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3단지에 사는 사람이 범인이다, XXL 레오타드 안나수이 손거울

사회의 축소판 학교에서 레오타드를 입을 수 있는 자유
글 입력 2020.02.17 0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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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온갖 문화시설들이 멈춘 가운데, 문화초대를 받은 xxl 레오타드 안나수이 손거울을 관람하는 것이 조금 걱정되기도 했다. 지금이야 완치자도 많지만, 불과 일주일 전만 해도 자꾸만 늘어나는 확진자 수에 온 국민이 마스크 대란과 공포심을 느껴 외출도 자제했다.


확진자 중 한 명이 영화관에 들러 영화관을 폐쇄하는 일도 벌어졌기 때문에 공연계에서도 경각심을 가지는지 서강대 메리홀 앞에서 사뭇 달라진 입장 형식을 볼 수 있었다. 혹시나 확진자가 등장했을 가능성을 고려해 동선 파악을 위해 관객들은 모두 전화번호를 기재했고, 공연장에 들어가기 직전에 안내원이 뿌려주는 손소독제를 바르고 마스크를 받아서 들어갔다.


공연을 하는 배우로서는 관객들이 모두 마스크를 끼고 있으니 반응을 알기 어려울 것 같아 어쩌면 주눅이 들지 않을까 봐 조금 걱정됐고, 한편으로는 또 어쩌면 시국이 시국인지라 겪을 수 있는 현장 공연만의 특성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분명 그들에게도 평범한 공연은 아닐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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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을 보기 전에는 ‘안나수이 브랜드의 xxl 레오타드를 입은 자신의 모습을 손거울로 비춰봄’과 같이 해석했었는데, 공연을 보면서 ‘xxl 레오타드’와 ‘안나수이 손거울’ 두 가지 부분으로 나누어진 제목이었다. 레오타드와 손거울이라는 두 개의 사물은 각각 주인공인 준호와 희주 상징하는데, 공연을 보다 보면 사건과 배경은 흔한 소재인데 주인공들이 참 개성이 넘친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주인공 준호는 입시 스트레스를 XXL 레오타드를 입으면서 해결한다. 체육 시간에는 맨살이 드러날 수밖에 없어서 자제하고, 체육이 없는 날에는 꼭 레오타드를 입고 그 위에 교복을 입는다. 5벌 정도의 레오타드를 갖고 있고, 그중에 3벌은 무용을 했던 누나의 것이고, 나머지 2벌은 자신이 구매한 것이다. 극 중에는 검정색과 붉은색의 레오타드만 등장하는데, 아마 누나의 것은 사이즈가 작아서 보관만 하고 자신이 구매한 XXL 사이즈의 레오타드 2벌만 번갈아 입는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준호는 붉은색을 보면 화려해서 흥분된다고 말하며, 자신의 레오타드에 대해 엄청나게난 집착과 애정을 보인다.


준호의 친구들과는 다르게 준호는 어른스럽게 생겼기 때문에 솔직히 나는 준호가 레오타드를 입는 사람이 아니길 바랐다. 그가 레오타드를 입고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는 모습을 보는 것이 조금 두려웠다. 아마 그것은 ‘레오타드를 입는 남자는 보통의 사람들과는 다르게 조금 이상할 것이다’, 라고 전제한 나의 편견 때문일 것이다.

 

 

XXL레오타드 안나수이 손거울 사진제공_대전예술의전당 (5).jpg

 

 

희주와 함께 체육 수행평가를 연습할 때, 땀을 흘리면 레오타드만 입고 춤을 추고 싶다고 말을 한다. 준호에게 교복은 맞지 않은 옷이고, 레오타드가 진정한 자신이었을까. 부모님의 강요로 대학에 갈 수 있을만한 것들은 뭐든 시도해서 괴로워하던 준호의 누나가 레오타드를 입고 무용을 하는 누나의 행복한 모습을 보며, 자기도 레오타드를 입으면 행복하다고 생각하게 되지 않았을까. 어린 시절에는 사회의 조그만 자극에도 쉽게 상처받고 자아가 비뚤어지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레오타드를 입으면 사람들이 자신을 경멸할 거로 생각해서 두려워 자신의 진짜 모습을 숨기는 동시에, 임대아파트에 거주하는 동급생을 은근히 깔보고 무시하며 과외반에 끼워주지도 않았다.  자신이 사회에서 배척당하지 않기 위해 타인을 배척시키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면서 가장 잘 짜였으면서도, 어쩌면 가장 일상적이고 평범한 인간적인 모습을 엿본 것 같았다.


연극이라 조금 과장된 컨셉은 있었을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싶은 한편으로는 부모님의 지시, 세상의 편견에 갇혀서 남의 말이 세상 전부인 줄 아는 사춘기 청소년의 모습을 분명히 잘 담고 있었다.

 

준호의 여자친구는 같은 아파트 3단지에 사는 민지다. 관리가 잘 된 단발머리에 교복 치마도 줄여서 입고 날씬하기까지 한 민지는 인형 같다. 친구들과 잘 어울리고, 공부 잘하고 주먹을 잘 쓰는 남자친구도 있다. 민지의 엄마는 민지의 생일마다 검정색 안나수이 손거울을 선물하면서, 죽은 까마귀나 고양이 시체 따위가 너의 주변에 앉게 두지 말라고 말한다. 매일 아침마다 민지의 머리를 빗겨준다. 마치 인형을 너무 갖고 싶어했던 어린아이에게 인형을 선물해주면 매일 머리를 빗겨주고 옷을 입혀주며, 함께 잠을 자는 그런 애착과 비슷하다고 할까.

 

 

XXL레오타드 안나수이 손거울 사진제공_대전예술의전당 (2).jpg

 

 

반면, 강주희는 학교에서도 왕따고, 집에서도 부모님이 자신을 돌볼 여력이 없어 혼자 패스트푸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비와 생활비를 마련하는 학생이다. 체육을 전공하고 싶어 철봉에 매달리는 연습도 꾸준히 하고,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운동장 달리기도 성실히 잘해낸다. 민지처럼 눈웃음치면서 선생님께 애교는 부리지 스타일과는 정반대지만, 자신의 자리에서 꿋꿋이 온 정성을 쏟아서 더 나은 상황을 위해서 노력한다.


강주희와 민지 사이가 사실 좀 미묘하다. 강주희도 민지와 같은 안나수이 손거울을 들고 있는데, 극의 후반에 드러나지만 민지네 집에서 훔쳐온 거였다. 생일 때마다 안나수이 손거울을 많이 받으니 그것 하나쯤 훔쳐도 눈치채지 못할 거로 생각했던 것 같다. 과거엔 민지와 강주희가 친했는데, 강주희가 ‘민지가 엄마한테 맞고 산다’고 학교에 소문을 내서 둘 사이가 멀어졌다고 했다. 아마 자신의 잘못을 덮으려고 부러운 민지에 대한 가십거리를 만들어낸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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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na Sui Beauty Mirror Rose _ ASOS

 

 

연극에 대해 정보를 미리 찾아봤을 때, 오로지 자기 체육 수행평가의 짝이 없다는 이유로, 반 친구의 가장 사적인 약점을 학교 홈페이지에 올려 협박한다고 해서 강주희에 대한 인상이 좋지 않았다. 엄연히 사생활 유포로 말미암은 폭력이고, 피해자는 자신의 신변이 두려워 신고할 수도 없다. 불법 유포의 가해자가 여자라는 이유로, 학생이라는 이유로 그 죄의 무게가 가벼워지는 것은 아니다.


심지어 친구가 부러워서 친구의 물건을 훔치고, 거짓말을 지어내어 자신의 죄를 덜려고 한 것 역시, 한순간의 실수로 그 사람의 모든 것을 판단해버리는 것은 미안한 일이지만, 그래도 조금 감정적으로 판단해본다면 절대 내 곁에는 두기 싫은 인물 유형이다. 언제든 자신의 이익과 입장을 우선시하며, 친구는 희생당하고 어느 순간이든 적으로 돌변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드라마를 봐도 악역에 대한 단순한 미움보다는 일을 벌리게 된 동기,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그 갈등을 이겨내는 과정에 초점을 맞춰나가게 될만큼 내면이 성장한 덕분일까. 연극을 보면서 강주희를 마냥 미워할 수만은 없었다. 아무도 응원해주는 사람 없이 혼자 힘으로 이겨내고 하다 보니, 또 해서는 안 되는 영역을 알려주는 사람이 없다 보니 거기까지 가버린 것은 아닐까. 아무도 자신을 이해해 줄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따돌림당하는 것을 슬퍼하지 않고, 어떤 것에도 변명하지 않게 된 것은 아닐까.

 

 

XXL레오타드 안나수이 손거울 사진제공_대전예술의전당 (1).jpg

 

 

준호의 친구 두 명도 엑스트라를 넘어 생동감과 개성을 가진 인물이었다. 한 명은 준호와 민지와 같은 3단지에 살고, 과외도 같이 받는 학생인데 정말 긍정적이고 친구를 의심하지 않는 인물이다. 부잣집 아들의 표본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춤추는 것도 좋아하고, 친구들과 잘 어울리고 공부도 잘한다.


반면 나머지 한 명은 임대아파트에 거주하는데, 늘 3단지 애들에게 자격지심을 갖고 있다. 그래서 학교 홈페이지에 준호의 얼굴이 모자이크된 사진이 올라왔을 때도 3단지에 사는 게 확실하다면서, 준호를 저격했고, 준호가 화장실에 가는지 아닌지까지 뒤에서 지켜보면서 준호에 대한 의심을 거두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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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하게 등장하는 어른은 담임선생이자 체육선생이다. 그는 학생들에게 늘 친근하게 다가가고, 좋은 것을 가르치려고 노력하지만, 어른과 선생으로서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서 도움에는 한계가 있다. 강주희가 왕따라는 것은 알지만,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는 못하고, 아르바이트에서 부당한 취급을 받아도 현실적인 훈계 정도밖에 해주지 못한다. 실제로 가족이 아닌 타인이, 교사라 할지라도 자신에게 긍정적인 삶을 이끌어갈 지도자가 될 수는 없다는 한계점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사실상 학교도 사람들이 살아가는 사회이기 때문에 왕따 문제를 근절하기는 힘들 것이다. 대학교, 회사, 등 모든 사회에는 약육강식이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약자를 배제하고 강자끼리 뭉치는 힘겨루기 같은 동물의 본능적인 세계에서 벗어나도록 교육해야 하는 것은 분명히 그 사회의 책임자의 역할이다. 학교에서는 당연히 그것은 선생님의 역할이어야 한다.


배움의 가능성이 낮았던 과거의 서당에서는 아이들을 가르칠 자격이 되고, 아이들을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 훈장이 되어 교육자의 역할을 담당했지만, 지금은 학교마저도 취업 시장으로 바뀐 지 오래다. 본능적인 욕구에서 벗어나도록, 아이를 성인으로 성장시킬 수 있는 교육을 받기에는 삶이 너무 짧고 시간은 한정되어 있다. 대학생들은 지식만 습득한 채 사회로 던져진다. 교육은 학원에서 담당하고, 학교에서는 공적인 업무만 진행된 채 아이들은 성장하지 못하고 사회로 던져진다. 그런 아이들이 다시 돈을 버는 수단으로서 또는 자신과 같은 사례를 만들지 않기 위해 선생님을 직업으로 선택한다. 그러나 그에 맞는 마땅한 교육 시스템이 마련되어 있지 않기에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


체육 선생의 무능함만 강조된 채, 극에서는 부모님이 이렇게 하라고 한다는 학생들의 언급으로만 부모님의 존재가 넘어가며 어른들의 역할은 보이지 않는다. 학생들의 삶에 실질적으로 개입하려고 드는 사람들만 연극상에 올라오는 셈이다. 부모님들은 아이들을 더 좋은 대학으로 보내기 위해서 아이들의 삶을 관리하고 통제하려 들면서 사실은 그들에게 아무런 존재가 아닐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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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봄이 오면 부모님과 동생과 언니와 함께 쑥을 캐러 산을 헤집고 돌아다녔고, 엄마아빠가 쑥을 캐는 동안, 우리는 산에 설치된 엄청나게 긴 그네를 타고 놀았다. 어릴 때부터 하체가 발달했던 덕분에 거의 90도까지 올라가곤 했다.

 

여름이 오면 아빠가 회사에서 사다리를 구해와서 산딸기를 따러 다녔다. 뱀딸기를 먹으면 대머리가 된다는 속설이 있었는데, 동생이 뱀딸기를 먹어서 동생이 대머리가 되기까지 기다렸던 적도 있다. 날씨가 따뜻해지면 고동과 다슬기를 잡으러 계곡을 다녔고, 그냥 방과 후에, 주말에 심심하면 할머니 집과 산으로 놀러 다녔다.

 

철쭉이 필 때면 철쭉 꽃잎을 꺾어와서 깨끗이 씻고, 할머니가 만든 떡 위에 올려서 예쁘게 만들었고, 동지가 오면 새알을 만들어서 할머니가 끓인 팥죽에 넣어 먹었다. 큰 새알을 먹고 싶은 욕심에 엄청 큰 걸 만드는 바람에 할머니가 팥죽 삶는데 괜히 더 오래 걸리게 했던 철없던 시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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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 가면 좋은 친구들도 많았지만, 공부 잘한다고 자기들끼리만 몰려다니는 애들은 나에 대해서 헛소문을 많이 만들어냈다. ‘쟤는 부모님이 둘 다 서울대 나와서 특급과외 받는대”라는 말은 정말 아직도 충격적으로 남아있다. 아마 내 뇌에 한 줄기로 문신을 새겨놓은 것처럼 각인되어 있다. 어떻게든 남을 깎아내 보려고 과외는커녕 학원도 안 가본 나에게, 그리고 부모님 둘 다 대학을 나오지 않으신 분들인데 대체 어떻게 하면 그런 소문이 나는 건가, 궁금해지기도 했다.


회사생활도 사실이 1이면 소문이 10이라고 하던가, 어딜 가든 사람이 모이는 곳은 다 비슷한 것 같다. 학창시절 그런 소문을 내던 사람들은 여전히 자기 합리화를 위해 남을 깎아내리는 사람이 되어있을 것이기에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래서 여전히 학교가 싫고, 회사가 싫고, 무리가 싫다. 구성원끼리의 교류, 친목, 단합을 강요하면서 내부에서는 그런 소문을 퍼뜨리고 있는 단체의 속성이 싫다.


뒷담화가 얼마나 싫었던지 나는 싫은 감정이 들면 앞에서 이야기하는 사람이 되었다. 앞에서 하지 않은 이야기는 절대 뒤에서 하지 않는다. 괜히 자기가 싫어하면서, 그 사람 고립되게 만들려고 뒤에서 소문내서 왕따 만드는 것보단 그냥 자기가 혼자 멀어지면 되는 일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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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으로는 자식에게 인생 경험을 시켜주지 못하고 학원과 학교라는 공간 속에 가둬 키우고만 있을 부모들에게 유감을 표현한다. 나는 부모님이 주신 무한한 선택의 자유로,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은 인간이 되었고 자립을 꿈꿀 수 있다. 그러나 돼지우리 속에서 돼지 가둬놓고 사육하듯 길러 낸 인간들은 남을 배제하지 않으면 사료를 받아먹지 못하는 것처럼 남과 자신을 끝없이 비교하고, 사회가 정한 틀 안에서만 살아갈 것이다.


고작 나의 글 하나로 세상이 자유로워진다거나, 자연으로 회귀하지 않을 것을 잘 알고 있다. XXL 레오타드 안나수이 손거울을 보며 학생들 사이에 갈등이 대부분 부모에게서 비롯되는 것이기에, 그저 내 학창시절의 설움이 7년이 지난 아직도 깊이 남아있어서 뒤끝을 보여준 글일 뿐이다.

 




[박지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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