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미스홍, 그림으로 자기를 찾아가다", 예술과 자아 회복의 이야기

글 입력 2019.07.18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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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3~4년 전 서점가를 컬러링북이 한창 휩쓸었던 적이 있다. 대형출판사의 교양서와 문학작품들, 그리고 기껏 해봐야 자기계발서나 수험서만이 차지했던 베스트셀러의 자리에 컬러링북이 등장하여 온 서점을 점령한 것이다. 복잡한 일상에서 벗어나 컬러링북을 펼치면 온전히 자신만의 시간이 되고, 자기 마음에 드는 색깔들로 빈칸을 칠해나가다 보면 소소하게나마 자신 안에 숨어있는 예술혼을 펼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스스로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면서 ‘힐링’을 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 대중이 흥미를 보인 것이다. 결국 미술이라는 수단을 통해서 사람들이 스스로의 내면에 집중하고 스스로를 돌아보는 기회를 가지는 것은 현대인에게 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미술을 이용해 상처받은 사람들을 치료해주는 미술치료사 김윤진 박사는 세상살이에 지친 한 사람이 온전히 스스로를 상대하고 알아가는 과정을 『미스 홍, 그림으로 자기를 찾아가다』에서 그리고 있다. 『미스 홍, 그림으로 자기를 찾아가다』은 무력감에 시달리는 직장생활 8년차의 30대 여성 ‘홍’이 그림을 그리며 본인의 내면을 찾아가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이다.


‘홍’은 김윤진 박사(저자, 이하 ‘김’)의 도움을 받아 매 시간 그림의 요소들, 그리고 다양한 소재를 하나씩 배우며 그림을 그리게 된다. 이 과정에서 처음에는 선을 긋고 색을 고르는 그림의 기본적인 요소부터 시작하여 본인만의 감정이 투영된 선과 색을 찾게 되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정물화, 인물화, 뿐만 아니라 현대미술에까지 도전하며 ‘홍’은 스스로의 방식으로 예술에 임하게 된다.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롭게 표현하고 있는 부분은, 그림의 각 요소와 그리는 대상을 접하며 한 개인이 자신의 내면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체험을 하는 장면들이다. 선을 그릴 때는 선을 반듯이 긋기 위해 집중하기보다는, 손으로는 선을 긋는 동작을 하면서도 마음으로는 선이 나아가는 것을 보며 마음에 일어나는 감정에 집중한다.


색을 사용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지정된 색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의 감정과 가장 가까워 보이는 색을 직감적으로 고르고 거기서 파생된 기분을, 손이 가는대로 그려본다. 또 정물이나 인물을 그릴 때 역시 사물을 똑같이 그리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그 사물이 어떻게 보였는지, 상대를 보는 나의 시각과 대상을 대하는 나의 태도를 스스로에게 상기시키며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이러한 그리기 방식은 완벽한 시각적 재현을 추구하는 고전미술의 방식 보다는 눈에 보이지 않는, 그렇지만 실재하는 감정들을 표현하고 그림에 투영하려고 한다는 점에서 현대미술을 지향한다. 저자는 현대미술이 전적으로 대상에 관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을 그리는 예술가에 내면에 관한 것이라고 말한다. 현대미술의 관점에서 작품은 대상 그 자체가 아니라 대상을 바라보는, 세상에서 유일한 시선을 통해 탄생하기 때문에 그림을 그리는 과정을 통해 자신을 알아갈 수 있다.


실제로 저자는 칼 구스타프 융, 마크 로스코, 세잔과 피카소 등의 미학자와 미술가들을 책에 소개하며 그림을 그리는 과정이 개인에게 어떻게 작용하고 한 예술가의 시선이 어떻게 독창적인 예술로서 탄생하는지 보여준다. 결국 『미스 홍, 그림으로 자기를 찾아가다』에서는 ‘나를 드러내는 방법’으로서의 그림에 대한 고찰이 드러난다. 궁극적으로 이 책은 아름다움은 대상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고유한 시선을 통해 발생한다는 것을 암시하면서 하나의 미술론을 제시하는데, 그래서 현대미술을 이해하기 위한 친절한 교양서로서도 훌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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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크 로스코 "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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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추상화가 민태홍의 작품



한편 이러한 현대미술을 체험하면서 ‘홍’은 점차 안정감을 찾아가고 자신감을 열게 된다. 특히 홍이 그림을 배우는 매 과정에서 미술을 통해 지치니 자아가 회복되는 과정이 섬세하게 드러난다. 초반에 선을 긋고 색을 고르는 방법을 배울 때까지만 해도 ‘홍’은 자신감 없어 보이는 발언을 일삼는다.


‘김’이 홍의 그림을 칭찬하거든 “선생님은 그냥 다 좋다고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요”라고 반응하는 것만 봐도 스스로의 능력을 믿지 못하고 자신감이 결여된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수업을 거듭할수록 “잘은 모르겠지만 해보겠다”라든가, “이번에도 할 수 있을 거”라는 등 긍정적이고 자신감 넘치는 모습이 점차 드러난다.


『미스 홍, 그림으로 자기를 찾아가다』에 있어서, 이렇게 ‘홍’이 점차 무력감에서 회복되는 모습은 홍에게만 미술치료의 효과를 보여주는데 그치지 않고, 이 장면을 공유하는 독자들에게도 정서적이 회복을 ‘전염’시킨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결국 한 사람이 회복해가는 장면을 보는 것으로도 독자 역시 긍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가령 작년에 대중으로부터 큰 인기를 끌었던 에세이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를 떠올려 보자. 해당 작품에서는 가면우울증을 앓고 있는 백세희 작가가 상담 선생님과의 대화를 통해 점차 내면이 회복돼간다. 백세희 작가는 단지 회복과정을 기술했을 뿐인데, 그렇게 만들어진 하나의 에세이가 대중에게 큰 위로가 된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비슷한 트라우마와 상처를 공유하고 있는 대중에게 있어서, 단순히 회복의 과정을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대중 역시 위로받을 수 있는 것이다.


『미스홍, 그림으로 자기를 찾아가다』 역시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와 동일한 구조를 취하고 있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가 백세희 작가와 상담 선생님의 대화 구조를 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미스 홍, 그림으로 자기를 찾아가다』는 ‘김’과 ‘홍’의 대화로 이루어진다. 이를 통해 독자는 아픔을 안고 있는 한 사람의 정서에 공감하고 회복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내면이 치료되는 방식에 있어서 두 책은 극명하게 다르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는 백작가의 상태를 “진단”하여, 대화를 통해 지속적으로 상태를 확인해나가는 과정이다. 그런 데 반해 본 책에서 ‘홍’은 본인의 상태에 대해 ‘진단’을 받은 것이 아니라, 스스로 미적인 ‘체험’을 하면서 자신의 감정을 포착해 나가고 있다. 즉, 질문과 응답의 ‘언어’로써 자신의 상태를 진단받게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술이라는 비언어적인 수단으로써 스스로를 발견하는 방식으로 회복된다는 점에서 『미스 홍, 그림으로 자기를 찾아가다』의 특징이 드러난다.


본 책의 저자는 자신의 내면에 있는 감정을 스스로 ‘포착’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예술의 가치를 발견하고 있다. 미술이라는 방법으로 ‘홍’이 스스로에 대해 알아가는 일련의 과정은, 언어는 할 수 없으며, 비언어로써만 포착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다. ‘홍’이 본인에게만 집중해서 선택한 선과 색은 개인의 내부적인 감정에 전적으로 의존하게 된다. 따라서 미묘한 떨림이나 긴장감, 불안감, 혹은 심리적인 안정은 색과 선에 관한 나의 선택에 무의식적으로 묻어나온다.


결국 하나의 그림은 한 사람의 미세한 감정들에서 완성된다. 이는 언어가 기본적으로 “설명”에 관한 것이라는 점과 비교할 때 가치가 두드러진다. 언어는 기본적으로 사회적인 의사소통을 위한 약속이기 때문에(이를 언어의 사회성이라고도 한다), 반드시 ‘타인의 인식’을 전제로 출발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언어라는 수단을 통해 스스로를 드러낼 때는 “설명”을 한다는 인식이 있어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독립적으로 스스로를 포착하고 드러내는 데 집중하기 힘들다. 『미스 홍, 그림으로 자기를 찾아가다』을 통해 본인을 전적으로 이해하고, 또 드러낼 수 있는 것은 발화(發話)가 아니라 미적 표현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예술이라는 것은 어쩌면, 완성된 작품에 관한 것이 아니라, 하나의 작품을 완성해 나가는 과정에 관한 것이라는 현대미술의 관점도 볼 수 있다. 사실 나의 작품과 타인의 것을 구별하는 것은, 대상이 아니라 대상에 담겨있는 예술가의 시각이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작품의 아름다움, 즉 예술성은 대상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세계 속에서 대상을 구조화시키고 있는 작가의 시선에 머무르고 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8년차 직장인이 내면을 회복하는 과정에 대한 한 편의 에세이가 물론 모든 사람들에게 같은 의미일 거라고 생각지 않는다. ‘홍’이 스스로를 표현할 때, “무슨 기분이라고 말해야 할진 모르지만”, “왠지”, “뭔가” 등의 표현을 사용한 탓에 본인의 감정이 모든 독자에게 온전히 공감이 되진 못한 부분은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역시 본인의 감정을 언어화시키면서 ‘홍’이 느낀 감정의 실체가 의사소통이라는 틀을 거치면서 온전히 피어나지 못한 것이며, 이 책을 언어로써 소개하고 있는 이 글도 『미스 홍, 그림으로 자기를 찾아가다』에 들어있는 현대미술의 매력 역시 온전히 담겨있지 않다. 그림그리기, 현대미술의 매력을 온전히 느끼고 싶은, 이 리뷰 글의 독자들이 직접 책을 읽어보며, ‘홍’의 그림들을 직접 보면서 미술을 통한 회복의 과정에 함께 동참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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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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