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포기는 배추 셀 때나 쓰는 말이 아니다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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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한 라디오에 내가 보낸 사연이 소개가 된 적이 있다. 세상에! 라디오 사연 소개라니. 괴로운 생각과 그다지 크게 와닿지 않았던 일들이 갑자기 쏟아져서 나를 짓누르는 밤마다 나는 라디오를 들었다. 사람들의 사연이 영 나의 이야기 같지도 않을 때가 많았지만, 그래도 사연을 듣는 것만큼 심심함을 덜어주는 것도 없었다. 나의 말을 하는 것보다 남의 말을 듣는 것이 더 쉬운 쪽이었으니까. 라디오는 그저 혼자서 자신의 모든 이야기를 털어놓는 친구와 대화하는 기분이 들게끔 했다. 그런 내가 라디오에 사연을 보내게 된 것이다. 그날은 내가 오랫동안 결심해온 어떤 일을 어렵게 포기한 날이었다.
‘포기하지 마!’라는 다섯 글자가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의 입에 익숙할 것이다. 우리는 이 다섯 글자를 어떤 의미로 쓰면서 살아왔을까. 짝사랑에 힘들어하는 친구를 위해 포기하지 마! 경기에 나간 선수에게 포기하지 마! 그리고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포기하지 마. 나 또한 포기하면 안 된다는 말을 수도 없이 들어왔다. 정말 진실된 응원이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누구나 쉽고 가볍게 사용할 수 있는 응원의 말이었다. 그러나, 나에게는 다르게 들려오던 때가 있었다. 포기하면 안 된다는 말은 스스로를 고통스럽게 만드는 주문과도 같았다. 하지만 사실은 정말 포기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나 자신을 속이고 노력해도 안되는 일을 끝까지 붙잡고 늘어졌다. 늘어짐 끝에 남는 것은 상처뿐이었지만, 놓는 순간 나는 벼랑 끝으로 떨어질 것만 같았다.
문자가 날라왔다. 사연에 당첨되었으니 경품을 보낼 주소를 알려달라는 문자였다. 무슨 사연? 하고 곰곰이 생각하니 포기했던 그날, 후련하게 눈물을 다 쏟아낸 그날 보냈던 사연이 소개되었던 것이다.
“오늘의 첫 번째 사연,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해보려고 휴학을 하고 서울로 올라온 지 반년이 지났습니다. 하지만, 마음처럼 되지는 않더라고요. 열심히 고민하다가, 기분 좋게 포기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결코 가벼운 마음으로 내린 결론은 아닙니다. 멋지게 포기할 줄 아는 저에게 잘했다고, 수고했다고 응원 부탁드리고 싶어요.’ 하셨습니다.”
사연이 소개되어서 신기하고 기쁜 마음도 잠시, DJ가 사연을 읽은 후 게스트로 초대된 시인이 소개한 시의 한 구절이 나에게 커다란 감동을 주었다. “어떤 길을 걸었는지 남기지 마라. 지나간 처음의 길은 바람이 지우리.”
포기해본 경험이 많은 사람이 그만큼 실패의 흔적이 많다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오히려 그 흔적은 완벽하게 적용되지는 않겠지만, 앞으로 다른 무엇을 하든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될 것은 분명하다. 그러니, 포기하지 못하고 망설이고 있는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다. 당신은 충분히 달려왔다고. 당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단계를 이미 지나쳐왔다고. 그러니 지금 당장 포기해도 좋다고.
[곽주현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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