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썰썰] 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

왕비를 이해하기까지 나는.
글 입력 2019.07.21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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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


이게 어디서 나온 말이더라. 아, 백설공주. 종일 거울을 들여다보던 왕비가 한 말이잖아. 왕비는 거울에게서 백설공주가 왕비보다 훨씬 예쁘다는 얘기를 듣고 백설공주를 죽이려 하지. 아마 이 동화를 읽고 자란 어린이들은 왕비를 나쁘다고 생각했을 거야. 나도 왕비가 아주 사악한 악당이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말이야. 어느 순간 내가 왕비가 되어 있지 뭐야. 한 손엔 거울을 들고.

20대 초반이었을 때 나는 외모에 관심이 많았어. 하루도 빠지지 않고 화장을 열심히 했고 매 순간 거울을 들여다봤지. 시시때때로 얼굴을 비추면서 화장이 잘 먹었는지, 얼굴 살이 올랐는지 따위를 확인했고 그러다 매번 아쉬운 점을 찾아냈어. 왕비처럼 거울에게 말은 걸진 않았지만, 거울은 끊임없이 내게 말을 걸던걸.
 
‘눈이 좀 답답해. 몽고주름 좀 봐. 앞트임 할까?’
‘콧대가 너무 낮은데.. 요즘 필러 얼마 안 하더라.’
‘살이 좀 올랐네? 턱 보톡스 예약해야겠다.’

거울의 이야길 듣고 있자면 한시라도 빨리 이걸 고쳐야 할 것 같았어. 급격히 올라간 심장 박동이 당장 큰일 날 것처럼 사이렌을 울렸으니까. 머릿속 거울에게 “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 하고 물으면 들려오던 답은 “응. 너는 아니야!”. 그리고는 나보다 훨씬 예쁜 여자들을 비추는 거야. 개중에는 나보다 눈이 더 큰 동기도 있고 코가 오똑한 아는 동생도 있었어. 그들과 비교하면서 내 얼굴의 견적을 냈지. 노력하면 따라잡을 수 있을 것만 같더라고. 목표는 세상에서 제일 예쁜 건 아니더라도 거울의 대답에 살이 붙는 거였어. “주인님도 예쁘시지만…” 이라는 부연 설명.

당시엔 필러나 보톡스 같은 얼굴에 칼을 대지 않는 시술, 쁘띠 성형이 유행했는데 내 주변만 해도 코 필러를 맞았네, 윤곽주사를 맞았네, 하는 사람이 많았거든. 그래서 나도 시술 정도야 별거 아니란 생각이었어. 그저 예뻐지기 위한 노력 정도? 인터넷 커뮤니티에 돌고 도는 시술 후기 사례처럼 욕구를 부추기는 것들은 도처에 널렸어. 턱 보톡스 한 방을 맞는 게 화장품 가게에서 섀도우를 집어 결제하는 것처럼 쉬웠지. 집으로 가는 지하철에서만 5개째 성형 광고를 봤고 나는 턱 필러 시술을 예약했어. 아마 인터넷에서 턱 필러를 맞고 브이라인이 된 후기를 보고 마음을 굳혔을 거야. 콤플렉스였던 부위가 아니라 단 한 번도 불만 없던 턱에 주사를 맞겠다는 건 순전히 그런 이유였지. 남이 해서 예뻐졌다는 건 나도 해볼 만한 일이였어. 지금 생각해도 정말 충동적이었구나.

섣부른 선택에 대한 후회는 생각보다 이르게 찾아왔어. 막상 병원 시술대에서 강렬한 조명을 마주하니 그제야 정신이 들더라. 내가 지금 여기서 뭐 하는 거지. 예뻐지기 위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외모가 뭐길래? 거센 회의감이 날 집어삼키고 금방이라도 시술대 위에서 내려오고 싶었지만 이미 무를 수 없는 노릇. 내 턱으로 마취주사가 놓이고 하얀 마스크를 낀 의사가 감각 없는 턱에 액체인지 고체인지 모를 것을 밀어 넣었어. 턱 모양을 맞추는 느낌은 생각보다 더 오묘했는데 마치 인형이 된 기분이었지. "어떤 모양으로 해줄까요?” 그 질문이 얼마나 이상했냐면, 내 얼굴이 그 의사 손에 달렸다고 들려서 두려웠어.

시술 결과 내 턱은 브이라인이 됐고 한 달간은 거울 보는 재미가 있었어. 빗살무늬 토기처럼 날카롭게 떨어지는 턱라인이 꽤 마음에 들었지. 게다가 상대적으로 입이 들어가 보이는 효과도 있었거든. 우습지만 맞길 잘했단 생각까지 했다니까. 물론 그것도 얼마 가지 못했어. 두어 달쯤 지나니까 턱이 점점 불편한 거야. 습관적으로 턱을 괴다 이물감에 놀라고, 무심코 건드린 턱에 감각이 희미해서 무섭고. 6개월 정도 지속된다는 필러는 그 후로 2년이 지나서야 사라졌어. 턱끝을 누르면 바로 뼈가 만져진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그때 알았다니까. 다시는 얼굴에 인위적인 걸 넣지 않겠다 다짐했지.

시술은 간단하고 쉬운 것이란 인식이 얼마나 무서운지 아니? 그건 부작용을 모를 때나 하는 말이야. 나는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턱 필러 부작용에 시달리고 있어. 턱에 크고 작은 여드름이 잊을 만 하면 올라오거든. 그건 속부터 딱딱히 곪아서 턱 라인을 울퉁불퉁하게 만들며 부어올라. 그것도 정확히 필러를 맞은 자리에만. 이제는 공짜로 시술을 해준대도 생각이 없어. 부작용도 그렇지만, 인공적으로 외모를 보완하는 것에 근원적인 의문이 들었거든. 손에 들고 다니던 거울도 가방 깊숙이 넣어버렸지. 아예 깨부수진 못하겠더라고.

그래도 거울을 보는 횟수가 줄어듦에 따라 내게도 많은 변화가 일어났어. 더 이상 내 얼굴에서 흠을 찾으려 하지 않고 나노 단위로 품평하지 않아. 남들과 내 얼굴을 비교하지 않고 박탈감 느끼지 않아. 어쩔 수 없는 일을 어찌해 보겠다 성형 후기를 뒤지지도 않아. 거울을 보는 이유는 외관의 청결 때문일 뿐, 세세한 아쉬움을 느낄 만큼 외모가 중요한 항목이 아니게 된 거야. 내 머릿속을 지배하던 거울은 자취를 감췄어. 종일 거울에 매달리던 내가 스스로를 자유롭게 하니 남을 대할 때도 많은 변화가 생겼고. 더는 화장하지 않는 내 민낯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내 작은 눈을, 낮은 코를 창피해하지도 않아. 그냥 나인 거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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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백설공주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워지고 싶었던 왕비는 계속해서 물어.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지?” 줄곧 “왕비님이요.”하고 대답하던 거울은 어느 날 백설공주가 가장 아름답다고 대답해. 백설공주는 살결도 하얗고 머리도 검으니 왕비보다 젊고 아름답다고. 그 말에 왕비는 이성을 잃고 백설공주를 살해하라 이르지. 당연히 왕비가 나쁜 거잖아. 그런데 이젠 왕비가 측은해.

왕비는 거울을 통해 존재 가치를 확인받는 사람이야. 그 존재 가치는 아름다움이고 그걸 이루는 요소는 ‘젊음’이었지. 그런데 젊음은 누구에게나 왔다가 사라지는 공평하고도 잔인한 거잖아. 고로 왕비에게 아름다움은 젊음을 잃으면 사라지는 신기루 같은 것. 만에 하나 왕비가 백설공주를 죽이는데 성공했다면 거울은 왕비에게 만족할 만한 답을 내주었을까? 왕비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아니. 거울은 젊음과 생기를 지닌 또 다른 여인을 비추겠지.

왕비는 왜 거울에게 물었을까. 왕비는 왜 세상에서 가장 예뻐야 했나. 왕비의 세상에서 아름다움은 곧 행복으로 직결되니까? 왕비가 된 수단도 미모 덕이었기에 자신을 이룬 아름다움이 조금만 노화해도 불안했을까. 가만 생각해보면 불쌍하지 않아? 외모 밖에 가진 게 없다고 여기는데 그마저도 누군가를 통해 증명받아야 하잖아. 왕비라는 권력이 있음에도 말이야.

하지만 왕비의 세상이 과연 동화뿐일까? 1812년 그림동화로 탄생했다 생각한 이 거울은 그보다 더 옛날부터 존재했고 수많은 왕비를 비췄을 거야. 그리고 그건 아직도 깨지지 않았어. 지금도 지구의 왕비들은 거울에 제 모습을 비추지. 그리고 물어. “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

돌아올 거울의 대답을 기다리는 건 이쯤 하자. 이제 우리는 그 거울의 실체를 알잖아? 스스로를 품평하는 게 얼마나 비참한 일인지, 그 검열의 결과로 어떤 비이성적인 행동을 하게 되는지 너무도 많은 경험을 봐왔지. 한순간 깨지지 않을 거란 정도는 예상하고 있어. 세기가 몇 번을 바뀌어도 깨지지 않은 아주 단단한 놈이니까. 하지만 제아무리 단단해도 그건 거울일 뿐. 수만 번 두드리면 균열이 일지 않겠나.

백설공주 왕비를 두고 누군가는 이렇게 말했어. 왕비의 원초적인 죄는 거울을 부수지 못한 것뿐이라고. 우리는 우리의 거울을 박살 내 버리자. 그리고 더는 묻지 말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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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재이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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