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포기는 배추 셀 때나 쓰는 말이 아니다 [사람]

저는 할 만큼 했어요.
글 입력 2020.06.22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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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한 라디오에 내가 보낸 사연이 소개가 된 적이 있다. 세상에! 라디오 사연 소개라니. 괴로운 생각과 그다지 크게 와닿지 않았던 일들이 갑자기 쏟아져서 나를 짓누르는 밤마다 나는 라디오를 들었다. 사람들의 사연이 영 나의 이야기 같지도 않을 때가 많았지만, 그래도 사연을 듣는 것만큼 심심함을 덜어주는 것도 없었다. 나의 말을 하는 것보다 남의 말을 듣는 것이 더 쉬운 쪽이었으니까. 라디오는 그저 혼자서 자신의 모든 이야기를 털어놓는 친구와 대화하는 기분이 들게끔 했다. 그런 내가 라디오에 사연을 보내게 된 것이다. 그날은 내가 오랫동안 결심해온 어떤 일을 어렵게 포기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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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기하지 마!’라는 다섯 글자가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의 입에 익숙할 것이다. 우리는 이 다섯 글자를 어떤 의미로 쓰면서 살아왔을까. 짝사랑에 힘들어하는 친구를 위해 포기하지 마! 경기에 나간 선수에게 포기하지 마! 그리고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포기하지 마. 나 또한 포기하면 안 된다는 말을 수도 없이 들어왔다. 정말 진실된 응원이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누구나 쉽고 가볍게 사용할 수 있는 응원의 말이었다. 그러나, 나에게는 다르게 들려오던 때가 있었다. 포기하면 안 된다는 말은 스스로를 고통스럽게 만드는 주문과도 같았다. 하지만 사실은 정말 포기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나 자신을 속이고 노력해도 안되는 일을 끝까지 붙잡고 늘어졌다. 늘어짐 끝에 남는 것은 상처뿐이었지만, 놓는 순간 나는 벼랑 끝으로 떨어질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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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가 날라왔다. 사연에 당첨되었으니 경품을 보낼 주소를 알려달라는 문자였다. 무슨 사연? 하고 곰곰이 생각하니 포기했던 그날, 후련하게 눈물을 다 쏟아낸 그날 보냈던 사연이 소개되었던 것이다.

 

“오늘의 첫 번째 사연,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해보려고 휴학을 하고 서울로 올라온 지 반년이 지났습니다. 하지만, 마음처럼 되지는 않더라고요. 열심히 고민하다가, 기분 좋게 포기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결코 가벼운 마음으로 내린 결론은 아닙니다. 멋지게 포기할 줄 아는 저에게 잘했다고, 수고했다고 응원 부탁드리고 싶어요.’ 하셨습니다.”

 

사연이 소개되어서 신기하고 기쁜 마음도 잠시, DJ가 사연을 읽은 후 게스트로 초대된 시인이 소개한 시의 한 구절이 나에게 커다란 감동을 주었다. “어떤 길을 걸었는지 남기지 마라. 지나간 처음의 길은 바람이 지우리.”

 

포기해본 경험이 많은 사람이 그만큼 실패의 흔적이 많다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오히려 그 흔적은 완벽하게 적용되지는 않겠지만, 앞으로 다른 무엇을 하든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될 것은 분명하다. 그러니, 포기하지 못하고 망설이고 있는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다. 당신은 충분히 달려왔다고. 당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단계를 이미 지나쳐왔다고. 그러니 지금 당장 포기해도 좋다고.

 

 

[곽주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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