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르듯 - 민감한 사람을 위한 감정 수업

글 입력 2020.03.10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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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을 끄는 버튼이 있으면 좋겠어. 차라리 감정이 없는 편이 나을 것 같아. 좋은 감정을 느끼지 않아도 괜찮으니, 나쁜 감정을 느끼지 않고 싶어.  왜 나만 이렇게 어려운 거지? 나도 모든 게 다 쉬워지면 좋겠어."

내가 타인에 비해 감정을 다루기 어려워한다는 건 아주 어렸을 때부터 알고 있었다. 그건 늘 나에게 큰 문제였고, 고통이었다. 나는 말 한마디에도 쉽게 울고, 흔들렸고, 그런 내 모습을 미워했으며, 그래서 더 많이 가라앉곤 했다. 나를 이해하기 시작한 후, 가장 먼저 받아들인 사실은 나는 절대 남들과 같아질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떨어지는 낙엽에도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다. 노래 하나를 들어도 가볍게 듣지를 못한다. 화나는 일은 참지 못하며, 최악의 상황을 500가지 이상 떠올릴 수 있다. 그리고 그 500가지의 대처법을 전부 찾아내지 못하면, 아무것도 집중하지 못한다. 나의 일상을 도서 <민감한 사람을 위한 감정 수업>에서는 "예민한 사람"으로 정의한다.
 

 

저자는 예민한 사람들의 특징을

열한 가지로 정리했다.


1 자연을 상당히 민감하게 느낀다.

2 타인의 감정에도 민감하다.

3 상당히 너그럽지만 한순간 돌아선다.

4 본인의 감정과 애증관계에 놓여 있다.

5 거절에 민감하다.

6 정서적 피로를 자주 느낀다.

7 의사결정을 어려워한다.

8 직관적인 사고가 발달해 있다.

9 창의력이 뛰어나다.

10 정의감이 투철하다.

11 정체성이 흔들리곤 한다.

 


글로 적혀진 "예민한 사람"은 말 그대로 정말 "예민"했다. 내가 나일 때는 몰랐는데, 막상 글로 마주하니 당황스러웠다. 새삼 매일을 폭풍 같은 감정과 살아온 내가 대견하기도 했다. <민감한 사람을 위한 감정 수업>은 내가 "타인과 다르다"를 넘어,  타인과 "어떻게 다른지" 그리고 "어떻게 해야 할지"를 생각할 수 있게 도와줬다.



현재를 살아라


격한 감정은 나를 과거로, 미래로 이리저리 소환한다. 후회가 밀려오면 "그때 왜 그랬지", "이랬으면 달라졌을까"를 생각하며 과거를 허우적 대고, 두려움이 밀려오면 "이러면 어떡하지", "어떻게 해야 하나" 하며 미래를 헤맨다. 과거는 이미 지나갔고, 미래는 알 수 없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이미 마비된 이성에게 통제권은 없다. 감정에 휘둘리기 시작하면 눈앞의 것들에게서 멀어진다.

<민감한 사람을 위한 감정 수업>은 감정이 휘몰아칠 때, 현재로 돌아오는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다. 책에서 강조하는 '마음챙김'이 바로 그 방법이다. '마음챙김'은 눈앞의 특정 사물이나, 편안한 생각에 정신을 집중하며 감정을 가라앉히는 일종의 명상법이다. 휘몰아치는 감정에서 한 걸음 물러나, 현재로 감각이 다시 돌아오게끔 하는 것이다.

나는 감정이 격해지면 현재로부터 쉽게 눈이 멀어버리곤 한다. 늘 이성적인 사람이 되고 싶어 하지만, 이성적인 척을 할 뿐 나를 조종하는 것은 보통 감정이었다. 그런 내가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기 위해서는, 너무 많은 에너지가 필요해서 늘 잠을 자거나 울어버리곤 했다.

*

책을 읽는 당시, 감당할 수 없는 일이 나를 흔들던 중이었다. 도저히 무엇도 손에 잡히지 않을 정도로 나는 지쳐 있었고, 책에서 던져주는 소재나 예시들이 괴롭기까지 했다. 하지만, 피하고 싶지 않았기에 최대한 현재로 돌아오기 위해 노력했다. 특히 알바를 할 때나 과제를 할 때는 최대한 그 일들에 집중했고, 감정을 미뤄두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감정이 사그라지면 전부 괜찮아진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 상황을 참지 못하는 것이기에 나에게 '마음챙김'은 많은 도움이 되었다. 끝없이 생성되는 부정적인 감정을 떼어내고 눈앞의 것들을 바라보는 데는 정말 많은 에너지가 필요했지만, 그 일은 나를 한결 편하게 만들어줬다. 그리고 정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과거는 돌릴 수 없고, 미래는 알 수 없으며, 문제는 늘 내 감정이었다.



관찰하고, 기록하라


<민감한 사람을 위한 감정 수업>은 기록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나의 감정을 관찰하고, 기록하여 분석할 수 있도록 돕는다. 그에 필요한 질문들도 책에 함께 포함되어 있으며, 스스로 실행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나의 감정 패턴을 읽고 이해하는 것임을 거듭 이야기한다.

늘 감정을 주체할 수 없던 나는 감정의 해소에 큰 노력을 기울이며 살아왔다. 중학교 시절 이후 거의 매일 일기를 썼으며, 나의 일기는 무언가 남기기 위한 일기보다는 뱉어내기 위한 일기에 가까웠다. 친구에게조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내 감정을 늘 널뛰기를 했기에, 해소할 공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의도치 않게 나는 나를 잘 아는, 내 감정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사람이 되었다. 다행인 것은, 책에서 "매우 예민함"에 해당하는 사람만큼 내가 주체성이 없는 편은 아니었다. 따라서 미리 파악한 나의 감정 패턴에 맞춰 책을 읽고 이해할 수 있었다. 덕분에 조금 더 쉽게 방향성을 잡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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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하는 과정에서 감정은 실체가 되고, 언어로 정리가 된다. 감정에 이름을 붙이는 것이 중요한 것처럼, 사건을 정의하고 감정을 풀어내는 것 역시 중요하다. 그제야 감정이 분리되고, 감정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패턴을 찾았다고 해서 감정 조절이 쉬워진다거나, 이성적인 판단이 가능해지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나는 "알면서도 또" 그러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늘 긴장하며 지내는 중이다. 머릿속을 지배하는 생각들이 "합리적인 의심"인지, 혹은 정말 "격한 두려움"인지 그 순간에는 판단이 어렵기 때문이다.

해소를 위해서 토해내듯 글을 써오던 내게 <민감한 사람을 위한 감정 수업>은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주었다. 때로는 감정을 격하게 표출하다 보면 내가 내 감정을 오해하곤 한다. 책에 적혀 있듯, 판단과 의심은 때로는 더 큰 감정을 불러오는 역할을 한다. 필요하지 않은 판단과 의심은 접어두고, 건강하게 감정을 적어놓는 것을 연습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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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를 미워하고 싶지 않다. 내 감정 역시 미워하고 싶지 않다. 늘 폭풍 한가운데를 걷는 것 같지만, 그래서 더 사소하게 감동하고, 사소하게 행복하다는 것도 사실이다. 때로는 그런 것도 다 필요 없으니 나도 평화롭게 살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면 내가 더 많이 나를 알고 이해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감정에 지배당하지만 않는다면, 예민함은 충분히 나에게 선물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럴 수 있게 활용하는 것이 내 평생의 숙제가 될 것이다. 돌이켜보면, 지금껏 나를 행복하게 했던 순간도, 누군가가 나를 알아줬던 순간도 전부 나의 예민함이 만들어낸 순간들이 많았다. 타인이 볼 수 없는 것들을 더욱 민감하게 알아챌 눈이 있기 때문이다.
 
*
 
초능력자가 나오는 영화에서 주인공은, 감당할 수 없는 능력에 방황하는 모습을 보이고 평범해지길 희망하지만, 결국 자신의 능력으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낸다. 예민함도 나에게 주어진 하나의 능력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큰 힘에는 큰 책임과 고통이 따른다고들 하니까, 큰 감정에도 그만큼의 아픔이 따르는 게 아닐까?

<민감한 사람을 위한 감정 수업>을 통해, 나는 늘 문제시되었던 내 감정과 마주하고 친해질 수 있었다. 한번 읽고 돌아설 책이 아니라, 두고두고 연습하며 나를 다져나갈 예정이다. 이 책은 나를 무작정 위로해주지도 않았고, 달래주지도 않았지만, 내가 나를 바른 시각으로 바라보고 격려해줄 수 있는 힘을 주었다. 나에게 가장 필요했던 책이었다.
 
미워하는 척했지만, 사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내 모습은 예민함에서 기인한 것들이다. 이젠 그 예민함을 강점으로 만들 차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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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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