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정신과 '연대'기 [도서]

우리 연대해요
글 입력 2020.05.05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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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10살 때 처음 스트레스로 인한 호흡곤란을 경험했다. 남들보다 더 예민했기에 세상의 날카로움을 훨씬 강하게 느꼈다. 감각이 하나하나 살아서 나를 찌르는 듯한 느낌이었다.


중학교 때, 친구를 갑작스레 가장 친했던 친구를 잃게 되어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었다. 남들의 웃음소리만 들어도 나를 향하는 것 같았고 친구들과 함께 있지 않으면 친구들이 사라질 것 같았다. 강박적으로 친구들과 함께 있으려 했기에 오히려 친구들과 더 멀어졌다.


고등학교 시절 뇌 프로세스

남들과 있는 게 두렵다 → 아직 학생이고 어른의 보호를 받고 있음에도 나는 혼자 있기가 공포스럽다 → 어른이 되면 아무도 나를 보호해 주지 않을 것이다 → 그러니까 나는 어른의 세계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이다 → 어차피 빤히 미래가 보이는 데 굳이 살 이유가 없다.


극단적이었지만 그 당시 나는 고민상담할 곳도 없었다. 의지할 곳은 병원 뿐이었다. 용돈을 모아서 정신병원에 갔다. 고등학교 1학년, 17살. 정신과에 처음 갔다. 


① 걱정 많은 의사

: 처음 만난 정신과 의사는 다행히도 무뚝뚝하진 않았다. 아마 로봇같은 의사를 만났다면 겁에 질려서 도망갔을 것이다. 그를 A라고 하자. A는 나의 얘기를 한참 듣더니 '부모에게 전화해야 한다'고 했다. 미성년자고, 지금 상태가 좋지 않다고 혼자서는 치료할 수 없을 거라 얘기했다. 거부권은 없었다. 부모님에게 이 일을 밝힌다는 건 낯선 사람을 붙잡고 '나 정신 병원 다녀왔어요'라고 하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나쁜 부모님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이해심이 많고 다정하고 친구 같은 분도 아니었다. 


나에게 돌아올 눈빛들을 생각하니 도저히 입이 안 떨어졌다. 그걸 알았는지 A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자기가 직접 전화를 해주겠다고 했다. 부모님을 생각하면 그러면 안됐지만, 부탁했다. 그러니까 나의 엄마는 자식의 심한 우울증을 남의 입을 통해서 처음 듣게 된 셈이다. 


어쨌든 그 오지랖 넓고 다정한 A는 나의 논리적 비약을 지적하며 약을 우선 먹자고 했다. 심리검사 결과, 나는 남들보다 예민했기 때문에 더 많이 힘들게 느끼는 편이라고 했다. 피해의식이 있는 거라고. 약을 먹자 나는 우울함을 느낄 수 없었다. 사실 감정을 느낄 만큼 머리가 돌아가지 않았다. 그 모습이 너무 싫었고, 내가 바보가 된 것 같았다. 


부모님은 난생처음 보는 나의 무기력한 모습에 "약을 끊어야 하지 않겠냐", "저거 계속 먹으면 중독된다더라"라고 말했다. 나는 부모님의 태도에 다시 한 번 상처를 받고 '감정을 없애는 약'을 달라고 했다. 지금 생각하면 감정을 없애는 약이 아니라 그냥 생각을 못하게 하는 약이었다.


의사는 그 약은 굉장히 독하다고 하며 주는 걸 꺼렸지만 '다정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결국 약을 처방했다. 나는 그 약을 차근차근 모아 한꺼번에 먹었다. 자살시도였다.


다정한 의사는 그때부터 태도가 바뀌어 나를 입원병동에 넣어야 한다고 했다. 치료가 통하지 않는다고 판단했기에 그런 걸수도 있다. 당시 고등학생이었기에 부모님은 나를 입원병동에 넣는 대신 상담센터로 보냈다. 약은 그때부터 먹지 못하게 됐다. 위험할 수도 있으니까. 


② 정체 모를 상담센터

: 약은 위험하다고 판단한 가족들은 나를 상담센터에 보내기 시작했다. 치료 비용은 훨씬 비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아지는 건 없었다. 오히려 그 기계적인 미소와 끄덕거림은 나를 더 답답하게만 만들었다. 내가 9할을 말하고 그 사람은 1할의 리액션만 했다. 그렇게 한참을 내 얘기만 떠들자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그림도 그려보고 피아노도 쳐보고 게임도 해보며 별거 다 했지만 나아지는 건 없었다. 돈이 나가는 게 아까워서 결국 상담센터도 그만뒀다. 


지금 생각해보면 상담사 자격증도 없었던 것 같다. 하나의 팁을 주자면 


상담심리사 1, 2급 

전문상담사 1, 2급 자격증을 소지했는지 가장 먼저 확인해 봐야 한다. 그때의 나는 아무것도 몰랐고 후기도 없었기 때문에 아무 심리상담센터나 들어갔다. 


③ 기독교 상담센터

: 그 다음으로는 무료 상담센터를 갔다. 총체적 난국이었다. 그쪽도 자격증이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는 나의 이야기를 듣더니, 뚝 끊고 갑자기 기도를 해주겠다고 했다. 손을 잡고(이것부터 불쾌했다) 한참을 기도해 주었다. 


한 번 만에 그만 뒀다. 종교가 상담사의 역할을 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내가 찾는 방향과는 달랐다. 


그렇게 3년을 방황했다. 중간에 인터넷 상담도 받고, 청소년 상담센터도 가고, 학교 상담센터도 갔다. 기억이 나지 않을 만큼 의미가 없었다. 후기가 없다는 건 그런 거였다. 3년이란 시간이 지나고, 나는 어른이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백 만원이 넘는 돈을 썼지만 나아진 건 없었다. 나는 연대가 필요했다. 


어른이 된 나는, 정신과 연대를 찾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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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의사의 그루밍 성폭행

사실 이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 먹은 건 정신과 의사의 그루밍 성폭행 때문이었다. 비하의 의도가 아니라 정말로, 정신과를 다녀야 하는/다니는 환자들은 감정적으로 불안정한 상태가 많다. 특히 자아가 튼튼하지 못해서 어딘가에 의존하고 싶어 하는 욕구도 종종 있다. 이 사람이라면 나를 이곳에서 꺼내줄거야, 이 사람이라면 다 치료해 줄거야, 라는 마음을 작게나마 가지고 있다. 나 역시 있다. 

 

치료에 매달리는 이들의 간절한 마음을 악용하는 경우가 있다. 정신과 의사, 심리상담사에게서 특히 많이 보이는 '그루밍 성범죄'는 친분과 지위를 활용해 심리적으로 그들을 길들인 후 성범죄를 저지르는 것이다. 

 

정신과 의사, 심리상담사는 특히나 그들의 가장 깊숙한 고민을 건드리고 치료하는 역할이기 때문에 더더욱 위험하다. 치료는 커녕 훨씬 위험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 또 다른 거대한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야 할지도 모르며 그 상처는 영영 낫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슬프게도, 우린 이런 짓을 저지를 의사를 알지 못한다. 이런 짓을 저지를지 저지르지 않을지는 오로지 후기와 경험으로만 알 수 있다. <무한도전>에 나와 '굿닥터'로 불리던 의사 역시 그루밍 성폭행으로 인해 고소를 당했다. 방송에 나왔다고, SNS에서 좋은 모습을 보인다고 해서 그 사람이 이러한 범죄를 저지를지 안 저지를지 알 수 없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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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한 방법은 후기를 남기는 것 뿐이다. 정신과 환자들의 연대가 필요하다. 앞으로 용기를 내어 삶을 가꾸어 가겠다고 다짐한 이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후기를 남기고, 좋은 의사를 만나는 팁 정도를 알려주는 것 뿐이다.


성인이 된 후 갔던 정신과/상담센터

④ 대학교 상담센터

: 당장 급하다면 가도 괜찮다. 하지만 큰 기대는 하지 않길 바란다. 대부분 학교 상담센터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수련시간을 채우기 위해 온 이들이다. 아닌 경우도 있겠지만 대개 다양한 사례를 접하지 못했고, 이 사람의 인생 깊숙이 들어가려고 하기 보단 기계적인 공감에 그칠 확률이 높다. 


누군가가 내 말을 들어줬으면 좋겠다, 대답이 시원찮아도 된다, 하면 가도 좋다. 

 

⑤ 심리적 학대를 하는 의사(대학병원까진 아니지만 건물 전체가 정신건강의학과였다. 입원 병동도 갖춰져 있는 규모)

: 정말 케바케인데, 내가 만났던 의사는 권위의식에 쩔어 있는 사람이었다. 이렇게 나약해서 어쩔거냐며, 갑자기 혼을 냈다.


성인이 된 후 심리검사를 다시 했는데 남들보다 예민함이 3배에서 많게는 9배까지 높게 나왔다. 그 결과를 보더니 의사는 내 걱정이랍시고 "넌 나약해서 영화일? 못 해, 거긴 완전 깡패들이나 가는 곳이야"라고 말했다. 그리고 계속 "넌 공무원이나 해야 돼. 가만히 앉아서 돈 따박따박 받는 거"라며 비아냥 거렸다. 


부모님이 이러시는 건 아냐, 남자친구가 언제까지 같이 있어줄 것 같냐, 라고 말하며 나의 자존감을 깎아먹었다. 마지막에 "내가 너 불쌍해서 가격 깎아주는거야, 알아 둬"라는 말까지 잊지 않았다. 도와줄 사람은 나밖에 없다, 는 식의 말은 그루밍과 맥락을 같이 하는 또 다른 심리적 학대인데 그걸 지방에서 가장 큰 병원의 원장이 버젓이 하고 있다는 게 놀라웠다. 

 

그리고 그걸 몇 달 다닌 나도 놀랍다. 그 당시엔 그 사람의 말이 기분이 나쁘다기 보다 그 사람만이 날 치료할 수 있다고 느꼈다. 카리스마도 느꼈던 것 같다. 결국 돈이 떨어져서 타의적으로 다니지 못하게 됐다. 그곳을 계속 다녔다면 아마 나는 영화일도 해보지 못하고, 무력하게 지냈을 수도 있다. 

 

⑥ 로봇 같은 의사

: 심각한 불면으로 인해 찾아간 여섯 번 째 의사는 나이가 아주 많은 남자 의사였다. 그는 내가 증상을 말하려 하자 갑자기 제재를 하더니, 두꺼운 책을 꺼냈다. 그리고 불면 알고리즘 파트(인 것 같다)를 펼치더니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시리나 빅스비가 더 인간다웠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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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이런 모양새였다. 그는 순서대로 질문을 하고, 내 대답을 듣고는 화살표를 따라갔다. 그래서 진단이 나왔다. 불안증으로 인한 수면장애. 약 먹으니까 순식간에 잠이 잘 오긴 했는데 내가 왜 그런 불안을 갖게 됐는지, 어떻게 하면 나아질지는 전혀 말해주지 않았다. 똑 떨어지는 건 나쁘지 않았지만 치료가 아니라 수리를 당한 기분이었다. 


⑦ 세상 냉정한 젊은 남자 의사

: 로봇 같은 의사는 싫어서 다시 '심리적 학대를 하는 의사'를 찾아갔더니 이제 없다고 했다. 1년 만에 사라졌나? 라고 그당시엔 생각했지만 아마 신고를 당한 게 아닐까 싶다. 간호사는 다른 젊은 의사를 담당의로 지정했다. 물론 내 의지는 아니었고 딱히 선택권도 없었다. 누가 어떤지 모르니까. 


나는 난생처음 보는 젊은 의사에게 살아온 얘기를 털어 놓을 준비를 했다. 나보다 고작 10살 정도 많아 보였는데. 그래서 "제가 어렸을 때......"라고 말하자, 그는 "말로 하면 정리가 안 되고 과장되기 쉬우니 글로 정리해 오세요"라고 뚝 잘라 말했다. 그리고 현재 증상만을 이야기하라 명령했다. 명령이라고 굳이 한 이유는, 내가 글로 쓰기 싫다고 반항했음에도 불구하고 글로 써오라고 하며, 자신의 앞에선 증상만 얘기할 것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결국 그 의사에겐 증상만 얘기하고 약 처방을 받았다. 그리고 글은 쓰지 않았다. 


⑧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는 인형 같은 의사

: 마지막으로 찾아간 곳은 40대 정도 되어 보이는 여자 의사였다. 전체적으로 따뜻한 분위기와 편안한 음악, 그리고 사람 좋아 보이는 의사 선생님은 나를 안심시켜줬다. 


그가 미소를 지으며 따스하게 "무슨 일이 있어서 왔어요?"라고 묻자 나는 눈물을 쏟으며 직장생활 고충을 털어 놓았고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심리검사를 권유했다. 나는 이번에야 말로 제대로된 의사를 만났다고 생각했다. 


심리검사를 하고, 나는 역시나 피해의식과 외부환경에 대한 민감도가 너무도 높게 나왔다. 만성적인 우울로 인해 지능도 많이 떨어진 상황이었다. (그러니까 지금 난 아이큐가 두 자리수인데 글을 쓰고 있는 거다. 도전과도 같다.)

 

그는 나에게 입원치료를 권했지만 그건 거절하고 통원 치료를 받기로 했다. 그의 제안을 거절해서였을까, 그 다음부터 그는 "무슨 일이 있었어요?"만 묻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진료는 2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내가 조언좀 해달라고 간곡히 부탁해도 '그건 제가 말할 건 아니죠'라고 하며 그 어떠한 지침도 안내려줬다. 생활 패턴에 관한 조언도 거절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게 좋을까요? 이런 질문에도 답해주지 않았다. 

 

너무 절박한 마음에 "선생님은 제가 낫길 바라세요?"라고 묻자, 그는 한참간 나를 쳐다보더니 "네"라고 답했다. 아님을 확신했다. 그리고 그 이후로는 가지 않았다. 기계적인 끄덕거림과 마음체크는 앱으로도 충분히 할 수 있었다. 내가 사람에게 바라는 것은 그런 게 아니었다. 


결국 나는 어디에도 가지 못하고 있다. 8군데나 돌아다녔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좋은 의사를 만나지 못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나에게 맞는 의사를 만나지 못했다. 그루밍까진 아니어도 심리적 지배를 받을 뻔 한 적도 있다. 여전히 우울하고, 지능은 떨어지고, 불안해 하며 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여정이 쓸모없다고 느끼지 않는 건, 누군가에게 내가 발자국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뭐가 있는지 모르는 미지의 상황에서 나의 여덟 발자국이 도움이 되길 바란다. 

 

 

[김명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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