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오르셰를 회고하며 [시각예술]

찬란했던 어느 7월의 기억
글 입력 2019.10.27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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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어떤 미술관보다도 오르셰 미술관은 나에게 굉장히 의미가 큰 미술관이다. 가장 좋아하는 화가인 앙리 드 뚤루즈 로트렉의 그림을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는 미술관이자 무려 3번이나 방문한 미술관이기 때문이다. 나와 오르셰의 첫 번째 인연은 6년 전, 국립 중앙 박물관에서 시작되었다. 오르셰전을 보기 전까지 나는 미술에 전혀 관심이 없었지만, 대가들의 그림을 실제로 본 순간 나는 다짐했다. 대학생이 되자마자 기필코 파리의 오르셰를 방문하겠노라고. 20살이 된 나는 고등학교 때부터 모아 온 돈을 털어 가장 먼저 파리의 오르셰로 향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실제로 오르셰 미술관을 방문해서 내 마음을 사로잡은 건 한국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화가, 로트렉의 그림이었다.  강렬하고 거친 터칭, 차가우면서도 부드러운 색감, 인생을 순간에 담아낸 듯한 인물들의 표정까지. 나는 난생처음 들어보는 작가의 그림에 완전히 매료되고 말았다. 바쁘게 다음 일정을 소화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전시관 하나를 통째로 채우고 있는 로트렉의 그림 곁을 쉽사리 떠나지 못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의 그림은 오랜 여행으로 지쳐있던 나에게 완벽한 피로회복제가 되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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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트렉, <침대>


 

1864년,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로트렉은 기형적인 신체와 귀족이라는 정체성의 인지 부조화로 평생을 술과 창녀로 점철된 방탕한 삶을 살았다. 그는 자신의 이런 기구한 운명을 예술로 승화했는데, 이런 배경 탓에 그는 주로 물랑 루주의 무희, 세탁부, 어릿광대와 같은 서민들의 삶을 그렸다. 그의 그림은 추하지만, 진실하다. 일그러진 표정의 창녀와 반나체로 쉬고 있는 무희의 모습은 포장되지 않은 삶의 진실과도 같다. 거칠게 흩어진 선으로 표현된 삶의 회한과 생존을 향한 인간의 질긴 욕망 또한 우리가 안고 가야 하는 삶의 일부분이다. 그의 그림을 보면서 문득 로트렉처럼 술과 여자로 방탕한 삶을 보낸 불운한 천재, 헤밍웨이가 떠올랐다. 세상의 부조리와 자신의 운명을 예술로 승화할 수밖에 없었던 격동기의 두 남자는, 벨 에포크 시대가 낳은 최고의 축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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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의 <만종(좌)>과 <이삭 줍기(우)>

 

 

로트렉의 방을 빠져나오니, 밀레의 <이삭 줍기>가 나를 반겼다. 가난하고 힘들게 살아가는 농민들의 일상에 따듯한 오렌지 빛을 비춰주는 밀레의 마음이 느껴지는 그림이었다. <이삭 줍기>는 앞의 세 여인만큼이나 뒤에 쌓여있는 보리 짚단들까지 세밀하게 표현된 작품으로, 유화의 정교함과 밀레의 뛰어난 실력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하늘을 향해 수직으로 그려진 농장 주인과 허리를 숙여 이삭을 줍는 세 여인의 대비 또한 인상적이다. 비록 영화나 소설처럼 움직이거나 말을 할 수는 없지만, 밀레는 구도의 대비를 통해 당시 상황을 필름보다 생생히 전달하기 때문이다. 오르셰에는 <이삭 줍기>를 완성하기까지의 스케치 습작들도 전시되어 있었는데, 이러한 구도를 완성하기 위해 밀레가 고심한 흔적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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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의 <정오의 휴식>


 

로트렉만큼이나 좋아하는 화가를 고른다면 주저 없이 빈센트 반 고흐를 고르고 싶다.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화가다보니 어디 가서 ‘가장 좋아하는 화가는 고흐예요.’라는 말은 거의 하지 않지만, 고흐의 초상화를 처음 봤을 때의 충격은 아직도 생생하다. 두터운 붓 터치를 통한 입체감과 원색을 이용한 강렬한 색감은 그가 단순히 유명한 화가여서가 아니라 그림 그 자체로 눈을 뗄 수 없게 했다. 오르셰에서는 고흐의 가장 유명한 그림 중 하나인 <정오의 휴식>을 볼 수 있었다. 고흐가 존경했던 화가로는 렘브란트와 프란스 할스 등 여러 명이 있지만 실제로 모작도 하고 편지에도 언급한 화가는 바로 앞서 언급한 장 프랑수아 밀레이다.


<정오의 휴식> 또한 밀레의 <정오의 휴식>을 모방해 그린 그림인데, 좌우가 반전되어 있고 밀레의 원작에는 등장하지 않는 말을 먹이는 사람도 그려져 있는 데다 전체적인 색감 또한 많이 달라 고흐가 원작을 보고 그린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확실히 농민들의 고단함을 표현하고자 했던 밀레의 <정오의 휴식>에 비해 고흐의 그림은 훨씬 따뜻하고 밝다. 그 때문인지 밀레의 <정오의 휴식>은 지쳐 쓰러진 부부의 모습으로 보이는데 반해 고흐의 <정오의 휴식>은 따스한 햇살 아래 높게 쌓인 건초 더미 위에서 정말 휴식을 취하는 부부의 모습으로 보인다. 현재 밀레의 <정오의 휴식>은 보스턴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는데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밀레의 <정오의 휴식>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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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가, <쉬고 있는 두 명의 발레리나>


 

초기 인상주의 화가들의 그림은 별로 선호하지 않는 편이지만, 에드가 드가의 그림은 좋아한다. 드가 그림 특유의 파스텔톤 색감과 무용수들의 역동적인 자세 때문이다. 에드가 드가가 여성 혐오자라 주장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의 그림에 등장하는 신사들과 무용수들의 관계를 고려해봤을 때 나는 그가 여성 자체를 혐오했다기보다는 성적으로 타락했던 18세기 프랑스 사회 자체를 풍자했다는 의견에 무게를 두고 싶다. 드가의 스케치는 동시대의 다른 어떤 그림들보다 동적이고 화려한 느낌이 강했다.


19세기 대표적인 인상파 화가인 르누아르의 <피아노 치는 소녀들>도 있었다. <피아노 치는 소녀들>은 연작으로 오랑주리 미술관에서 좀 더 작은 크기의 <피아노 치는 소녀들>을 본 적이 있다. 초기에 르누아르는 시슬레, 모네 등과 어울리며 인상주의 화풍을 선보였지만 후기에는 르누아르만의 부드러운 붓 터치와 풍부한 색채 표현으로 독자적인 길을 걸었다. 이 작품 또한 인상주의 화풍에서 벗어나 그려진 그림으로 윤곽선 없이 실루엣만으로 사물을 표현한 인상주의와는 달리 피사체의 윤곽선이 비교적 또렷하게 드러나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행복을 그린 화가’라는 별명답게 르누아르의 그림은 보는 이로 하여금 미소 짓게 하는 힘이 있다. 오렌지색과 노란색을 사용해 전체적으로 밝은 색감에 아름다운 두 소녀가 악보에 집중하고 있는 모습에 절로 마음이 따뜻해졌다. 그가 왜 당시 유행하던 신화 속 인물이 아닌 자신이 행복했던 경험을 그림 속에 담아냈는지 알 것만 같았다. 그림을 그린 사람이 정말로 행복해서 그 순간을 그림의 소재로 삼았다는 것이 진정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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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슬레, <루브시엔느 눈길>

 

 

이번 전시회에는 르누아르와 같이 살았던 마네와 시슬레의 그림도 다수 전시되어 있었는데 같이 갔던 친구는 시슬레의 그림이 가장 마음에 든다고 말하기도 했다. 알프레드 시슬레의 경우 영국인이지만 프랑스 파리에서 활동한 미술가로 마네, 르누아르와 함께 다른 사람 집에 얹혀살며 인상주의 화풍에 대해 논하곤 했고 모델을 구할 돈이 없어 주로 자연풍경을 그린 화가이다. 그의 그림들은 모네와 르누아르에 비해 훨씬 더 부드럽고 잔잔하게 그려져 있는데 이는 내성적이었던 그의 성격을 화폭에 반영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루앙 대성당이라는 한 가지 소재를 계절에 따라,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빛의 변화를 포착하기 위해 수십 번도 넘게 그렸던 모네처럼, 시슬레도 하나의 풍경을 계절과 시간의 변화에 따라 여러 번 그리곤 했는데 이 때문인지 인상주의 화풍을 연구하는 데 있어 누구보다 열성적이었던 그는 모네와 너무 비슷하다는 이유로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시슬레의 작품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루브시엔느 눈길>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눈 내린 풍경을 소재로 삼기도 했고 그의 그림에 담겨있는 미묘한 눈 그림자와 반사광, 하늘의 풍경들은 쓸쓸한 애수를 불러일으켰다. 이 외에도 시슬레의 그림은 모두 평온하고 고요한 느낌을 주었고 공기와 구름의 변화가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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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젠 부댕, <카마레 항구>


 

내가 한 번쯤은 들어보거나 그 그림들을 본 화가들도 있었지만 이번 전시회를 통해 새롭게 알게 된 화가도 있다. 바로 외젠 부댕이다. 외젠 부댕의 그림은 크기가 비교적 작고 하늘과 구름의 표현이 아름답다. 나중에 살펴보니 부댕은 모네에 앞서 인상파의 선구자로 불리는 화가로 서른셋, 늦은 나이에 화가로서의 길을 걸었지만 74세가 되어 죽을 때까지 무려 4500점이 넘는 그림을 남기며 명성을 떨쳤다. 뿐만 아니라 밀레가 권유해서 화가가 되었고 화가가 된 이후에도 모네, 쿠르베 등 유명 인상주의 화가들과 교류하며 초기 인상주의를 이끌기도 했다.


오르셰에서는 <트루빌 해변에서 수영하는 사람들>, <카마레 항구> 등 그의 전성기 작품을 주로 볼 수 있었는데, 이 그림들을 보니 그가 왜 하늘을 그리는 데는 왕이라고 불렸는지 알 것 같았다. 손가락 크기의 사람들과 그 위의 떠다니는 흰 구름들의 표현은 뒤를 돌아서도 다시 한번 쳐다보게 만들었다. 그의 풍경과 자연에 대한 사랑이 모네가 지베르니 연작을 그리는 계기가 되고, 이것이 19세기 인상주의의 부흥을 낳았다는 것을 생각하면 역사의 나비효과의 신비로움에 새삼 놀라게 된다.


눈부시게 아름다웠던 어느 7월, 오르셰를 회고하며.


 

[김나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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