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한 클래식 음악 전공자 이야기 [음악]

왜 클래식 음악을?
글 입력 2019.07.20 0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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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왜 클래식 음악을?



가끔씩 내게 물을 때가 있다. 넌 왜 하필 클래식 음악을 선택한 거야? 그 어린나이에 클래식의 어떤 점이 그렇게 좋았니? 감히 짐작해 보건대, 클래식을 전공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원초적인 질문을 본인에게 던져봤을 것이다. 본인은 앞이 캄캄한 미래를 그릴 때마다 이 질문을 던졌으며, 항상 마음속에서 돌아오는 답은 ‘어쩔 수 없지 뭐.’였다. 대체 뭐가 어쩔 수 없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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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 수가 없다.



너무 당연해서 어쩔 수 없고, 되돌아갈 수 없으니 어쩔 수 없고, 놓지 못하니 어쩔 수 없다.


본인의 표면적인 학업과정은 클래식을 전공한다는 학생들 중 평범한 축에 속하는 표본이 된다. 피아노과 학생으로서 예술중학교, 예술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음악대학을 입학했다. ‘음악’과 떨어져 본 기간이 아예 없다는 소리다. 5살 때부터 음악을 시작하고, 재능을 보이고, 예술 학교에 입학한다. 그 과정이 너무나 당연했고 포기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12살, 피아노 학원에 잠깐 오셨던 교수님의 권유로 피아노를 본격적인 전공으로 삼았을 때, 엄마는 내게 물었다고 한다. “정말 할 거야? 하고 싶니? 미래가 그리 밝지 않을지도 모른대.”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 그때의 나는 “그래도 할래.”라고 답했다고 한다. 어떤 생각이었을까, 대체 어떤 점이 내 대답을 그렇게 뚜렷하게 만들었을까 생각해본다. ‘자신감’ 이었던 것 같다. ‘피아노’로는 항상 전교 1등이었고, 시 대회도 출전한 12살의 ‘나’는 자신감에 가득 차있었고, 이 길밖에 보이지 않았다. 자신감이 준 스포트라이트가 너무도 밝아서, 그래서 어쩔 수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한국에서 꽤나 유명하다는 예술중학교에 입학하고, 큰 슬럼프를 겪었다. 의욕도 없었고, 자신은 더더욱 없었다. 생각했던 환경과 너무나 달랐고, 적응하지 못했다. 포기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포기하는 방법을 찾지 못해서 우울로 하루하루를 채웠다. 피아노 앞에 앉아도 더 이상 행복하지 않았고, 눈물이 앞을 가렸다. 그럼에도 난 포기할 수 없었다. 주위의 만류와 얄궂은 내 자존심은 날 그저 포기하게 두지 않았다. 그놈의 자존심은 나를 계속 그곳에 머무르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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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하게도 이름 있는 예술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했고 피아노를 그만두겠다고 다짐했다.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다시는 그 지옥 같은 시절로 돌아가지 않으리. 하지만 그때도 난 음악을 놓지 못했다. 그 시절 써놓았던 일기의 한 구절인 ‘피아노는 정말 그만하고 싶지만, 음악은 놓고 싶지 않아. 음악이 너무너무 좋아’라는 문장은 아직도 나에게 꽤 큰 울림이 있다.


피아노 뚜껑을 다시 연 건 딱 4개월만 이었다. 난 다시 피아노 앞에 앉기 시작했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피아노 치는 것 밖에 없다는 생각을 수 백 번 되뇌었다. 다른 도전을 하기엔 하고 싶은 것도, 할 수 있는 것도 없다고 느껴졌다. 난 그럼에도 음악이 좋았고, 할 줄 아는 음악이 클래식 피아노밖에 없었다. 그렇게 예술학교에 편입했다.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욕심냈고 노력했다.


대체 그때의 목표는 뭐였을까. 잘 생각이 나지 않는 걸 보니 이미 이루었거나,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시간이 갈수록 더더욱 다른 도전을 할 수 없었다. 클래식 피아노에만 이미 너무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하지만 싫지 않았다. 클래식 피아노를 연주하는 ‘나’가 갈수록 마음에 들었고, 타고난 음악성을 즐기며 그 아름다움을 충분히 즐길 수 있음에 감사했다. 그렇게 난 계속 클래식을 했다.


클래식 음악의 깊음이, 아름다움이 더욱 크게 다가왔던 건 대학생이 되어서였다. 그 오랜 시간을 클래식 음악 전공생으로 살아왔지만, 항상 무언가에 쫓겼다. 실기 등수에, 온몸이 바짝 굳는 레슨에, 중학생 시절의 친구들에게 뒤처지고 싶지 않다는 자존심에. 그런데도 참 이상한 점은, 그래도 좋다는 것이다. 그래도 음악이 좋고, 어둡던 슬럼프의 끝에 서니 피아노 연주도 참 좋았다. 대학생이 되어 전공 특성상 학기마다 클래식 음악 관련 논문을 써야 하고, 피아노 시험도 봐야 했지만, 훨씬 행복했다. 그 덕에 꾸준히 클래식 음악에 관한 글을 쓰게 되었고, 글을 사랑하게 되고, 현재 이렇게 글을 쓰고 있으니.


물론, 진로에 대한 막연한 걱정으로 ‘대체 난 왜 하필 음악을 선택한 거야.’라며 스스로 한탄할 때도 있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난 그래도 음악을 했을 테니 큰 후회는 하지 않기로 한다. 항상 등수와 상황에 쫓겼던 과거를 벗어나, 그 경쟁을 벗어나, 보다 넓은 세계로 발을 디뎠으니, 드디어 내가 클래식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가감 없이 인정할 수 있게 됨에 감사한다.


클래식의 깊음이 좋고, 시대마다 다른 음악이 매력적이고, 상징적인 선율들이 신비하다. 그래서 클래식 음악이 좋다. 그 음악을 공부할 수 있는 재능을 가진 나 또한 참 좋다. 이것이 전공을 시작했던 12살의 ‘나’를 현재의 ‘나’로 만들었고, 10년이 훌쩍 넘게 날 이끈 그 이유가 이렇게 원초적이었다는 것을 난 다 커서야 깨달았다.


아직도 어두웠던 과거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도 못했고, 후유증으로는 무시무시한 무대공포증을 얻었음에도, 그럼에도 난 클래식 음악이 좋다. 클래식 음악을 공부한 내가, 버텨온 내가 좋아져서 어쩔 수가 없다. 이것이 아무리 미래가 답답하고 어두워도 지금의 내가 음악을 그만 둘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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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클래식 음악을 공부하는 이유는 그때그때 달랐다. 그래서 명확한 이유를 대기 어렵다. 항상 어쩔 수가 없었다. 그것밖에 보이지 않았고, 그 외에 좋아하는 것을 찾지 않았다. 하지만 단 하나 확실했던 건 클래식 음악을 좋아한다는 사실. 그러니 그저 하는 수밖에. 여러 환경에 치여 나조차도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는지 몰랐다. 그냥 하던 거니까, 그래서 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내가 완전한 슬럼프와 실패 후 4개월을 걸쳐 딛고 일어설 수 있었던 것도, 자존심을 놓지 못했던 것도 모두 클래식 음악을 좋아했기 때문이었다. 그만큼이나 좋아했던 것이다. 그걸 대학생이 되어서야 한 번에 깨닫느라 조금은 무겁기도 했고, 벅차기도 했다.


이 글에 얼마나 많은 전공생 분들이 공감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대체 왜 난 하필 클래식 음악을 선택했을까’라는 질문을 거듭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적어도 이런 경우도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난 그저 좋아서, 힘들고 실패해도 어쩔 수 없이 다시 일어났다고. 정말 어쩔 수가 없었다고 말이다.
   



임보미 Editor 명함.jpg
 

[임보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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