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프린지 여행을 떠나 봅시다. - 서울프린지페스티벌2019

프린지페스티벌이 아니었다면 경험하지 못할 독립예술
글 입력 2019.08.25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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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프린지페스티벌2019

독립예술 여행을 떠나보자.






‘축제’라는 단어는 그 단어만으로 설렘을 선사한다. 그 이유는 축제 속엔 일상에선 느낄 수 없는 생명력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똑같은 인파도 지옥철 속의 통근러들과 축제 속의 사람들의 생기는 비교할 수 없는 것처럼, 축제에는 일상을 탈피한다는 설렘이 곳곳에 숨어 있다.

 

이런 축제의 탈 일상적 특징은 서울프린지페스티벌 2019가 내건 표어인 “예술적 일탈을 상상하다!” 와도 일맥상통한다. 프린지페스티벌이 이야기하는 ‘일탈’은 평범한 일상에서의 일탈인 동시에 기존에 지니고 있던 딱딱한 예술관, 예술이 행해지는 장소에 대한 고정성에서의 탈피를 의미한다.

 

평소 축제라고는 대학교 축제밖에 알지 못했던 축제 문외한인 내가, 이토록 특별한 의미를 지닌 ‘프린지페스티벌’로 떠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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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린지페스티벌 정면



일전까지 갑갑한 도심 속을 지나왔지만, 월드컵경기장역에 내려 잠시 걸어오자 푸른 녹음의 광경이 나를 반겼다. 전날까지만 해도 연속으로 비가 세차게 내렸지만, 신기하게도 이날은 맑음 그 자체였다.


그렇게 프린지페스티벌이 열리는 ‘문화비축기지’로 발을 옮기니 또 다른 신기한 풍경이 펼쳐졌다. 매봉산을 등에 진 문화비축기지는 과거 석유비축기지의 면모를 그대로 살려 남다른 분위기를 풍겼다. 특히 듬성듬성 녹슬어 보이는 석유탱크의 외관과 어우러진 매봉산의 배경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독립예술의 아지트- 프린지페스티벌의 티켓부스에는 프린지 페스티벌에 참가할 수 있는 팔찌와 함께 부채, 프로그램 북을 나눠준다. 프로그램 북 전면에는 프로그램이 열리는 장소를 확인할 수 있는 지도가 존재하고 순서대로 펼쳐지는 예술 프로그램에 대한 간단한 정보가 적혀 있다.


물론 이전에 프린지페스티벌 사이트를 통해 일정과 동선을 계획할 수 있지만, 글보단 현장의 기분으로 공연에 참여하자는 의미로 즉흥적인 예술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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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장일딴 컴퍼니 <점>

 

 

검은색 댄스스포츠 의상을 입은 한 거구의 남자가 다소곳하게 의자에 앉아 있다. 그러고는 하얀 실로 실뜨기 퍼포먼스를 선보이더니, 귀엽게 박수를 유도한다. 조금 유치한(?) 공연이 이어지면서 ‘이게 뭐지…?’하는 기분이 들 때, 줄로 만든 인형으로 인형극이 펼쳐졌고 일순에 그 공연에 매료됐다.

 

<점>은 소박한 소재로 기발한 장면을 연출하는 인형극이면서 행위예술이었다. 실 뭉치에 입을 붙인 모형을 머리로 삼아 엄지는 팔이 되고 검지와 중지는 두 다리가 된다. 인형은 번지점프를 도전하지만 번지대가 너무 낮아 계속 실패하고 자신의 힘으로 번지대의 위치를 높이다가 일순에 가장 밑바닥으로 추락한다. 인형은 시련에 굴하지 않고 바닥에 있던 소형 진공청소기 우주선을 타고 더 높은 곳, 우주로 향한다. 그리고 인형은 자신과 우주선을 연결하는 실을 잘라내고 우주를 유영하기 시작한다.

 

프린지페스티벌에서의 첫 연극이었던, 인형극 <점>은 그 시작부터 좋은 분위기를 선사했다. 먼저, 해당 연극에서 놀라웠던 점은 정말 소박한 소재로 출발해 기발한 인형극을 꾸몄다는 점이다. 과장해 말하면 조금 충격적이었다. 어찌 보면 누구나 할 수 있어 보이지만, 그렇다고 아무나 할 수 없는. 소박하지만 신선한 예술이 눈앞에서 진행되는 게 정말 즐거웠다.

 

나아가 해당 공연은 관객 참여가 굉장히 잦아 다양한 변수가 존재했다. 그런 돌발 상황에서 당황한 표정을 짓는 배우와 그를 극복해 나가는 과정이 오히려 더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특히 극 마지막에는 관객석의 양 끝을 지그재그 모양으로 실로 연결해 오브제를 흘려보내는 퍼포먼스가 진행됐는데, 이는 관객과 공연이 모두 연결되었다는 관객참여의 기분이 물씬 들어 인상 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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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마인드프로젝트 <미래 ,도시>

 

 

둥그런 우물 같은 공간 <T6>에 들어서니 중년 부부처럼 보이는 남녀 한 쌍이 소박해 보이는 옷차림으로 관객들을 반겼다. 해당 공연에는 별다른 객석이 존재하진 않았지만 관객들은 장소 곳곳에 비치된 하얀 스케치북 앞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무대 장치로는 빨간 여행용 가방 위에 무심하게 올려놓은 실로폰과 그 옆의 기타가 눈에 돋보였다.

 

하늘만 뻥 뚫려 있는 우물 같은 공간 탓에 조그만 소리도 쉽게 울려 퍼졌고, 그 장소가 풍기는 암울하고 신비한 분위기는 연극의 제목 <미래, 도시>가 연상되는 효과를 선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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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축기지 <T6 2F>

  

연극 <미래, 도시>는 청량한 실로폰 음으로 그 극이 시작된다. 미-레-도-시♪ 해당 연극의 제목과 동음이의어인 음높이의 연주를 남발하고 이후에도 여러 언어유희를 보여준다. 허공에 칼질하는 동작을 보이며 ‘시간을 죽이는 중이야.’라 말하며 허공을 밀치는 행동을 보이고선 ‘시간을 보내는 중이야.’라며 언어유희를 보여준다.

 

그렇게 그들은 무형의 시간을 보내고 빨리 미래가 다가오길 바라지만, 실제 그들이 예측하는 미래는 그리 달가워 보이진 않는다. 모든 것에 ‘충’을 붙이며 서로를 혐오하는 현재를 바라보며 미래엔 해충만 남은 세계가 도래할 것을 예측하며, 점차 줄어드는 출생률에 아이가 없어진다는 것은 곧 행복이 사라지는 것이라 이야기한다. 마치 그들은 미래 도시를 지켜보고 온 사람처럼, 간접적으로 미래에 대한 묘사를 이어나간다.

 

나아가 연극은 미래의 시간적 개념에 회의감을 표하기도 한다. 1초 후의 미래는 어느새 현재로 귀결하고 과거에 꿈꿨던 미래는 어느새 이미 달성한 철지난 꿈이 되기도 한다. 그렇게 미래는 현재가 되고 현재가 과거가 되는 시간의 연장선 앞에서 무력한 인간의 모습을 연극 <미래, 도시>가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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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축기지 <설비동> - 관객의 그림


 

객석 앞에 있던 하얀 종이와 크레파스로는 연극을 감상하면서 자신이 생각하는 미래 도시를 그릴 수 있었다. 각자 극을 감상하면서 느낀 미래 도시를 그림으로 나타내었는데, 이 그림 또한 문화비축기지 한편에 전시 되어 이차적인 예술이 탄생하는 기쁨을 맛볼 수 있었다. 

   

**

 

두 공연 외에도 여러 공연을 감상하다 보니, 어느덧 프린지페스티벌의 막을 내리기 시작했다. 공연 시간이 생각보다 길어져 본래 계획했던 공연을 감상하지 못하기도 했고 굉장히 기대하면서 찾아간 공연은 예측했던 방향과 매우 달라 실망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 당시엔 조금 허무함을 느꼈지만, 이 또한 늘 변수가 존재하는 여행의 묘미와 닮아 있는 기분이 들었다.

 

프린지 페스티벌을 다녀오고 느꼈던 해당 축제의 가장 큰 장점은 가공되지 않은 날것의 예술을 제공한다는 점이다. 그것을 대표하는 장소 또한 자연을 배경으로 한 열린 공간이었기에 그 의미를 더 잘 드러낼 수 있었고 그를 통해 참가하는 예술가에게 제약을 두지 않는 프린지 페스티벌의 신념이 더 잘 부각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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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렌치프라이 <꿈을 노래하다>
 

그렇게 한여름 야외에서 펼쳐진 독립예술의 향연 덕분에 얼마만큼 많은 예술인이 자신만의 진정성이 담긴 예술을 펼치고 있는지 알게 되었다. 프린지페스티벌이 아니었다면 살면서 한 번도 접해보지 못할 예술들임은 분명하다. 부디 많은 관객이 참여해 이런 신선한 페스티벌에 참여해보길 바라고, 내년에도 더 다양하고 자유로운 예술이 가득한 프린지페스티벌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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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송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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