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글쓰기에 대한 글쓰기에 대한 글쓰기 [도서]

글 입력 2019.04.25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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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지 않는 시대, 글 쓰고 싶어하는 시대



통계청이 발표한 13세 이상 국민의 1인당 연간 평균 독서권수를 보면 2009년 10.8권, 2011년 12.8권, 2013년 11.2권, 2015년 9.3권, 2017년 9.5권이다. 1년에 10권 남짓 읽는 편이다. 빠르게 변화하는 이 시대에 책은 여러 단계를 거쳐 출판되는 느리고 정적인 매체고, 너무나 많은 컨텐츠가 존재하는 이 시기에 책을 읽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SNS의 등장으로, ‘글쓰기’에 대한 진입 장벽은 낮아졌다. 아련한 감성의 사진과 함께 센치한 문장을 쓰는 것은 인스타그램의 상징처럼 여겨지고, 브런치를 통해 연재하던 글이 종이책으로 출판되기도 한다. 독립출판의 인기도 이와 관계있다고 볼 수 있다. 최근 유명 작가들이 ‘글쓰기 방법’에 대한 책을 내놓기도 하는 것을 보면, 줄어든 독서량과는 반대로 글쓰기에 대한 관심은 증가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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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와 브이로그: 나의 삶을 보여주는 현대인의 다양한 방식



그래서 그런 것일까. 도서시장의 트렌드는 단연 에세이다. 2018년에는 에세이 분야가 전년 대비 21.9% 성장한 것으로 나타났다. 위로와 공감을 바라는 힘든 시대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자신의 삶에 대한 글쓰기’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증가했다고도 볼 수 있다.


브이로그(Vlog)는 자신의 삶을 남들에게 전달한다는 점에서 에세이와 비슷하다. 연예인이나 유명 유투버부터 일반 직장인에 변호사까지, 하루 동안의 자신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은 것을 말하는 브이로그는 글만큼이나 자신의 의견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는 않지만, 카메라에는 반드시 그 사람의 시선이 담긴다.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신세경의 브이로그는 작품성(?)이 뛰어나서, ‘힐링이 된다’는 이야기를 주변에서 많이 들었다.


직장인이든, 학생이든 자신의 일상을 마치고 나서, 다른 사람의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을 영상으로 소비하며 ‘힐링’한다는 점이 다소 모순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글쓰기에 대한 소설, <외딴방>



그렇다면 현대인에게 글쓰기란, 혹은 나에 대해 말하는 것이란 무엇일까? 이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신경숙의 자전적 소설이자 메타소설인 <외딴방>을 소개하고자 한다. 작가는 책의 첫 부분을 이렇게 시작한다.

 

이 글은 사실도 픽션도 아닌 그 중간쯤의 글이 될 것 같은 예감이다. 하지만 그걸 문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인지. 글쓰기를 생각해본다. 내게 글쓰기란 무엇인가? 하고.(p.15)

 

이처럼 메타픽션이란, 허구를 창작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 허구를 규정하는 현실성을 붕괴하는 창작물로, 주로 픽션을 창작함과 동시에 그 픽션의 창작 과정에 대한 진술을 하는 양식을 취한다. <외딴방> 역시도 이 양식을 취하고 있다.

 

<외딴방>에는 두 가지 서사가 불규칙적으로 교차되며 제시된다. 첫 번째 서사는 70년대 말, 낮에는 공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산업체 특별학급(야간 고등학교)에 다니며 작가를 꿈꾸는 10대 후반의 신경숙의 시점으로, 현재시제로 서술된다. (이하 서사 1) 같이 회사와 학교에 다니는 외사촌, 나이를 속이고 학원에서 일하는 큰오빠, 운동권인 법대생 셋째 오빠와 함께 ‘외딴 방’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다.


두 번째 서사는 1995년에 작가가 된 신경숙이 고등학교 동창에게 전화를 받고, 자신이 외면하고 살아왔던 고등학교 시절을 자전적 소설 <외딴방>으로 쓰는, 즉 서사 1을 쓰는 내용으로, 과거시제로 서술된다.(이하 서사 2) 소설을 쓰는 모든 과정, 과거 일어났던 사건에 대한 현재의 자료, 소설에 대한 주변인들의 반응이 모두 여기에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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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딴방> 속 글쓰기의 의미



1. 트라우마의 치유


사실 <외딴 방>은 다른 메타 소설들처럼, ‘재현해야 하는 현실이란 없다’는 포스트모던적 주제의식을 중심부에 두고 있지는 않다. <외딴 방>은 “재현을 포기하는 대신 재현에 대한 자의식을 노출”한다. (논문) 글쓰기의 목적이 결국 자신의 트라우마를 들춰내는 데 있기 때문이다. 소설 속의 신경숙은 고등학교 시절을 완전히 잊고 산다. 흔히들 떠올리는 첫사랑의 기억 등으로 대표되는, 아름다운 10대가 아니라, 공장지대에서 일하며 어두운 10대를 보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소설 속에도 첫사랑 이야기가 없지는 않다.)


결정적으로 같은 건물 다른 방에 살았던  ‘희재언니’라는 인물과 관련해 트라우마가 된 사건이 있었기에, 그녀는 그 공장지대를 떠나며 그곳에서 벌어졌던 기억들을 되돌아보지 않기로 한다. 과거와 현재가 반대로 얽혀 있는 특이한 구성을 취한 것은 과거와 현재를 병치시켜, 글쓰기 행위가 자신에게 가지는 이러한 의미를 보다 잘 드러내기 위함이다. 이는 서사 2의 초반부에 드러나 있다.

 

이제야 문체가 정해진다. 단문. 아주 단조롭게. 지나간 시간은 현재형으로, 지금의 시간은 과거형으로. 사진 찍듯. 선명하게. 외딴 방이 다시 닫히지 않게. 그때 땅바닥을 쳐다보며 훈련원 대문을 향해 걸어가던 큰오빠의 고독을 문체 속에 끌어올 것. (p.43)



2. 정체성 탐구


항상 15살과 20살 사이의 이야기는 얼버무려 버렸던 그녀에게, 그 시기를 글로 써내려 가는 것은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여정이기도 하다. 과거를 피했던 자신도 자신이고, 그것을 피하게끔 했던 다른 사람들도 자신의 일부였음을 깨닫는다.

 

이름도 없이, 물질적인 풍요와는 아무런 연관도 없이, 그러나 열 손가락을 움직여 끊임없이 물질을 만들어내야 했던 그들을 나는 이제야 내 친구들이라고 부른다. 그들이 나의 내부에 퍼뜨린 사회적 의지를 잊지 않으리. 나의 본질을 낳아준 어머니와 같이, 익명의 그들이 나의 내부의 한켠을 낳아주었음을… 그래서 나 또한 나의 말을 통하여 그들의 의젓한 자리를 세상에 새로이 낳아주어야 함을…(p.419)


 

3. 메타 예술


서사 2에 해당하는 작가 자신의 글에 대한 성찰, 자신의 과거에 대한 성찰은 사실 문학과 예술 자체에 대한 성찰이기도 하다. 예술은 우리가 현재 보거나 보고 싶어하는 모습보다도, 보지 못하거나 보고싶지 않은 모습을 더 많이 다룬다. 일상에서 얼버무려버리는 순간들을 곱씹으며 작품으로 만들어내는 것이 예술가의 심미안이다.

 

쉽게 끌려나오지 않고 숨어버리는 것들의 진실이 언젠가는 삶을 다른 각도로 바라볼 수 있는 심미안이 되어 돌아올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어디에서 어떤 삶을 살고 있든 문학은 그 진실의 고귀함을 잊지 않을 것이라고. (p.413)

 

타인과의 경쟁과 비교에 지쳐, 나와 다를 바 없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며 위로받는 현대인들에게, 자신의 과거를 찾는 것이 위로라느니 하는 이야기는 와 닿지 않을 것 같다. 그럼에도 이 책을 통해 우리가 지나쳐 버리는 순간들이 어떻게 예술로 탄생하는가를 따라가며, 색다른 체험을 하고 위로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김채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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