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배철수의 음악캠프, 나의 첫 음악 [음악]

[배철수의 음악캠프] 앨범에 수록된, 아직도 첫 1초 만에 후렴이 기억나는 곡들을 이야기한다.
글 입력 2024.04.18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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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철수의 음악캠프.

 

올해로 34주년을 맞은 MBC FM4U의 자존심이라고도 할 수 있는 팝 음악 전문 라디오 프로그램이다. 개인적으로 라디오를 많이 듣는 환경은 아니었던지라 내가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접한 것은 실물 CD를 통해서였다. 전설들의 이름 사이에 DJ 배철수의 얼굴이 어렴풋이 보이는 이 앨범. 앨범은 디자인의 담백함만큼이나 당연하게 보장된 즐거움이었다.


2009년, 배철수의 음악캠프 7,000회를 기념하며 발매된 라디오와 동명의 컴필레이션 앨범은 1960년부터 10년 단위로 그동안 발매된 명곡이 담겨 총 3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 ABBA, QUEEN에서 Stevie Wonder, Elton John까지 (1960~1970년대)

2. Duran Duran, Chicago에서 George Michael, Oasis까지 (1980~1990년대)

3. Britney Spears, Christina Aguilera에서 The Black Eyed Peas, Maroon 5까지 (2000년대)



특히 앞의 두 앨범은 나의 기억 속 가장 첫 음악들이 담겨있는 앨범이다.

 

음악이 데리고 가주는 아득한 기억 속 어떤 구절. 흐릿한 기억에 더 낭만이 묻어나는 곡들. 처음으로 타본 자동차 조수석, 자리의 특권으로 직접 틀었던 아빠의 CD 속 노래들.


우연하게 마주친 이 앨범. 10년이 훌쩍 지나 다시 마주한 배철수의 음악캠프는 여전히 좋았고, 노래들이 데리고 가준 낡은 기억들도 퍽 즐거웠다.


 

 

가장 좋은 노래는 우연하게 만나게 된다



주말 오후 11시, 사방이 조용한 시간에 줌에 접속한다. 필자는 음악 라디오 동아리를 한다. 비대면으로 진행되는 이 동아리에서는 그 주에 선정된 주제를 가지고 각자 생각나는 음악과 이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낸다.


지난 주말의 기고 주제는 [듣고 나면 두근거림이 멈추지 않아 무언가 시작하지 않고서는 못 배기는 노래]였다. 15명이 해석한 주제는 세상에 존재하는 음악의 장르만큼이나 다양했다. 어떤 이는 유독 기타 리프에 벅차올라 발을 동동거리는 듯했고, 또 어떤 이는 디스코 비트에 어느새 어깨를 옴짝달싹하는 듯했다.


미간을 피지 못하고 방안에 음악이 흘러넘치다가 금세 2시간이 흘렀다. 줌 방은 사라졌지만 좀처럼 여운이 가시지 않아 그날의 플레이리스트를 듣고 또 들었다.

 

 

 

 

유독 마음에 꽂히는 한 곡이 있었다. 자미로콰이의 “Little L”. 소리만으로 디스코 볼이 연상되는 들뜸이었다. 당장에라도 일어나서 무언갈 하고 싶어지는 달아오름에 이 곡을 선정한 익명의 동아리원이 너무도 이해가 갔다. 이 곡을 추천하지 않고선 어떻게 배길 수 있었을까.


어쩔 수가 없다, 자미로콰이니까.


기억이 난 이상 불가항력적으로 계속 들을 수밖에 없다. 나에게 있어 자미로콰이의 노래는 항상 여러 곡 사이에 있을 때 유독 더 눈에 띄는 노래다. 들을 때마다 새로운 매력을 발견하게 되는 이들의 음악은 매번 단 한 곡으로도 내 플레이리스트의 ‘반복 재생’을 누르게 한다.

 

나의 20대에도, 나의 10대에도.

 

 

 

처음으로 직접 틀었던 곡을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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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듣게 된 자미로콰이의 노래는 [배철수의 음악캠프] 앨범에서 찾을 수 있었다. 실려있던 “Virtual Insanity”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였다. 어린 날의 나에게는 이 단어들이 너무 어려워서 제목은 외우지 못하고 흥얼거리며 노란 앨범을 열고 두 번째 CD에서  6번째 곡이 나올 때까지 돌렸다. 블루투스로 노래를 연결하는 게 아니라 직접 조수석에서 CD를 넣고 번호까지 보면서 돌려야 하는 그런 때가 있었다.


“Virtual Insanity”만 주구장창 틀고 있으면 운전석에서 못 참겠다는 듯이 아빠가 신청곡을 말해 주곤 하셨다. 비트가 강렬하고 그루비한 곡을 좋아하는 딸, 대학 시절 클래식 기타 동아리 회장을 한 아빠 사이에는 항상 곡 선별권을 가지고 은근한 긴장감이 맴돌았다.


그래도 같은 앨범 안에서 번갈아가며 곡을 틀다가 이젠 누구 차례인지 신경도 안 쓰일 즘에는 같이 가사를 따라 부르고 있었다. 그렇게 음악과 함께 떠나는 나들이가 좋았다. 뒷좌석과는 다르게 앞유리를 통해 오는 햇볕으로 따뜻해지는 팔. 글로브박스에서 앨범들을 꺼내 뒤적거리며 보던 가사들이 좋았다.


글을 쓰며 아빠께 앨범에서 가장 좋아하시는 곡이 어떤 건지 여쭤봤다. 제목만 보고는 가물가물 했던 기억이 첫 1초를 듣자마자 후렴까지 기억이 났다.


비트를 쪼개가며 듣는 옴짝달싹 밴드들의 두 곡과 클래식 기타의 차분하고 섬세한 소리를 담은 두 곡을 담는다. 예전처럼 공평하게.




1. "Virtual Insanity" - Jamiroquai


 



1996년 3집 [Travelling Without Moving]에 수록된 이 곡은 자미로콰이의 가장 유명한 대표곡이라고 할 수 있다. 발매된 지 20년이 훌쩍 지났지만,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세련됨을 자랑한다. 그 정수는 뮤직비디오에 있는데, CG를 사용하지 않고 벽을 통째로 움직여 촬영한 비주얼은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충격을 가져다준다.


블랙코미디를 좋아하는 나는, 어두운 이야기를 할 때 주제의 무거움을 웃음으로 덜어내 줄 수 있는 재치를 보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 점에서 “Virtual Insanity”는 재치 넘치는 곡이라고 하고 싶다. 가사만 뜯어놓고 보면 기술 발전의 어두운 면 때문에 광기의 미래에 살고 말 것이라는 다소 디스토피아적인 이야기를 전하고 있지만, 보컬 제이 케이의 잔망스러운 목소리는 왠지 웃음을 짓게 한다. 그럼 이 웃음은 미래에 대한 자조일지도.

 

후렴구에 도달하기 전 초반 오프닝 부분을 충분히 즐기길 바란다. 스타카토로 끊어 말하는 딕션으로 통통 튀면서도 한편으론 꾹꾹 눌러담아 풍자하는 것 같이 들리는 것이 매력이다.

 

 


2. "Can’t Help Falling in Love" - UB40 


 


 

[배철수의 음악캠프] 1980~1990년대 앨범 기준으로 “Virtual Insanity” 다음 곡이다. 전 곡이 페이드아웃으로 잔잔하게 마무리되면 에코 가득한 보컬이 치고 들어오는 순간이 좋았다. 첫 소절이 끝나고 나면 땅이 울리듯 들려오는 타악기와 함께 트럼펫이 등장한다. 그때부터가 본격적인 시작이다. UB40의 “Can’t Help Falling in Love”이다.


감미롭게 시작하던 보컬이 파워풀한 연주로 반전되는 느낌이 정말 몸을 움직이지 않곤 배길 수 없게 만든다. 60년대에 엘비스 프레슬리가 부른 것이 원곡이지만 레게 팝 밴드인 UB40만의 재해석이 많은 사람을 매료시킨 것인지, 롤링스톤이 발표한 “The 500 Greatest Songs of All Time”에도 올라갔다. 이렇게 반전 가득하게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다고 호소하는 노래라면 듣는 이 자신도 모르게 얼렁뚱땅 매료되어 이 노래를 사랑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3. "More Than Words" - EXTREME


 

 

 

앞선 두 곡과 상당히 다른 분위기의 곡이다. 유추할 수 있겠지만 여기서부터가 클래식 기타를 사랑하는 분의 추천 곡들이다. 곡들을 추천하는 이유 역시 짤막하게 여쭤봤었을 때, 'Unplugged music의 대표곡이기 때문에' 좋아한다는 답변을 얻을 수 있었다. Unplugged music은 이름에서 다소 직관적으로 유추할 수 있듯이, 전자 악기 (일렉 기타나 신시사이저 등)을 사용하지 않고 연주할 수 있는 음악들을 일컫는다. 어쿠스틱 기타나 전통적인 피아노 등으로 이루어진다.


Unplugged music의 대표곡답게, “More Than Words”는 첫 반주부터 어쿠스틱 기타가 보여줄 수 있는 손맛을 기타 퍼커시브를 통해 보여준다. 어쿠스틱 기타 하나만으로도 멜로디와 박자감을 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곡과 같다. 게다가 섬세한 솔로 연주 애드립으로 곡이 마무리되며 마치 멋을 내기 위해서 많은 것 필요 없이 기타 하나만 있으면 된다는 걸 말해주는 듯하다.


조금 놀라운 것은 이 감성적인 곡이 사실 록 밴드의 노래라는 것이다. 해당 곡이 실린 EXTREME의 앨범 [Pornograffitti]의 거의 유일한 감성적 곡이라 이 곡의 분위기를 생각하고 전체 앨범을 들으면 다소 당황할 수 있다. 그렇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더욱 아껴 듣는 노래가 된다. 호소력 짙은 록 밴드의 보컬과 깔끔하게 아름다운 기타 연주가 어느 것 하나 묻히지 않고 생생하게 들린다.


 

 

4. "Vincent" - Don McLean


 


 

이 곡 역시 어쿠스틱 기타의 매력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이 신청곡의 이유는 ‘가사가 아름답기 때문’이었다. 제목과 첫 가사인 ‘Starry, starry night’을 통해 자연스럽게 화가 빈센트 반 고흐를 떠올릴 수 있는 이 곡은 돈 매클레인이 고흐의 일대기를 읽고 감명받아 만들어졌다. 생전에 화가가 듣지 못했던 위로를 담은 이 곡은 눈을 감고 듣기를 추천한다. 소리에 온전히 집중하면 당신이 어디에 있건, 짙은 파랑 위에 떠오르는 따뜻함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고흐의 눈에 담았던 별이 빛나는 밤의 풍경을 귀로 듣는다면 이 곡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예술은 시대를 초월해 사람들에게 위로를 건네곤 한다. 비록 작품 바깥의 것들은 시간에 닳고, 사라지고, 변하기도 하지만 작품은 작품 그대로 영원히 존재한다. 작품을 둘러싼 평가는 허무하리만치 변할 수 있다. 그렇지만  작품이 전하는 유일무이한 이야기는 시간이 지나도 그 존재 안에서 살아 숨 쉴 수 있는 불멸의 것이다.


100년 전의 그림에 위로를 건네는 이 곡이 빛 바라지 않길 바란다. 그리고 그만큼의 시간 뒤에도 누군가에게 온도를 나누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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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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