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의 공룡도시, 베로나

글 입력 2014.08.01 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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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의 공룡도시, 베로나


글 - 김승열 (음악칼럼니스트)



    2001년 7월 12일 밤, 나는 베를린에서 밀라노로 남하하는 야간열차를 타고 유럽대륙을 종단했다. 그리고 이튿날 밀라노에서 베네치아행 기차로 갈아탔다. 종착역인 베네치아 산타마리아 기차역사에는 진작부터 죽마고우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당시 베네치아 건축대학에 수학 중인 건축가이자 한량이었다. 베네치아 메스트레 지구에 있는 그의 보금자리에서 회포를 풀고 이틀을 기거한 나는 7월 15일 일요일 아침, 지체없이 베로나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벌써 13년 전의 일이어서 모든 것이 기억에 남아있지는 않지만, 나는 당시 그 유명한 베로나 아레나 원형극장에서 펼쳐지는 ‘2001 베로나 오페라 페스티벌’을 구경하러 베로나로 향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날 저녁 아레나에서 베르디의 오페라 ‘나부코’를 관람할 수 있었다.


베로나 아레나 외관.png▲ 베로나 아레나 외관 - ⓒ Comunicazione Fondazione Arena di Verona



-지상 유일의 공룡극장에서 관람한 매머드급 ‘나부코’

    당시 캐스팅은 다음과 같았다. 다니엘 오렌이 지휘하는 베로나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의 밑그림 위에서 후고 데 아나의 연출/무대/의상, 리노 프리비테라의 안무가 가미된 호화판 ‘나부코’! 타이틀롤인 나부코에는 바리톤 알렉산드루 아가케, 이스마엘레에는 테너 나자레노 안티노리, 자카리아에는 베이스 자코모 프레스티아, 아비가엘레에는 소프라노 파올라 라모나, 페네나에는 소프라노 프란체스카 프란치, 바알의 대제사장에 베이스 카를로 스리울리, 압달로에 테너 마리오 볼로네시, 안나에 소프라노 신지아 리초니가 포진해 있었다. 비록 최상급 캐스팅은 아니었을지라도 나는 당시의 ‘나부코’를 그로부터 13년이 지난 지금까지 마음에 새겨둘 수밖에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날 접한 ‘나부코’가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베로나 아레나에서 만난 무대였기 때문이다.


베로나 아레나 무대.png▲ 베로나 아레나 무대 - ⓒ Comunicazione Fondazione Arena di Verona


    당시의 감흥을 기록해둔 흔적이 남아있지 않아 어쩔 수 없이 기억에 의존하는 수밖에 없겠다. 다채로운 빛줄기로 현란했던 무대와 3만여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의 행렬이 아직까지 남아있는 이 날의 잔상들이다. 그러나 어쿠스틱은 과히 좋지 못했다. 당시 나는 ‘나부코’를 지척에서 보고 듣는 것이 아니라, 강 건너 불구경하듯 멀찌감치 떨어져서 바라보는 기분이었다. 무려 3만여석이나 되는 객석이 웅변하듯, 베로나 아레나의 무대가 포용할 수 있는 어쿠스틱의 반경은 1층 좌석 일부에 국한되어 있는 듯 보였다. 나는 당시 2층 돌계단 상층에 앉았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이 날의 ‘나부코’가 나에게는 썩 흡족하게 다가오지 못했던 것이다. 이후로 두 번 다시 나는 베로나를 찾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베로나 아레나가 전세계 오페라 대중화에 기여한 공로는 무시하지 못할 일이다. 저렴한 가격으로 한 번에 3만여명씩 수용할 수 있는 거대 야외극장에서 듣는 스펙터클한 오페라무대들은 1913년 이래 전세계 각지의 오페라 애호가들을 매년 여름 베로나로 모여들게 하고 있다. 가히 마술 같은 도시인 것이다. 매년 6월말에서 9월초까지 근 세 달씩이나 오페라 페스티벌이 베로나 아레나에서 펼쳐진다는 사실은 좀처럼 믿기 힘든 불가사의 중의 하나다.

    남프랑스 오랑주 오페라 페스티벌이나 로마 카라칼라 야외 오페라무대 모두 여름철의 한 때를 장식하는 오페라축제에 해당한다. 그러나 베로나 오페라 페스티벌은 여름의 전부와 초가을까지를 아우르는데도 표 구하기가 쉽지 않은 지상 유일의 오페라잔치다. 나도 13년 전 이 날, 대략 2시간 동안 길게 줄을 선 연후에 어렵사리 표를 거머쥘 수 있었다. 이렇듯 베로나는 정작 로미오와 줄리엣의 고향으로서가 아니라, 베로나 오페라 페스티벌의 요람으로 전세계인에게 각인되어 있는 것이다.



-유서깊은 아레나와 유서깊은 베로나 오페라 페스티벌의 역사

    베로나에 아레나(Arena)가 처음 건립된 것은 기원후 1세기인 아우구스투스 로마황제 통치시절이었다. 로마 콜로세움과 나폴리 북쪽 카푸아 원형극장에 이어 현존하는 세 번째 규모의 로마 시대 원형극장인 베로나 아레나에서 처음 오페라 페스티벌이 포문을 연 해는 1913년이었다. 그해 8월 10일, 베르디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베로나 출신 테너 조반니 체나텔로 부부와 오페라 흥행사 오토네 로바토는 베르디의 ‘아이다’를 아레나에 올리기로 의견을 모았다. 백년 전 당시 역사적인 베로나 오페라 페스티벌의 첫 ‘아이다’ 공연의 지휘봉을 잡은 인물은 이탈리아의 전설적인 지휘자 툴리오 세라핀(1878-1968)이었다. 당시의 공연을 관람하기 위해 객석에는 마스카니, 푸치니, 카프카, 고리키 같은 당대 유럽 예술계의 거인들이 열석해 있었다.

    원형경기장이란 뜻의 아레나는 애초 로마검투사들이 경합하는 경기장으로 건축되었지만,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러 야외극장으로 용도변경되었다. 이후 1850년대에 접어들면서 오페라무대로 환골탈태한 베로나 아레나는 상기한 대로 1913년 여름부터 100년 넘게 오페라 페스티벌을 개최해오고 있는 것이다. 전세계 야외 오페라 페스티벌로는 가장 유서깊은 본산이 베로나 오페라 페스티벌이다.

    2008년 유로존 위기를 겪으면서도 베로나 오페라 페스티벌은 변함없는 흥행을 과시해 오고 있다. 올해 2014년의 프로그램을 일별해 보면, 바리톤으로 전향한 73세 플라시도 도밍고의 리사이틀과 베르디의 ‘가면무도회’, ‘아이다’, 비제의 ‘카르멘’, 푸치니의 ‘투란도트’, ‘나비부인’, 구노의 ‘로메오와 쥘리에트’, 케루비니의 ‘메데아’ 등 총 60회 가까운 무대가 잡혀 있다. 매 회당 3만명씩 관객수를 잡아보면 총 180만에 이르는 엄청난 흥행성적표가 산출된다. 이처럼 베로나 아레나는 시류야 어떻든 100년 전부터 자신만의 노하우로 걸출한 흥행성적을 올리고 있다. 수입이 천문학적이다 보니, 이들이 무대에 쏟아붓는 예산도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수준이다. 한마디로 오페라무대의 스펙터클이 어떤 것인지 궁금한 당신이라면 내일이라도 당장 이탈리아 베로나로 떠나 눈과 귀로 몸소 확인해볼 일이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란 말이 꼭 들어맞는 무대가 베로나 오페라 페스티벌인 것이다.


베로나 아레나 오페라 페스티벌 2012 투란도트 공연장면.png▲ 베로나 아레나 오페라 페스티벌 2012 투란도트 공연장면


베로나 아레나 오페라 페스티벌 2013 아이다 공연장면1.png▲ 베로나 아레나 오페라 페스티벌 2013 아이다 공연장면1


베로나 아레나 오페라 페스티벌 2013 아이다 공연장면2.png▲ 베로나 아레나 오페라 페스티벌 2013 아이다 공연장면2


베로나 아레나 오페라 페스티벌 2013 아이다 공연장면3.png▲ 베로나 아레나 오페라 페스티벌 2013 아이다 공연장면3


베로나 아레나 오페라 페스티벌 2014 가면무도회 공연장면.png▲ 베로나 아레나 오페라 페스티벌 2014 가면무도회 공연장면


베로나 아레나 오페라 페스티벌 2014 카르멘 공연장면.png▲ 베로나 아레나 오페라 페스티벌 2014 카르멘 공연장면

* 사진 출처 : Comunicazione Fondazione Arena di Verona


    그럼에도 나는 오페라 페스티벌이란 간판을 단 야외 오페라무대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 속에는 흥행을 통해 한 몫 잡아보겠다는 임프레사리오의 장삿속이 한몫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100년이 넘는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베로나 오페라 페스티벌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거기에는 장삿속이라고만 치부할 수 없는 땀과 눈물로 점철된 역사의 희로애락이 가득 담겨 있기 때문이다. 다시 한 번 이야기하지만, 그 같은 역사의 파노라마가 빚어낸 오페라의 스펙터클이 무엇인지 궁금한 당신이라면 주저 말고 베로나로 떠날 일이다. 오페라만이 보여줄 수 있는 진정한 예술의 너비와 깊이가 베로나에는 여전히 살아서 꿈틀대고 있는 까닭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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