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변주하듯 다른 사랑으로 - 수수께끼 변주곡 [도서]

다섯 가지 색 사랑 변주곡
글 입력 2019.08.05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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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라는 단어 뒤에는 ‘빠지다’라는 동사가 따라온다. 단순히 사랑을 ‘한다’는 표현보다는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이미지가 어울린다. 사랑에 빠지게 되면 부유하는 욕망 속에서 정신 차리지 못할 만큼 아찔한 체험을 하기 때문은 아닐까. 누군가의 사랑을 지켜보는 일도 마찬가지였다. 그 어떤 서사보다도 강렬한 힘으로 독자를 사랑의 세계로 초대했다. 마치 한 여름에 겪는 지독한 사랑의 열병처럼 찾아왔던 《수수께끼 변주곡》. 과연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까?

한 번 책을 읽어보자는 결심이 서기까지 다양한 요소를 고려하게 된다. 어떤 메시지를 담고 있는지, 작가의 문체는 어떤지, 작품 성향이 나와 잘 맞는지 등. 하지만 《수수께끼 변주곡》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생각보다 단순했다.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원작 소설인 《그해, 여름 손님(CALL ME BY YOUR NAME)》으로 이름을 알린 안드레 애치먼의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비슷한 톤의 작품일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추측과 기대로 첫 장을 펼치게 되었다.

《수수께끼 변주곡》은 다섯 편의 사랑 이야기가 마치 변주곡처럼 연주되는 장편소설이다. 작가는 다섯 편의 이야기를 남부 이탈리아 해변 마을, 눈 덮인 뉴잉글랜드, 센트럴파크의 테니스코트, 이른 봄 뉴욕의 거리 등 시공간에 따라 사람 사이의 욕망을 발견하고 이를 생생하게 서술한다. 한편 <첫사랑>, <봄날의 열병>, <만프레드>, <별의 사랑>, <애빙던 광장>은 주인공 폴(파올로)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이는 각기 독립된 완성도를 보여주는 동시에 ‘사랑’이라는 하나의 흐름으로 수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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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문에 돌아왔다."

소설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주인공 폴(파올로)이 이탈리아의 한적한 섬을 찾은 건 오로지 그 때문이었다. 한때 살았던 집이나 섬, 아버지를 위해서도 아니고, 홀로 앉아 있었던 노르만 양식의 예배당 때문도 아니었다. 어린 시절이 담긴 곳곳을 방문하면서 이미 사라지고 없는 무언가를 향해 하염없이 걷게 된다. 첫 번째 이야기인 <첫사랑>은 어른이 된 폴이 첫사랑의 흔적을 따라 밟으며 추억을 회상하는 이야기이다.

처음 시작하는 모든 건 왜 유독 어설프게 느껴질까. 좋아하는 사람에게 기대하다 실망하기를 반복하고, 자신의 감정을 사랑이라고 인정하기까지 혼란을 겪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첫사랑이 어떤 사랑보다도 움푹 팬 자국처럼 깊게 남아있는 건 아닐지. 그래서인지 <첫사랑>의 잔상이 오래도록 남았다.

한편 그는 해맑은 소년에서 욕망을 지닌 청년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길을 잃은 존재였다. 아무것도 모른 채 누군가의 삶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렇게 첫사랑의 기억을 감각으로 더듬는 시간들을 따라가다 보면 문득 나의 지나온 사랑이 어땠는지 떠올리게 된다. 


온 세상 앞에서 시를 암송할 때처럼 떨리고 허둥지둥하게 만들었다. 그를 쳐다볼 수도 없었다. 시선을 다른 데로 돌리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의 눈이 너무 맑았다. 그 눈을 만지고 싶은 건지, 그 안에서 헤엄치고 싶은 건지 알 수 없었다.

- p.25


좋아하는 사람의 이름만 들어도 온몸이 얼어붙고, 그 이름 주위에 쌓은 방어벽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지 않던가. 일상의 모든 것이 낯설어지고 어색해지기도 한다. 조금이라도 더 가까워지기를 욕망했던 시간들, 한 사람을 향해 모든 시선을 빼앗기는 경험 등 사랑을 했다면 느껴봤을 법한 감정들이 섬세하게 나열된다.

그뿐만 아니라 현재 시제와 현대적 도시를 배경으로 남자와 여자, 남자와 남자 그리고 남자의 수수께끼를 날카롭게 풀어 가는 <봄날의 열병>, 다섯 가지 이야기 중 최고조의 욕망을 표출하는 <만프레드>, 한 여자를 통해 욕망을 키워온 자신을 바라보는 <별의 사랑>, 한 사람의 인생을 통틀어 사랑의 대상, 의삭과 성적 욕망이 어떻게 흐르고 완성 혹은 좌절되는지를 보여주는 <애빙던광장>까지. 이처럼 다섯 가지의 사랑 이야기는 사랑이라는 큰 틀 안에서 끊임없이 변주된다.

변주의 본질은 '변화'이다. 사랑이라는 기본적인 멜로디는 그대로 존재하지만, 그 속에서 펼쳐가는 방식이 다른 것처럼 사랑의 모양도 각기 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변주가 있는 삶과 사랑이기에 더욱 아름다운 건 아닐까. 어떤 모양이든 그 자체로써 의미 있는 것이다. 《수수께끼 변주곡》을 한 사람의 사랑 이야기로 읽어도 좋고, 어디로 흐를지 모르는 변주곡처럼 보아도 좋다고 생각한다.



도서 정보

제목: 수수께끼 변주곡(원제: Enigma Variations)
분류: 소설 / 외국소설 / 영미소설
지은이: 안드레 애치먼(André Aciman)
옮긴이: 정지현
출판사: 도서출판 잔
발행일: 2019년 7월 17일
판형: 130×195(mm) / 페이퍼백
페이지: 336쪽
정가: 13,800원
ISBN: 979-11-965176-9-4 03840



책 소개

《그해, 여름 손님(CALL ME BY YOUR NAME)》 작가
안드레 애치먼의 다섯 가지 색 사랑 변주곡

사랑에 대한 섬세한 통찰로 탄생한 《수수께끼 변주곡》
‘첫사랑의 마스터피스’에서 ‘현대 문학의 마스터 스타일리스트’로 자리하다!

여름이면 가족과 함께 남부 이탈리아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는 열두 살 소년 폴. 어느 날 별장을 찾아온 목공 조반니(난니)를 만난다. 어머니가 앤티크 책상과 액자 두 개를 복원하기 위해 부른 터였다. 그 후 가족의 눈을 피해 그의 작업실을 드나들며 동경 그 이상의 감정을 느끼게 되는데…….

그를 쳐다볼 수도 없었다. 시선을 다른 데로 돌리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의 눈이 너무 맑았다. 그 눈을 만지고 싶은 건지, 그 안에서 헤엄치고 싶은 건지 알 수 없었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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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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