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슬픔과 이별, 침묵 part. 1 [음악]

Jeff Buckley, 《Grace》
글 입력 2019.09.29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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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used to live alone before I knew you

And I've seen your flag on the marble arch

And love is not a victory march

It's a cold and it's a broken Hallelujah

당신을 알기 전 나는 혼자 살았어요

대리석 아치에 걸린 당신의 깃발을 본 적이 있어요

사랑은 승리의 행진이 아니에요

그것은 차갑고 부서진 할렐루야죠





하나의 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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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낌을 잘 살린 좋은 음악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에 제프 버클리의 《Grace》라는 앨범은 빠지지 않는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그중에서 제일 첫 번째 요인으로 볼 수 있는 점은 바로 분위기다. 앨범 전체를 관통하는 버클리의 목소리는 처절하고 쓸쓸하다. 때론 애틋하면서 무심해 보이기도 하다. 그가 앞으로 겪을 일들이 스쳐 지나갔을까? 생각이 든다. 물론 창창한 미래를 예상하고 있던 그가 실제로 그랬을 가능성은 없을 것이다.

듣는 우리들이 버클리가 뜻밖의 사고로 죽었다는 사실을 알고 들었기에 위와 같은 느낌들이 인위적으로 들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목소리가 담고 있는 원초적인 힘은 어떤 영향에도 흔들리지 않을 만큼 강렬하다는 점이다. 그가 기타리스트로 음악을 시작했지만 보컬로 유명해진 것도, 원작을 뛰어넘는 분위기를 만든 것도 이러한 힘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앨범에서 여러 장르의 결합을 시도했습니다. 어릴 때 즐겨 들었던 레드 레플린(Led Zeppelin), 퀸(Queeen),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와 같은 고전 록에서의 사운드뿐만 아니라 당시에 유행하고 있던 얼터네이티브(Alternative Rock-그런지) 사운드에 대한 관심이 컸다. 앨범의 중추적인 사운드로써 곡 후반부의 강렬한 인상을 만들어내는데 좋은 영향을 끼친다. 애증의 관계인 아버지 팀 버클리(Tim Buckley)의 포크적인 요소들, 학교와 호텔에서 일하면서 배운 클래식(그는 고등학교 졸업 후 뮤지션스 인스트튜트에서 준학사 과정을 마쳤다, 앨범에서 벤자민 브리튼(Benjamin Britten)의 곡을 차용한 것을 이때 배운 것을 이용했다고 볼 수 있다), 재즈(보컬적인 기법에서), 레게 등의 장르들에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결국 부수적인 장르들도 그의 보컬 스타일과 앨범 수록곡들 곳곳에서 짜임새 있게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실험적이면서도 개성적인 사운드는 '이 사람만 만들 수 있는 노래구나'라는 매력을 지닙니다. '제프 버클리 만의 느낌', 그것을 확실히 보여줍니다. 그래서 더더욱 단 하나의 앨범만 남긴 것에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움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전사 前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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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프 버클리는 메리 기버트(Mary Guibert)와 팀 버클리 사이에서 태어난 외아들이다. 평범해 보이지만 실상은 아버지와는 거의 접점이 없는 상태로 살아간다. 심지어 팀 버클리는 아들이 8살이던 1975년에 약물 과다 복용으로 사망하게 되면서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사람이 된다. 실제로 제프 버클리에게 영향을 준 사람은 의붓아버지인 론 무어로, 그에게 퀸, 레드 레츨린, 핑크 플로이드를 소개해 준 사람이기도 했다. 그런 이유로 개명 전까지 그는 스콧 무어헤드로 불렸다.

다행히도 그가 지내온 가족 구성원들이 음악을 좋아했고, 어머니가 피아니스트이고 첼리스트였다는 점은 앞으로 음악을 하게 되는데 좋은 환경을 만든다. 처음부터 보컬을 했던 것은 아니다. 학생 시절 음악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주로 맡았던 포지션은 기타였다. 고등학교 때는 재즈 밴드에서 연주를 했고 이 시기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와 기타 연주자 알 디 멜라(Al Di Mela)에 관심을 가졌다. 졸업 후 전문적으로 음악을 배우기 위해 뮤지션스 인스티튜트에서 1년 반짜리 준학사 과정을 마친다. 그는 롤링스톤지에서 이 시기를 '낭비 waste of time'했다고 생각한다고 했지만, 음악 이론과 클래식 분야에 눈을 넓힌 것은 무시할 수 없는 영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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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호텔에서 일하면서 다양한 장르를 접하고, 세션과 백 보컬로서 음반을 녹음하기도 했다. 그러다 아버지의 전 메니져 허브 코헨에게 눈이 들어 첫 데모 테이프를 만든다. 이후 첫 데뷔를 하게 되는데 묘하게도 그 데뷔 공연은 아버지 팀 버클리의 추모 공연이었다. 여기서 게리 루카스를 만났고 같이 <Grace>와 <Mojo Pin>을 작곡하게 된다. 잠시 밴드에 속하는 시기가 있지만 곧 떠나고, 시네(Sin-e)를 중심으로 여러 클럽과 카페에서 공연을 시작한다. 이 기간에 굉장히 다양한 장르의 곡들을 연주하는데 사람들 사이에서 그의 연주는 곧 유명해져 정규적인 공연 시간대를 부여받기도 했다.

유명세는 콜롬비아 레코드를 이끌던 클라이브 데이비스(휘트니 휴스턴과 일했던)에게 까지 들려오고 그를 보기 위해 공연장을 찾기도 했다. 그 외에도 수많은 레코드 회사 간부들이 찾았는데 버클리가 선택한 곳은 콜롬비아 레코드였다. 그렇게 1992년 10월 3개의 앨범과 실질적으로 백만 달러짜리 계약을 맺었다. 그리고 1993년 《Live at Sin-e》라는 라이브 EP앨범으로 데뷔 앨범이 발매된다. 그에 대한 관심사는 주변 밴드들에게 퍼졌고, 1994년 6월-8월까지 이어진 밴드 투어 초기에는 사운드 가든(Soundgarden)의 보컬 크리스 코넬, U2의 에지(Edge)가 참석하기도 할 정도였다.

투어가 끝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Grace》라는 정규앨범을 발매하게 된다. 당시 비평가들의 좋은 평가에도 불구하고 판매량이 저조했다. 모든 것은 아쉽게 느껴졌다. 안타깝게도 그의 명성이 알려진 것은 익사사고가 일어난 이후였다. 미국에서 플레티넘(100만 장 이상) 판매를 기록, 영국에서는 60만 장, 호주에서는 45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다.




[노예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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