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이중섭' 그의 마음 위에 부드럽게 출렁거리는 바다 : 서울오페라페스티벌 2019

비바람 궂은 세월을 진실의 힘으로 이겨내려 했던 순수한 예술가
글 입력 2019.10.20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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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섭그림연보.jpg

 


어느새 성큼 다가온 가을에, 파고드는 날카로운 공기들을 옴 몸으로 막아내면서 두 팔로 몸을 칭칭 감고 강동아트센터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화가 이중섭의 삶은 얼마나 많은 찬바람의 연속이었을지 생각해본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정말 많은 사람들에 커다란 건물 속이 후끈후끈, 조잘 조잘거린다. 그를 기억하고, 위로하며, 사랑하는 이들이 이토록 많다는 것을 그가 알게 되면 마음에 내려앉은 돌덩이가 조금은 덜어질까. 얼어버린 마음이 조금은 녹아질까.

  

공연을 관람하기 전, 공간 한쪽에서 진행되고 있는 이중섭 미술관 초청 전시를 관람했다. 이중섭은 40이라는 젊은 나이로 숨을 거두었다. 그 짧은 세월 동안 그는 676점이라는 많은 작품을 남겼다. ‘이중섭의 그림 연보’에서 그가 마음으로 노래한 세상을 만나볼 수 있다. 이중섭 하면 회자되는 대표 작품에는 ‘흰 소’뿐만 아니라 담뱃갑 은박지에 그린 ‘은지화’가 있다. 은지화는 이중섭 작품 중 가장 독특한 회화로 그가 새로 창안한 기법이기도 하다. 그림을 너무나도 사랑했던 그가 종이를 살 돈이 없자, 담뱃갑 은박지에 그림을 그렸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은지화 3점은 뉴욕현대미술관(MoMA)에 소장되었다.

 

이중섭은 판잣집 골방에서

시루의 콩나물처럼
끼어 살면서도 그렸고,

부두에서 짐을 부리다
쉬는 참에도 그렸고,

다방 한구석에
웅크리고 앉아서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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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습다, 난 그저 사람일뿐


 

한 사람의 감정을 따라가며 미소 짓고, 눈물 흘리고, 분노하면서 시간을 걸어본다. 오페라 공연의 제목처럼 이중섭의 삶은 ‘비바람을 이긴 기록’으로 설명될 수 있다. 그에게 몰아치는 비바람은 참 얄궂다. 이중섭은 평안남도 평원에서 태어났다. 태어날 때부터 몸 곳곳에 붙어 있던 그의 예술적 재능은 그를 예술과 그림의 길로 이끌었다.

 

그렇게 학창시절을 보낸 이중섭은 일본 도쿄 제국미술학교 서양학과에 입학한다. 후에 분카가쿠엔 미술과로 옮기면서 훗날 아내가 되는 야마모토 마사코를 만나게 된다. 이중섭이 지어줬다는 그의 이름은 ‘이남덕’. 남덕과 중섭은 한국으로 귀국하여 결혼식을 올리게 된다. 앞으로 잔잔한 파도가 흐르고 따스한 햇살만 내리쬘 것 같던 그의 바다에 비바람이 몰아치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일까.


첫째 태현과 둘째 태성이 태어나고, 1950년 한국 전쟁이 발발하자 이중섭은 부인과 두 아들을 데리고 제주도로 피난을 오게 된다. 1막은 이중섭과 이남덕 그리고 두 아들이 제주도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중섭은 소소하지만 마을 주민들의 부탁에 따라 작은 그림을 그려주고 돈을 벌었고, 가족들은 그 돈으로 생계를 유지했다.

 

하지만 태현과 태성의 웃음처럼 맑디 맑은 행복감도 잠시뿐. 남덕은 일본에 계신 아버지가 위독하시다는 소식을 듣고 두 아들과 함께 일본으로 떠나게 된다. 한국에 홀로 남은 이중섭은 가족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으로 편지를 수없이 썼다. 그리움에 몸과 마음이 지쳐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았다가도, 가족들에 대한 그리움으로 그림을 계속해서 그려나갔다.

  

후에 그를 지지해주는 친구들의 말에 힘을 얻어, 개인 전시를 열기로 결심한다. 전시 준비는 가족들과 재회할 수 있을 것이란 그의 희망에 불을 지펴준다. 하지만 모두의 바람과는 다르게 수금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연이어 개최한 전시에서도 성과가 좋지 않아 가족과의 재회는 물거품이 된다.

 

그때부터 이중섭은 심한 좌절감과 함께 허상을 보고, 거식증과 영양부족도 심해진다. 결국 40세라는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하게 된다. 오페라 <이중섭>에서 그는, 공연 소개 글처럼 기인이나 전설의 화백이 아닌 비바람 궂은 세월을 진실의 힘으로 이겨내려 했던 순수한 예술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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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나는 오페라


 

무대의 음악, 인물들의 의상부터 작은 소품과 어마어마한 스케일의 무대 장치들은 각자의 목소리를 내기보다는, 서로 어우러져 이중섭의 삶으로 나를 더욱 끌어들였다. 처음 만나는 오페라였기에 기대가 컸다.

 

그 기대에 부응하듯 시각적 즐거움과 청각적 전율은 매 순간마다 나를 간지럽혔다. 오페라야말로 시청각을 모두 만족시키고, 공간이 가져다주는 공기의 아우라마저 느낄 수 있는 공연이 아닐까 싶다. 시각적인 즐거움을 만족시켰던 장면으로 1막 첫 번째 장면과, 이중섭의 전시 개최일,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중섭이 삶을 마감하는 순간을 꼽고 싶다.


이중섭과 그의 가족이 제주도에 살고 있을 때, 평화로우면서도 경쾌한 분위기 연출은 아마 그곳에 있던 많은 관객들의 마음을 들뜨게 했을 것이다. 커다란 무대 위를 가득 채우는 많은 배우들이 함께 등장하여 여러 목소리로 노래를 부른다. 성인들의 목소리뿐만 아니라 태현과 태성의 청아한 목소리까지 더해져, 마치 삶이 기쁨과 즐거움으로 가득 채워진 곳인 것처럼 느끼게 한다. 다양한 배우들이 등장하여 각자의 대화들을 소곤거리고, 춤을 추는 이미지를 눈에 담는 것만으로도 마음에 뭉글 뭉글하고 따뜻해지는 것이 있었다.

  

그렇게 잔잔한 바다로 시작했던 이중섭의 삶은 많은 비바람을 겪고, 다시 잔잔한 빛 속으로 들어간다. 본인이 준비한 전시가 성과를 내지 못한 뒤, 병원에서 죄책감과 우울감에 고통스러워하던 이중섭 뒤로 문이 열린다. 문에서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밝은 흰색의 빛이 새어 나온다. 천천히 그 빛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그의 모습에 내 눈에도 같은 빛의 작은 물방울들이 떨어진다. 그곳에서는 부디 편안한 잠을 청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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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무엇보다 오페라 공연에서 나를 전율하게 했던 것은 여러 청각적 요소들이었다. 남덕이 입을 열고 목소리를 내었을 때 처음 듣는 높은 고음에 ‘아 이런 게 오페라구나’ 감동했던 것도 잠시, 배우들마다 목소리 높 낮이가 확연하게 다른 것도 너무나 흥미로웠다. 하늘 끝까지 닿을 듯한 고음으로 노래하는 목소리, 땅 끝까지 파고 들어갈 것 같은 목소리까지. 주인공들의 다양한 음의 높낮이만큼 내 심장도 위로 솟았다가, 있는 힘껏 내려앉기를 반복했다.

  

목소리만큼 내 청각을 자극했던 것은 공연장에 울려 퍼지는 오케스트라 연주였다. 부끄럽지만 어디선가 들려오는 감미로운 화음이 녹음된 음악이라고 생각했다. 공연장 어디에서도 악기의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내 자리는 앞에서 두 번째 줄이었고 배우들의 표정과 호흡을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었던 반면, 공간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한눈에 보기는 힘든 위치였다. 공연이 끝난 후, 퇴장하는 길목에서 사람들이 무대 앞에 있는 울타리 아래쪽을 바라보는 것이 보였다. 호기심에 들여다본 곳에는 다양한 악기들과 지휘자님이 계셨다.

  

대부분의 매체가 그렇겠지만, 오페라 공연에서는 오페라이기에 느낄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음을 타고 전해지는 그들의 대화는 어딘가 더 뭉클하고 마음을 자극하는 것들이 있다. 내 귀를 파고드는 여러 화음들은 나를 웃게 하고, 눈물짓게 한다. 그 흐름에 몸을 맡겨 그대로 흘러가는 것은 잔잔하고 때로는 거센 파도에 그대로 몸을 던지는 것과 같다. 화가 이중섭이 아닌 사람 이중섭의 바다에 흐르며 이제는 그의 마음 위에 부드럽게 출렁거리는 파도가 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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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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