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엄마’라는 이름의 주문 [사람]

글 입력 2019.12.01 09:48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1311.jpg

 

 

“꼭 적금타는 것 같았어. 엄마는 이번 생이 너무 힘들었어. 정말 너무 피곤했어. 꼭 벌받는 것 같았는데, 너랑 3개월을 더 살아보니까. 이 7년 3개월을 위해서 내가 여태 살았구나, 싶더라.”

 
자신과 함께 사는 동안 기분이 어땠냐는 딸의 물음에, 엄마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이렇게 답했다. 바로 최근 종영한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 중 한 대사이다. ‘꼭 적금타는 것 같았어.’ 이토록 딸에 대한 엄마의 마음을 선명하게 비유할 수 있는 말이 또 있을까. 이정은 배우의 음성이 거실에 조용히 울리는 순간, 몇 번이고 엄마에게 들었던 비슷한 말이 생각나 울지 않을 수 없었다. 너를 낳은 순간부터 너는 엄마 인생의 이유가 되었다는 말, 너는 엄마의 전부라는 말. 문득 옆을 보니 엄마가 나보다도 더 펑펑 눈물을 흘리며 드라마를 보고 있었다. 엄마는 나보다 훨씬 ‘엄마’라는 존재의 의미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어떤 엄마의 딸이자, 이제는 어떤 딸의 엄마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작년 겨울 엄마는 외할머니, 그러니까 자신의 엄마를 잃었다. 크리스마스가 얼마 남지 않았던 유난히 추운 날의 일이었다. 외할머니의 죽음은 주변 가족들 모두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한 상황에서 맞이하게 된 일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었다. 그 시대의 어머니들이 겪어왔을 삶이란 너나할 것 없이 마땅히 고되고 힘든 것이었겠지만, 그 중에서도 외할머니의 지난 삶은 특히 그 질곡이 깊었다. 불행의 그늘이 매 순간 그녀를 따라다녔다. 외로웠고, 또 외로웠다. 앞서 말한 대사처럼, 언젠가 할머니는 마치 벌을 받는 것 같은 자신의 삶을 홀로 수없이 원망해보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토록 큰 삶의 폭풍 속에서도 외할머니가 안간힘을 쓰며 내내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역시 나의 엄마, 그러니까 그녀의 딸이었다. 지금 엄마가 나를 삶의 이유로 여기며 살고 있듯이, 외할머니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렇기에 그녀가 노인성 치매로 모든 기억을 잃어가면서도 끝끝내 놓쳐버리지 않은 유일한 기억이 엄마였던 것도 당연했다. 그리고 외할머니는 곧 먼 길을 떠났다. 입관을 지켜본 엄마의 말로는 한껏 굽었던 외할머니의 허리가 거짓말처럼 곧게 펴졌다고 했다. 아마도 그건, 긴 세월을 지고 있던 무거운 짐을 훌훌 벗어버릴 수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외할머니가 떠나고 난 뒤, 엄마는 아무도 모르게 우는 날이 조금 더 늘어났다. 엄마는 자신이 우는 걸 나조차도 모른다고 믿고 있었겠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엄마의 그 슬픔을 완전히 위로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술을 잘 하지 못하는 엄마는 어느 날 술에 조금 취해 나에게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엄마도, 엄마가 있었어. 엄마도, 엄마가 있었다고.” 그 순간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엄마는 ‘엄마’라는 이름의 주문을 잃은 것이었으니까. 부르는 순간 세상이 마법처럼 따뜻하게 데워지는 주문. 부르기만 해도 때론 안식처가, 숨쉴 틈이 되어주는 모든 이들의 ‘조건반사’적 주문 말이다.
 
 

htm_20191030142540158218.jpg

 

 

“엄마가 중국말로도 마마래요. 엄마, 마마, 마더. 다 비슷하지 않아요? 무슨 주문 같은 건가봐요.”

 
얼마 전 ‘동백꽃 필 무렵’을 보던 도중 흘러나온 이 대사를 듣는 순간, 나는 더 이상 ‘엄마’라는단어를 습관처럼 부를 수 없는 나의 엄마를 생각했다. 그리고는 다짐했다. 아무 일 없이도 ‘엄마’라는 단어를 자꾸만 자꾸만 부르기로 말이다. 곧장 그 날부터, 나는 아무 일 없이도 간혹 엄마를 불렀다. 왜 자꾸 부르냐는 엄마의 말에, ‘그냥 좋아서’ 라고만 답했다. 엄마를 부르면 답답했던 요즈음의 마음에 일말의 생기가 돌았다. 또 한 번 알 수 있었다. ‘엄마’란 정말 주문 같은 것이구나.
 
나는 다시, 내가 당신의 삶의 이유라는 엄마의 말을 곱씹어본다. 문득 흘려 들었던 이 말이, 돌이켜보니 분에 넘치도록 감사한 말이었다는 걸 나는 이제서야 깨닫는다. 내가 아닌 누군가에게 ‘당신은 나를 살게 하는 사람’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가. 그런데 이미 그 행복을 누리고 있음에도 그것을 당연시했던 나는 또 얼마나 어리석은 사람이었는가. 겨울을 맞이하며 잠깐 좌절에 지쳐 스스로를 비관했던 나의 마음에, 다시 따뜻한 기운이 피어 오르는 것만 같았다.
 
그리하여, 이제 나는 ‘엄마’라는 이름의 주문이 가진 엄청난 힘을 힘껏 믿어 보기로 한다. 외할머니의 삶의 이유였던 엄마가 꿋꿋하고 성실하게 자신의 삶을 그려왔던 것처럼, 엄마의 삶의 이유가 된 나도 꿋꿋이 나의 삶을 그려 나갈 것이다. 누군가의 삶의 이유가 될 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이 될 것이다. 그리고 문득 힘이 드는 날이나, 세상이 무참하고 냉정하게 느껴질 때에는 마법처럼 ‘엄마’라는 이름의 주문을 외우고, 또 외울 것이다. 그 주문을 쓸 수 있는 나는, 분에 차고 넘칠 정도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니까 말이다.
 
 
 

새 네임택.jpg


 



[김현지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 : 경기 자 60044   |   E-Mail : artinsight@naver.com
발행인/기사배열책임자 : 박형주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형주
Copyright ⓒ 2013-2019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트(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