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거짓 없는 관심, 아름다움의 시작 - 툴루즈 로트렉 展

글 입력 2020.04.19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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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의 시작


 

The Passanger from Cabin 54.jpg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열린 툴루즈 로트렉의 단독전을 보며 머릿속을 휘감은 단어 하나는, ‘아름다움’ 이었다. 전시된 그림을 보며 아름답다, 아름답다는 생각이 끊임없이 차올랐기 때문이다. 왜 그랬을까. 미학을 내가 아는 한 가장 간명하게 말하고 싶을 때면 인용하는 문구를 상기하며 고민해본다.


 

예술을 다루는 학문인 미학을 가리키거나

심미적이라는 뜻의 단어aesthetic에 부정의 접두사 an을 붙이면

마비, 마취 anaesthetic, anaesthesia라는 뜻이 됩니다.

예술의 반대말은 추함이 아니라 ‘무감각’인 것이죠.

 

- 오종우, <예술수업>, p.35


 

아름다움은, 느끼는 것이다. 전시를 보며 궁금했던 건 그가 한정된 소재를 꾸준히, 섬세하게 관찰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추측하건대 무엇을 보고 그의 마음이 움직였기 때문일 것이다. 아마 그러지 않고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설명하기 힘든 현상이다. 무엇을 보고 느끼는 일. 누군가에게는 아주 자연스럽지만, 누군가에게는 아예 불가능한 영역. 이런 관심에는 거짓이 없다*. 여기가, 바로 아름다움이 태어나는 곳이다.

 

유전병으로 자유롭지 못했던 육체와 상반되는 말의 골격을 역동적인 드로잉으로 담아냈고, 귀족 사회에 속하지 못하며 역시 반대되는 공간에서 무희들을 그리게 되었다는 설명을 들으면, 이미 증명된 예술의 성격은 역시 결핍인가 생각하게 된다. 부정할 수 없어서 반갑지 않은 공식. 그러나 결핍 없는 삶은 없다는 명제를 떠올리면 마음이 무겁지는 않다. 태초 아담의 죄에서 구원이 예정된 것처럼, 이제는 결핍과 예술은 지어진 짝으로 생각하고 싶다.

 

*'거짓이 없다'는 표현이 '순수하다, 진실하다'는 표현보다 더 명쾌한 것 같다.

 

 

 

시작, 이후


 

그렇다면 아름다움을 만드는 방법론, 예술을 하는 일에 일단의 답은 얻은 셈일까? 누구든 자신의 가장 순수한 관심으로 돌아가라고, 어쩌면 그 관심의 근원에 결핍이 있겠지만 이는 어차피 사후적인 해석에서 알 수 있을 뿐이니 크게 신경 쓰지 말고 지금, 당신이 가장 하고 싶은 것을 하라고.

 

이 말의 반은 맞지만, 그 이후까지 설명하지는 못한다.

 

 

예술의 요건 세 가지가 있어요. 에스프리(영감과 정신), 애티튜드(태도와 자세), 그리고 프로세스(과정과 방법). 애티튜드는 작가의 감성과 취향을 따르지만, 프로세스는 지속적으로 쌓이고 축적되어가는 것, 그래서 논리적인 영역에 해당합니다.

 

근대미술에서는 에스프리에 비중을 크게 뒀죠. 작가는 매일이 아니라 영감이 떠오를 때만 그림을 그리는 식이어서 감동을 얻기 위해 여행 다니고 방황도 하고 그랬어요. 반면 현대미술에서는 균일함과 일정함이 중요합니다. 작품이 오늘은 좋았다가 내일은 나쁜 식이면 안 되고, 완성된 작품 하나하나에서 작가의 아이덴티티를 읽을 수 있어야 해요. 수공업 성격의 근대와 산업화된 현대의 차이점이 그겁니다. 그래서 현대미술에서는 근대에 비해 방법론, 프로세스가 굉장히 중요해요. 어쩌면 결과 자체보다 ‘어떻게 만드느냐’에 해당하는 그 과정이 더 중요합니다.

 

… 근대는 메시지보다 에스프리가 중요한 때였고요. 현대에서는 방법론이라는 하나의 논리를 가지고 과정을 충실하게 잘 짜놓으면, 결과가 저절로 퀄리티를 갖추게 돼요. 작가 스스로 자기의 시스템을 만드는 일이고, 그 시스템이 바로 그의 메시지가 되는 겁니다.

 

- 이배(Lee Bae), W korea 인터뷰 중에서

 

 

전시를 보기 전, 로트렉의 그림에서 가장 특징적인 요소를 떠올려봤다. 강한 타이포그래피와 검은사람의 형체(평면적이고 그래픽적인), 혹은 무희의 움직임이었다. 전시에 가니 미리 생각했던 이미지와 그림의 느낌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막연하지만 로트렉 그림이 일정한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는 것 자체가 그의 힘이며, 이것이 위 인터뷰에서 말하는 작가의 아이덴티티다. 그리고 이것이 예술의 시작(거짓 없는 관심) 이후를 여는 열쇠다.

 

로트렉의 프로세스는 석판화(돌에 그린 그림을 매질을 사용해 종이에 찍는 방식)다. 판화의 특징 중 하나는 단색 표현인데 바로 이 특징이 시스템과 메시지를 만든다. 붓질의 순차적인 명암으로 빚는 양감을 과감히 버리고 단색 면, 선으로 그린 그림은 멀리서도 한 눈에 띌 만큼 강한 시각적 대비를 뿜어낸다. 이는 정보 전달에 적절한 그림적 특징이기도 하다.

 

<물랭 루즈, 라 굴뤼> 포스터의 탄생이 당시 로트렉을 하룻밤새 유명인사로 만들었다는 기록을 보니 이건 거의 운명에 가까운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화가의 개인적 관심, 소재의 내용과 그림의 방법(프로세스), 방법이 결정지은 그림의 특징과 용도가 한꺼번에 맞닿는 지점이기 때문이다.

 


Moulin Rouge, La Goulue.jpg

 


언뜻 보면 종이에 바로 붓이나 연필로 그리는 드로잉과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이는 에스키스 정도 밀도의 그림 까지도 로트렉은 석판화 방식을 고집했다. 판화는 종이에 바로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는 점에서 꽤 까다롭다. 특히 공판화가 아닌 경우 스케치를 그리고, 스케치와 좌우가 반대되는 밑그림을 다시 떠야 한다. 그 밑그림으로 판에 작업을 하고, 그 판을 종이에 찍는 과정을 반복해야 한다.

 

지금은 돌보다 가볍고 다루기 쉬운 대체재를 쓰기도 하지만 당시에는 판으로 된 돌을 써야 했을 것이다. 돌의 무게나 과정의 번거로움을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그런데도 로트렉은 그림 크기에 상관없이 꾸준히 석판화를 고집하며 작가의 아이덴티티를 확실히 구축해냈다.

 

 

 

다시, 출발점으로


 

툴루즈 로트렉의 그림은 아름답고, 아름다운 이유를 몇 가지라도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작가의 성장 배경에서 비롯되었을 관심이나, 소재를 다루는 프로세스며 아이덴티티를 구축해낸 인내력에 관한 이야기 등 할 말이 많다. 그중에서 거르고 거르면 다시, 출발점으로 되돌아온다.

 

 

 File:Divan Japonais - Henri de Toulouse-Lautrec.jpg - Wikimedia ...

 

 

로트렉의 포스터는 누구든 유명인사로 만들었고 그는 자신이 만든 스타들의 친구였다. 라 굴뤼를 스타로 만든 로트렉은 다음으로 제인 아브릴에 몰두했는데 그녀는 라 굴뤼와는 정반대 스타일이었다. 라 굴뤼가 일탈과 생동감의 상징이라면 제인 아브릴은 귀부인 같은 품위를 추구했다.


불어로 강력한 폭탄이라는 의미의 ‘멜리니트(다이너마이트)’라는 별명을 가진 이 젊은 여인은 로트렉의 작품을 사랑했고 로트렉 또한 제인 아브릴이 다리로 연출하는 춤사위와 우아한 무대 의상을 사랑했다. 가냘픈 몸매의 그녀는 로트렉을 대표하는 상징적 인물 중 한 사람이 됐다. 그는 제인 아브릴을 매우 품위 있는 여인으로 묘사하기를 즐겼는데 <디방 자포네> 포스터에서 그녀는 관객을 가장해 앉아 있는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다. 우아한 검정 드레스를 입고 있는 제인 아브릴의 옆에 있는 인물은 일본 판화 전문가였던 학자 에두아르 뒤자르댕이다.

 

그러나 로트렉의 대담한 독창성은 또 한 명의 스타이베트 길베르에게서 활짝 꽃피었다. 포스터 <디방 자포네> 왼쪽 위에 보이는 그녀는 얼핏 볼 때 작가의 실수처럼 생각된다. 목 아래 신체 부분과 다리만 보이는 얼굴 없는 가수로 묘사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실수가 아니라 로트렉의 의도였다. 길베르를 상징하는 아이콘인 검은 색 긴 장갑을 강조하는 것이 그녀를 제대로 표현하는 방법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 세르피오 가디(Sergio Gaddi), 툴루즈 로트렉전 도록 서문, p.30

 

 

그의 그림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가상의 인물이 아니었다. 그의 그림은 그가 직접 본 실제 인물들을 기록하듯 담아낸 결과였다. 이번에는 이 사실을 좀 더 강력하게 마음에 새기고 배워야 할 것 같다. 그림에 원본이 있었다는 사실.

 

살아있어 각자의 이름이 있었고 자기만의 정체성과 거기서 비롯된 특징을 가졌던, 말을 하고 움직이는 존재들. 무엇으로도 대체 불가능한 고유한 소재들. 이들은 로트렉의 눈에서 손으로, 스케치로, 다시 스케치에서 판으로 번역되었다. 이 과정에서 원본은 많이 달라졌거나, 로트렉이 중요시한 특징을 갖고 다시 태어났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여기서 아름다움을 느낀다. 아름다움의 이유가 너무 분명하고 구체적이다.

 

 

KakaoTalk_20200419_163557434.jpg

 

 

로트렉의 유명한 대표작 외에, 그의 '사소한' 드로잉에서 인물의 눈매와 입매, 턱 선이 만드는 인상을 가까이 볼 수 있는 기회여서도 참 좋았던 전시다. 사진처럼 순간을 포착하듯, 그러나 사진과는 많이 다른 방식으로 로트렉의 몸이 기록한 아름다움을 많은 분들이 가까이서 체험하길 적극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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