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언니, 나랑 결혼할래요? [도서]

글 입력 2020.07.06 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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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혼이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은 이 시대에 결혼이 꿈인 사람이 있다.

 

몇 번의 연애를 거쳐 인생의 동반자를 찾은 이 사람은 좌충우돌 끝에 자신의 꿈이었던 결혼식을 올린다. 결혼한 두 사람은 평범한 회사원, 식 역시 호텔에서 우리가 볼 수 없는 여느 예식처럼 치러진다.

 

그런데 크게 특이할 바 없는 이 결혼식이 얼마 후 KBS 9시 뉴스에 나온다. 그가 올린 결혼식이 아직은 한국에서 법제화되지 않은 동성결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위에 적었던 '좌충우돌'이 그냥 '좌충우돌'은 아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에 관한 이야기가 담긴 책이 바로 '언니, 나랑 결혼할래요?'다. 이 책에서는 저자가 자신의 성정체성을 확신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하기까지의 이야기들이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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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전반적으로 경쾌한 문체로 쓰여있지만, 이 책을 결코 가볍게 읽을 수만은 없다.

 

대중들의 인식이 많이 변화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아직 성적지향이 놀림거리나 차별의 대상이 되고, 이와 같은 사회적인 괴롭힘이나 차별을 금지하는 포괄적 차별 금지법이 번번이 좌절됐으며, 새롭게 발의된 포괄적 차별 금지법 역시 많은 반대에 부딪힐 것이라고 예상되는 지금 한국에서 동성애자로 살아가기에는 꽤 퍽퍽하기 때문이다.


누가 말해주지 않았어도 언젠가부터 자신이 레즈비언이라고 확신했다는 저자 규진 역시 한국에서의 삶은 때때로 퍽퍽하다. 대학교 술자리에서, 남자친구가 있다고 거짓말을 해야 하고, 가끔은 자신의 성정체성을 솔직하게 고백했다는 사실만으로 사람들과 멀어지고, 회사에서도 누구에게까지 자신의 성정체성을 밝혀야 할지, 신혼여행 신청이 받아들여질지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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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퍽퍽함이 다가 아니다. 저자는 이런 상황들을 특유의 유쾌함과 결단력으로 헤쳐나간다. 거짓말을 했다가도 솔직하게 커밍아웃을 해 버리고, 이런 커밍아웃 이후 자신과 멀어진 사람보다 받아들여 주는 사람들에 더 집중하고, 조금 긴장되고 힘들지라도 자신이 자신의 배우자와 신혼여행 휴가를 받는 것이 좋은 선례를 남기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그저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작은 싸움을 이겨내고 승리했다는 걸 모두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저자 규진의 이야기는 단순히 차별과 맞서 싸우는 이야기, 레즈비언 부부의 결혼 과정 이야기로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이 책에는 유쾌하고 사랑 많은 한 사람이 삶을 대하는 태도가 녹아있다.


프로포즈를 원하는 애인에게 자신의 상황을 유쾌하게 적은 보고용 프레젠테이션을 곁들여 프로포즈를 하고, 전략적인 커밍아웃으로 주변인들을 차근차근 자신의 편으로 만들고, 결국은 사랑하는 사람과 단단한 가정을 이룬 사람의 태도를 읽어내려가다 보면 어느새 입가에 웃음을 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더불어 이런 태도로 삶을 살아간다면, 아주 힘든 날도 그렇게 버텨내기 어렵지는 않을 것이라고, 또 사랑하는 사람들과 일생을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행복한 미래를 꿈꾸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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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행복을 전파해주는 저자가, 저자 부부가 좀 더 행복했으면 좋겠다. 때문에, 현재 발의된 차별금지법이 이번에는 꼭 제정되었으면 좋겠다, 동성결혼 법제화가 빠르게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일상을 살아가는데 그들이 조금 더 편했으면 좋겠다.

 

이를 위해, 나 역시 큰일에 동참하기보다는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싸움에 동참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권묘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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