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크루아상과 상실의 상관관계 [사람]

99.9%의 상실
글 입력 2019.09.09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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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팥빵, 촉촉한 밀크롤, 버터에 구운 식빵, 파운드케이크, 따끈따끈한 와플.......


밀가루를 사랑하는 나에게는 모든 빵이 행복을 가져다주지만, 그 중에서도 정말 지나치기 힘든 냄새를 풍기는 빵이 있다. 바로 갓 구운 크루아상이다.


요즈음에는 아몬드 크루아상, 생크림 크루아상 등등 다양한 종류가 있지만 어쩐지 항상 손이 가는 것은 오리지널이다. 그 고소한 버터와 밀가루 냄새에 홀려 정신을 차려 보면 어느새 내 눈 앞에는 따뜻한 아메리카노와 크루아상이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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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뜩 부풀어져 있는 크루아상은 엄청나게 커 보이지만 사실 눈 깜짝할 사이에 없어지고 만다. 포크로 쿡, 찍는 순간 바삭바삭한 껍질이 주위로 흩어지면서 푹 하고 숨이 죽어 버리니까.


특히 속살은 너무 촉촉하고 부드러워서 입 안에 넣으면 금세 녹아버리기 때문에, 포크질을 몇 번 했을 뿐인데 어느새 빈 접시만 덩그러니 놓여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퍼석퍼석하게 떨어진 몇 조각의 부스러기를 보며 아, 참 맛있었는데 하고 아쉬운 상실감에 입맛만 다실 뿐.


크루아상은 프랑스어로 초승달(crescent)를 뜻한다. 초승달처럼 생긴 페이스트리의 모양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이름에서 보았을 때도 그렇고, 우리나라 대표 빵집을 떠올려 보아도 크루아상은 왠지 모르게 프랑스에서 왔을 것 같지만, 사실 크루아상의 기원은 오스트리아나 헝가리로 유추되고 있다.


17세기 말 오스트리아 또는 헝가리에서 오스만투르크 제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 먹었던 빵이 프랑스에 전해져 발전한 것으로 보는 것이다. 초승달 모양도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국기에 초승달 모양을 본떠 만든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일부 아랍 국가에서는 패전의 상징과도 같은 크루아상을 먹는 것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고 한다. 그들에게 크루아상은 일종의 ‘상실’을 상징하는 셈이다. 반대쪽에서는 빵까지 만들어 먹을 정도로 찬란하게 승리를 기념하고 있었으니 그들이 느꼈을 절망감은 훨씬 더 컸으리라.


그들이 전쟁에서 승리하지 못했음을, 끔찍했던 전쟁의 끝에 고스란히 남겨진 허망함과 상실감을 뜻하는 매정한 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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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에게는 한없이 잔인하고 차가운 빵이지만 이러한 속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크루아상은 대체로 따뜻한 편이다. 네이버 웹툰 <진눈깨비 소년>의 78화에 등장하는 한 부부도, 서로 처음 만났던 소개팅에서 이 빵을 먹었을 정도로.


남자와 여자는 아주 평범한 중년의 부부였다. 아내는 밥을 차리고 집안일을 하는 가정주부였고 남편은 회사에 다니는 아주 평범한 남자였다. 사랑 표현에 익숙하지 않은 조금은 무뚝뚝한 남자. 그렇지만 당연하게 아내를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아내가 큰 병에 걸리고 병이 깊어가던 어느 즈음, 아내의 생일이 다가왔다. 그는 직감적으로 이번이 마지막 생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고 아내에게 무언가 선물을 해 주고 싶었지만, 선물을 고르자니 바로 앞이 캄캄해져 왔다. 아무리 고민해 보아도 그녀가 무엇을 좋아할지 전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몇 십 년을 함께했지만 취향도 제대로 모른다는 자책감에 빠져 있던 그는, 결국 <선물 골라주는 가게>에 가서 도움을 구해 선물을 마련하게 되었다. 선물인 듯 선물 아닌 이 선물은 바로 호텔의 룸서비스 같은 생일상. 집 근처 빵집에서 사서 따뜻하게 데운 크루아상 하나를, 스크램블 에그와 예쁜 머그잔에 담긴 따뜻한 옥수수차와 함께 쟁반에 담아서 수줍게 아내의 방에 노크를 했다.


“여보, 생일 축하해.”


남편의 서투르고 정성 가득한 이 선물에 그녀가 아주 기뻐했음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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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웹툰 <진눈깨비 소년>78화, 쥬드 프라이데이



“당신, 이 빵 이름이 뭔지 알아?”


“크루아상!”


“오, 알고 있네?”


“그럼요.

당신이랑 처음 데이트할 때

크루아상 먹었는데 당신은 기억 못 하죠?

그때 생긴 거 치고는 꽤 고급스러운 빵을 고르네?

하고 당신을 다시 봤었지요.”


“생긴 것 치고는?”


“어머, 당신이 세련되게 생긴 건 아니잖아요?”



그리고 얼마 후 아내가 그의 곁을 떠나버리면서, 크루아상과 옥수수차는 그에게 너무나 아픈 기억이 되었다.


그는 어려서 혼자가 되었다. 그래서 외로움에 대해선 잘 안다고 생각했다. 처음부터 혼자였으니까 아주 생소한 기분은 아니라고. 이제 곧 원래의 자신에 적응할 수 있을 거라 스스로를 위로했다. 아내가 생각날 땐 옥수수차를 끓여 마셨다. 그는 그저, 어서, 이 시간이 익숙해지기만을 기다렸다.


아쉽게도 그건 착각이었다. 그는 단 한 번도 외로움에 익숙해져 본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태어나서 단 한 사람을 사랑했다. 그래서 한꺼번에 모든 사랑을 잃어버렸다.


따뜻한 추억으로, 진심 어린 사랑으로 시작했지만 결국 그에게도 크루아상은 아픈 상실의 기억으로 남았다. 어쩌면 너무 따뜻했기 때문에 더 아프게 다가왔을지도 모르겠다.



100퍼센트의 상실이란 없다.

우리는 무언가를 잃었을 때

그것에 대한 반동으로 결핍을 얻기 때문이다.


- 소피스트캣



몇 퍼센트의 상실인지가 무엇이 중요하겠는가, 우리는 결국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고 결핍을 겪게 되었는데 그 단어를 ‘얻었다’는 사실이 의미하는 게 있기는 할까. 그래도 상실의 아픔을 느끼기 싫다고 크루아상을 먹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우리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크루아상을 먹을 것이다. 그리고 바삭, 한 입 베어물 때마다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스멀스멀 불안함이 올라오겠지. 이 달콤함을 담보로 내가 얻게 될 상실감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이 텅 비어버린 초승달 모양의 빵과 함께.





[이현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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