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사회적 통념을 던진다 - 영화 '야구소녀'

글 입력 2020.06.16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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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는 매력적인 운동이다. 오죽하면 요즘 해외 야구 팬들이 메이저 리그를 놔두고 KBO를 보고있을까-KBO 리그가 메이저리그 뺨치게 뛰어나서 보는건 절대 아니지만-. 나역시 고등학교 때부터 야구를 즐겨봤으며, 저녁식사 시간과 야간 자율학습 시작 시간 전까지 친구들과 교실 컴퓨터로 야구 경기를 보곤 했다.

 

서로가 응원하는 구단이 달랐는데 그날 경기로 만나면 친구와 투닥대기도 했다-부동의 1위였던 삼성과, 그 삼성을 잡는 두산! 참고로 나는 두산 베어스의 팬이다-. 또 야구와 관련된 영화나 애니메이션도 나는 꽤 많이 챙겨보았다. 그만큼 나는 야구가 매력적이고 재미있는 스포츠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가만보면 참 이상한게, 소위 '프로'라고 불리는 경기를 보면 모든 선수가 남자뿐이었다. 프로 야구, 프로 농구, 프로 배구, 프로 축구 모두 남자 선수들이다. 여자들도 프로 경기에 출전하지만 꼭 앞에 '여자'라는 단어가 붙어있다. 여자 프로 농구, 여자 프로 배구처럼. 왜일까?

 

여자들중에서도 분명 남자들보다 훨씬 잘 하는 사람이 있을터인데, 그들은 소위 말하는 '일반적인' 프로의 경기의 멤버에는 속하지 못하고 따로 여자들로만 구성된 팀에서 활동하게 된다-그렇다고 여자들로만 구성된 팀이 못 한다는 뜻이 아니다-. 왜 그 '일반적'이라 불리는 프로의 경기에 여성 멤버가 없고 따로 분리시켜놓았는지, 나는 그게 항상 의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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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령 배구를 예로 들면, 일반적으로 선수들은 모두 키가 크다. 그런데 그 안에서 리베로라는 포지션을 맡은 선수는 타선수들에 비해 키가 작다. 그들은 '배구 선수 = 키가 (매우) 크다'라는 평균적인 공식을 깨고 프로의 자리에 서있는 분들이다. 물론 일반인 중에서야 당연히 크지만 기준을 배구선수들로 잡는다면.

 

왜 프로에 여자선수는 없는가?에 대한 질문을 하면 주로 나오는 반박문이 체격일 것이다. 여자와 남자의 근본적인 신체 차이는 당연히 있다. 아주 옛날 선사시대 때부터 남자는 사냥을, 여자는 집에서 요리를 했다-면서 그 유전자가 지금의 시대까지 내려와 신체적인 차이가 생겨나게 되었다.

 

물론 큰 키를 가지고 열심히 운동을 해서 다른 남자들보다도 신체적인 조건이 월등히 좋은 여자나, 아니면 여자들의 신체와 비슷한 남자도 많지만 어쨌든 평균적으로는 차이가 있다. 하지만 바로 앞에 얘기했듯이, 남자와 신체 조건이 비슷한 여자들도 분명히 존재하는데, 그들은 왜 프로의 길에 함께하지 못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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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일상적인 통념에 의문을 가지고 나타난 영화가 바로 내가 관람한 '야구소녀'였다. 야구소녀는 어렸을 때 '천재 야구소녀'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주인공 '주수인'이 고등학교서부터 다른 선수들에게 밀리지만 결국 이를 극복해내는 한 편의 드라마 영화이다.

 

프로 선수가 되기 위해서는 남자들의 평균 구속 150km를 내야하지만, 여자라는 것도 모자라 팔 힘이 약해 최고구속 134km까지 밖에 속력을 내지 못하면서 프로의 길에서 멀어지게 된다. 유치원-초등학교때만 해도 나보다 약하고 야구도 못 했던 남자 소꿉친구는 어느새 키도 더 커지고 힘도 좋아져 나를 제쳐 앞서나가게 됐다.

 

분명히 내가 더 잘 했는데, 내가 노력을 하지 않은 것도 아니었는데 도무지 어찌하지 못하는 남녀의 신체 차이로 인해 누군가 나를 제쳐 올라간다는 그 느낌은 엄청 씁쓸했을 것이다.


하지만 주수인은 포기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내 미래를 어떻게 알아요? 나도 모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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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한편으로 나는 엄마의 마음도 충분히 이해가 갔다. 당시 여자가 프로 야구의 길에 선 이력도 없고, 프로 선수를 선정하는 곳에서마저 탈락되는데 어떤 엄마가 딸자식 힘든 길을 계속 가게 하려할까. 하고 싶은 일을 못 하게 막으시는 부분에선 답답함도 있고 너무하단 생각도 들었지만, 현재 경제적인 집안 사정과 '여자는 프로 선수의 길에 못 선다'는 사회적 인식도 엄마의 마음을 더 힘들게 하였을 것이다.

 

모든 이가 그저 안타까울 뿐이었다. 그러는 와중에 주수인의 아빠가 엄마를 막아서며 딸 하고싶은 걸 해줘야하지 않겠냐는 말에 나는 울컥했고, 그러면서 내 과거 시절이 생각나면서 주인공이 부러웠다. 우리집도 그렇게 널널한 형편의 집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주인공보다는 여유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에게는 그다지 좋은 추억거리가 없기 때문에-내 과거사는 야구소녀와는 크게 연관이 없으니 이정도로 짧게 마무리 짓는게 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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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솔직하게 얘기하자면 이미 결말도 어느정도 예상이 가는, 조금은 뻔하다고 할 수 있는 스토리였다. 엄청나게 강하게 임팩트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지만, 잔잔하게 흐르면서 보여주는 주인공의 감정선과 고민, 주변과의 갈등은 영화에 몰입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영화는 남성 카르텔을 부수고 최초의 여성 프로 야구선수로 거듭나는 여성 서사의 영화라는 점에서 나는 꼭 봐야된다고 생각한다.

 

또한 나는 이 영화가 "노력하면 된다"의 뜻을 가진다기 보다, "나의 장점을 찾아내자"라는 의미로 더 강하게 와닿았다. 짧은 인생이지만 노력해서 안 되는 것이 있다는 것을 어느정도 알고 있다. 그렇기에 주수인은 150km의 구속을 결국 내지는 못 했지만, 자신이 가지고 있는 볼 회전력의 장점을 내세웠다. 그리고 당당하게, 굴하지 않고, 모두들 안된다고만 말 하는 상황속에서도 그 장점을 어필하고 키워나갔다. 그리고, 결국, 그 꿈을 이뤄냈다.

 

주인공과 달리 나는 아직까지도 뭘 잘하는지 잘 모르다보니 한편으로는 그렇게 자신의 장점을 발견해준 사람이 있다는 게 부럽기도 했다. 극중 고등학생인 주수인보다는 내가 더 많은 사람을 만나보았을텐데 나에게 내 장점을 발견해준 사람은 만나지 못 했기 때문이다. 아니, 어쩌면 만났음에도 내가 인지하거나 기회를 잡지 못 했던 걸지도. 난 지금 그저 '잘'하는걸 하기보다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있다. 장점, 나에게도 과연 있을까? 내가 내 삶에 지쳐 "나는 왜 위로 올라가지 못 할까?", "내가 뭘 잘하는지 모르겠어. 난 쓰레기야" 같은 생각이 들 때 다시 한 번 꺼내보고 싶은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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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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