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공론장을 통한 극적 소통, 연극 "9월"

여성주의 담론으로 바라본 연극 <9월>
글 입력 2019.12.01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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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장은 크진 않았지만 어딘가 차가운 느낌이었다. 공연장 앞 쪽의 바닥에는 큰 원이 그려져 있었고, 그 뒤로는 의자가 네 개씩 등을 대고 배치되어 있었다. 의자들이 모두 채워지자 배우들은 조용필의 ‘어제 오늘 그리고’를 부르며 관객들 앞에 등장했다.


 

어제 우리가 찾은 것은 무엇인가

잃은 것은 무엇인가

 

 

이내 배우들과 함께 의자로 원 모양을 만들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앉아 있던 의자를 들고 빈자리를 찾아 이동하고 나니 금세 원이 만들어졌다. 모르는 사람들과 원으로 앉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민망한 일이었다. 뒤를 돌지 않는 이상 시선을 어느 쪽으로 두어도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약 50명 정도의 관객들이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듯했다. 본격적으로 공연이 시작되기 전 어색한 정적의 시간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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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전에는 원형의 무대라는 설명을 듣고 관객들이 원형을 만들어 배우들이 가운데에서 공연을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배우들은 관객들과 함께 앉아서 공연을 진행했다. 공연의 90퍼센트 이상이 행위 없이 앉아서 대사로만 진행했기 때문에, 모든 사건들을 배우들이 주고받는 대사로만 파악해야 했다.

 

스토리는 복잡했고 비합리적이었으며 플롯은 비선형적이라 내용을 파악하는 데에는 엄청난 집중력이 필요했다. 플롯을 따라가려고 노력하다 보니 엄청나게 몰입하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2019년 <9월>의 가장 큰 특징은 연극이 이루어지는 원형의 공간을 공론장이라고 지칭한 것이다.

 

<9월>은 다섯 인물 사이에서 벌어지는 가족사에 관련한 연극이다. 만일 공론장이 아닌 일반적인 무대에서 이와 같은 이야기를 보았다면 아마 막장도 이런 막장이 없다고 생각했을 것 같다. 하지만 이 이야기가 공론장에서 다루어지니 이야기의 무게감이 조금 다르게 다가왔다.

 

 

 

여성의 연대와 대항 폭력


 

선희와 영주는 기준의 아내들이다. 그러니까- 기준의 외도로 인해 선희는 ‘본처’가 되었으며 영주는 ‘후처’가 되었다. 영주는 그 사실을 몰랐지만 선희는 영주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선희는 영주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기 때문에 영주의 사진관으로 간다.

 

선희와 영주가 만난 날은 아주 더운 여름날이었지만 둘 다 목에 스카프를 매고 있었다. 선희는 영주에게 기준의 외도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둘은 서로가 같은 처지인 것을 알았고 좋은 친구가 되었다.


기준은 해리 사진관에 있는 선희와 영주를 발견하고는 그들에게 심한 폭력을 가했다.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을 하고 죽일 듯이 목을 졸랐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하지만 선희와 영주는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참지 않았다.

 

선희는 영주의 목을 조르는 기준의 어깨를 카메라로 내리쳤다. 영주는 그가 일어나 자신들을 죽일까 무서워 카메라로 머리를 때렸고 그렇게 기준은 사망했다. 선희는 살인죄로 감옥에 가게 되었고, 영주는 선희의 딸 해리를 자신의 딸로 키우게 된다.

 

우리는 폭력에 폭력으로 대응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 즉 비폭력의 중요성을 많이 들어왔다. 하지만 우리는 비폭력이 선행 폭력의 존재를 묵살하는 행위일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는 한다. 비폭력이라는 이름 아래 현실에 존재하는 폭력을 반복적으로 재생산하는 일이 너무 쉽게 이루어지고는 한다. 대항 폭력은 확장된 정당방위로서의 의미를 가진다.

 

선희와 영주의 대항 폭력이 더욱더 의미 있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들의 연대 때문이다. 현실에서 약자인 여성이 남성의 폭력적인 권력에 대항하는 방법은 여성들끼리의 연대이다. 선회와 영주 모두 혼자서는 기준의 폭력을 수용하기만 했다. 하지만 두 인물의 연대는 그들을 반복적인 폭력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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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행 피해를 전달하는 방식


 

해리는 공연 후반부에서 과거 성추행 사실을 고백했다. 항상 애정을 갈구했던 해리는 자주 놀러 가던 사진관 아저씨에게 성추행을 당했다. 그리고 영주와 사진관을 한 것이 일종의 치유였지만 사실은 사진을 찍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고 이야기한다.

 

매체나 문화예술에서 성폭행 문제를 다룰 때 오히려 성폭행 피해자를 대상화하는 경우들이 빈번히 일어난다. 하지만 <9월>은 오롯이 피해자의 목소리로만 성폭행을 다루었기 때문에 성폭행 피해자를 향한 대상화가, 2차 가해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훌륭하다.

 

 

 

정상 가족의 해체 그리고 재구성


 

이 연극에선 가족의 해체와 재구성이 계속해서 일어난다. 그 시작은, 기준의 사망과 선희의 감옥살이로 인한 가족의 해체이다. 둘의 딸 해리는 영주에게 맡겨지게 되고, 영주는 근호를 만나 둘째 딸 리아를 낳아 넷이서 살게 된다. 하지만 영주와 근호의 이혼으로 인해 영주는 해리와 함께 서울로, 리아는 근호와 함께 고향에 남게 된다. 그 이후 몇 년이 지나고 어느 날 영주는 해리를 떠나게 된다.

 

이처럼 <9월>에는 ‘정상 가족’은 등장하지 않는다. 혼외 관계, 입양, 재혼 가정, 이혼가정 등 ‘정상 가족’에서 벗어난 형태의 다양한 가족이 등장한다. 이는 누군가에게는 비현실적인 이야기로 다가올 수 있지만 그것은 우리 사회에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가 만연한 까닭이다. 많은 매체에서 무비판적으로 정상가족을 전시한다.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9월>은 우리 사회에 분명히 존재하는 수많은 형태의 가족들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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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이 시작하기 전, 화면에 요르단스의 ‘화가의 가족’이라는 그림이 있었다. 그것을 보여준 것은 <9월>이 가족과 관련한 이야기라는 것, 그리고 가족으로부터 시작된 개인의 아픔의 이야기라는 것을 암시한 듯하다.

 

연극 <9월>은 이처럼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공론장이라는 공간으로 옮겨와 관객들로 하여금 공감을 이끌어내고 여러 담론들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앞으로 이와 같이 방식에 구애받지 않는 극적 소통이 문화예술계에 많이 등장하길 그로 인해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에게 위로가 될 수 있길 바란다.

 

 



[이지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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