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우리에게 낯설지 않은 그들의 "인생" [영화]

글 입력 2019.10.14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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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인생"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중국 영화를 이야기할 때 빠트릴 수 없는 인물 중 하나인 장예모 감독은 중국 현대사를 배경으로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인생을 담아낸 영화를 만들었다. 그는 자신의 작품이 중국인들이 공감할 수 있는 중국만의 철학을 담으려고 했다고 말했고 그의 말대로 영화에는 중국 역사, 불합리한 제도 속에서 고통받고 그럼에도 살아가는 다양한 삶에 관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영화 "인생"은 1940년대부터 문화대혁명 이후까지 시간의 흐름에 따라 한 가정이 겪은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단순히 영화라기보다는 다큐멘터리를 감상하는 것 같았던, 다른 나라의 이야기지만 우리에게도 그리 낯설게 느껴지지만은 않은 이야기, “인생”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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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 부유한 지주의 자제인 푸궤이는 도박에 빠져 있다. 견디다 못한 그의 아내 지아전은 임신한 상태에서 딸과 함께 집을 나가버린다. 계속 도박을 하던 푸궤이는 결국 자신의 집문서를 도박 상대에게 넘기게 되고 부잣집 도련님에서 비렁뱅이로 전락한다. 아버지는 충격을 받아 사망하고죄책감에 빠진 푸궤이는 겨우 아내와 아이들과 재회하고 어떻게든 살아보기 위해 그림자극으로 생계를 이어간다.


그러던 중 중국 국민당과 공산당의 내전으로 푸궤이는 전쟁터에 끌려가고 함께 동고동락한 동생 춘셩과 포로로 잡혀 위험에 빠지지만 군사들에게 그림자극을 선보이며 목숨을 이어간다. 집으로 돌아간 푸궤이는 도박으로 자신의 저택을 얻었던 이가 공산당에게 지주로 몰려 숙청당하는 것을 목격한 후, 도박을 하지 않았으면 그가 아니라 자신이 죽었을 것이라고 여기며 소름 끼쳐 한다. 이때부터 그와 가족들은 시대의 흐름에 어긋남 없이 삶을 부지하기 위해 조심히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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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대, 마오쩌둥의 대약진운동이 지속되며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노동에 동원된다. 푸궤이의 가족들도 작업에 매일 동원되던 어느 날, 작업을 마친 후 학교에 가기 싫다며 피곤해하는 아들을 학교에 데려다준 푸궤이에게 아들이 교통사고로 즉사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하나뿐인 아들이 죽고 그 무덤 앞에서 절망하는 푸궤이와 지아전 앞에 춘셩이 나타나고 아들을 죽인 트럭을 몬 운전사가 춘셩이라는 것을 안 푸궤이와 지아전은 분노하며 춘셩의 사죄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시간이 흘러 부부는 딸 펑시아의 결혼을 논하게 된다. 어릴 적 열병을 앓아 말을 못 하게 된 펑시아와 다리를 저는 공산당원 완얼시는 서로에게 호감을 가지고 둘은 결혼하게 된다. 어느 날 밤, 춘셩이 푸궤이를 찾아온다. 쫓기는 신세로 몰락하고 아내마저 스스로 세상을 등져 절망에 가득한 춘셩에게 푸궤이는 위로하며 삶을 포기하지 말라고 말한다. 춘셩을 외면했던 지아전도 그의 상황을 듣고 남편과 함께 춘셩을 배웅하며 너는 우리 집에 목숨 하나를 빚졌으니 살아가라고 외치며 그에 대한 미움을 한 편 놓아주는 모습을 보인다.


펑시아는 아이를 가지고, 출산의 기미를 보여 온 가족이 병원으로 가지만 문화대혁명으로 인해 병원의 의사들이 전부 붙잡혀가고 학생들만 남아 있다. 고민하던 푸궤이는 잡혀간 의사에게 물과 먹을 것을 주며 진찰을 부탁했지만 의사는 급체기를 보이며 혼절하고 위급 상황에서 훈련받지 못한 학생들이 우왕 자왕 하는 사이에 상태가 점점 악화된 펑시아는 결국 오열하는 가족들 앞에서 세상을 떠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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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궤이와 지아전의 아들, 유청이 죽었을 때 즈음의 나이인 펑시아의 아들 만두가 엄마와 삼촌의 무덤을 천진난만하게 거닌다. 아이가 커온 시간만큼 부부의 지난 시간에 대한 후회와 슬픔도 무뎌진 듯하다. 가족은 집으로 돌아왔고 손자는 할아버지에게 병아리를 가져와 어디에 두고 키우면 좋을까 묻는다. 푸궤이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던 그림자극 도구를 담아 두었던, 이제는 빈 상자를 꺼내 병아리를 그곳에 담는다. 병아리가 가득 담긴 상자를 바라보며 만두가 푸궤이에게 묻는다.

 

 

“할아버지, 병아리는 언제 커요?”

“병아리는 금방 크지.”

 

“병아리가 크면 어떻게 돼요?”

“병아리가 크면 닭이 되고,

닭이 크면 거위가 되고,

거위가 크면 양이 되고,

양이 크면 소가 되지.”

 

“소가 크면요?”

“소가 크면...”


푸궤이는 말을 잇지 못하고

지아전이 손자에게 미소 지으며 말한다.


“소가 크면 우리 만두가 어른이 되지.”

 


위화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인생”의 원제는 “活着(huó zhe)”다. 산다, 생활한다는 뜻의 “活(huó)”에 동작의 지속성을 나타내는 조사인 “着(zhe)”로 뜻은 “살아간다”라고 할 수 있겠다. 일제의 침략에 아파하고, 전쟁이 끝난 후에도 외부의 침략이 아닌 같은 민족 내에서 이데올로기의 갈등으로, 정치적 혼란 속에서 희생된 이들의 이야기는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하기에, 영화 속 푸궤이 가족의 이야기는 중국인들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낯설게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푸궤이의 아들 유청이 손자 만두의 나이었을 때, 푸궤이는 아들을 학교에 데려다주며 손자에게 해준 것과 똑같은 대화를 나눈다. 병아리는 커서 닭이 되고, 닭이 커서 이런저런 동물이 되며 마지막에는 소가 된다는 푸궤이에게 유청도 소가 크면 뭐가 되냐고 물었고, 그때 푸궤이는 "소가 크면 공산주의지, 매일 만두와 고기를 먹을 수 있단다."라고 답한다.

 

그러나 삼십여 년 정도의 시간이 흐른 후, 아들과 똑같이 묻는 손자에게 푸궤이는 그때와 같은 대답을 하지 않는다. 그저 만두가 어른이 되면 소를 탈 수 있다고 하는 지아전에게 만두가 어른이 되면 기차도, 비행기도 탈 것이라고, 그리고 삶은 매일매일 더 좋아질 것이라고만 말하며 미소 짓는다.


하나뿐인 손자가 건강히 자라 잘 살기를 바라는 부부는 이후에 몰려올 또 다른 격동의 시간과 변화를 무사히 보냈을까? 따스한 햇살이 들어오는 작은 집에서 식사를 하는 가족의 모습에 영화의 엔딩크레딧이 지나간다. 과거의 아픔을 겨우 추스르고 지금 내 옆에 있는 가족과 작지만 따스한 행복을 누리려 한 이들의 인생이 그저 평탄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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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지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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