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view] 아직도 당신의 눈엔 남녀가 친구로 보이지 않습니까? - 서울국제뉴미디어페스티벌 2019

가부장 국가에서 성(gender)과 성(sex)은 동일한 개념
글 입력 2019.08.10 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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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유일의 영화와 전시를 아우르는 뉴미디어아트 대안 영상축제인 제19회 서울국제뉴미디어페스티벌(네마프 2019)이 오는 8월 15일부터 24일까지 개최된다.


일단 미디어라고 하면, 텔레비전이나 라디오, 신문, 잡지, 전화 등 물리적으로 가깝지 않은 곳에 있는 소리나 정보를 전달해주는 매체다. 따라서 뉴미디어라고 하면 과학기술에 따라 새롭게 생겨난 매체로, 기존의 매체에 얽매이지 않는 ‘탈미디어’라는 단어와 같다. 일방적으로 정보를 전달받던 단계에서 벗어나 쌍방향으로 정보를 주고받게 되고, 또 거기서 더 나아가 시간적인 제약도 없이 정보를 주고받는 단계까지 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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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미디어 대안영상의 세 가지 미션



네마프 2019는 그런 매체를 놀이하는 예술가들이 나와 어떤 주제에 대한 생각을 전달하는 페스티벌이다. 올해 주제는 ‘젠더(gender) X 국가’로, 기존의 젠더 개념에 대한 도전과 질문들을 던지는 작품들을 통해 국가의 정체성에 대해 관객과 소통하게 될 것이다.


이 질문을 던지는 근본에 젠더(gender)란, 생물학적인 성(sex)과는 다르게 사회적 성을 의미한다. 전 세계적으로는 이미 생물학적 성과 사회적 성이 다르며, 그 다양함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에 있지만, 가부장적인 국가에서는 여전히 수많은 존재를 배제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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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례는 멀리서 찾아보지 않아도 된다. 그냥 남자와 여자, 두 명이 나란히 걷고 있으면, 당연히 그 사람들을 친구보다는 연인 관계로 생각한다. 사귀는 것이 아니라고 부정해도, 그들은 사귄다는 의심을 일차적으로 받는다. 많은 이성과 친한 사람도 마찬가지로, ‘여우’ 취급, ‘걸레’ 취급을 받는다. 그런 의심의 기전에는 생물학적 성이 다르다면 그 누구도 서로에게 성적 욕구를 느끼지 않을 수가 없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나는 특히 그런 비슷한 말을 같은 과에 부산에서 올라온 여자아이에게 매년 들어왔고, 그때마다 소스라치게 황당해 어떤 말도 못 하고 넘어가곤 했다. 그 애는 다른 사람들에게 마찬가지의 잣대를 들이밀곤 했다. 남자친구가 있는 나의 사정을 알았을지는 모르겠지만, 같은 설계실에 있는 남자 후배에게 고향이 어디냐는 질문 하나를 던졌다는 이유로 “이제는 후배를 노리네”라는 말을 공개적인 자리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했다. 그리고 그 친구들은 다 비슷한 생각을 하며 살고 있었던지 그냥 선배들과 친해 보였다는 이유로 “그 선배를 노리는구나”라고 말했던 사람들이었기에, 어느 순간부터 나는 그들을 눈에 띄게 피했다.


자라온 환경이 문제이든 간에, 스스로가 변하려고 하지 않고 정체되어있는 모습에서 나는 당황스러움과 함께 경멸감을 느끼곤 했다. 나에게 그런 공개 망신을 안겨주던 사람들은 성별을 딱히 가릴 것이 없었기 때문에, 애초에 페미니즘이 던지는 근본적인 물음에 공감하지 못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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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린다, 는 표현도 참 이상하다. 내가 남자친구를 한 달에 한 번씩 바꾸는 인간이었으면 그런 표현도 적절할지 모르지만, 나는 대학을 다니는 5년간 총 3명의 남자친구를 사귀었다. 첫 남자친구가 대학에 갓 들어와 사귄 뒤 한 달도 되지 않아 헤어졌던 것을 제외하면, 사람을 꽤 오래 사귀는 편이다. 어쩌면 나에게 ‘노린다’는 말을 했던 그 사람들이 나보다 더 많은 남자친구를 사귀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이번엔 그 선배를 노린다며?”라고 했던 같은 과 언니는 정말 많은 남자를 사귀어서 친구들에게 전해 들은 것만 해도 열 명 가까이 된다. 그때마다 모두에게 변명하듯 하는 말, “내가 좋아해서 사귀는 건 아니고, 고백하니까 사귀는 거야.” 그들은 남자 이야기밖에 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자기가 아는 것밖에 보지 못하기 때문에, 그들의 삶을 나에게 투영해서 그 뛰어난 ‘공감’을 했을 수도 있다. 뭐 어찌 됐든 잘 알지 못한 타인의 삶을 함부로 판단한 것은 그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해해줄 생각은 전혀 없다. 나도 그들이 나에게 했던 사소한 일들로, 그 사람들의 삶을 판단할 수밖에 없다. 어차피 내 글의 소재로 쓰일 정도밖에 되지 않는, 삶에 스쳐 지나가는 들러리 정도일 뿐. 일본성장 만화로 비유하자면, 나를 좀 더 굳건하게 만들어주는 갈등 요소 중의 하나일까. 아니면 국어 문학 지문에 나와서 수업 시간에 밑줄을 긋고, 갈등이라고 적을만한 일 정도.


우리 과의 사람들이 싫었고, 교수들이 싫었고, 수업 방식이 싫었다. 그러나 그런 개별적인 집단이 모여 우리나라가 되는 거로 생각하면 싫어해야 할 부분이 너무나 많아지고, 피해야 할 공간이 끝도 없어진다. 지금보다 몇 년 어렸을 때는 그것까지는 생각하지 못했고, 그냥 듣기 싫은 말을 피하며 내가 입을 닫아버렸다. 과거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조용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극히 외향적인 성격인 나에게 침묵은 우울증과 거식증, 폭식증까지 안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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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에 대한 의문, 1982, 90min



그래서 나는 젠더(gender)라는 주제에 대해 다루는 서울 국제뉴미디어페스티벌이 반갑다. 많은 이들에게 불편함을 안겨줄수록 다른 세상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고정관념과 편견으로 가득 찬 인간들이 한껏 불쾌해 하고, 자기 삶에 부끄러움과 수치심을 느꼈으면 좋겠다. 생각날 때마다 이불을 발로 걷어차 버리고, 길을 걸어 다니다가도 어디론가 남들이 보지 못하는 곳으로 숨어버리고 싶을 만큼의 강렬한 욕구를 느끼기를 바란다.


요즘 빵집에서 아르바이트하고 있는데, 탈 코르셋이 열풍인 한국에서 과거에는 보지 못했던 모습들을 본다. 꾸미지 않은 얼굴로, 숏컷을 하고, 그냥 딱히 뭐라고 할 수 없을 옷차림을 한 사람들을 보면서 당연히 남자일 거라 생각했는데 주문할 때 목소리를 듣고 여자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동생에게 그 이야기로 대화했더니, “꾸미지 않으면 여자도 남자랑 똑같다”,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있을 수 있어 다행이라고 했다. 동생과 대화하다보면 같은 감정을 느껴도, 다른 언어로 표현하는 것에서 새로운 것을 깨달을 때가 많다. 그래서 나는 별 것 아닌 일도 주절주절 동생에게 이야기를 하게 된다. 남자도 남성성을 과하게 부여받는다는 것을 고려하면, 그 모습은 좀 더 중성에 가까운 모습일까.


NeMaf 2019는 정말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가득하다. 매년 작가 회고전을 통해 얀 슈반크마예르, 알랭 카발리에, 장 루슈, 이토 타카시 & 마츠모토 토시오 감독 등 대안영화예술 분야의 거장들을 소개해왔고, 올해는 네덜란드 출신의 마를린 호리스 감독의 주요 작품 4편을 서울 아트시네마에서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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댈러웨이 부인, 1997년, 97min



마를린 호리스 감독은 유럽 여성주의 대표감독으로 손꼽히며 가부장 사회에서 여성과 남성 사이의 불평등을 조명하고 여성들의 연대 및 대안적인 공동체에 대해 작품을 통해 화두를 던진다.


대표적인 작품으로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댈러웨이 부인'에서 단편적인 로맨스를 벗어나, 여성의 인생에서 결혼과 사랑이 가지는 의미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안토니아 - 다니엘 - 테레사 - 사라로 이어지는 여성 4대의 삶을 추적하는 따뜻한 사회 코미디 '안토니아스라인' 등을 다룬다.



6. 아이엠걸.jpg
아이 엠 어 걸, I'm a Grrrl, 뷘케 마이뵐
Denmark, 1994, 13min, b&w, Experimental, ND
소녀 무리들과 그녀들의 남자들에 대한 헌사.


또 네마프에서는 그동안 접하기 힘들었던 다양한 덴마크의 비디오 아트, 대안 영상 예술작품을 모아 덴마크 비디오아트 특별전을 롯데시네마 홍대 입구에서 선보인다. 덴마크 비디오아트 특별전은 덴마크 비디오아트/넷아트 비영리기관인 Netfilmmakers와 공동 큐레이팅으로 기획했으며 다양한 덴마크 비디오아트, 대안 영상예술의 시각과 관점을 담은 영상들이 소개되며, 덴마크를 기반으로 동시대에 활발히 활동하는 작가들의 싱글채널 비디오를 만날 수 있다.



1. 바깥은 존재한다.jpg
바깥은 존재한다, 한느 닐슨, 브리짓 욘센
Denmark, 2017, 15min, color, Single Channel Video, ND, AP


덴마크 비디오아트 특별전 상영작 중 한느 닐슨과 브리짓 욘센의 '바깥은 존재한다'(Outside is Present) 는 세상의 수많은 중요 사안과 시골에서도 멀리 떨어진 도시에 관해 편향된 시각을 가지고 있는 미디어 이미지 혹은 편견을 영상으로 조명한다. 이 두가지 대립하는 미디어 표현을 혼합해 덴마크의 작은 망르이 세상의 중심 중 하나로 변모해나가는 것을 보여준다.


영상이라는 장르와 친숙하지 않기 때문에 특히 비디오아트 특별전에 대한 소개 설명이 인상적이었다. 사실 글이나 그림, 사진같은 다소 찰나적이고 직관적인 장르보다는 영상이 길이가 길며, 생각보다 오랜 시간동안 들어오는 개념을 하나로 통합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15분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표현하고자 하는 주제를 나타내기 위해 어떤 방식을 사용했을지 너무 궁금하다.



3. MOL.jpg
MOL, 헬렌 니만 Helene NYMANN
Denmark, 2017, 11min, color, Alternative Narrative Film, E, AP


헬렌 니만은 MOL이라는 이 영상을 통해 고대 그레코-로만형 장소법에 따라 고정된 물체를 배치하여 자신의 과거 경험을 시각화하는데 이는 우리가 외부 세계를 인식하는 법을 형성한다. 또한, 암기 기술 의존도가 높아짐에 따라 타인이 우리의 세계관을 형성함을 이야기한다.

나는 어떤 사건과 상황을 다루는 창작물보다는 생각과 의식의 흐름을 보여주는 창작물을 더 좋아하는 편인데, 그래서 그런지 MOL 영상에 흥미로움을 느꼈다. 사람이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을 글이 아닌 영상으로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아니, 어쩌면 사람은 입체적인 세상에 살고있으므로 글보다는 영상으로 표현하는 것이 더 맞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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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9회 서울국제뉴미디어페스티벌(네마프 2019)는 위에 소개한 프로그램 이외에도, 한국 구애전, 글로컬 구애전, 심혜정 특별전, 글로컬 파노라마, 뉴미디어대안영화 등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다룬다. 서울아트시네마, 롯데시네마 홍대입구, 미디어극장 아이공, 서교예술실험센터, 아트스페이스오 등 장소 역시 여러곳에서 진행된다. 약 28개국이 140편의 뉴미디어 영화로 참가를 한 아주 대규모의 페스티벌이라고 할 수 있다.

프로그램 이외에도 뉴미디어복합예술제가 진행되어, 큐레이터 토크, 복합예술 야외상영, 작가네트워크의 밤, 아티스트랩, 오픈 전문가 미팅등도 진행된다. 관심있는 사람은 한번 시간을 내어 찾아가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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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아스라인 스틸컷




 

제19회 서울국제뉴미디어페스티벌
- 네마프(NeMaf) 2019 -


일자 : 2019.08.15 ~ 2019.08.24

프로그램
주제전: 젠더X국가
글로컬 구애전 (국제 경쟁프로그램)
한국 구애전 (한국 경쟁프로그램)
덴마크 비디오아트 특별전
마를린 호리스 회고전
심혜정 특별전
글로컬 파노라마 (비경쟁프로그램)
뉴미디어대안영화 (작가신작전)
뉴미디어대안영화제작지원
등 다수

*
28개국 140편
국내/해외 영화, 뉴미디어 영상
영상 퍼포먼스 작품 등

**
세부 프로그램은
서울국제뉴미디어페스티벌 홈페이지 참고

장소
서울아트시네마
롯데시네마 홍대입구
미디어극장 아이공
서교예술실험센터
아트스페이스오

티켓가격
상영 1회권 7,000원
전시통합 1일권 7,000원

주최
(사)대안영상문화발전소 아이공

후원
서울특별시, 서울문화재단, 마포구
주한네덜란드대사관, 서교예술실험센터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
서울아트시네마, 아트스페이스오


아트인사이트 명함.jpg
 

[박지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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