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여성과 언더독 사이의 서사, 야구소녀 [영화]

수인은 언더독이었을까, 여성이었을까?
글 입력 2020.06.18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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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야구소녀>의

스포일러 일부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1. 성(性)과 성장의 이야기


 

영화 <야구소녀>는 금녀(禁女)의 영역이었던 프로야구의 과거를 언급하며 시작한다. '의학적으로 남성이 아닌 자'는 부적격 선수로 분류되던 조항이 1996년 폐지됐지만, 여성의 참가는 여전히 어려웠다는 사실을 텍스트로 보여준다. 이를 통해 영화는 사회적 문제의식을 드러내며 시작한다.

 

영화는 주인공의 이야기로 문제를 해결하려 시도한다. 영화의 주인공인 '주수인'은 프로야구에 도전하는 인물이다. 야구부 여고생 수인은 프로 야구선수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수인은 신체적 능력, 사회적 통념 등의 이유로 현실의 벽에 부딪힌다. 수인의 최대 구속이었던 130km는 프로선수 기준에는 한참 모자랐고, 여성이라는 이유로 트라이아웃에 발도 들이지 못한다. 영화는 수인의 꿈이 좌절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수인은 코치의 도움, 절실한 노력, 가정의 이해 등으로 어려움을 극복한다. 코치의 도움으로 신체적 조건을 극복할 너클볼을 배우고, 현실적인 어려움에도 끝없이 훈련하고, 수인의 꿈을 이해하는 부모님의 노력으로 수인은 프로선수에 가까이 다가간다.

 

결국, 수인은 프로야구 세계에 발을 들여놓고, 2군에 진출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영화는 끝난다. <야구소녀>의 결말은 성(性)을 극복하고 성장하는 방식을 택한다. 마운드 위에서 야구공을 던지는 주수인의 마지막 장면은 사회적 성을 극복한 것처럼 보인다.

 

 

 

2. 서사에 가려진 문제


 

하지만 조금 더 생각해보자. 주수인은 정말 사회적 성을 극복했을까? 영화의 첫 장면에서 보여준 '여성의 진입장벽'은 정말 해결되었을까? 만약 주수인이 여성의 문제를 해결했다면, 이후에도 제2, 제3의 주수인이 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가 주수인을 롤모델로 삼은 신입생을 보여준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제2, 제3의 주수인도 결국 비슷한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공을 빠르게 던지기 힘들기에 결국 너클볼을 연습해야 할 것이고, 당분간은 편견 때문에 트라이아웃에 쉽게 등록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수인이 프로선수가 되어도, 그가 겪은 어려움은 다시 반복될 가능성이 있다.

 

수인은 남성 세계인 프로야구에 진입한 여성으로서 상징성을 갖는다. 하지만 그뿐이다. 영화는 수인이 겪은 어려움의 원인을 해결하지 못했다. 수인은 개인적 노력으로 문제를 '극복' 한 것이지, 사회적 성으로 발생한 문제의 원인을 찾아 해결하진 않았다.

 

수인이 프로야구를 못 한 이유를 생각해보자. ⑴ 신체적 조건이 달라 구속이 모자랐고, ⑵ 사회의 편견으로 트라이아웃에 참가하지 못했고, ⑶ 가정에서 더 이상 야구를 허락하지 않았다. 이러한 이유들은 수인이 프로 진출에 어려움을 겪게 했고, 영화에서는 이 세 가지를 적절히 섞어 하나의 역경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이 요소들을 해석해보자. ⑴ 신체 능력의 미달은 선천적인 차이다. 노력으로도 구속을 늘릴 수 없다는 건 선천적으로 남성과 힘의 경쟁이 불가능하다는 의미다. ⑵ 사회의 편견은 프로야구를 금녀(禁女)의 영역으로 만들었다. 야구와 남성성의 연관성이 있다 해도, 영화에서는 일종의 차별적인 시선으로 여성을 배척했다. ⑶ 가정에서 야구를 허락하지 않은 것은 생계의 문제 때문이었다. 성별의 문제가 아닌 가난으로 인한 어려움이었다.

 

영화는 이 세 가지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을까? 영화는 수인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코치인 '최진태'를 수인의 조력자로 등장시킨다. ⑴ 수인은 신체 능력의 미달을 우회적으로 극복한다. 진태에게 너클볼을 제안받고, 강속구가 아닌 변화구를 던지도록 훈련받는다. ⑵ 사회적 편견 역시 코치 진태의 도움을 받는다. 진태는 트라이아웃에 참가할 수 있게 스카우트인 친구를 설득하고,  수인은 트라이아웃에서 자신의 실력을 입증한다. ⑶ 가정에서의 어려움은 별도로 전개되는 가정의 서사로 해결된다. 수인의 아빠는 부정시험으로 체포되고, 수인의 엄마는 수인의 글러브를 불태워버리지만, 결국 갈등은 수인에 대한 지지와 신뢰로 해결된다.

 

영화 속 고난과 극복의 과정을 생각하며, 다시 첫 장면의 문제를 진단해보자. 만약 수인이 정말 여성을 대표한 인물이었다면, 영화의 서사는 사회적 성을 극복해야 했다. 하지만 수인은 사회적 성으로 발생한 문제를 개인적인 노력 차원에서 극복한다.

 

수인은 남성 신체의 기준으로 측정된 프로의 기준에 들기 위해, 남성 프로선수들과 경쟁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남성 중심의 세계에서 실력을 입증한다. 그녀의 성공이 사회적 문제의 극복이었다면 수인의 변화와 사회의 변화는 동반되어야 했다. 하지만 변한 건 개인뿐이었고, 사회의 기준은 그대로였다.

 

 

 

3. 프로를 꿈꾸는 한계


 

<야구소녀>가 지닌 한계는 수인이 프로에 집착한다는 점에서 발생한다. 영화 도중 수인은 여자 생활야구 선수 자리를 제안받는다. 프로선수로 뛸 수는 없어도, 여성 선수로 생활야구를 알리는 역할이었다. 하지만 수인은 이를 거절하며 프로선수의 목표를 타협하지 않았다.

 

프로야구와 생활야구의 차이점은 무엇이었을까? 둘 다 야구선수라는 점, 야구를 직업으로 삼는다는 점은 동일했다. 하지만 차이점은 부와 명예가 프로선수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야구에 대한 매스컴과 대중의 관심은 대부분 프로야구에 쏠린다. 또한, 더 높은 연봉과 실력에 대한 증명은 프로야구에서 가능한 것이었다.

 

수인은 자신의 정체성과 목표가 야구에 집중되어 있었고, 최선의 노력을 다해 최고의 결과를 얻으려 한다는 점에서 프로선수가 되길 희망했다. 야구가 인생의 전부인 수인에게 최고의 실력을 가진 프로선수가 되는 건 당연했다.

 

하지만 프로야구의 구조는 남성성으로 울타리가 쳐져 있었다. 130km 이상의 구속처럼, 남성의 신체조건으로 측정되는 기준이 있었다. 수인은 이러한 울타리를 넘기 위해 계속 도전했다. 결국 수인의 노력은 울타리를 낮추는 노력이 아닌, 넘으려는 노력이었다. 야구로 인정받기 위해선 프로 씬에 집중된 부와 명예를 얻어야 했고, 야구에 인생을 건 수인에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이러한 구조에서 수인은 여성이 아닌 언더독이 된다. 강함에 도전하고 성장하는 언더독이 되어 남성들이 가득한 구조에 등반한다. 그래서 영화의 서사는 구조적으로 높게 설정된 진입장벽을 부수려는 노력이 아닌, 남성성에 도달하고 도전하려는 개인의 노력으로 흘러간다.

 

영화의 첫 부분에는 사회적 성을 문제 삼지만, 결국 영화는 프로야구에 도전하는 언더독의 서사로 흘러간다. 이러한 성장 서사에 여성을 참여시킨 모습은 여성의 승리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여성의 도전이 남성성에 부합하는 노력이 동반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될 수 있다. 프로야구의 성비가 변할 수는 있어도, 결국 프로야구가 가진 남성성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영화는 '남자던 여자던 프로가 되기 힘들다'라고 하며 개인의 노력을 부각한다. 그리고 마운드 위의 수인을 비추며 이를 극복한 모습을 강조한다. 사회적 성을 문제삼지만 개인의 노력으로 극복한 수인은 과연 언더독이었을까, 여성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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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소녀

감독 최윤태

출연 이주영, 이준혁

개봉 2020. 06. 18.

 

 



[김용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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