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이것은 우리의 현실이다. - '장녀들' [도서]

초고령 사회의 사각지대에 놓인 딸들이 살아가는 이야기
글 입력 2020.06.30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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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우리 집의 기둥이다.’ 라는 말은 어릴 적 부모님께서 장녀인 나에게 자주하시던 말이었다.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는 내가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라는 생각에 기분이 내심 좋았지만 해가 바뀌고 성장함에 따라 이 말은 오히려 물음표가 되었다. 부모님께는 단순한 의미였을지도 모를 집안의 기둥이라는 말은 나에게는 그만큼의 책임감과 부담감을 동반했기 때문이다. 그래서였을까. 마음속에는 항상 책임감 있고 성실한 사람으로 살아야한다는 다짐을 갖게 했다. 동생이 태어나고 나서 동생을 돌보던 5살 무렵에는 어느 날 문뜩 내가 어른이 다 되었다고 착각으로 살아온 적도 있었으니 말이다.

 

부모님에게는 좋은 딸로, 동생에게는 좋은 언니가 되겠다고 마음먹은 터라 이것은 나의 삶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나와 가까운 주변 사람들에게 실망시키지 않겠다고 생각해서 성실하게 사는 삶을 추구했고 실제로도 매순간 최선을 다하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지극히 나의 개인사이기는 하지만 집안의 맏이로 자라온 사람이라면 어느 정도는 이해해주리라 생각한다.

 

그도 그럴 것이 심리학자 케빈 르만 박사의 1967년 발표한 저서 ‘출생 순서(Birth Order Book)’에 따르면 사람의 성격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 중 하나로 출생 순서를 꼽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가 발표한 저서에 따르면 첫째 아이는 근면 성실하고 양심적이고 성취 지향적이며, 아무리 나이가 어려도 책임감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또한, 부모는 첫째 아이에게 많은 시간을 투자하며 형제자매의 모범으로 성장하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이러한 성격적인 강점도 있지만 자유롭게 사고하거나 행동하는 성향은 적게 나타나고 가정 내 많은 책임은 부담으로 이어져 부정적 스트레스를 유발할 수 있다는 성격적인 약점 또한 가지고 있는 것이 첫째였다.

 

이렇듯 첫째들의 성격 그리고 앞으로 소개할 책 『장녀들』에서 등장하는 장녀들의 성격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일종의 책임감 특히 가족에 대한 책임감은 어쩌면 어린 시절에도 그러했듯 나이가 들어서도 자연스럽게 이어져 간 것일 것이다.

 

『장녀들』에서도 그러했다. 시노다 세츠코 작가의 책 『장녀들』은 3가지 소설 즉, '집 지키는 딸', '퍼스트레이디', '미션'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소설 모두 노인이 된 아픈 부모님을 간병하는 역할을 홀로 떠안은 장녀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 책 소개 -


초고령 사회를 살아가는 딸들의

'하이퍼리얼리즘' 간병기

 

초고령 사회의 사각지대에는 노인이 된 부모를 홀로 돌보는 딸들이 있다. 딸이라는 이유로, 비혼이라는 이유로 홀로 짊어지게 된 돌봄노동은 이들을 보이지 않는 지옥으로 밀어넣는다. 『장녀들』은 이 여성들의 솔직한 목소리를 담아낸 소설로, 사랑에서 시작되었을 돌봄 이면에 자리한 서늘함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실제로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20년간 간병한 저자의 경험이 반영된 세 편의 이야기는 오늘날을 살아가는 딸, 특히 장녀라면 공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누구를 어떻게 돌볼 것인가. 죽음과 나이듦을 어떻게 바라보고 맞이할 것인가. 이 여성들은 곧 초고령 사회 진입을 앞둔 우리가 맞닥뜨릴, 또는 마주하고 있는 질문들을 던진다. 물론 질문에 해답은 없다. 하지만 그들은 나름대로의 선택을 한다. 『장녀들』은 따뜻한 가족소설이 아니고, 소설 속 여성들이 살아가는 오늘날에 더 이상 효녀 이야기는 유효하지 않다. 과연 이 장녀들은 각자의 지옥 속에서 어떤 길을 찾아낼까.

 

 

그 중에서도 나는 ‘장녀들이 왜 집으로부터 벗어날 수밖에 없었을까’에 주목하고 싶다. 가장 안전하고 편안함을 느껴야 하는 집과 가족으로부터 떠나야하고 도피하고 싶은 마음은 어디서부터 비롯되었는지가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사실, 3가지 소설 내 등장하는 장녀들은 가정사가 복잡한 것도 불운했던 것도 아니었다. 지극히 화목한 가정에서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장녀들은 가족에게 무언가를 빼앗겼다고 인식하게 된다. 이러한 자각은 장녀들은 가족의 굴레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운 자신을 찾고자 도피하거나 도피처를 마련하게 한다.

 

즉, 소설을 보면 ‘집 지키는 딸’에서는 자신의 직장까지 퇴사하고 레비소체형 치매가 걸린 어머니를 간병에 전념하는 장녀 ‘나오미’가 등장한다. 계속되는 간병생활은 그녀는 정신적, 육체적으로 힘들게 한다. 그러다, 어머니의 실수로 잃어버린 휴대폰을 주워준 신도라는 남자와의 우연한 만남은 계기가 되어 하루는 그와 만나 자신의 괴로운 현실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움을 얻고자 했다. 하지만, 그조차도 허락되지 않았다. 그의 어머니가 그의 집에 불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퍼스트레이디’에서는 어머니의 간병 생활을 홀로 그리고 자신이 마주한 현실을 깨달은 이후 도피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은 장녀 ‘게이코’의 모습이 나온다. 당뇨병을 앓고 있는 어머니, 자신이 당뇨임을 알고 있음에도 식습관이나 생활 습관을 개선하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생활만 유지하고자 했던 것은 결과적으로 병을 악화하게 만들었고 신장 이식을 해야 건강을 회복할 수 있다는 상태에 이르게 되었다. 결국, 어머니의 간병부터 신장 이식까지 그 모든 것은 장녀인 ‘게이코’의 몫이었고 당연한 듯이 받아들이는 어머니로부터 온 실망감과 허탈감은 복합적인 감정으로 이어져 결국 자신을 지키기 위해 도피하기로 마음을 먹는 계기가 되었다.

 

‘퍼스트레이디’에서는 장녀 ‘게이코’가 도피하기로 다짐을 한 후의 상황은 묘사되지 않지만, ‘미션’에서는 유일한 딸인 ‘요리코’는 달랐다. 가족에게 헌신하던 어머니를 의지하던 아버지가 난소암으로 사망한 어머니를 잃자 그 자리를 가까이서 살던 오빠가 아닌 독신인 딸 ‘요리코’가 대신해주기를 바란다. 특히, 아버지는 “네가 시집가면 난 어쩌냐.”라는 말을 하며 딸이 자신의 노후 생활을 전담해주기를 바란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요리코’는 이러한 자신의 위치와 현실을 깨닫고 집으로부터 도망쳐 나와 도쿄의 의대로 진학한다. 도피했다고 해서 그녀의 마음이 편한 것은 아니었다. 이러한 결정을 하기 까지 무언의 죄책감에 사로잡혔고 아버지의 고독사를 마주하고 난 후에도 그러한 감정은 더욱 심화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는 집에서부터 벗어나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이것은 ‘요리코’의 말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가족이 화목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어머니의 노력 덕분이었다. (중략) 그런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아버지는 물론이고 결혼한 오빠조차 당연하다는 듯이 여동생이 어머니를 대신하기를 요구했다. 화목한 가족에게 자신은 무언가를 계속 빼앗겼다.'

'그것을 느낀 게 언제쯤이었을까.'
'의심이 확신으로 바뀌었을 때, 그곳에서 도망쳤다.'

 

- 269p

 

 

앞서 언급하였듯이 장녀들은 모두 자신의 현실로부터 벗어나고 자유를 얻기를 갈망한다. 하지만,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현실은 어떨까. 현재 노인 돌봄을 마주하고 있는 이들은 누구이며, 그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가.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국제이주와 포용사회센터’의 전지원·문현아 박사 등이 연구한 ‘한국의 노인 및 아동 돌봄 가족조사’ 연구를 통해 현재 우리나라의 가족 간 노인돌봄의 실태를 볼 수 있다. 가족 간 노인돌봄을 전담하는 주돌봄자에게 돌봄하는 이유를 물었는데 가족 내 주돌봄자는 노인과 함께 살아왔거나(29.0%), 가장 가까운 거리에 살고 있기 때문에(19.5%)를 이어 본인 또는 배우자가 자녀 중 맏이라서(14.6%), 다른 가족들이 모두 일하고 있거나 나 아니면 돌볼 사람이 없어서(10.2%)라는 이유로 주돌봄자가 되었다고 응답했다.

 

이러한 통계자료를 보아 알 수 있듯이, 가족 간 노인 돌봄을 맡게 되는 것은 돌봄을 필요로 하는 노인과 가까이서 살고 있거나 가족 중 타 가족에 비해 상대적으로 시간적 여유가 있는 사람이 자연스럽게 돌봄을 맡게 되는 형태로 자리 잡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그 역할을 맡는 사람들의 성별과 가족 내 위치는 어떠할까. 현재 주돌봄자로 돌봄하고 있는 노인과의 관계를 묻는 질문에서는 딸(35.0%), 며느리(36.7%)로 과반 이상의 비율을 차지했고 그 뒤를 이어 배우자(15.6%), 아들(11.0%) 순으로 나타났다. 즉, 가족 간 노인 돌봄은 주로 여성들이 맡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연구였다.

 

이러한 현 실태를 현실적으로 반영한 개호소설이 『장녀들』이다. 소설에서도 등장했듯이 주로 주돌봄자는 여성이고 결혼한 형제자매에 비해 상대적으로 자신의 부모에게 시간을 할애할 여유가 있는 독신자 그리고 누구보다 책임감이 강한 장녀들이 노인이 된 부모를 돌봐야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가족을 버리고 도망쳐 나온 장녀들에게 비난할 수 있는가. 또한, 이것은 ‘장녀들’만의 일인가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아야 한다. 누군가가 마땅히 해야 한다고 정해진 것도 아닌데 그 역할은 대부분 여성이 맡고 있으며, 여성 중에는 장녀 또는 며느리가 맡고 있는 것이 현 실태이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가족을 위해 헌신했던 장녀들의 모습은 책임감 있게 비춰졌고 옛말에 ‘장녀는 살림 밑천이다.’라는 말 또한 그러한 과거의 장녀상을 반영한 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자녀가 나이든 부모를 돌봐야 하고 그러한 역할은 여성이 주로 맡는다는 것에 대해 깊게 논의하기 보다는 당연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혹자는 페미니즘의 요소가 담긴 것이 아니냐고 할 수 있다. 이것을 부정할 수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단순히 젠더의 문제로서 바라보고 싶지는 않다. 통계자료에는 대부분 여성이 노인 돌봄을 맡고 있는 현실이라 말했지만 일부는 그 역할을 남성이 해야하는 가족도 있듯 각자가 놓인 돌봄의 상황은 다양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미에서도 ‘장녀들’이라는 제목은 독신이 된 자녀가 노인이 된 부모를 돌보는 위치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며, 이것을 당연시여기는 가족과 사회에 대해 과연 이것이 옳은가에 대한 메시지를 던지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단순히 개인의 문제만으로 치부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 고민해야 한다. 어느 누군가가 그 역할을 홀로 짊어져야 하는 현실이 옳은 것일지 생각해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고령화 시대로 나아감에 따라 노인 돌봄에 대한 이슈는 더 이상 타인의 일이 아닌 우리의 현실이다.

 

시대가 변화하였다. 이것은 이제 더 이상 가족 내 돌봄은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의 문제가 되었다. 1인 가구의 증가는 한 해를 거듭할수록 가속화되고 있고, 이미 고령 사회를 넘어서 2026년에는 초고령 사회로 진입할 것이라는 전망 또한 예측되고 있다. 이러한 현실은 더 이상 막을 수 없기에 이러한 변화를 우리는 어떻게 마주해야하고 고민해야 할 것인지를 생각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 장녀라고 해서 노인 돌봄을 전담해야 한다는 것도 비혼주의이고 독신이라서 부모를 돌봐야 한다는 것도 말이다. 이 모든 것은 그들이 나의 부모이고 나는 그들의 자식이기 때문에 책임감을 갖고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다. 이런 그들에게 마땅히 해야 하는 의무로 역할로 치부해버린다면 『장녀들』의 장녀들의 모습처럼 그들은 결국 자신의 진정한 삶을 찾고자 할 것이고 그들은 자신이 가족으로부터 고갈된다는 느낌으로 고통 받을 것이다. 따라서, 어느 누군가의 역할이 아닌 모든 가족 구성원들이 그리고 사회가 함께 고민해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 모두는 언젠가 노인 돌봄을 해야 하는 나이가 될 것이고 우리 또한 노인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

 

장녀들

- 네가 시집가면 난 어쩌냐 -
 
 
지은이 : 시노다 세츠코

  

옮긴이 : 안지나

출판사 : 이음

  
분야

일본 단편소설

  
규격

135*200

  
쪽 수 : 340쪽

  
발행일

2020년 05월 29일

  
정가 : 14,800원

  
ISBN

978-89-93166-09-5

 

[정윤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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