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시 감상' 취미에 대한 고찰 [문화 전반]

글 입력 2019.07.30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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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수험생으로서 수능을 볼 때 힘든 수험생활 속 한 줄기 빛이 되어준 과목은 바로 국어영역, 그 중에서도 ‘문학’ 파트였다. 대부분의 수험생에게는 매번 모의고사마다 바뀌는 문학 작품들이 하나의 장애물이 된다고 하지만, 나에게 있어서는 매번 바뀌는 문학 작품들은 수능 공부의 활력소를 불어넣어 주는 존재였다.


수필, 소설, 시 등의 다양한 장르가 존재하지만, 그 중 나에게 공부할 때마다 묵직한 울림을 주는 것은 ‘시’였다. 한 눈에 무슨 말을 하려는지 보이는 시, 여러 번을 읽어도 도무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어서 참고서를 찾아보곤 했던 시 등 여러 시가 있지만, 항상 읽고 나면 여운이 남는다는 점은 공통적이었다. 수능 공부를 하며 우연히 시를 감상하는 취미를 얻게 되어 지금까지 향유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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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애정하는 시집 중 하나

윤동주 시인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필사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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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사본 내부는 다음과 같이 생겼다.

(P.S 아날로그 감성 어디 못 간다.)



어떤 대상이 나에게 있어서 틀에 박힌 것으로 인식되거나 어떤 방식으로든 자유로움을 느끼지 못하면 금새 싫증을 내는 성격 탓에 딱히 취미라고 할 것이 없었다. 그랬던 내가 시를 왜 자발적으로 읽고 찾아보고, 시집을 고르러 산 넘고 물 넘어 독립 서점에 가나 생각을 해보았다. 해답은 바로 시를 향유하는 나의 마음가짐에 있었다.


기존에 내가 나의 취미인 시 감상을 하던 방식은 다음과 같다. ‘옳게’ 또는 ‘맞게’ 해석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저 이해가 될 땐 같은 사물을 보고 표현하는 방식이 이토록 아름답구나, 이해가 안 될 때는 요리조리 상상을 하며 무슨 표현을 하려고 했던 걸까 생각해보았다. 그뿐이었다. 그렇게 자유롭게, 다시 말하면 아무 구속도 받지 않고 내 마음대로 내 뜻대로 시를 보고 시와 함께 놀고 있었다.


이번 기고에서는 대학 진학 후 국어 과외를 하며 겪었던 기억에 남는 일화에 대해 소개해보고자 한다. 미술을 전공으로 하는 예체능 계열 고등학생의 국어 과외를 맡게 되었는데, 어느 날 새벽에 급박한 문자를 받게 되었다. 학교에서 수행평가를 내주었는데, 주어진 시를 해석하고 그에 맞는 그림을 그리는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 주어진 시가 인터넷을 다 뒤져봐도 관련된 해석이 하나도 나오지 않아서 해석을 도와달라고 했다.


나는 시 읽는 것을 좋아하지만, 이렇게 중요한 과제에 관련 해석 한 줄 읽어보지 못하고 신빙성 있게 아예 해석을 새로 하는 것은 처음이라 나 또한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내 차근차근 한 줄씩 음미하며 나만의 주석을 달기 시작하였고,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시는 한용운 시인의 ‘고적한 밤’이다.)


하늘에는 달이 없고 땅에는 바람이 없다 = 당연히 있어야 할 것이 존재하지 않음.


사람들은 소리가 없고 나는 마음이 없다 = 마찬가지로 으레 있어야할 것이 있지 않음, 마음이 있지 않다는 데서 글쓴이의 특정 대상에 대한 상실감을 엿볼 수 있음.


우주는 죽음인가요, 인생은 잠인가요 = 길고, 미지의 대상인 우주와 인생을 부정적 이미지로 표현함 (죽음, 잠)


한가닥은 눈썹에 걸치고 한가닥은 작은 별에 걸쳤던 님 생각의 금실은 살살살 걷힙니다= 금실은 님과의 사랑의 정도를 상징. 걷힌다고 하니 사랑의 정도가 후퇴함을 의미한 손에는 황금의 칼을 들고 한손으로 천국의 꽃을 꺽던 환상의 여왕도 = 환상의 여왕은 글쓴이가 사랑하는 대상을 상상 속에서 표현한 대상.(사랑=환상) 근데 황금의 칼을 한손에 듦. (황금은 좋은 것이지만 역설적으로 그것으로 만들어진 칼임. 양면의 의미를 지니고 있음)


,한손으로 천국의 꽃 = 위 표현의 대구 표현으로, 천국의 꽃은 좋은 것이지만 그걸 꺾음으로서 환상의 여왕, 즉 글쓴이가 사랑하는 대상은 양면적 의미를 지니고 있음.


그림자를 감추었습니다 = 그 여인(애인)이 나에게서 사라져갔다.


아아, 님 생각의 금실과 환상의 여왕이 두 손을 마주잡고 = 님 생각(현실에서의 글쓴이의 그녀), 환상의 여왕(글쓴이 애인의 상상 속 이미지)가 두 손을 마주 잡았다는 것은 현실과 상상의 합일이라 볼 수 있음.


눈물의 속에서 정사 한 줄이야 누가 알아요 = 정사는 애정을 나눔을 의미. 눈물 속이라는 것은 사랑의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음을 의미.


우주는 죽음인가요,인생은 눈물인가요 = 침잠하는 이미지. 하강의 이미지.


인생이 눈물이면 죽음은 사랑인가요 - 인생=눈물의 전제 하에 죽음 = 사랑이면 죽음=우주와 동일하니 사랑=우주라는 논리. 그럼 글쓴이에게 사랑, 즉 애인의 존재는 전 우주와 같은 것이었는데 이것이 깨짐으로서 우주, 즉 글쓴이의 세상이 죽었다고 표현하여 ‘우주는 죽음인가요’라는 표현이 나왔다고 볼 수 있음


*


이렇게 갑작스러운 시 해석을 부탁 받은 후 과외 학생이 만족스러운 상을 탔다는 연락을 받으며 필자의 기존 취미에 대해 한 가지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바로 시를 읽을 때, 다시 말해 취미로서 향유할 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틀에 박힌, 맞고 틀린 것을 판별할 수 있는 해석이 아니라 본인의 감정과 느낌이 흘러 가는 대로 해석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어디 가서 본인이 좋아하는 시, 시에 대한 토론 등을 즐기는 나이지만, 취미로서 읽던 시와 책임감을 갖고 분석해야 하는 시는 나에게 완전히 다른 두 가지 것으로 다가온 느낌이었다. 생전 처음 보는 시를, 관련 정보도 없이 해석해서 누군가에게 전하는 과정을 통해 내가 느낀 것들이었다.


‘시 감상’이라는 취미를 지속적으로 지치지 않고 향유하기 위해서는 위의 내용을 항상 마음에 지니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아울러 다른 모든 취미를 즐김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잘하겠다는 마음가짐은 좋지만 그것이 타올라 자신을 구속하면 안된다는 것을, 오늘도 되새기며 새로 산 시집을 보듬어 본다.



[황혜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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