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종이 동물원 [도서]

글 입력 2020.06.23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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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의 의미



 

“(미국에서) 유색 인종 작가의 글은 오로지 자전적 고백일 때에만 가치 있는 것으로 대접받습니다. 저는 그런 분위기를 거스르고 싶어서, 처음에는 제가 물려받은 중국 문화와 관련된 것은 무조건 피하려고 매우 조심했습니다. … 그 결과는 끔찍이도 답답했습니다. 그건 입의 절반이 테이프로 막힌 채 말하는 것, 몸의 절반이 마비된 채 춤추려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 2016년 3월 8일 NBC 뉴스의 켄 리우 인터뷰

 

 

나는 켄 리우의 인터뷰를 읽으며, 입양인 문학이 떠올랐다. 우리는 종종 주류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자신만의 필터링으로 대상을 바라본다.

 

대표적인 예로, 영화 <수잔 브링크의 아리랑 을 떠올릴 수 있다. 가난 때문에 어릴 적 국외로 입양된 한 수잔은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학교 친구들에게 인종 차별과 무시를 당하며 정체성 혼란을 겪는다. 결국, 수잔은 한국의 국외 입양방송에 출연해 마침내 친어머니를 찾게 된다. 수잔은 가족과의 상봉으로 기쁨의 눈물을 흘린다. 비주류를 향한 끝없는 동정심과 부채감은, 이러한 대중문화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켄 리우 또한 유색 인종이라는 이유로 자전적인 고백을 의도적으로 피하려고 했다. 자신의 자전적 글을 주류의 동정심으로만 보는 시선이 두려운 것일까. 자신의 삶을 숨긴 채 글쓰기를 지향하려면 결국 주류의 글쓰기를 답습하게 되고, 마치 “입의 절반이 막힌 채” 살아가는 것처럼 여겼다. 자신의 이야기를 의도적으로 하지 못하는 것이 작가를 향한 억압이 되어버렸다.

 

켄 리우는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내었다. SF 판타지 장르로 자연스럽게 녹여낸 중국인과 미국인 혼혈 “잭”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새로운 판타지 세계를 만나게 된다.

 

 

 

종이 동물원



[크기변환]종이 동물원 표지.jpg

 

잭은 홍콩에서 결혼을 통해 미국으로 이주한 중국인 어머니와 미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소년이다. 가족과 함께 있는 집만이 전부였던 시절, 잭은 어머니가 선물 포장지로 접어 준 종이 동물과 함께 지낸다. 종이 동물은 어머니의 마법 때문인지 실제 동물처럼 움직인다. 상어 종이 인형은 물속에서 헤엄을 치다 녹았지만, 오랜 친구인 호랑이 종이 인형은 그와 함께했다. 귀가 찢어지면 테이프로 붙였고 다리를 절면 새로 붙여주었다.

 

그러나 잭이 학교에 다니면서 잭이 일방적으로 어머니를 거부하게 된다. 타인과 외모가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받는 것이 싫었던 잭은 ‘중국적인 것’ 모두를 거부한다. 어머니에게 영어로만 말할 것을 강요하며 종이 인형 호랑이 대신 스타워즈 장난감을 사달라고 조른다.

 

<종이 동물원>이 SF 판타지 장르임에도 우리에게 사실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도 이 지점에 있다. 동양과 서양 혼혈인 아이가 자신이 받는 차별을 엄마의 탓으로 돌리는 것, 그리고 영어를 쓰기를 강요하는 것, 어머니의 편을 드는 척하지만 그것을 방관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우리에게도 익숙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잭이 어머니를 대하는 행동은 터무니없을 정도로 무례하다. 차별받는 원인을 어머니에게서 찾아 원망하는 마음이 앞선 탓이다. 그런데도 어머니의 잭을 향한 사랑은 흔들림이 없다. 중국어를 알지 못하는 잭에게 “칸, 칸. 라오후.”라고 호랑이 친구를 만들어주고, 그것을 종이접기라고 설명한다. 언어로는 미처 다 표현하지 못하는 사랑을 전하기 위해 어머니는 종이접기를 선택했다. “Love는 입술로 느끼지만, 愛는 가슴으로 느낀다.”라고 말하는 다정한 어머니의 모습은 잭과 아버지와는 대비된다.

 

 

 

인형의 의미


 

<종이 동물원>에서 움직이는 종이 인형들은 무엇일까. 실제로 움직이는 것인지, 움직인다고 믿었던 것인지 우리는 확신할 수 없다. 그러나 엄마가 접어준 종이 인형이 움직인다는 게 <종이 동물원> 속에서는 당연한 이야기처럼 읽힌다.

 

종이를 움직이게 하는 힘은 무엇일까. 그것은 어머니의 사랑 덕분이다. 종이라는 것은 찢어지면 테이프로 붙여 고칠 수 있다. 아들의 말에 상처를 입어도 여전히 아들을 사랑하는 어머니처럼 말이다. 그러나 아들은 어머니의 마지막 말까지 “알았어요. 이제 그만 말해요.”라고 말하며 어머니를 외면한다.

 

 

[크기변환]종이접기.jpg

 

 

어머니의 유언을 무시하고, 진심이 담긴 편지가 무엇인지도 몰랐던 잭은 어머니를 잃고 나서야 어머니의 이야기를 알게 된다. 타인에게 “멋진 예술가” 소리를 듣는 어머니의 사랑을 잃고 나서야 깨닫는 잭이 공허해 보인다. 愛(ai)를 어떻게 쓰는지 마지막에서야 안 잭이 앞으로 어떠한 삶을 살아갈지 알 수 없지만, 종이 인형에 담긴 어머니의 사랑이 그를 지켜주길 바랄 뿐이다.

 

 

“글쓰기가 보람 있는 노고인 것은 오로지 우리 정신이 서로에게 닿을 수 있다는 가능성 덕분이니까요.”

 

_종이 동물원 머리말

 

 

켄 리우는 자신이 소설을 쓰는 이유를 우리의 정신이 서로에게 닿을 수 있다는 가능성 덕분이라고 말한다. 그의 말처럼, 켄 리우만의 판타지를 읽으며 우리 정신이 서로에게 닿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느낀다.


 

 

이승현.jpg

 

 

[이승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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