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부정적인 미래, 디스토피아적 상상력 - 에릭 요한슨 사진전 [전시]

불안해해도, 이겨내지 못해도 너는 너야
글 입력 2019.08.06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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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에릭 요한슨


아트인사이트에서 문화 향유를 하며 일정이나 거리 때문에 몇 가지 놓친 전시/공연이 있는데, 에릭 요한슨의 사진전은 그 중 가장 아쉬운 전시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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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fishy island, Erik Johanson



아무리 작가의 마음을 이해해보려고 해도 난해하고 뜬금없는 표현 방식 때문에 한참 전시회라는 장르에 대해 회의감을 느끼던 중이어서 전시회의 소식을 받아도 별 감흥이 없었던 때였다. 그러나 에디터들의 에릭 요한슨 전시회 리뷰를 보면서, 바다 위로 드러난 아주 작은 일부분에, 바다 밑에는 거대한 물고기가 있는 그 그림을 발견했고 그냥 순수하게 감탄을 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반응은 아쉬움과 후회였다.


그러던 차에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에디터가 많았는지 다시 향유의 기회가 있었고, 당연히 에릭 요한슨 사진전을 신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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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껏 사진전이라고 했을 때 그 매력을 느끼기가 힘들었다. 나에게 사진이란 그냥 현실의 한순간을 하나의 장면으로 찍어놓은 것에 불과했고, 구도, 빛 등으로 아름다운 피사체를 카메라 속에 담는다고 하더라도 그냥 아름다운 이상의 감각을 찾을 수 없었다. 비슷한 경험을 공유하는 사람들만이 알 수 있는 공통적인 의식이기에 접점이 없는 사람이 본다면 이해하기도 힘들 것이 분명하다.


그림도 사진과 거의 비슷하게 느껴졌기에 추상화를 포함한 난해한 장르를 제외하면 딱히 어떻다고 평가를 할 수도 없었다. 잘 알지 못하는 것은 곧 흥미를 잃게 하고, 그냥 스쳐 지나가는 순간도 견디기 힘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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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Cumulus and Thunder, Erik Johanson



그러나 에릭 요한슨의 사진전은 달랐다. 사진전이라는 이름으로 많은 고정관념을 안겨주었지만, 그의 사진전은 분명 엄청난 상상의 세계였다. Impossible is possible, 불가능한 것이 가능하다는 역설적인 주제가 사실이라고 느끼게끔 하는 상상을 찍었다. 그렇다고 그가 완전히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을 그림으로 걸어놓은 것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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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초현실주의 사진작가와의 차이는 단순히 디지털 기반의 합성 사진이 아니라, 작품의 모든 요소를 직접 촬영해서 한 장의 사진 이상의 세계를 담았다. 초원 사진에 물레방아 사진에 절벽을 합성하고, 필요한 물건들을 일일이 찍어 세상에는 없는 사진을 만들어내기도 하며, 어떤 컨셉을 잡아 스케치하고 물건들을 조성해서 달을 수레에 싣는 것 같은 사진도 재구성해낸다. 그의 사진은 카메라와 재구성된 사물들의 세계, 그리고 컴퓨터를 활용한 리터칭의 세계로 말할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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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Impact, Erik Johanson



일반적인 사진전과 그림 전시회만을 보고 자라온 사람들은 전혀 상상도 하지 못할 이 세계를 보기 위해 줄 서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대기번호가 있다는 것부터 충격적이었다. 꽤 유명했던 르코르뷔지에 전을 포함해서 예술의전당에서 하는 많은 전시회를 갔음에도 줄을 서서 전시회를 본 적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전시장 내부에도 작품을 천천히 관람할 수밖에 없는 매력 때문에 사람들은 엄청나게 많았다. 정말 보고 싶다면, 시간을 내어 평일에 가는 것을 추천한다.



“The only thing that limit us,

is our imagination”


- Erik Johanson





01. 어릴 적 상상, 꿈꾸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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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Leap of Faith, Erik Johanson



에릭 요한슨의 전시는 총 4개의 구성으로 되어있다. 첫 번째 실은 Childhood Imagination, Dream of Future 어릴 적 상상, 꿈꾸던 미래로, 어린 시절에 풍선을 타고 날아간다는 상상을 했던 경험을 살려 사진을 만들었다.


이 작품은 사실 인간의 도전에 관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가까이에서 보면 양복을 입고, 서류가방을 멘 남자가 있는 점프대에 “위험을 감수하고 날아보세요! 모든 행동의 책임은 당신에게 있습니다. 하지만 만약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단, 풍선은 1인당 1개입니다.”라고 적혀있다.


사실 사진을 보고서는 이제 곧 새로운 회사에서 취업해 출근을 하게 될 남자친구가 생각나서 나중에 엽서를 구매하기도 했다. 풍선 하나에 의지해서 어디론가 위태롭게 실려 가는 모습이 사회초년생들의 내적인 갈등이 담겨있어 보였다.


이 사진은 에릭 요한슨이 안정적인 컴퓨터 공학 엔지니어의 자리를 버리고 사진작가로 전업하면서 겪은 엄청난 위험이 담겨있다고 추측하는 글이 있다. 다른 세계로 간다는 모습을 그렇게 상징적으로 표현했다는 것도 무척 신기한데, 보는 사람에 따라서 다른 수백 가지의 상상을 끌어낼 수 있다는 것도 참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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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ap of Faith 사진과 마찬가지로 인상 깊었던 것은 불빛이 나오는 두 개의 문 사이에서 한쪽 문을 향해 걸어가는 가운을 입은 남자의 사진이다. (비상구 초록빛 불빛이 비춰서 이상하게 찍힌 점 양해바랍니다.) 왼쪽 문가에서 남자가 나오는 것으로 보이며 문 아래쪽에는 종이들이 마구 날려 정돈되지 않은 모습이 보이고, 남자가 향하는 오른쪽 문에는 등잔과 레이스 달린 이불자락 같은 것이 있다. 일을 마치고 극도로 피곤해져 집으로 돌아가는 여정을 그런 식으로 표현한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든다.


또, 앞에 풍선 하나에 의지해 출근하던 남자와 비교해서 이 사진은 얼마나 우울한가. 일을 시작하면 화가 날 때도 잦지만, 그래도 돈을 벌고 있으니 사람 구실을 한다는 생각이 들어 안심되기도 하고, 일을 끝낼 때쯤엔 녹초가 되어 어떤 생산적인 생각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된다. 그러면서도 일이 없으면 얼른 일자리를 찾아야 할 것 같고, 일을 시작하면 또 다른 것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악순환의 고리다.


만약 에릭 요한슨이 미래가 보장된 엔지니어의 길을 버리고 사진작가를 선택한 것처럼 자기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일에 쏟을 시간과 비례해서 상승할 기회비용을 고려해도 만족할 수 있을까? 일 자체가 취미 생활이 될 수 있을까. 어쩌면 가능할 그 미래 앞에서 고민하는 나는 풍선 하나를 잡지 못하고 있는 사람인 것만 같았다.




02. 너만 몰랐던 비밀

A Secret You Didn’t Kn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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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Full Moon Service, Erik Johanson



너무나 뻔해서 이제는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바보 최급을 당할 명백한 과학적 사실이 있다. 달이 지구 주변을 공전하고, 지구는 태양의 주변을 공전하기 때문에 해와 달이 있다는 것이 대표적이다. 에릭 요한슨의 사진 속에는 사람들이 달을 따서 트럭의 짐칸에 넣는 모습이 보이는데, 아무리 오래된 상상일지라 하더라도 그의 그림이 주는 신비함에 매료된다.


실제로 그럴지도 모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만큼 그의 사진은 너무나 사실적이라서, 세상에서 중요한 비밀을 숨기기 위해 사실을 알려주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나도 상상에 빠져버린다.


“상상하라! 만약 이것들이 사실이라 해도 여러분의 일상에 나쁜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니 말이다.”




03. 어젯밤 꿈

Last Night’s 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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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Under the Corner, Erik Johanson



3번 장에서 다루는 내용은 약간 초현실주의 작가들의 그림과 유사하다. 다른 쪽에서 봤을 때 입체적이었던 장면이 분명한데, 그걸 다른 곳에서 봐도 그럴듯해 보이는 그림이다. 반복에 반복, 아무리 달려도 끝은 보이지 않고 어떻게든 빠져나가려 해도 빠져나갈 수 없다.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할 수 없는 미로에 갇혀버리는 악몽을 그런 식으로 표현했다. (이를 전문적인 용어로는 함께 있어서는 안 될 몇 가지가 동시에 나타난 기법 : 데페이즈망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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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Vason, Erik Johansoon



에릭 요한슨의 그림은 다소 긍정적인 어감으로 느껴지는 ‘상상’이라는 단어를 결합했지만 어두운 요소들이 상당히 많다. 이 악몽 부분들도 대부분 혼란스럽고 어두운 이미지를 사용한 점이 특이하게 보였다.


왜냐하면 언제부턴가 상상이라는 것에도 가능성이라는 이름으로, 긍정적이어야 한다는 규제가 있어 부정적인 것은 쉽게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발전 가능성 없는 감정이란 늘 쓸모없는 것 취급당해왔던 게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에디슨의 위대한 발명, 하늘을 날 거라는 라이트 형제의 비행기, 유명한 과학자의 현실성 있는 상상만이 발전 가능성 있는 것으로 판단되었다. 그리고 세상은 앞으로 나아갈 수 없게 만드는 트라우마를 극복하라고 하며, 아무 쓸데없는 불안과 공포를 이겨내고 ‘인싸’가 될 것을 명령하곤 한다.


그렇기에 에릭 요한슨이 던지는 두려움이라는 단순한 감정을 상상하는 사진이 이렇게 한 벽면에 전시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그렇게 생산성 없이 감정만을 느끼고 있어도 된다거나 한 자리에 머물러 있어도 괜찮다, 는 위로를 안겨주었다고 할까. 꼭 극복하지 않아도, 너 자신이어도 괜찮다는 백 마디의 말이나 책보다 더 큰 위로였다.




04. 조작된 풍경

Fabricated Landsca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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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Cut and Fold, Erik Johanson



에릭 요한슨 사진전 중 인상 깊은 것은 도로를 들어내거나, 사람이 도로를 색칠하는 모습이었다. 당연히 발밑에 자리 잡을 도로를 색칠하는 거나, 도로 포장지를 까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얼마나 많은 고정관념이 내 머릿속에 자리 잡았는지를 다시 한 번 깨달을 수 있었다.


나와 같은 사람들이 주어진 세상에서, 누군가 한 말이 사실이라 믿으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면, 에릭 요한슨이라면 정말 세상을 바꿀 수 있을 인물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는 적어도 눈에 보이는 것들을 바꿀 힘이 있으니까.


아마 에릭 요한슨이 재난 영화를 만든다면, 겨우 물과 비로 씻어내리면 사라지게 할 수 있는 검은 연기가 아니라 좀 더 그럴듯한 공포를 조성할 수 있지 않을까? 그의 공포는 현존하는 세상에 새로운 것을 추가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있는 것을 재구성하고 파괴하면서 생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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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The Light Keeper, Erik Johanson



에릭 요한슨의 전시회는 놀라운 것을 보려 했던 나에게 그보다 더 많은 것을 충족시켜주었다. 한없이 불안하고 보이지 않는 미래에 대해서, 뭔가 거창한 것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은 당연했다. 그리고 악몽이라고 표현될 수 있는 다른 사람들은 쉽게 이해하지 못할 나의 불안감을 꼭 극복해서 앞으로 나아가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모든 사람이 자존감이 높고, 단점도 하나도 없는 완벽한 인간이 되길 추구할 수는 없으니 그렇게 단점 많은 나를 나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도 알았다.


무엇보다도 에릭 요한슨의 전시회는 눈이 꽤 즐거웠다. 3d max, 포토샵 등등 컴퓨터 프로그램 툴을 많이 다뤄보면서 때론 잘하는 사람들과 나의 실력을 자연스레 비교하고 실망하고, 앞으로 나아갈 동기가 되곤 했는데, 그의 삶은 나와는 완전히 다른 삶이었기 때문일까, 예술을 그저 예술로만 바라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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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Imminent, Erik Johanson



언니가 대학 입시 미술을 배울 때 미술학원에서 똑같은 것을 그대로 그리라고 했었는데, 아마 에릭 요한슨이 우리나라 사람이었다면 그의 그림도 베끼는 수업이 있지 않을까. 또는 그의 작품에서 4차 산업혁명을 끌어내며, 시대의 흐름에 부합하는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포토샵 리터치 기술에 대한 강좌가 개설될 수도 있겠다.


그의 사진 실력과 현실을 재구성한 구도, 그리고 리터치 실력도 분명 엄청났지만 에릭 요한슨이 이렇게까지 사람들의 마음을 잡아끄는 것은 누구도 쉽게 상상하지 못할 상상력 때문이다. 그리고 그 상상력은 어떻게 교육을 할 수는 없을 것만 같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꼭 상상력이 넘치는 사람이어야 하는 건 아니지 않을까. 그것 역시 에릭 요한슨의 삶인 거고, 그의 전시회를 보고 온 우리 각자들도 자신들만의 장점이 있고, 단점도 있을 테고, 각자의 삶이 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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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요한슨 사진전
- Impossible is Possible -


일자 : 2019.06.05 ~ 2019.09.15

시간
오전 11시 ~ 오후 8시
(입장마감: 오후 7시 20분)

*
매달 마지막 주 월요일 휴관

장소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제7전시실

티켓가격
성인 12,000원
청소년(만13세-18세) 10,000원
어린이(36개월 이상-만 13세) 8,000원

주최/주관
씨씨오씨

후원
주한스웨덴대사관

관람연령
전체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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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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