로잡혀 있다. 니카는 전력을 다해 이 오래된 나무들을 지키려 한다. 하지만 전 지역에 퍼진 오염은 사람들의 마음까지도 오염시켰고, 니카는 예상치 못한 장애물과 맞닥뜨린다."

 

온라인으로 영화제가 진행되었고 모두 무료 티켓이었기 때문에 어느 때보다 더 많은 친구들과 함께 즐기는 영화제가 되었다. 집에서 온라인으로 같은 영화를 본 뒤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고, 2일 동안 진행된 오프라인 영화제에 함께 방문하기도 했다. 그 외에도 각자 온라인으로 보았던 영화에 대해 수다를 떨었다. 이 글에서는 그중에 내 기억에 가장 오래 남아있는 영화 <바람을 심다>에 대해 써보려 한다.

 

최근 비거니즘과 코로나19를 주제로 하는 강연에 다녀왔다. 강연 후 이어진 질문이 인상 깊었다. “자연을 마치 인간을 위한 자원으로 간주하는 시각은 결국 동물뿐만 아니라 모든 토양과 공기, 물, 그리고 그 위에서 자라나는 모든 생명에 대한 착취를 정당화하는 것 아닐까요?” 생각해보니 비건을 공부하고 지향하면서 동물권을 고민하는 만큼, 내가 먹는 식물종에 대한 고민은 그리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래서 처음 ‘팜유’가 무엇인지, 팜유의 생산과정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게 되었을 때도 충격이 컸다. 내가 아무렇지 않게 사들였던 음식들은 동물과 노동자, 그리고 그곳에 사는 모든 나무와 풀과 곤충들과 돌을 파괴하면서 얻는 특권이었다.

 

<바람을 심다>를 보면서 계속해서 그때의 질문과 목소리가 맴돌았다. 주인공 니카는 나무의 소리를 듣고, 죽은 나무들과 오염된 마을, 그리고 그를 통해 돈을 버는 아버지, 그들의 폭력성과 가부장제, 그 구조들을 계속해서 인지한다. 인간과 자연 사이의 위계 설정, 남성과 여성 사이의 위계 설정, 그 위계를 정당화하여 끊임없이 이어지는 그들의 폭력과 차별, 배제와 억압 속에서, 니카는 끝없이 저항한다. 감독 다닐로 카푸토의 말에 따르면, 이 영화는 실제 이탈리아 상황들을 반영하고 있다. 이탈리아에서 박테리아 잎마름병에 걸려 죽어가는 올리브 나무는 2015년 기준으로 100만 그루에 달했다. 또한 니카 아버지처럼 독성 폐기물로 돈을 버는 이들을 ‘에코 마피아’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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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이라는 말 대신 ‘생태’라는 단어를 점점 더 많이 쓰게 된다. 기존의 틀을 유지하면서 환경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하는 환경주의에 많은 이의가 제기되었다. 그렇다면 보다 근본적인 문제 접근과, 세계와 우리가 연결되어 있다고 말하는 것이 생태주의라 할 수 있다. 이를 공부할수록 결국 인간중심주의, 남성중심주의, 이성애중심주의, 가부장제, 자본주의, 종차별주의가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자연은 인간중심주의와 자본주의, 종차별주의에 의해 대상화되고, 니카는 자본주의와 이성애중심주의, 가부장제, 남성중심주의에 의해 타자화되며, 니카의 아버지 역시 자본주의와 가부장제에 의해 배제된다.

 

서울환경영화제라는 공통의 시간을 통해 우리는 우리를 둘러싼 환경과 구조에 대해, 영화를 보는 순간 그 무엇보다 강렬하게 감각한다. 그리고 결국 이 복합적인 구조 안에서 내가 착취 당함과 동시에 착취하기도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영화제에서 만난 수많은 감독과 영화 속 인물들. 그를 들여다보는 시간 속에서 나는 다시 한번 세상을 비틀어볼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니카처럼, 끊임없이 감각하고 인지하려는 태도 그 자체일 것이다.


 

[장소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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