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인생에 너무 늦은 때란 없습니다 - 모지스 할머니 이야기

글 입력 2019.11.22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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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지스 할머니의 그림은 예전에 어느 그릇 가게 주전자에서 본 적 있다. 그때는 애나 메리 로버트슨 모지스라는 화가가 누군지는 모르고, 따듯한 외국의 분위기가 좋아서 그 주전자를 탐냈었다.

 

어쩐지 책에 나오는 그림들이 낯익다. 어린 시절 책장 액자에 있던 그림들이 틀림없다. 반갑고 친숙한 기분에 나는 어릴 적 동화책을 읽는 것처럼 천천히 책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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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나 메리 로버트슨 모지스. 1860년 워싱턴에서 태어나 1961년 타계한 미국의 화가다. 76세에 붓을 잡기 시작해 93세에는 <타임>지 표지를 장식하는 등 명성을 얻은 그녀는 101세로 세상을 뜰 때까지 1600여 점을 작품을 남겼다. 이 책은 모지스 할머니가 남긴 자서전이다. 화가가 되겠다고 말하면 다들 말릴 76세에 그림을 그려 세계적으로 유명해지는 삶이란 어떤 것일까? 그녀는 어떻게 살아왔고 무슨 일을 했기에 화가가 된 걸까?

 

모지스 할머니가 그림을 그리고 명성을 얻는 부분은 전체 288페이지 중 끝의 30여 페이지 정도밖에 나오지 않는다. 그녀의 삶에서 그림과 세간의 명성은 그렇게 소소한 분량을 차지할 뿐이다. 대신 모지스 할머니의 이야기는 탄생과 죽음, 병, 전쟁, 무엇보다 그녀와 함께했던 그리운 사람들에 대한 추억으로 가득하다. 볕 좋은 날 할머니와 마주 앉아 레몬차를 홀짝이는 것 마냥 책은 따듯하고 포근하다. 할머니의 삶은 시냇물이 흘러가듯 잔잔하게 이어진다. 오래된 소설처럼.

 

워싱턴 카운티에서 보낸 어린 시절과 12살에 다른 농장에서 가정부로 일하기 시작하고, 남편 토마스를 만나 자신만의 가정을 꾸려가는 20세기 여인의 삶은 재밌다. 모지스 할머니는 지난 삶을 얘기할 때 과장하거나 감상적으로 굴지 않지만, 그녀의 단정한 태도만으로도 그때의 시대상과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사과를 수확해 시럽을 만들고 겨울이면 썰매를 타는 시골 사람들의 삶. 중간중간 삽입된 그녀의 그림들이 모지스 할머니가 살았던 세상을 우리에게도 보여준다. 아름답고 평화롭다.

 

모지스 할머니가 죽음을 바라보는 방식은, 삶이 있으면 죽음이 있는 게 당연하다는 듯 담담하다. 그녀가 맞닥트렸던 가족의 죽음, 아이들의 죽음, 남편의 죽음 등 이야기는 죽은 사람들에 대한 추억으로 가득하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병에 걸려 죽고, 갑작스레 죽고, 때론 태어나자마자 죽는다. 자기 다섯 아이의 죽음을 그녀는 한 문장으로 정리한다.

 

 

'아름다운 셰넌도어 밸리에 나는 조그만 무덤 다섯 개를 남겨두고 왔습니다.'

 

 

그러나 후반부에 나오는 남편 토마스의 죽음에서는 모지스 할머니의 깊은 슬픔을 느낄 수 있다. 1927년 1월 15일. "갑자기 어두워졌어요"라는 마지막 말을 남긴 채 세상을 떠난 토마스. 읽는 나도 가슴이 아팠다. 이 부부는 책에서 서로 존댓말을 쓰는데 이 번역이 참 좋다.

 

토마스가 죽고 나서 모지스 할머니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젊어서 하던 버터 사업이나 감자 칩 사업을 보면 그녀가 부지런한 사람이란 걸 알 수 있다. 그림을 그릴 때도 모지스 할머니는 성실히 자기가 그리고 싶은 걸 그리나. 그녀의 삶이 녹아난 그림은 벽난로의 온기처럼 따듯하고 어린 시절 향수를 불러들인다. 나는 어릴 적 시골에서 과일 따고 썰매 타며 자랐기 때문에 보고 있으면 괜히 그 시절이 떠올라 행복해진다.

 

책에서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아버지가 그녀에 대해 꾼 꿈 이야기다. 신기하고 인상깊다.

 

 

'오래전 아침 식탁에서 아버지가 들려준 꿈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애나 메리야. 내가 어젯밤에 네 꿈을 꾸었단다." 아버지가 말했습니다. "좋은 꿈이었어요, 나쁜 꿈이었어요?" 내가 물었지요. "그야 어떤 미래가 펼쳐지냐에 따라 달라지겠지. 꿈은 우리의 앞날에 그림자를 드리운단다." 아버지의 꿈에, 내가 널찍한 홀에 있고 수많은 사람들이 박수를 치고 환호성을 보내더랍니다. 아버지는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대요. "그런데 돌아보니 애나 메리 네가 남자들의 어깨를 밟으며 내 쪽으로 걸어오는 게 아니겠니? 내게 손을 흔들면서 남자들 어깨들 번갈아 밟으면서 다가왔어."

 

 

'인생에 너무 늦은 때란 없습니다'란 결국 우리에게 기다릴 시간 같은 건 필요하지 않다는 뜻 아닐까? 뭔가를 하고 싶다면 망설이지 말라.

 

 

'무언가를 진정으로 꿈꾸는 사람에겐 바로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젊을 때이거든요. 시작하기에 딱 좋은 때 말이에요.'

 

 

애초에 뭔가를 하기엔 너무 늦었다는 게 무슨 뜻일까? 전문가가 되기에? 명성을 얻기에? 돈을 벌기에? 정말 하고 싶은 일이라면 그런 부수적 대가에 흔들리지 않는다. 최적의 때란 없다. 하거나 하지 않거나. 그래도 모지스 할머니의 삶에서 배운 건 무얼 하건 인생은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것.

 

거기다 내가 오래전 책에서 읽고 가슴에 새겼던 문장도 떠오른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열광이 없어야 한다.' 간만에 지혜롭고 따듯한 책을 읽어 행복했다. 어릴 적 집에 있던 그림들을 그린 사람이 누군지 이제야 알았다. 그 사람이 어떤 삶을 살다 갔는지도.

 

 


 

 

인생에서 너무 늦은 때란 없습니다

-모지스 할머니 이야기-

 

지은이

애나 메리 로버트슨 모지스

 

옮긴 이

류승경

 

출판사

수오서재

 

분야

에세이

 

규격

165*210*16.7/ 무선

 

쪽수

288쪽

 

발행일

2017년 12월 16일

 

정가

13,800원

 

ISBN

979-11-87498-18-6 (03840)

 

 

[김나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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