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우월감, 우정, 그리고 파멸 - 뮤지컬 "쓰릴미"

뮤지컬 <쓰릴미> / 2019.12.10 ~ 2020.03.01 / 예스24스테이지 2관
글 입력 2019.12.18 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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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의 가석방 심의위원회에서 수감자 ‘나’의 일곱 번째 가석방 심의가 진행 중이다. ‘나’를 심문하는 목소리들은 34년 전, ‘나’와 ‘그’가 저지른 범죄에 대해 묻는다. 교회 숲 속에 버려진 어린 아이의 시체, 그리고 사건 해결의 실마리가 된 안경에 대해 얘기하며, ‘나’는 ‘그’와 함께 12세 어린이를 유괴해서 처참하게 살해하기까지 상황을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어린 나이에 법대를 졸업할 정도로 명석한 두뇌를 지닌 나와 그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나와 그가 피로 맺은 계약의 내용은 무엇이며, 그들은 12세 소년을 왜 죽여야 했는가?

 

가슴을 적시고 이성을 마비시키는 전대미문의 사건, 그 사건의 진실을 찾아간다.


과연 누가 누구를 조종했는가?

 


1924년 미국, 시카고. 전대미문의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범인은 세계적인 명문대, 시카고 대학교의 학생 두 명으로 밝혀졌다. 부유한 유대인 집안 출신으로 IQ 210의 지능을 가진 네이슨 레오폴드, 그리고 IQ 160에 마찬가지로 부유한 집안 출신인 리차드 로엡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이들의 범행 동기에 세상은 경악한다. 사람을 죽인 이유가 그저 ‘증명’이었기 때문이다. ‘완전범죄까지 벌일 만큼 우리는 똑똑하다!’고 외치기 위해 그들은 14살 바비 프랭크를 죽이고, 얼굴과 몸에 염산을 뿌린 후, 시신을 배수구에 끼워 넣고 달아났다.


하지만 이들은, 너무나 터무니없게도, 안경 때문에 붙잡힌다. 네이슨이 범죄현장에 깜박 놓고 온 안경이 하필이면 맞춤제작(?)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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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차후 연극과 뮤지컬, 영화로 재탄생한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히치콕 감독의 영화 <로프>이다. 작품에는 지적 우월함을 증명하기 위해 살인을 저지른 두 남자가 등장한다. 이들은 살인을 저지른 집으로 사람들을 초대한 후, 시체가 담긴 상자 위에서 식사를 하자고 제안하는 등 정보의 비대칭성에서 오는 우월감과 스릴을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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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여기 또 다른 작품, 뮤지컬 <쓰릴미>가 있다.


스티븐 돌기노프의 원작을 기반으로 2017년, 한국에서 무려 10년차를 맞이했다. 오래된 세월만큼 두터운 팬덤을 갖고 있는 이 뮤지컬은 수많은 스타들의 등용문이 되기도 했다. 김무열, 강하늘, 지창욱 등 지금은 너무도 유명해져버린 배우들은 이 작품을 통해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특히 리차드 캐릭터를 옴므파탈로 해석하고 연기한 김무열 배우는 <쓰릴미>를 통해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고 한다. 그리고 마침내 2019년. 2년의 휴식기를 가진 <쓰릴미>가 배우부터 제작진까지 올 뉴 캐스팅으로 다시 한국 관객을 찾아온다.


필자는 이 작품을 보며 다음의 두 가지 이야기가 생각났다.

 

 

 

<죄와 벌>, 도스토예프스키



#섬세한 심리묘사, #초인사상


혹 ‘고전은 재미없다’는 편견이 있다면, 이 책을 읽어볼 것을 추천한다. 주인공 라스콜리니프는 본인이 다른 이들보다 우월하다는 의식에 사로잡혀 있다. 스스로를 세상을 구원할 나폴레옹으로 여기는데, 그 수준이 어느 정도이냐 하면, 고리대금업자 노파를 본인 마음대로 세상의 해악이라 판단하고 살해할 정도이다.


소설은 그가 노파를 살해한 시점, 그 이후에 초점을 맞춘다. 죄의식에 사로잡힌 라스콜리니프의 일상은, 별다른 사건이 없어도 굉장히 드라마틱하다. 작가인 도스토예프스키가 그의 내면을 너무도 섬세하게, 자세하게 묘사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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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쓰릴미> 속 리차드는 라스콜리니프와 닮았다. 리차드는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 IQ 160의 뛰어난 지능을 가졌다. 빼어난 외모와 화려한 언변으로 주위의 시선을 한 몸에 받지만, 사실은 니체의 초인사상에 빠져 그들을 열등하게 여기고 있다.


이런 그가 IQ 210의 네이슨을 만났다. 자신보다 뛰어난 머리를 지녔지만 자신과는 달리 모범적이고 소심한 네이슨에게 일종의 흥미를 느낀다. 둘은 급속도로 가까워지고, 마침내 본인들의 우월함을 증명하기 위해 작은 범죄들을 게임처럼 저지르기 시작한다.


<쓰릴미>는 오직 2명의 캐릭터가 극 전체를 끌고 가는 2인극이다. 조연, 화려한 무대장치 등의 요소들을 모두 제거함으로써 오직 두 캐릭터의 세밀한 감정 묘사에 집중한다. 별다른 사건이 없어도, 오직 감정묘사만으로 어마어마한 긴장감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죄와 벌>을 통해 알고 있기에 <쓰릴미>와의 만남이 더욱 기대가 된다.

 

 


<셜록 홈즈>, 아서 코난 도일 경


 

#우월감, #복잡한 우정


<죄와 벌>의 라스콜리니프가 우월하다는 의식’만’ 가지고 있었다면 (라스콜리니프는 가난에 허덕이는 대학생이다) <셜록 홈즈>의 셜록은 실제로 우월하다. 고기능 소시오패스인 그는 엄청난 관찰력으로 처음 보는 사람의 인생사를 1초만에 줄줄 읊기 시작하고, 이 재능을 활용해 미스터리한 범죄를 해결한다.

 

 

 

 

이처럼 뛰어난 지능을 가진 셜록 역시 일반인을 무시하는데, 자신의 사고의 속도를 따라오지 못하는 존 왓슨과 경찰들을 향해 ‘정말 멍청하다’거나 ‘그렇게 작고 귀여운 뇌로 살면 재미없지 않냐’고 되묻는 식이다.


이렇게 대놓고 무시를 해버리니 당연히 친구가 없는데, 이는 실제 네이슨과 리차드 역시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유복한 집안 출신에 지능도 월등히 높다 보니 왠만한 일반인은 그들 성에 차지 않았고, 네이슨과 리처드는 서로에게 유일하게 수준이 맞는 친구였던 것이다.


셜록과 그의 유일한 친구 존은 리차드와 네이슨을 닮았다. 존 왓슨은, 셜록과 함께 있을 때는 상대적으로 평범해 보이지만, 그 역시 따로 떼어놓고 보면 대단한 비정상이다. 전직 군인이자 군의관인 그는 쉽게 말해 ‘전쟁중독’이다.


전쟁터의 기억으로 괴로워하지만, 전쟁터가 없으면 잠을 못 자고 다리를 절며 손을 떤다. 그런 그에게 매일같이 전쟁터를 선물해주는(!) 셜록은 일종의 구원이고, 이는 유일하게 존과 감정적 교류를 할 수 있는 셜록에게도 마찬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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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의 후반부로 갈수록 둘의 서사는 더욱 깊고 복잡하게 얽힌다. 드라마 <셜록>이 추리스릴러 장르라는 외피를 입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탄탄한 드라마로 느껴지는 이유는 바로 이 관계성에 있다.


<쓰릴미> 역시 두 친구의 복잡한 관계를 보여줄 예정이다. 각각 네이슨 역과 리차드 역을 맡은 배우 김현진과 구준모는 둘의 관계를 ‘한 단어로 정의하기 힘든 관계’라고 묘사했다. 그만큼 집착, 정복욕과 같은 다양한 감정이 두 배우의 관계성을 통해 표현될 것이다.


그러나 <셜록>과 <쓰릴미>에는 확연한 차이점이 있다. <셜록>의 끝은 성장이지만, <쓰릴미>의 끝은 파멸이다.


과연 네이슨과 리차드의 기이한 우정은 서로를 어떻게 파멸시켰을까. 그 세밀하고 긴장감 넘치는 파멸의 과정이 궁금하다면, 2019년의 마지막은 <쓰릴미>가 되어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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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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