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누가 마녀인가 - 악녀를 죽여 줘 [도서]

글 입력 2024.01.12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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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내게 소설을 고르는 취향이 있냐고 물어본다면 ‘내 마음 내키는 대로’라고 대답한다. 그리 대단한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라, 슬프게도 가릴 처지가 안돼서이다.

 

막 장르 문학에 빠졌을 시점에는 쏟아져 나오는 소설에 행복해하면서 골라 읽었는데, 시간이 흐르니 너무 많이 읽어 새로운 작품을 보기 위해서 취향을 버려야 하는 웃픈 상황이 오게 된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나에게는 고집할 취향도 가리는 취향도 없었기 때문에 내 앞을 가로막는 것 없이 신나게 소설의 바다를 헤엄쳐 갔었다.

 

오늘 소개할 소설인 <악녀를 죽여 줘>는 그렇게 한창 소설을 탐구할 때 만나게 된 작품이다. 당시 가난한 학생이었던 나는 소설을 최대한 많이 읽기 위해 매주 무료로 한 화씩 풀리는 소설을 참고 기다렸다가 보는 편이었는데, 이 소설은 무료 화수를 읽은 순간 그대로 지갑을 열어 전화를 결제하게 만든 소설이었다.

 

나름 소설도 많이 읽었던 터라 이쪽 장르에 얼추 자신감이 생긴 상태였는데, 이 작품을 읽고 나에게 안겨진 충격은 자만을 흔적도 남기지 않고 없애버렸다. 물론, 그만큼 소설을 읽고 소화하는데 많은 심력이 필요했지만, 이조차도 나에게는 또 다른 즐거움으로 다가왔다.

 

 

웹툰 악죽 (1).jpeg

 

 

그렇게 나의 명작 리스트에 들어가 있던 이 소설이 웹툰화가 진행되었고, 최근에 웹툰 또한 완결이 났다길래 이번 기회에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같은 소재, 다른 선택


  

본격적으로 이야기하기에 앞서 웹소설 세부 장르에 간략하게 말해보자면 크게 ‘무협’, ‘판타지’, ‘로맨스’, ‘로맨스 판타지’ 등이 있다. (물론, 이외에도 다양한 장르가 존재한다.) <악녀를 죽여 줘>의 경우 이중 ‘로맨스 판타지’에 해당하는 작품으로 다른 일명 ‘로판’ 작품들과 비슷하게 가상의 중세를 배경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렇게 갑자기 장르에 관해 이야기하는 이유는 장르마다 유행하는 트렌드가 다르기 때문인데, 로판의 경우 크게 보자면 ‘회귀’, ‘빙의’, ‘환생’이 대중적인 소재로 자리 잡고 있다. 사실, 이 세 가지 소재가 인기를 얻은 지는 꽤 되었는데, 빠르게 변화하는 웹소설 시장에서 이 소재가 꾸준하게 사랑받는 이유는 아마 주인공에게 ‘장점’으로 적용되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이 세 가지 경우를 통해 주인공은 다른 인물들보다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이야기를 시작하게 되며, 자신에게 주어지는 시련을 좀 더 쉽게 해결할 수 있게 된다. 고난의 구간이 줄어든다면 그만큼 독자가 소설에서 접하게 되는 답답함이 줄어들게 되는 것이다. 물론, 주인공이 겪는 시련을 지켜보는 것도 소설의 또 다른 매력이지만, 아무래도 웹소설 특성상 몇 화에 걸쳐 고난이 지속되면 피로감을 느껴 사람들이 읽는 것을 중단할 수 있기에 그러기 쉽지 않다.

 

 

악죽 표지 (1).jpeg

 

 

<악녀를 죽여 줘> 또한 ‘빙의’라는 소재를 가지고 이야기가 전개된다. 하지만, ‘빙의’가 가지는 이점은 거의 없다. 소설이든 만화든 어떠한 매체라도 공통된 사실이 있는데, 바로 ‘소재가 똑같더라도 풀어내는 방식에 따라 내용이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라는 것이다. 이는 내가 장르 문학에 빠지게 된 이유 중 하나로, 작가에 따라 이 ‘풀어내는 방식’이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 나의 흥미를 불러일으켰다.

 

이 소설에서는 ‘빙의’로 인해 주인공이 가지게 되는 이점에 중점을 두지 않는다. ‘빙의’는 오직 주인공에게 벌어진 불의의 사고 같은 것이며, 그녀는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에서 벗어나고자 발버둥 친다. 보통 소설에서 ‘빙의’라는 소재가 사용되면 주인공이 자신이 빙의 되기 전 알게 된 정보를 가지고 세상에서 살아남으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하지만, <악녀를 죽여 줘>에서 주인공은 오직 자신이 떨어진 소설 속 세계에서 벗어나 현실로 돌아가기 위해 온 힘을 다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어떻게 보면, 주인공의 반응이 가장 사실적인 반응이라고도 볼 수 있다. 아무리 새로 떨어진 세계가 좋은 환경이라고 하더라도, 나를 이루던 가족, 친구, 추억 등 근본이 원래의 세계에 있는데 어찌 그렇게 쉽게 버릴 수 있을까. 작중에서 주인공이 가족을, 친구를 다시 만나야 한다는 목적보다 그저 내가 살던 세상이기에 돌아가야 한다고 말하는 장면에서 이러한 모습을 잘 알 수 있다.

 

 


무거움의 미학


  

그렇게 돌아가야 한다는 간절함을 가진 주인공이지만, 그녀에게 주어진 현실은 암담하다. 그녀는 원래 세상 속 접했던 소설로 자신의 파멸된 미래를 알고 있고, 그 운명은 시한폭탄처럼 시시각각 다가오는 중이다. 악녀라는 역할로 인해 자신을 도와줄 사람은 찾기 힘들고, 세상은 그 배역에 순응하라는 듯 그녀를 사지로 떠밀고 있다.

 

 

악죽 표지2 (1).jpeg

 

 

이러한 상황 속에서 길을 찾아야 하다 보니 작품은 상당히 무거운 분위기로 진행이 된다. 하지만, 정말 놀라웠던 부분은 분위기가 무거워 읽는데 벽이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마치 한편의 서사시를 읽듯이 웅장함이 느껴졌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소설 창작을 공부하고 있는 만큼 작품을 이렇게 끌어내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알기에 작품을 읽는 내내 작가님의 능력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소설은 대사 하나하나가 마치 명대사처럼 사람의 마음을 울린다. 그들의 말은 식어버린 심장에 불을 지피기도 하고, 잊어버렸던 것을 다시 떠올리게 하며, 주저앉은 것을 다시 일으키게 만든다. 버릴 것 하나 없이 한줄 한줄을 곱씹어 읽어가면서 인물에게 공감하고, 같이 화를 내며, 결국 자기 자신을 보듬게 된다.

 

작품의 분위기가 무겁고 진중하다는 것은 그만큼 작품의 서사가 깊다는 것을 의미한다. 무거운 분위기를 잘 소화하여 작가만의 특색으로 풀어나가는 데 성공한다면, 독자들에게 상당히 설득력 있는 이야기가 완성될 것이다.

 

 


위대한 캐릭터


  

누군가가 나에게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이 뭐냐고 물어본다면, ‘버릴 것 하나 없는 캐릭터들’이라고 답할 것이다. 특히나, 여성 캐릭터들이 상당히 매력적으로 그려져 있는데, 주조연을 가릴 것 없이 설사 잠깐 등장하는 캐릭터일지라도 자신만의 서사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인물들 간의 서사는 캐릭터가 움직이는 원동력이 되며, 이는 곧 이야기의 개연성을 담당하게 된다.

 

소설 창작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본 말이 있다. ‘캐릭터를 잘 만들면, 작가가 명령하지 않아도 알아서 주체적으로 움직이게 된다.’라는 말이다. 실제로 몇몇 작가들은 자신이 만든 캐릭터가 원하는 대로 움직여주지 않아서 만들어 둔 스토리를 갈아엎는 일도 있다고 한다. 그만큼, 캐릭터는 작품이 진행되는 데 있어서 엄청나게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소설을 창작하다 보면 다양한 인물들을 일일이 짜는 것이 상당히 힘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야기를 전개 시키는 데 있어 워낙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기에 하나하나 서사를 부여하는 것이 결과에 비해 많은 시간이 필요하기도 하고, 인물 간의 충돌이 빈번하게 일어나 계속해서 수정해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보통은 주요한 몇 캐릭터들에게만 서사를 부여하고 별로 등장하지 않는 이들에게는 그리 깊은 설정을 짜지 않는 것이 보통인데, 이 작품은 그저 스쳐 지나가는 인물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하나하나 이야기를 부여하고 있다.

 

여성들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맞닥트리게 되는 시련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어떻게 싸워가는지, 자신에게 주어진 소중한 인연을 지키기 위해 어떤 선택을 하는지 한명 한명의 이야기가 등장할 때마다 그들에게 깊이 공감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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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작품의 장르가 ‘로맨스 판타지’인 만큼 로맨스 또한 등장한다. 남주인공 또한 상당히 매력적인 서사를 가진 인물로 지켜보는 독자들이 그들의 사랑을 응원하게 만든다. 하지만, 나는 이 이야기가 남주인공과 여주인공의 사랑보다는 인물들이 이야기 속에서 어떤 투쟁을 하고 있는지 집중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기에 자세히 다루지 않고자 한다. (하지만, ‘사랑’에 대한 서사 또한 완벽했다!)

 

 

 

정소형.jpg

 

 

[정소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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