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도 누군가에게는 '빌런' [음악]

글 입력 2020.04.23 0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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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텔라장이 돌아왔다!


<유희열의 스케치북>에서 토이의 '뜨거운 안녕'을 6개국어로 부르는 영상을 통해 스텔라장을 처음 접했다. 이윽고 루프스테이션만을 사용해 음과 반주를 쌓아 나가는 'YOLO'와 SNS에서 인기를 끌었던 노래 'Colors'로 그를 더욱 사랑하게 되었다. 그의 노래는 항상 솔직 담백한 인간의 모습을 그려낸다. 그러나 부정적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밝고 희망차보인다. 4월 7일 발매된 'Villain(빌런)'도 마찬가지이다.



 

 

 

저 사람은 100% 빌런?


 

누구나 싫어하는 사람 한 명쯤은 있기 마련이다. 우리는 이런 사람을 흔히 악당이나 악인으로 해석되는 '빌런'이라고 부르곤 한다. 이런 상대와의 관계에서 상대는 100% 빌런, 나는 100% 히어로 역할을 맡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그 빌런이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히어로를 맡고 있을 수도 있다. 동시에, 나 또한 다른 사람이 싫어하는 누군가 중 한 명일지도 모른다. 스텔라장의 '빌런'은 이런 내용을 담고 있다.

 


 

미처 몰랐던 악마가 네 안에 숨쉬고 있어


 


어떤 것은 검은색

어떤 것은 하얀색

색안경을 끼고 보면 어떡해



스텔라 장은 이분법적인 히어로/빌런의 구분을 지적한다. 검은색과 하얀색 사이에 수 많은 회색들이 존재하듯, 인간도 나쁜 사람과 착한 사람 사이 수많은 타입의 인간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미처 몰랐던 악마 같은 우리"임을 이야기하며, 상대를 악마라고 이야기하는 우리 자신 또한 악마인 부분이 있다고 말한다. 사실 모르는 척 했을 뿐이지, 우리 모두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친구가 다른 집단에서는 호평을 받는 것, 내가 제일 싫어하는 동료가 그의 집에서는 사랑받는 자식이라는 것. 사람은 한 가지로만 평가할 수 없으며, 나의 판단이 그를 결정하지 못 한다는 것. 우리는 이 사실을 잘 알면서도 색안경 끼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왜일까?

 


 

나는 빌런이 되고 싶지 않아


 

그건 바로 '나는 빌런이 되고 싶지 않다'는 심리 때문일 것이다. 누군가가 나를 싫어한다는 것이 가슴 아픈 이유는 내가 누군가의 인생에서는 빌런의 역할을 맡았다는 점 때문이다. 내가 누군가를 저주하고, 마음에 안 들어하는 그 과정을 타인이 그대로 거치고 있다는 상상은 자신을 갉아먹는다. 그렇기에 우리는 누군가를 '절대적인 빌런'으로 상정하고, 선을 긋는다.


흔히 생각해 볼 수 있는 상황은 나와 싸운 친구A, 나와 A 모두와 친한 B의 상황. 대부분의 '나'가 A와 B가 친하게 지내는 것을 원치 않는다. 왜냐고? 빌런의 경계가 희미해지기 때문이다. A는 희대의 나쁜 놈, 모두가 인정하는 빌런으로 존재해야 내가 그에게 그은 선의 의미가 유효하지만, B가 A와 친하게 지내는, 즉 빌런이 아닌 상태를 인정한다면 내가 A에게 찍은 '빌런 도장'은 아무것도 아니게 되어버린다. 이렇듯, 우리는 우리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타인을 흑과백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빌런으로 낙인찍는다.

 

나는 빌런이 되는 것을 병적으로 두려워했다. 누군가에게 사랑받지 못한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임에도, 그 사실이 너무 두려웠다. 나는 누군가가 나를 빌런으로 생각한다는 것이 나의 과오이고 나의 책임이라고만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내 맘에 들지 않는다거나, 나와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면, 자연히 그 생각은 나를 괴롭혔다. 어떤 이도 내가 나의 빌런을 바라본 시선처럼 나를 바라볼까봐, 그게 싫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나는 내가 누군가의 '빌런'이라는 사실을 직면하려 노력하고 있다. 누군가가 빌런이라고 여긴 나의 어떤 부분도 결국에는 나에게 속해있기 때문이고, 나는 그 부분을 좋아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내가 빌런이 될까 급급했던 이유는 타자의 시선에서 나를 바라보는 것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내 인생의 3인칭 관찰자가 아니다. 나는 1인칭 주인공 시점에서 내 삶을 살아나가야 하기에, 타인이 나를 '빌런'이라고 낙인찍는 것을 두려워하여 나를 숨기고 겁먹어 살지 않아야 한다. 스텔라장은 그의 노래 <빌런>에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했다.



I’m killing you maybe

You’re killing me maybe

We all pretend to be the heroes on the good side

But what if we’re the villains on the other



나와 너는 서로를 죽이고 있을 수도 있다. 내가 너를 죽일 수도, 네가 나를 죽일 수도 있다. 그것은 순전히 상대적인 것이다. 내가 상대에게 어떤 면을 가진 체하느냐에 따라 다른 것일테다. 빌런이 되지 않기 위해 '체'하며 살지 말자. 이게 내가 <빌런>을 듣자마자 한 다짐이었다.

 

스텔라장은 히어로에 비해 소외받는 빌런의 이야기를 노래에 담고 싶었다고 밝혔다.우리도 스스로 배제시켰던, 빌런 취급받을까 두려웠던 나의 어떤 한 부분을 인정해주는 것은 어떨까? 스텔라장의 노래를 들으며 그래, 내 안에 이렇게 악마 같은 놈이 있었구나! 그러나 그것 또한 나야. 나는 모두에게 사랑받을 필요없어. 라고 되뇌어보자. 스텔라장의 달콤하면서도 똑부러지는 목소리가 당신 안의 빌런에게 큰 용기를 줄테니!

 

*

 

L'être humain est une entité complexe.

L'ange que tu as rencontré hier peut être le pire des ennemis aujourd'hui

Et celui qui te sauve un jour peut devenir le sale con qui te jette en enfer le lendemain.

Donc, qui peut garantir que je ne suis pas cette connasse?


(인간은 복잡한 존재이다.

어제 만난 천사가 오늘은 최악의 원수가 될 수도 있고

오늘 널 구한 누군가는 그 다음널 널 지옥으로 밀치는 개XX가 될 수도 있어.

그럼 내가 그 개XX가 아니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아트인사이트황현정.jpg

 


[황현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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