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점과 점을 잇는 선으로 이루어진 육면체 그 안에 가득 차있는 몇 개나 되는 서로 다른 세계 그리고 빛에 대해 [공연예술]

봄인 즉슨, 만남과 헤어짐의 계절인 모양. 연극 <점과점> (이하 생략) 리뷰
글 입력 2020.07.03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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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돌극장 무대를 배경으로 찍은 티켓.

제목을 그대로 구현해 낸 티켓은

미트크리에이터즈의 개성을 그대로 담고 있었다.

 

 

지난 6월 24일, 코로나19의 여파로 한산해진 대학로를 꺼지지 않는 열정으로 채우는 미트크리에이터즈의 연극 <점과 점을 잇는 선으로 이루어진 육면체 그 안에 가득 차있는 몇 개나 되는 서로 다른 세계 그리고 빛에 대해> (이하 점과점)을 선돌극장에서 만났다. 티켓을 정육면체의 종이로 제작하며 막이 오르기 전, 연극의 내용에 대해 호기심을 갖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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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돌극장 무대를 배경으로 찍은 티켓.

제목을 그대로 구현해 낸 티켓은

미트크리에이터즈의 개성을 그대로 담고 있었다.

 

 

연극 <점과점>은 2013년 일본에서 처음 발표된 작품이다. 2016년 번역가 고주영의 손을 거쳐 한국에 처음 소개되었다.

 

연극의 배경은 일본 해안가의 작은 마을. 집이라는 점과 학교라는 점을 오가는 선 위에 살고 있는 여섯 명의 중3 친구들이 있다. 어린 여자아이가 살해당하고, 그런 일이 있었음에도 자기 삶을 이어가는 어른들을 보며 분노하는 아야. 가출을 결심하며 숲에 텐트를 치고 학교에도 가지 않는다. 아야의 가출에 이어 911테러의 간접 경험으로 혼란스러워하는 친구들.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세상에 의구심을 품고, 저마다의 방법으로 대처하고자 한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어느 날. 세상은 달라졌지만 남은 친구들은 학교를 다시 찾아 그때의 일을 되살린다.

 

선돌극장은 130여 명의 관객을 수용하는 소극장이다. 극장의 특성상 마이크 없이 배우들의 호흡을 더 잘 느끼며 공연을 관람할 수 있었다. 코로나19로 인해 관객의 수를 제한해 연극에 쉽게 몰입됐다.

 

올해로 벌써 <점과점>(이하 생략) 공연을 네 번째로 올리게 되었다는 미트크리에이터즈. 기존의 극단 시스템을 벗어나, 연출 정준호와 배우 백혜리를 중심으로 매번 새로운 배우들과 함께한다.

 

 
떠나고 남고는 옳은 게 아니고 무엇을 선택하는지 뿐이잖아?
 

_아유미

 

 

이 작품은 전혀 다른 두 선택을 하는 아유미와 사코토를 통해 스스로의 모습을 돌아보게 만든다. 나는 제자리에 머물기 원하는 아유미 같은 사람일까? 스스로 점이라고 말하면서도 선을 그리기 위해 앞으로 나가는 사코토 같은 사람일까? 이 대사를 통해 내 선택이 어떤 것이었는지, 지난 선택들이 현재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돌아보게 만들었다.

 

앞으로 나아가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가지던 때가 있었다. 만족할 수 없는 현실과 이상 사이의 간극, 그 틈을 좁히기 위해선 움직이는 방법뿐이었지만 이미 가진 것을 잃을까에 대한 두려움이 늘 발목을 잡아왔다. 필자는 연극 <점과점>을 2018년 7월에도 본 적이 있다.

 

당시 극 중의 사코토와 앞으로 전진하지 못하는 나를 비교하면서 알 수 없는 패배감에 힘들어했었다. 나는 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선을 그리고자 앞으로 나아가는 사코토를 보며 나의 부족한 용기를 탓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현실과 이상 사이의 간극을 좁히기 위해 두렵지만 구불구불한 선을 그리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번에 연극<점과점>을 관람하면서 사코토를 마주할 때, 난 조금 더 당당해지고 똑바로 그 캐릭터를 마주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말이지, 기록해두자 싶어서
 

_오노시마

 

 

기억하는 것과 기록해두는 것을 통해 우리는 지나간 시간들에 최선을 다할 수 있다. 극 중의 오노시마는 아야를의 가출을 도우면서도 진심으로 걱정해 주는 친구다. 남들과 다른 길을 걷는 친구와 그로 인한 비극을 보며 오노시마는 자신을 탓하기보다는 그 친구를 기억하기를 선택한다. 이미 떠나간 것에 대해선 손쓸 도리가 없다. 나는 이미 내 손을 떠나간 지난 시간들에 대해 어떠한 모습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연극 <점과점>은 짧은 문장을 잦은 호흡을 가지고 반복해 말한다. 에필로그부터 의미를 알기 힘든 문장들이 나열되고, 관객은 연극이 진행되면서 그 문장들의 의미들에 대한 답을 찾고 그 속에 숨은 의미를 자연스럽게 반영하면서 자신의 삶을 돌아본다.

 

일본어를 그대로 직역한 이 작품은 등장인물들의 이름도 그대로 쓰고 일상에서 사용하지 않는 표현들을 자연스럽게 말한다. 관객은 이로 하여금 연극과 자신이 살고 있는 현실 세계를 분리시킨다. 일본어 특유의 말투가 이 작품을 처음 제작 의도 그대로 이해하는데 더 큰 도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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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바닥에 하얀 선으로 무대를 꾸민 연극.

배우들은 이 선을 밟고, 뛰고, 건너면서

장면을 전환하고 극의 흐름을 이어갔다.

 

 

별다른 소품 없이, 장면의 전환 없이 심지어는 배우들의 등장과 퇴장 없이 연극은 무대와 무대 위의 선만 가지고 진행된다. 배우들은 장치의 도움 없이도 캐릭터를 명확하게 표현했고 오히려 그 안에서 자유로워 보였다. 무대언어로써 바닥의 선만을 선택하는 과감한 시도로 배우들의 몫이 더 늘었지만 보는 관객으로 하여금 연극의 흐름과 배우들의 대사에 더욱 집중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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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감독 윤현종의 테이블.

그 어떤 것도 악기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연극 <점과점>의 차별성은 즉석에서 연주되는 BGM이다. 무대 옆 마련된 음악감독의 테이블에서는 각 장면과 타이밍에 맞춰 즉석으로 효과음이 연주됐다. 실로폰, 카혼, 대나무 그리고 밥그릇까지. 종류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사물들을 즉석에서 연주함으로 연극의 재미를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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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 중 아야가 수업 중 앞자리 친구의

뒤통수를 보며 썼다는 종이.

연극의 제목이 빼곡히 적혀있다.

 

 

연극 속 등장인물의 대사는 물음이 많다. 관객은 배우의 입을 빌려 스스로에게 묻고, 그에 대한 답을 연극을 통해 발견한다. 좋은 연극은 관객이 더 나은 삶을 살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연극 <점과점>은 어린아이들의 시각으로 이 세상을 다시 바라보는 눈을 선사하고, 이를 통해 더 나은 삶을 살도록 한다.

 

관객에게 직접적으로 설명하지 않고 주도적으로 극의 흐름을 따라가면서 의미를 찾도록 하는 연극 <점과점>. 찾는 만큼 찾아지는 수많은 의미들 속에서 한국 연극의 큰 희망을 엿볼 수 있었다.

 

 

[박민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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