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그때 변홍례는 말이야… - 그때, 변홍례 [연극]

가십이 아닌 인물에 집중한 연극 <그때, 변홍례>
글 입력 2019.07.18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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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오후 7시, 혜화역 마로니에 공원의 분위기는 ‘자유로움’을 한껏 뽐내고 있었다. 광장 여러 구석에서는 거리공연이 한창이고 그 사이를 시원한 여름 바람이 드나들었다. 사람들은 제각기 마음에 드는 자리에 앉아 간단히 맥주를 마시거나, 거리공연에 집중했다. 왠지 모를 여름 분위기는 마치 연극의 연장선 마냥 즐거웠고 조금 더 그 분위기를 즐기고자 공원을 몇 바퀴 맴돌곤 했다.

 

공연시간이 임박했고 아르코예술극장의 상징 같은 빨간 벽돌을 지나 극장으로 들어갔다. 입구에서부터 찰리 채플린 복장을 한 악사가 아코디언을 연주하며 사람들을 반겼다. 그뿐만이 아니다. 입구 한 켠에는 예스러운 분장실이 덩그러니 놓여있었고 배우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분장, 혹은 분장하는 연기를 벌이고 있었다. 처음은 ‘이런 아르바이트도 구하는구나?’ 하며 흥미롭게 그를 지나갔지만, 이내 그들이 실제 배우라는 점을 깨닫고 그 섬세함에 놀라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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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구성

 


시작 전에 바라본 무대는 굉장히 단출했다. 하얀 스크린과 프로젝터, 스탠딩 마스크 6개와 정체 모를 잡동사니 같은 게 쌓여있을 뿐이다. 조금은 미니멀한 연출에 맥이 빠지는 기분이 들기도 했지만, 이 소박한 구성으로 과연 어떤 무대를 꾸며나갈지 기대감이 커지기도 했다.

 

공연이 시작되고 밖에서 분장하던 배우들은 줄을 지어 무대 위로 입성했다. 그리곤 각자 신발을 벗는다. 잠깐의 암전. 사전에 무성영화의 기법을 예고했던 것처럼 익살스러운 말투의 변사가 나와 마치 게임캐릭터처럼 등장인물을 소개한다.

 

제대로 시작된 연극은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었다. 양옆의 스탠딩 마이크에서는 다른 배우가 본 무대에 등장하는 배우의 말을 더빙하고 나아가 그들이 움직이는 구두 소리, 옷이 펄럭이는 소리, 찻잔을 꺼내는 소리까지 모두 현장에서 직접 재현한다.


아슬아슬하게 맞아 떨어지는 음향효과는 긴장감을 자아냈고, 무성영화의 장점 드러내고 싶은 배우들은 더욱 익살스럽게 행동했다. 나는 연극을 보는 내내 실제 무대에서 연기하는 배우와 그 배우를 연기하는 무대 옆의 더빙 배우를 동시에 관람하는 게 재밌었고 그 과정에서 약간의 립싱크가 어긋날 때는 불편함을 느끼기보다 도리어 현장감을 느꼈다.

 

해당 연극에서 더빙의 요소만큼이나 중요한 장치는 바로 ‘조명’이었다. 흑백영화 기법의 차용을 예고했듯 무대 연출에 있어서 조명도 노란 무드등과 흰색 조명이 주를 이뤘다. 변홍례의 죽음 대목에서 딱 한 번 빨간색 조명이 나온 것을 제외하면 모두 무채색이다.


연극에서 조명 또한 고정된 무대장치가 아닌 직접 배우들이 조명을 잡고 돌아다니며 주연 배우를 따라다닌다. 나아가 조명이 사람을 대변해 19금 관계를 연출한다거나, 조명이 차량의 헤드라이트로 변신해 갑작스러운 자동차 추격 장면으로 분위기를 조성하는 등, 조명 하나로 정말 다채로운 해석을 내놓았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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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홍례(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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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의 내용에 있어 흥미로웠던 부분은 극의 인물들 모두가 더빙에 의존하는 것에 반해 홍례 홀로 육성으로 연기를 진행하는 모습이다. 홍례는 어딘가 슬퍼 보이는 목소리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그리고 극의 중반에 다다랐을 때 홍례는 자신의 비루한 처지를 인정하고 서서히 성격이 변하는 입체성을 띠기 시작한다. 이전까지 조선인 하녀 변홍례로서 순종적인 삶을 묘사했다면, 철도회사 사장과의 불륜에 가담하고서 홍례는 더 대담해지고 일본인 행세를 한다.


그런 홍례의 모습에 주인집 사람들은 “밭을 갈던 소가 잘해줬더니 지가 사람인 줄 알고 칼을 들고 스테이크를 썬다.”라며 비아냥대며 웃어댔지만 홍례는 더욱 크게 웃어댄다. 비아냥대던 사람이 무안하도록 한바탕 억지웃음을 쏟아내고 그 비참한 웃음소리는 한동안 극장에 울려 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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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따시와 마리아 데스

와따시와 마리아 데스

와따시와 마리아 데스


 

여러 차례 자신을 마리아라고 명명한 변홍례는 이 시점을 시작으로 목소리를 잃는다. 그리고 변홍례도 다른 극 중 인물처럼 다른 사람의 목소리로 살아간다. 난 이 장면이 가장 인상 깊었다. 사람들이 가장 쉽게 알아차릴 수 있는 독특한 장면은 곧 연출가의 생각과 시사점이 들어갔다고 생각했다.


처음은 ‘더빙’의 요소가 일제에 굴복한 인물을 나타내는 요소인가 생각하면서도 목소리를 잃는 것은 곧 자주성을 잃는 국가의 이미지를 대입시켰다. 극이 진행되면서도 내가 해석한 방법이 정답인지 주시하면서 극을 관람했지만 끝내 그에 관한 힌트는 얻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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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과의 대화

 


연극을 관람한 일자가 재공연의 서막을 알리는 날이어서 그런지 커튼콜 후에 배우 및 연출가와의 대화 자리를 가질 수 있었다. 운이 좋게도 그 자리를 통해 ‘홍례의 목소리’에 대한 답변을 얻을 수 있었고, 연출가와 배우들의 연극에 대한 소신을 알 수 있었다.

 

윤시중 연출가의 답변을 곱씹어 보면 모든 것에 콘셉트를 잡고 나아가는 것이 아닌, 배우와 스태프들과의 상호성에서 연극이 창작되는 것을 선호하는 모습이었다. 나아가 배우, 연출가, 스태프와의 상호과정에서 나오는 몇 달간의 노력이 단 한마디로 정의될 수 있는가? 에 대한 회의감도 동시에 느껴졌고 많은 사람이 연극을 보고 다양하게 해석하길 바라는 느낌이 전해졌다.

 

외에도 많은 질문과 답변이 오갔으며, 연출가와 배우들이 얼마나 그 연극에 애착이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무엇보다 그 Q&A 시간을 지켜보는 내내 들었던 생각은 각 배우가 앉아 있는 모습이나 목소리의 톤이 아직 그 배역의 여운이 남아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아 괜스레 미소가 지어졌다.

   


함께 관람한 지인의 감상

 

연출가가 관객과의 대화의 시간에서 말했듯이 이 연극은 당시 실화를 바탕으로 한 비극인데  해당 사건은 당시에 굉장한 가십거리로 여겨졌다. 만약 나도 이 연극을 단순  '이야기'에 몰입하게 되면 나 또한 가십거리에 동참하는 듯한 느낌을 받을 것 같았다. 그래서 이 연극은 ‘이건 완벽히 연극이다.’ 라는 점을 강조한 것 같았고 나 또한 그 의도에 부합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 이유로 공연 전에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배우들이 분장을 하고 영화적 요소를 강조한 것은 연극의 허구성을 강조하려는 연출의 힘이 느껴졌다.


연극의 제목도 <마리아 참살 사건>이 아니라 <그때, 변홍례>라는 점을 미루어 봤을 때, 이야기에 집중하기보단 변홍례라는 인물에 집중한 연극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연출 부분이 정말 흥미로웠고 또 보러 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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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송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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