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익선동 뉴트로, 핫플레이스의 이면 [문화 공간]

과열되는 인기와 사라져가는 정체성
글 입력 2019.10.14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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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익선동 뉴트로


 


 

뉴트로가 수식하는 유행은 음악, 관광, 외식업, 게임 등 다양한 문화 영역에서 일어나고 있다. 가히 뉴트로의 르네상스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뉴트로라는 단어의 사용은 분야별 차이가 존재한다. 보통 대중문화의 뉴트로는 20세기 말 유행하던 문화적 코드를 다시 발견하는 의미로 쓰인다. 하지만 외식업과 관광업에서는 레트로적인 정체성보다 옛날 것, 낡은 것에 좀 더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최근 서울 곳곳에서 뉴트로 트렌드를 설명하는 지역이 생겨났다. 을지로, 익선동, 동묘와 같은 지역은 뉴트로의 유행을 대표한다. 이곳들은 낙후된 건물과 시설 때문에 사람들의 발길이 드문 곳이었지만, 최근 새로운 유행과 상권발달로 젊은 사람들의 방문이 늘고 있다.

 

그중 익선동의 낡고 오래된 한옥골목은 사람들이 몰리는 '핫 플레이스'가 되었다. 익선동의 한옥마을은 개화기 시대의 것이었지만, 낡고 오래된 한옥은 새롭게 탄생한 모습으로 다시 생명력을 얻었다. 각종 식당과 카페들이 한옥에 들어섰고, 사람들은 좁은 골목의 맛집 앞에서 줄을 늘어서고 있었다.

 

익선동은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한옥마을이다. 일제강점기 당시 형성된 한옥마을로, 소규모 한옥이 밀집된 지역이다. 바로 위에 위치한 북촌 한옥마을과는 다른 가옥들이 모여있다. 더 작고 밀집된 한옥들은 오밀조밀하고 꽉 찬 느낌을 준다.

오래된 한옥마을이 사람들의 인기를 끌게 된 이유는 낡은 한옥과 새로운 감각이 만난 '뉴트로'적인 성격 때문이다. 하지만, 북촌이나 전주와 달리 익선동의 부상에는 다른 한옥마을들과 다른 특별한 점이 있었다. 익선동은 다른 한옥마을과는 다른 '무언가'가 존재했다. 익선동이 다른 한옥마을과 다른 이유는 익선동이 가진 과거의 정체성에 있다.


 


2.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한옥마을'


 

익선동은 서울특별시 종로구에 속해있다. 서울 지명사전에 따르면, 관할의 동리인 익동에서 ‘익’ 자를 따고, 정선방에서 ‘선’ 자를 따서 합성한 데서 마을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남쪽으로는 탑골공원이 있고, 인사동과 종묘 사이에 밀집한 동네다.


익선동 한옥마을은 일제강점기 부동산 개발업자였던 정세권 선생에 의해 탄생했다. 정세권 선생은 1920년 '건양사'라는 부동산 개발 회사를 만들고, 부동산 사업을 통해 작은 한옥들을 지어 사람들에게 분양했다. 그는 건축 사업을 통해 주민들의 형편에 맞는 저렴한 집을 지었고, 주민들의 생활개선에 힘썼다고 한다. 그는 1930년경부터 익선동과 북촌, 서촌 지역에 한옥단지를 만들기 시작해 왕십리, 혜화동, 서대문 등 서울 전 지역에 한옥단지를 만드는 사업을 일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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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한옥 건축 사업을 시작한 이유는 일본 자본의 유입과 조선의 산업화로 인해 경성의 주택이 부족해졌기 때문이었다. 그는 부동산 사업으로 차익을 남기기 위해 집을 지은 것이 아닌, 사람들에게 주거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작은 한옥을 짓기 시작했다. 그는 중산층 이하의 서민들도 개량된 한옥을 통해 새로운 주거환경에서 살아야 한다는 소명을 가졌다. 어쩌면 그에게 건축은 사업적 목적보다 사회적 목적이 더 중요했을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한옥마을'이라는 정체성은 익선동의 형성 과정 곳곳에서 드러난다. 이러한 정세권 선생의 건축 철학은 한옥의 형태를 변화시켰다. 익선동의 한옥은 전통적인 한옥이 아닌 좀 더 효율적이고 거주에 알맞은 형태로 변형되었다. 전통적 한옥이 아닌 일종의 '퓨전한옥'이었다. 전통적인 한옥 양식은 마당이 한가운데 있는 '중정식' 한옥이었는데, 그가 지은 한옥은 마루(거실)를 가운데 두는 '중당식'이었다고 한다. 전통적인 한옥은 넓은 공간을 잡아먹는 구조였기 때문에, 그는 좁은 부지의 서민용 주택에 적합한 구조를 설계했다.


당시 지식인들은 한옥보다 양옥을 선호했다. 또한, 가난한 사람들의 밀집도 높은 주거지역은 동네의 질을 떨어트린다는 반대도 있었다. 하지만 정세권 선생은 많은 비난을 감수하고 한옥마을을 완성했다. 익선동 한옥마을은 경성 건축가의 철학으로 탄생한 공간이었다.




3. 현대의 익선동 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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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과 6.25 이후, 익선동의 모습은 시간이 흘러도 그대로였다. 서울의 한옥밀집지역으로 남겨진 익선동은 시간이 지나 점점 낡고 허물기 시작했다. 폐가 수준의 집들이 늘어났고, 빈집의 수는 전체 가옥의 30~40% 정도로 늘어났다.

 

익선동 한옥이 지어진 지 80년이 지나고 나서야 신도시계획, 도시재생계획이 등장했다. 익선동의 도시재생은 여러 주체에 의해 이루어졌다. 서울시, 지역공동체, 입대 사업자, 컨설팅 업체 등 다양한 주체들이 참여해 각자 익선동의 도시재생을 이끌었다.


2004년, 서울시는 재개발 계획인 '익선 도시환경정비구역 지정안'을 발표했다. 한옥을 철거하고 새로운 거주지를 만드는 계획이었던 이 발표안은 주민들의 반대로 연기되다 2014년 무산되었다. 이후 2015년, 익선동은 한옥 보존지구로 지정되고 건축물 높이 제한, 체인점 입점 제한, 보행 동선 연결 등 도시재생 사업이 이루어졌다. '골목 환경 개선 및 지중화', '익선동 마을공동체 활성화 거점 조성', '익선동 도시형 한옥 수선비용 지원' 등의 사업으로 익선동 개선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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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재생 스타트업인 '익선다다'는 크라우드 펀딩을 통한 도시재생 사업으로 익선동 개발에 참여했다. 익선다다는 2014년부터 카페, 식당 등을 열어 현재 약 9개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프랑스 가정식 전문점 '르블란서', 아날로그 카페 '엉클 비디오 타운', 경양식 레스토랑 '1920 경양식 이태원' 등의 매장을 운영한다. '글로우 서울' 또한 익선동을 중심으로 도시재생에 참여하는 스타트업이다. 드라마 '호텔 델루나'의 촬영지가 된 카페 '세느장'을 비롯해 '익동 정육점', '심플 도쿄', '살라 댕 다이닝'등의 매장을 운영한다.


익선동이 요즘 뉴트로의 성지가 된 이유도 여기 있다. 익선동의 낡은 한옥 자체는 핫플레이스가 될 수 없었다. 하지만 낡은 것을 새롭게 단장한 도시재생의 공간들은 사람들의 발길을 이끌었다. 낡은 한옥을 고쳐 보수하거나 인테리어 하는 방식을 통해 한옥의 정체성과 새로운 감각을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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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선동 카페와 식당들의 특징은 익선동 한옥의 특징을 그대로 가져왔다. 좁고 아늑한 공간과 자연스럽게 낡은 인테리어는 익선동이 아닌 다른 공간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모습이다. 테이블들은 좁고 긴 한옥의 'ㄷ'자 구조를 따라 나열되어 있으며, 가운데 마당에는 사람들의 대기 공간이 마련되었다. 바닥과 마루의 높이 간격은 매장의 자연스러운 인테리어 요소로 활용되었다. 카페 '세느장'은 지은 지 50년 된 여관을 호텔 콘셉트로 유지하며 디저트 카페로 변신했다. 익선동의 기억은 유지되며 새로운 생명력을 얻었다. 현대의 익선동은 과거의 모습과 비슷했지만, 점점 달라졌다.

 

 


4. 익선동의 문제



익선동은 화려한 도시재생으로만 보인다. 뉴트로의 성지라는 말을 듣기도 하며, 각종 매체와 SNS는 익선동의 매력을 전달하고 그것을 본 20대 젊은 층과 관광객들은 익선동을 찾는다. 스타트업들은 도시재생의 성공신화를 써 내려가며 익선동 매장의 포트폴리오를 쌓아간다.


하지만 도시재생의 화려한 이면에는 어두운 부분이 있다. 익선동의 상가 임대료는 가파르게 치솟았다. 언론에 따르면, 특히 2015~2016년 1년 새 15%가량 임대료가 상승했다고 한다.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와 활력이 생기는 만큼,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인해 쫓겨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익선동은 8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상업지역이 아닌 거주지역이었다. 낡은 한옥에는 긴 세월 동안 익선동을 지켜온 노인들이 있었다. 하지만 익선동이 상업지역으로 변해가는 과정에서 그들은 세입자일 뿐이었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은 주변 식당에서 일하며 생계를 이어나가고 있었지만, 그들은 다른 지역으로 나가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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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선동의 몇몇 핫플레이스는 익선동의 기억과 정체성을 유지한다고 말했지만, 사실 보존된 것은 정체성이 아니라 공간뿐이었다. 콩국수를 팔던 익선동의 '부산집'은 프랑스 가정식을 파는 매장으로 변했다. 익선동의 한옥에는 프랑스뿐만 아니라 태국 음식, 이탈리아 음식들이 들어와 많은 사람들의 인기를 끌었다. 또한, 사람들이 익선동에서 흔히 먹는 디저트는 수플레 케이크이었다. 몇몇 유튜버들에 의해 익선동의 수플레 케이크가 소개되고, 디저트의 유행과 겹쳐 익선동 디저트 카페에는 사람들이 끊이질 않았다. 게다가 익선동의 정체성과 아예 관계없는 상업적인 매장들도 들어서기 시작했다. 서울 각지에서 체인점을 늘려나가던 티라미수 가게, 크림빵 가게는 익선동 한옥 옆 콘크리트 건물로 들어왔다.


익선동 한옥마을은 마치 전주 한옥마을과 비슷해 보였다. 전주 한옥마을은 정체성을 유지하는 가게들도 있었지만, 한옥의 공간만 보존한 채 전주의 정체성과 관련 없는 매장들이 들어섰다. 몇 년 전 유행하던 통오징어 튀김, 만두, 츄러스 같은 길거리 음식은 전주 곳곳에 생겨났지만, 유행이 지나고선 어느 지역의 정체성도 갖지 못했다. 중요한 건 공간의 보존만이 아닌, 지역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것이었다. 물질 이상의 가치를 발견해 유지하지 못한 전통은 그저 상업적인 콘셉트에 지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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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도시재생은 낙후된 지역에 자본을 투입해 재개발을 이루는 개념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래서 지역의 상업적 개발을 통해 경제적 발전을 이루는 것에 집중하기도 한다. 과도한 상업화로 인한 부작용을 막기 위한 방법 중 하나는, 지역 커뮤니티를 지키는 것이다.

 

지역의 정체성은 지역 커뮤니티가 가장 잘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지역 주민들이 형성하는 문화적 정체성은 가장 디테일하고 자연스럽다. 관광객들이 지역에 방문해 가장 흥미로워하는 것은, 이색적인 자극이 아닌 이색적인 삶의 모습이다.


지역의 역사를 다시 생각하면, 익선동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한옥마을'이라는 정체성이 뚜렷한 공간이었다. 좁은 골목, 작은 한옥과 낡아버린 폐허까지, 익선동의 정체성은 겉으로 쉽게 드러나지 않는 부분까지 채워졌다. 이러한 익선동의 정체성은 다른 한옥마을의 정체성과는 달랐다. 부자동네였던 북촌과는 달리, 익선동은 지금도 생계를 이어나가는 서민의 동네다.

 

도시재생은 이러한 정체성을 고려해야 한다. 그저 낡은 것의 아름다움이 아닌, 낡은 도시와 사람들의 아름다움까지 고려하는 문화적 재생이어야 한다. 그것이 도시재생이 지역의 생명력이 될 방법이다. 사람들이 익선동에 와서 '익선동'임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은 공간의 삶과 함께하는 체험일 것이다.

 


[김용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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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  
  • Y2eon
    • 말씀하신대로 해당 지역의 정체성을 고려한 도시재생 사업이라면, 긍정적으로 고려할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도시재생을 통해 만들어지는 미를 '인조적인 한국미'라고도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적정선만 지킨다면 도시화가 만성화된 현 시점에서 적당한 타협점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익선동 특유의 '인조적인 전통 느낌'은 좋아하지 않는 편이에요. 광화문이나 종로 부근의 그 인조적인 느낌은 좋아하지만요.

      결정적인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봤는데, 김용준 님이 글에서 표현해주셨듯 상업성이 지나치게 강조됐기 때문이 큰 것 같습니다. 뭐든 지나치면 안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면서도, 결국에는 그 적당한 '상업성'에 만족하는 제 자신을 보면서 스스로가 모순적인 선호를 갖고 있는 건 아닌지,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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