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우리는 왜 그들을 후원하나요? [문화 전반]

이제 다른 목표를 세워야 한다
글 입력 2019.11.06 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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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친구가 후원 경험이 있냐고 물었다. 나는 그렇다고 대답했고, 친구는 간단한 인터뷰에 응해줄 것을 부탁했다. 나는 후원에 대해 이야기를 하겠구나 짐작했다. 친구는 나에게 인터뷰 내용에 대해 말해주지 않았고, 나도 물어보지 않았다. 인터뷰 당일 친구를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카메라 앞에 앉았다. 녹화가 시작되고, 친구가 두 가지 영상을 보여주었다.

 

가죽만 남은 몸을 축 늘어뜨린 채 카메라를 응시하는 아이들, 당신의 후원이 아이의 생명을 살릴 수 있다는 내레이션. 첫 번째 것은 어릴 때부터 자주 접한 말 그대로 '전형적인' 후원 영상이었다. 바로 두 번째 영상이 재생되었다. 마을의 사람들이 모여 우물의 펌프를 돌린다. 곧 맑은 물이 샘솟고 사람들은 환호한다. 아이들은 물로 몸을 씻거나 마시며 기뻐한다. 인터뷰의 주제는 <빈곤 포르노>였다.

 

 

빈곤포르노.jpg

 

 

빈곤 포르노

 

빈곤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상황을 자극적으로 묘사한 소설, 영화, 사진, 그림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 또는 그것으로 동정심을 일으켜 모금을 유도하는 일

 

  

인터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까 본 영상이 머릿속에 계속 떠올랐다. 영상을 찾다가 두 영상 모두 같은 연도에 제작됐다는 사실을 알았다. 첫 번째 영상이 더 오래되었을 것이라 생각했던 나는 약간 놀랐다. 기존의 빈곤 포르노 형식의 후원 유도를 반성하고 더 나은 방식으로 제작된 게 두 번째 영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자료를 찾아보니 최대한 자극적으로 대상을 묘사해 동정심을 일으킨 영상이 모금하는데 더 효과적이라는 기사가 있었다. 몇몇 기사가 지칭하듯 ‘이래도 안 낼래’식의 빈곤 포르노가 다분히 의도적으로 제작된 것이다.


두 가지 영상 중에 더 나은 것을 골라달라는 친구에 질문에 나는 두 번째 영상을 골랐다. 수용자에게 긍정적인 감상을 남겨야 지속적인 후원이 가능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만약 한순간의 동정이나 죄책감으로 인해 후원을 시작한다면 오래 지속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더구나 지속으로 빈곤 포르노에 노출되어 후원은커녕 영상을 시청하기조차 꺼리는 사람이 많다.

 

이렇게 대상을 무기력하고 굶주린 모습의 극단으로 묘사하는 것은 아프리카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만든다. 누군가에 의해 구원받아야 하는 존재, 스스로 자립할 수 없는 수동적인 객체로 학습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그들에 대한 편견과 차별의식을 갖게 된다.

 

 

울면.jpg

그러니까 당신이 지금 하는 말은...

카메라 앞에서 울기만 하면

우리 마을에 학교를 지어준다는 거죠?

 

 

아프리카에 대한 편견을 깨기 위해 SNS에서 진행한 캠페인이 있다. ‘The Africa The Media Never Shows You’(미디어가 절대 보여주지 않는 아프리카)라는 해시태그를 달고 올라온 사진에서는 여태껏 미디어에서 보여준 것과 전혀 다른 모습의 아프리카를 만날 수 있다.

 

 

세네갈.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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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캠페인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가 봐온 빈곤 포르노 속 아프리카는 극단적인 것이 많다. 인권을 무시한 채 단발적 후원을 위해 자극적으로 연출된 것들 말이다.

 

이제 다른 목표를 세워야 한다. 후원자의 후원금이 단순한 원조로 끝나지 않고, 그들의 자립을 돕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그들의 눈물이 아닌 미래를 위해 쓰인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도록.

 

 

2017 노르웨이 SAIH 선정,

'2017 최고의 모금 영상'

 

 

For some children, Fantasy is the only way to escape reality

 

 

[김혜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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