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하이드어웨이 VOL.2 [도서]

도망치고 싶은 당신을 위해,
글 입력 2019.10.23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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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비밀 엽서 프로젝트'라고 들어봤는가? 2004년 프랭크 워렌이 '인생 최고의 비밀'을 적어 익명으로 보내달라는 우편엽서를 공공장소에 뿌려놓는 것에서부터 출발한 공동예술 프로젝트이다.

 

몇 년 전에 서점에서 이 익명의 엽서들을 모아 출판한 책을 구입했다. 생각날 때마다 들여다보며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얻기도 하고 공감을 하기도 했는데 그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한 엽서가 있다. 익명의 누군가가 자신을 'Homeless'라고 칭한 것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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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IA&A International Arts and Artists - Postsecret

 


'I am homeless and no one (not even my family) knows about it.'나는 노숙자다. 아무도(가족들조차도) 그 사실을 모른다.

 

왜 자신을 노숙자라고 칭했는지, 왜 그 사실을 가족들조차도 모르는지, 실제로 노숙자 신세가 되어버린 건지 아니면 그렇지 않은데도 자기 자신이 노숙자라고 생각하는 건지, 정말 노숙자가 된 거라면 어떤 사유로 노숙자가 되었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지만 이 엽서의 글귀는 계속해서 내 머릿속에 남아있었다. 어쩌면 현실도피성으로 모든 것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어서 일까? 그렇다면 과연 무엇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어서일까. 어쩌면 소소한 반항인걸 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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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어웨이 매거진을 읽으며 나 또한 현실로부터 도망친 경험이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대학시절 언젠가, 나는 어떤 연유에선지 굉장히 지치고 우울했다. 그 이전에도 우울하긴 했었는데 그때는 나 자신을 좀먹는 극심한 자괴감과 자기 연민이 나를 괴롭게 만들었다. 주말이면 혼자 방 안에 틀어박혀 하루 종일 울다가 시간을 다 보냈고 과제도 어쨌든 하긴 했지만 퀄리티는 그전과 달리 그다지 좋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그 반작용으로 나는 영화관을 뻔질나게 드나들기 시작했다. 아침 8시에 조조영화를 보고, 강의를 모두 듣고 난 후 곧바로 저녁에 하는 영화를 보러 가고, 각기 다른 영화관에서 같은 영화를 보았고 어떨 때는 새벽 6시에 일어나 30분간 버스를 타고 조조영화를 혼자 본 뒤에 비로소 오후 강의를 들으러 또다시 1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갔다. 똑같은 영화를 몇 번이고 계속 보기도 했다.


자리에 앉아 광고를 다 보고 난 후, 본 영화가 시작되기 직전 사위가 서서히 어두워지고 시나브로 영화 속 소리가 자연스레 들릴 때쯤이 가장 흥분되는 순간이었다. 평소 영화 보는 것을 매우 좋아하긴 했지만, 이렇게까지 열광적으로 영화에 미쳐본 적은 처음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영화관으로 현실도피를 한 셈이다. 영화를 보는 순간만큼은 괴로운 현실에 대해서 잊을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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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무엇으로부터든 도망칠 수 있다. 한 치 알 길 없는 복잡한 인간관계로부터, 당신을 옥죄어오는 직장으로부터, 당신의 사랑하는 사람, 혹은 가족으로부터. 그리고 하이드 어웨이 2호는 그런 도망의 단상을 그린다.

 

버킷리스트에 기록했던 꿈에 그린 곳으로의 멋진 여행, 지루한 일상으로부터의 도피, 동거묘(猫) 관찰에서 발견한 인간관계에 대한 깨달음, 도망칠 때마다 반복적으로 느꼈던 감정을 담아낸 예술적인 사진 작품들, 결핍에서 자유롭고 싶지만 도리어 결핍에 사로잡힌 모순을 그리는 화가 등 굉장히 흥미롭고 다채로운 콘텐츠들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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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어웨이 매거진을 처음 받아들어 빠르게 훑어보았을 때에는 주로 여행 관련 매거진인가 싶을 정도로 매력적인 세계 속 도시들의 사진들이 가득했다. 여행 가고 싶다는 욕구가 절로 들 정도로 멋진 사진들이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픈 욕망을 끊임없이 자극한다. 서정적인 감성이 깃든 아름다운 사진들이 당신의 눈을 즐겁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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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가장 인상 깊게 읽었던 콘텐츠는 바로 결핍의 모순에 관해 작품세계를 형성한 이도담 화가의 인터뷰이다. 그의 인터뷰를 읽으며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같은 그림을 그리는 사람으로서 쉽게 공감할 수 있었다.나도 그와 같은 고민을 했고, 같은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인터뷰를 직접 읽으면 알겠지만 아마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다 그렇게 생각해봤을 것 같다. 그의 작품세계와 화풍은 하이드 어웨이만이 가진 특유의 감성과 잘 맞닿아있어 더 의미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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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모든 도망자들의 손에 이 하이드어웨이 매거진을 들려주고 싶다. 당신만이 도망쳤던 건 아니라고, 나도 그렇고 당신도 그렇고 실은 우리 모두가 과거에 도망쳤었고, 또 앞으로도 도망치고 싶을 때가 종종 있을 거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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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어웨이 매거진

- Vol.2 The Runaway -



펴낸곳 : 하이드어웨이 클럽


분야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규격

가로 160mm X 세로 220mm


쪽 수 : 144쪽


발행일

2019년 09월 26일


정가 : 14,000원


ISBN

979-11-967057-0-1 

 

 


 

 

<기획 노트>

 

 

하이드어웨이 매거진은 숨을 곳이 필요한 이들을 위한 라이프스타일 매거진입니다. 한 권의 잡지 안에 하나의 삶의 태도를 담으며, 친숙하지만 그래서 전형적인 이미지에 갇혀버린 일상적 가치를 다양한 성격의 콘텐츠로 다루고자 합니다. 더 많이, 더 풍부하게 이야기되어야 할 모든 것들, 말하자면 놓치기 쉬운 일상의 이면들을 모아 hideaway(은신처)를 마련합니다.

 

두 번째 이슈 [The Runaway]는 '모든 도망자들을 위한 은신처'라는 슬로건 아래, 도망이라는 행위와 사건을 둘러싼 다층적인 결들을 다각도로 들여다봅니다.

 

도망은 결코 단순하지 않습니다. 도망의 동기와 양상, 결과는 사람과 상황에 따라 모두 다르니까요. 하이드어웨이 매거진 2호에는 도망이라는 하나의 사건을 둘러싼 기존의 고루한 이미지들을 걷어내고자 하는 시도가 담겨 있습니다. 도망의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 더 나아가 도망 앞에서 느끼는 익숙하지만 낯선 감정들을 여러 형식과 내용의 콘텐츠로 담아봤습니다.

 

'도망치고 달아나는 태도'는 인간관계, 공간, 예술, 여행, 패션 등 다양한 삶의 영역과 맞닿아 있습니다. 죄악의 낙인인 죄수복, 고양이가 가르쳐준 인간관계에 관한 작은 통찰, 내면의 깊은 불안을 증오하면서도 그것을 그림으로 그려내는 어느 유화 작가의 세계관, 영화 <미씽: 사라진 여자>를 통한 '사라짐'에 대한 단상, 아이슬란드 여행, 마감에 쫓기며 살아가는 잡지 에디터들이 사랑한 여러 도시들까지. 패션, 여행, 화보, 에세이, 인터뷰, 칼럼 등 때로는 촘촘하고 때로는 느슨하게, 도망의 여러 의미를 반추해볼 수 있도록 다채로운 이야기들을 마련했습니다.

 

더 풍성하게 이야기될 필요가 있는 것들의 hideaway(은신처)를 지향하는 하이드어웨이 매거진이야말로, 모든 도망자들에게 일종의 해방구가 되어줄 것이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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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초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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