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모두 제이미에 대해 이야기하게 될 거야, 뮤지컬 '제이미' [공연예술]

글 입력 2020.08.03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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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가 있습니다.

 

 

6개월 만에 뮤지컬을 봤다.

 

누군가 취미가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망설임 없이 “뮤지컬 보기요!”라고 대답하던 내가 뮤지컬과 멀어지다니. 뮤지컬과 나 사이에 가장 두꺼운 벽을 쌓은 범인은 바로 코로나19. 쏟아지는 과제와 취업 스트레스까지 더해지자 벽은 더 단단해졌다. 이 벽을 부순 것은 뮤지컬 “제이미”였다.

 

뮤지컬 “제이미”는 특별한 공연이다. 네덜란드에서 교환학생 중이던 날 런던으로 떠나게 만든 작품이기 때문이다. 작년 5월, 기숙사 침대에 누워 유튜브를 보다 우연히 뮤지컬 “Everybody’s Talking About Jamie”의 한 장면을 봤다. 낯선 외국 작품에 한눈에 반해버린 것은 처음이었다.

 

무작정 런던행 티켓을 끊었다.

 

 

 

 

실존 인물 제이미 켐벨의 다큐멘터리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뮤지컬 “Everybody’s Talking About Jamie”는 드래그 퀸을 꿈꾸는 영국 고등학생 제이미의 이야기다. 예상대로 너무 좋은 작품이었지만 한 번 더 보기에는 시간적, 금전적 여유가 없었기에 아쉬움을 가득 안고 돌아왔다.

 

왠지 언젠가 한국에서 공연될 것 같았고 그러길 간절히 바라긴 했지만, 이렇게 빨리 공연될 줄은 몰랐다. 뮤지컬 “제이미”의 공연 소식을 들으니 제이미와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설렜다. 그것도 우리말 가사와 대사, 우리나라 배우로!

 

공연장 가는 게 너무 오랜만이라 긴장되기까지 했다. 날짜와 시간이 맞는지 몇 번 더 확인하고 LG아트센터로 출발했다. 주로 중소극장 뮤지컬을 보는 편이라 대극장엔 자주 가지 않는데, 특히 LG아트센터는 2016년 뮤지컬 “페스트” 이후 4년 만의 방문이라 더 낯설었다.

 

요즘 같은 때에 뮤지컬을 보러 오는 사람은 많지 않을 줄 알았는데 로비에 생각보다 많은 관객이 있었다. 마스크를 착용하는 것은 물론, 모바일 문진표를 작성하고 체온을 측정한 뒤에 입장할 수 있었다.

 

관객과 관계자 모두 어려움 속에서 공연계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게 느껴져 뭉클했다. 극장이 암전되고 무대에 조명이 켜지자 제이미의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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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그 퀸을 꿈꾸는 제이미는 혐오와 차별의 시선을 마주한다. 하지만 제이미의 곁엔 그를 믿고 응원하는 엄마 마가렛, 이모 레이, 친구 프리티가 있다.

 

졸업 파티에 제이미는 하얀 드레스를 입고 당당하게 등장한다. 친구들이 제이미의 이름을 외치자 선생님도 제이미의 입장을 허락하고 파티를 함께 즐긴다는 마무리가 갑작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그런 훈훈한 마무리가 꽤 마음에 들었다. 당당한 제이미의 모습이 좋았고 무대 위의 밝은 에너지가 좋았다.

 

원작을 먼저 보고 한국에서 다시 본 뮤지컬은 처음이라 정말 새로웠다. 고등학생들의 이야기다 보니 유행어와 신조어가 많이 나오는데 우리말로 번역을 잘한 것 같았다. 제이미가 입버릇처럼 말하는 ‘완전 소중’은 처음엔 조금 어색했지만 점점 중독되는 기분이었다. 제이미의 드래그 퀸 이름 ‘MIMI ME’가 ‘나나나’로 번역된 것도 재미있었다.

 

런던에서 들었을 때도 많이 울었던 마가렛의 “He’s My Boy”는 우리말로 들으니 더 와닿았다. 상처를 주기 싫었던 마가렛의 마음도, 엄마의 거짓말과 아빠의 말에 상처받은 제이미의 마음도 이해가 돼서 눈물이 났다. 마스크가 눈물에 젖는 것은 또 새로운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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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들은 정말 완벽했다. 런던에서 한국 제이미를 상상해볼 때 가장 먼저 떠올랐던 배우는 조권이었다. 그는 상상했던 그대로, 아니 그 이상을 보여줬다.

 

다른 제이미는 또 어떨지 궁금해서 결국 전 캐스트를 다 보게 될 것 같았다. 앙상블의 군무와 합창 역시 최고였는데, 특히 제이미를 괴롭히는 딘의 목소리에 빠졌다. 목소리가 너무 좋아서 얄미운 대사마저 달콤하게 들릴 정도였다.

 

뮤지컬 “제이미”는 9월 11일까지 LG아트센터에서 공연된다. 마음속 벽을 넘어 ‘나’를 찾아가는 제이미, 그는 공연을 본 우리 역시 그렇게 하길 바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제이미에 대해 이야기하게 될 것이다. 그 이유는 제이미가 게이라서, 제이미가 드래그 퀸이어서가 아니다. 제이미는 제이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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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호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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