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SF로 현실을 관통하다 - 땡스 갓, 잇츠 프라이데이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으면서도 도망칠 수 없는 우리들의 마음
글 입력 2020.02.27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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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SF 장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그렇다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SF라는 장르를 알기 시작했을 때 접한 작품들은 죄다 몇 세기 후의 미래를 그리고, 우주를 배경으로 거대한 전쟁을 치르고 있는 둥 나는 도통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들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한 평생 문과 인간으로 살아온 탓에 과학과는 어색한 사이라 자연스럽게 SF 장르와는 멀어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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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인지 < 땡스 갓, 잇츠 프라이데이 >의 소개 글을 읽곤 어리둥절했다.

 

“보편적 부조리를 기발한 이야기로”

 

SF라면 응당 광선검과 우주여행 따위의 요소들이 등장해야 하지 않나? SF 소설이 보편적 부조리를 다룰 수 있다고? 여러 의문점들을 가진 채 책장을 넘겼고, 심너울 작가가 만들어낸 세계에 순식간에 매료되었다.


 

정적

 

마포구와 서대문구 일대에 갑자기 정적이 찾아오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그러니까, 이 두 개의 행정구역 안에만 들어오면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거다. 문화, 젊음, 열정의 거리를 상징하는 홍대와, 큼지막한 대학 세 개를 사이에 두고 있는 신촌, 서울의 중심 한강공원 등 이곳은 사시사철 24시간 언제 가도 사람들로 왁자지껄하다. 그런데 이곳에 정적이라니. 이 지역의 학교를 다니고 있는 나로서는 정말 상상도 못할 일이다. 그래서인지 심너울 작가의 이 말도 안 되는 상상이 어쩐지 즐겁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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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붐비는 신촌의 거리

사진 출처: 서대문구청 페이스북

 


소리의 소중함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걸까 싶었지만 이야기는 아예 다른 곳으로 흘러갔다. 정적 현상으로 인해 사람들이 자연스레 줄어들게 되자 많은 카페들이 문을 닫게 되고 주인공은 우연히 청각장애인들을 위한 카페를 찾아가게 된다. 정적 현상이 시작된 이후, 많은 사람들이 정적 구역을 떠났지만, 청각 장애인들은 오히려 그 구역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 구역 안에 들어오면 그들은 더 이상 ‘그들’이 아니었다. 청각 장애인들에겐 정적 구역이 일종의 유토피아가 되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은 같은 세계를 살아가지만, 이 세계에서 비장애인의 삶이란 잊히기 마련이다. 정적 현상이 길어지며, 집값이 폭락하고, 대통령 지지율이 떨어지고, 여러 종교 단체와 과학 단체들이 각자의 주장 내세우며 활개를 펼치지만 어느 누구도 청각 장애인들의 삶에는 주목을 하지 않는다. 청각 장애인들은 항상 비장애인들과 같은 시공간을 공유하며 살아왔는데, 정적 현상이 생기고 나서야 그 구역의 사람들을 위한 tv 프로그램 자막이 등장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정적 현상이 끝나자마자 자막은 하루아침에 사라졌다. 너무 현실적이었다. 너무 현실적이라 주인공의 표현대로 정말 ‘우스웠다.’

 

정적 구역으로 이사를 온 한 청각 장애인은 정적 구역 밖에 있으면 귀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이명이 들린다고 말 했다. 정적 현상이 끝나고 모든 것이 ‘정상적으로’ 돌아가기 시작하자 저 이명의 원인이 무엇인지 짐작이 되었다. 비장애인의 삶에 대한 폭력적 무관심이 그 이명을 낳는 게 아닐까. 그래도 그 카페만큼은 이야기의 마지막까지 정적 구역으로 남아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 세계에는 정적 구역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언제쯤이면 비로소 ‘우리’가 되어 같은 공간과 시간을 살아갈 수 있을까.



경의 중앙선에서 마주치다

 

집은 일산, 학교는 마포구에 있는 4년 차 ‘경중러’인 나에게 이 소설은 정말 ‘웃펐다.’ 파주에서 시작해 서울을 거쳐 양평까지 가는 이 경의중앙선은, 수많은 경기도민의 출퇴근길과 통학을 책임지고 있는 막중한 임무를 가지고 있는 지하철이다. 하지만 이놈의 경의중앙선은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수많은 경기도민에게 말도 안 되는 스트레스를 주고 있는 지하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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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좀 왔다고 8시 10분에 와야 할 열차가

25분에 도착하는 경의 중앙선,

이 날은 당연히 지각을 해버렸다.

 


평균 20분인 배차간격도 어이가 없는데, 연착은 어찌나 많이 되는지. 정시에 도착하면 그날은 운수가 좋은 날이다. 반대 방향도 그렇게 사정이 좋은 것은 아니지만, 파주에서 떠나는 경의중앙선은 정말 심각하다. 파주를 지나는 지하철은 경의중앙선 밖에 없는 터라 파주시민은 버스를 제외하고는 경의중앙선에 전적으로 의지해야 한다. 그렇기에 일산에 오면 이미 지하철은 만석. 특히 출근 시간 서울역 급행은 지옥이 따로 없다. 웹툰 ‘신과 함께’에 등장하는 지옥이 정말 있다면 그 중 하나는 출근시간 서울역 급행의 모습이 분명할 것이다. 그럼 ‘경중러’들의 죄목은 경기도민이라는 것일까.


나와 같은 ‘경의중앙선에 속박된 불쌍한 정념들’에게 이 소설의 일부를 공유하자 다들 뜨거운 반응을 보내주었다. 이렇게 신랄하고 위트 있게 경의중앙선의 행태를 비판하다니. 정말 속이 시원했다. 소설 속 성하리가 말한 것처럼 '2호선처럼 서울 사람들이 타는 노선'이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지 모른다. 경의중앙선을 타고 다니는 사람들은 이런 일상적 분노를 꾹꾹 참고 공부를 하고 돈을 벌러 서울로 향한다. 그 묵직한 공기는 4년째 타고 다니고 있지만 도통 적응이 되지 않는다. 이제는 경의 중앙선에 발만 들여놓아도 숨이 막힐 지경이다. 그러니 누가 이 소설 좀 코레일에게 보내주었으면.



땡스 갓, 잇츠 프라이데이

 

작년 봄과 여름, 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동시에 3개를 한 적이 있었다. 주 6일을 일했고, 심한 날은 하루에 알바를 두 개를 하기도 했었다. 일에서 행복을 찾지 않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일에서 어느 정도의 자기만족감과 행복을 찾는 사람이기 때문에 아르바이트를 하는 시간이 업무 강도와 상관없이 정말 힘이 들었다. 그러면서 터득한 것은 ‘자아 일시정지 버튼 누르기’였다. <땡스 갓, 잇츠 프라이데이>의 주인공 김현처럼 말이다.


9급 공무원 김현은 일주일에 하루만 의식이 각성되는 실험에 참가한다. 그는 주말을 앞두고 있는 금요일에 가장 큰 행복을 느끼기 때문에 금요일에만 의식이 깨어났다. 즉, 김현의 시간은 매일매일이 금요일이며 잘 때마다 한 번에 6일의 시간이 흐르게 되는 것이다. SF 소설로 풀어낸 이야기이지만 우리에게 그렇게 낯설게 다가오지 않는 것은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의식이 꺼진 동안의 삶이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런 상태를 바라는 사람도 분명히 있었다. 죽고 싶지도 않고 생활 속에 존재하고도 싶지만, 그 삶을 목도하고 싶지는 않은 사람. 일주일에 하루 이틀만 깨어 있어도 충분히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했던 김현은 그런 부류였다.


<땡스 갓, 잇츠 프라이데이> 85P


 

대학을 졸업해서 운 좋게 취업에 성공한다고 해도, 그 이후에 다가올 삶을 생각하면 나는 아득해진다. 지옥의 출퇴근 시간을 (아마도 경의중앙선에서) 버텨가며 의식의 셔터를 내린 채로 일을 하다가 운이 좋아야 6시에 퇴근하고 주말에는 지쳐 나가떨어지는 삶을 내가 버틸 수 있을까. 도망치고 싶지만 딱히 다른 좋은 수가 있는 것도 아니다. 어른이 된다는 건 결국 버티는 삶에 익숙해지는 것일까. 입 안이 쓰다.

 

 

신화의 해방자 & 최고의 가축

 

<신화의 해방자>와 <최고의 가축>은 같은 세계관을 공유한다. 인간의 수호자이자 마법의 주인으로 등장하는 전설의 동물인 용이 21세기 현대 사회를 살아간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모든 것이 상품이 되고 자본이 되는 이 21세기 사회에서는 이 체제를 만든 인간도, 전설의 동물인 용도 그저 체제의 노예가 될 뿐이다.

 

430년이라는 시간을 자고 일어난 위대한 용 ‘이스켄데룬’은 제약회사 ‘셀트린’과 계약을 맺게 된다. 셀트린에게서 공물을 받으면서 그 대가로 자신의 세포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스켄데룬은 자신이 여전히 인간 위에 군림하는 것이라고 착각하지만, 실상은 인간이 그를 길들이고 있었다. 그렇게 한 때는 인간을 다스렸던 존재가 '최고의 가축'이 되어버린 것이다. 용이라는 판타지적 요소를 가져오기는 했지만, 자본주의적 이용 가치에 따라 자연을 입맛대로 변화시키고 파괴시키고 있는 세계를 살아온 우리에게는 그렇게 낯선 이야기가 아니다. 그렇게 대자연은 인간 사회의 아래로 들어오게 된다.


<신화의 해방자>의 주인공인 유소현은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찾아볼 수 있는 사람이다.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모르고 부모님이, 선생님이 말해주는 성공의 길을 따라 공부를 하고 스펙을 쌓고 취업을 한, 그런 평범한 90년 대생이다. 그런 유소현은 용의 조직을 이식받은 돌연변이 쥐, ‘용순이’를 몰래 기르고, 그가 풀려날 수 있도록 직접 날개를 둘러싼 점막을 찢어준다. 누군가가 시켜서 한 일이 아니라 처음으로 자신이 원해서 선택한 일을 한 유소현은 하늘로 떠오른 ‘용순이’처럼 날아오른다. 억눌렸던 자아가 비로소 풀려난 것이다.

 

인간 사회는 자연뿐만 아니라 개개인의 인간들조차도 이렇게 길들이고 있다. 자기계발이라는 이름으로 많은 청년들이 하고 있는 일들을 생각해보자. 그것이 정말로 '자기'를 위한 계발일까? 실상은 사회적, 경제적 성공을 위한 행위들이 아닌가. 명예도 좋고 부도 좋지만 우리가 진실로 원하는 것이 그것일까. 우리는 명예와 부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상품화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

 

<땡스 갓, 잇츠 프라이데이> 안의 다섯 편의 소설들은 2010년대를 통과해내고 2020년대의 시작을 살아가고 있는 90년대 생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일상적 비극들을 담담하고 위트 있게 그려낸다. 장애담론, 서울공화국 현상, 노동에서의 인간 소외, 인간과 자연의 상품화. 이것들은 모두 사회의 구조적 문제로 인해 개인들이 겪어왔고, 겪고 있으며, 앞으로도 겪어야만 하는 일들이다. 이 때문에 <땡스 갓, 잇츠 프라이데이>는 SF 소설로 분류가 되지만 동시에 고발 문학이나 풍자 소설로 읽히기도 한다.

 

SF 장르로 우리가 현재 살아가고 있는 세계를 날카롭게 관통할 수 있다니. 나에게는 신세계를 맛 본 것 같은 기분이었다.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으면서도 도망칠 수 없는 우리들의 마음을 SF라는 색다른 시각으로 들여다보고 싶다면 강력하게 추천한다.

 





땡스 갓, 잇츠 프라이데이
- 안전가옥 쇼-트 01 -


지은이 : 심너울

출판사 : 안전가옥

분야
장르소설
판타지, SF

규격
100X182mm

쪽 수 : 162쪽

발행일
2020년 01월 20일

정가 : 10,000원

ISBN
979-11-90174-67-1





저자 소개

  
심너울
 
서강대학교 심리학과를 졸업했다. 안타깝게도, 바란 바와 달리 그 경험은 자아 탐색에 도움이 되지 못했다. 회한이 많아 이불을 자주 찼더니 레그 레이즈만 잘하는 기묘하고 빈약한 신체를 갖게 되었다. 별개로, 현실의 경계 끝자락에 걸쳐 있는 세계에서 분투하는 인간의 마음을 묘사하는 것을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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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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