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멈추지 않는 그녀, 마거리트 히긴스 - 전쟁의 목격자

글 입력 2019.10.13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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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9월 15일, 몇 초라도 어긋나지 않아야 하는 긴박한 인천상륙작전의 현장. 한 사진기자는 ‘컬러’를 충분히 찍었다며 수송선으로 다시 돌아가겠다고 알렸다. 이때 그와 함께 돌아가지 않고, 배 가장자리를 넘어 움푹하게 들어간 방파제 안쪽 물속으로 뛰어든 한 기자가 있었다. 기꺼이 위험을 무릅쓰고 포화 속으로 걸어 들어간 그는 한국전쟁에서 종군기자로 활약했던 ‘마거리트 히긴스(Marguerite Higgins)’였다.

 

『전쟁의 목격자』는 마거리트 히긴스의 전기로 주변 인물의 인터뷰와 증언, 당시 취재했던 기사들을 토대로 그녀의 삶을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한 사람의 일생의 행적을 밟아 나가며 실존 인물이 맞는지 재차 확인하게 되었는데, 그도 그럴 것이 믿기 어려울 정도로 드라마틱한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아울러 9월에 개봉한 영화 <장사리 : 잊혀진 영웅들>에서 마거리트 히긴스(이하 ‘매기’) 역을 메간 폭스가 맡은 바 있다.

  

미국 버클리대학과 컬럼비아 대학원에서 수학한 그는 1942년부터 ‘뉴욕 헤럴드 트리뷴(New York Herald Tribune)’의 기자로 20년간 근무했으며 런던, 베를린, 도쿄 특파원을 역임했다. 1945년 노르망디 상륙작전 성공 후 연합군 선발대와 함께 다하우 강제수용소를 취재했으며, 1950년 일본 도쿄 지국장으로 임명된 지 이틀 만에 한국에 들어와 약 6개월 동안 한반도 전역을 종횡무진으로 움직이며 전황을 보도했다. 그는 1951년에 한국전쟁을 취재하고 쓴 『자유를 위한 희생』으로 퓰리처상 국제 보도 부문에서 여성 최초의 수상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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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종군기자로서 성공했던 삶에는 또 다른 이면이 존재했다. ‘미녀 히긴스’에 관한 농담과 가십, ‘마릴린 먼로를 닮은 금발의 여기자’ 등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수식어를 견뎌야 했고, 함께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취재 전선에서 수많은 부조리와 차별을 겪었다.

 

가령 침공 사흘째부터 ‘트리뷴’의 1면을 장식할 만한 취재 기사를 신속하게 썼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전출 명령을 받게 되었다. 이는 이제껏 해 온 뛰어난 보도의 견지에서 볼 때 잘못되었을 뿐 아니라 부당한 일이었다. 그는 도쿄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맥아더 장군에게 진심을 담아 말했다.

 

 

“전 서울에서 걸어 나왔어요. 그리고 다시 걸어 들어가고 싶습니다.”

 


소위 ‘남자’의 일을 하려고 고군분투해 온 모든 여성을 마거리트가 대표하는 것처럼 되어버린 셈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저명한 신문사 중 한 곳의 대표자로서 그 신문의 전쟁 보도 범위에 대한 책임이 있었다. 그리고 이에 대해 개인으로서, 자기 일을 하는 기자로서 판단 받을 권리가 있었다.

 

전선에 닿지 못하면 ‘여성’이라는 성별이 장애물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나 다름없지 않을까. 하지만 전쟁은 남자의 일이라고, 그냥 여자에게는 맞지 않는 일이라고 말하는 언론인과 군대 기득권 앞에서도 그는 굴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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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럭들이 기어를 바꾸며 소음을 내고 전조등을 번쩍이며 지나가는 와중에도 잠을 청했고, 총알이 비처럼 쏟아지는 와중에도 재빨리 타자기를 붙잡고 기사를 완성했다. 시체들을 보면서 도덕적 분노와 역겨움, 육체적인 반응은 뒤로 미룬 채 정확하게 자신의 업무를 꾸역꾸역 수행해야만 했다. 그런 그는 “총에 맞을까 봐 걱정해서는 결코 기사를 따낼 수 없다”고 주장했다.

 

 

“골칫거리가 없었다면 내가 여기 오는 일도 없었겠죠, 대령님.” 그녀가 참을성 있게 설명했다. “골칫거리는 뉴스고, 뉴스를 수집하는 게 내 직업이에요.”

 

 

그렇게 제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 콩고 내전, 베트남전쟁 등 최전선의 현장을 누비며 전쟁의 참상을 알리는 데 헌신했다. 종군기사의 삶 이후에도 국제정치 전문기자로 활동하며 세계의 지도자들과 인사들을 인터뷰했다. 1963년 ‘뉴스데이’로 이직 후 베트남전쟁에 종군하였는데, 이때 라오스에서 취재하다가 걸린 풍토병으로 인해 사망하게 되었다.


저널리즘 스쿨의 입학 허가를 받았던 것, ‘뉴욕 헤럴드 트리뷴’에 취직했던 것, 제2차 세계대전의 마지막 중대한 날들을 취재할 수 있도록 해외에 파견된 것, 지국장으로 승진한 것, 기자 경력의 최저점이라고 본 임무를 부여받은 즉시 시국이 변해 그 임무가 세계에서 가장 극적인 기삿거리로 폭발해 버린 경험까지. 한 사람의 삶이 이토록 극적일 수 있을지, 멈추지 않고 달리게 하는 동력이 무엇인지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 사람은 “1950년대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며, 매기 히긴스는 적어도 30년 정도는 시대를 앞서고 있었다.”라고 말했다. 관찰한 것들이 오래도록 기억되는 동시에 널리 인용될 만한 진실한 울림을 담아내는 기사 본질을 알았던 마거리트 히긴스. 숱한 차별과 편견 속에서도 야망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달렸던 그가 영원히 “그의 병사들과 함께” 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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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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