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사랑하는 딸에게 - 윤미네 집 [도서]

사진에 담아낸 아버지의 사랑
글 입력 2019.01.16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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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별이 유난히 빛나던 밤이었다. 아내가 산실로 들어가고 나는 복도에서 기다리는데 안에서 여러 산모들의 신음소리가 간간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나는 그 당시 사진찍기를 무척이나 좋아해서 그날도 우리 혈육이 태어나는 순간을 필름에 담겠다고 카메라를 준비했었다. 하지만 그 병원 규칙이 산실에는 ‘외부인 출입 금지’란다. …복도 의자에서 밤샘을 하고 있는데 구부정하게 허리조차 못 펴는 아내가 복도까지 나왔다. 그런 상황에서도 내 걱정이 되던 모양이다. 손을 붙들었더니 바르르 떨고 있고 눈은 겁에 질려 있었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아내가 가엾다고 생각했다. 다음 날 새벽 집에 가서 아침을 먹고 왔더니 그사이에 딸애를 순산했다고 간호사가 알려주었다.

- 윤미네 집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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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미네 집>은 아마추어 사진가이자 대학교에서 사진을 가르치던 故 전몽각 선생이 큰딸 윤미가 태어난 1964년부터 시집가던 날까지 총 26년간 찍어온 사진을 정리한 사진집이다.

1990년 초판을 시작으로 호평 속에 많은 독자들이 헌책방을 돌며 사진집을 구하려 했다. 그러던 와중에 2010년, 재발간되었다. 재발간된 책은 2002년에 췌장암 선고를 받은 전몽각 선생이 아내에게 전하는 편지와 사진을 '마이 와이프’라는 제목으로 덧붙였다. 그는 아사히펜탁스와 캐논 F-1이라는 오래된 카메라로 사진을 찍었는데 삼각대나 현란한 렌즈를 사용하지 않은 평범한 구도의 흑백사진들이었다. 삼각대를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초점이 나가거나 흔들린 사진들도 많고 현란한 색채가 들어가지도 않았지만, 수년이 흐른 지금도 윤미네 집은 많은 이에게 사랑받는다. 그 이유는 사진을 마주한다면 곧 느끼게 될 것이다.

딸인 윤미가 갓난아기일 때부터 찍기 시작해, 몸을 뒤집고, 걸음마를 떼고, 산책을 가고, 세월이 지나 성장하며 동생들이 태어나기도 한다. 이 단란하고 평화로운 사진들에서 흑백의 세상이 더없이 맑고 따사로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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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미네 가족이 나들이를 하러 간 한가로운 오후의 풍경은 이토록 평화롭다. 아내가 햇볕을 받으며 자고 있고 아이들은 저들끼리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마치 한 편의 명화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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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딜 다녀온 모양인지 지쳐서 잠들어 버린 식구들의 모습이 참 안온하다. 더불어 그 모습을 포착한 선생의 따스한 시선까지. <윤미네 집>이 많은 이의 가슴을 울리는 것은 단지 한 가정의 단란한 추억을 사진으로 남겼기 때문만은 아니다. 필연히 흐르는 세월 속에 가장 행복한 순간을 사진으로 찍는 것은 마치 그 사진 속에 시간을 담는 것과 같다. 사진 안에선 영원히 늙지 않고 죽지 않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그의 사진은 애틋하다. 사랑하는 가족들을 찍으면서 시간을 붙잡고 싶은 마음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 마음이 전해져 덩달아 애처롭고 그리워진다. 윤미와 연고가 없는 사람들이 윤미가 성장하는 과정을 지켜보며 괜히 눈시울을 붉히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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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좋아하는, 머리를 묶어주는 아내와 윤미를 찍은 사진이다. 사실 손의 움직임도 잡지 못했고 초점도 잘 맞지 않지만, 윤미의 긴 속눈썹과 오동통한 볼살, 목으로 떨어지는 햇살과 살포시 쥐고 있는 아내의 손길이 너무도 따스하다. 익숙한 듯 엄마에게 머리를 맡긴 아이의 일상이 사진 속에 그대로 드러나 마음이 따뜻해진다. 이 모든 게 너무 다정해서 눈물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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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복을 입고 학교에 가는 날이 이어지자 사진 속 윤미는 더 이상 카메라를 바라보며 웃지 않는다. 사춘기가 온 소녀에게 시도 때도 없이 카메라를 들이대는 아버지는 어쩌면 성가시게 느껴지기도 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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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윤미가 대학에 갔다. 이 아버지는 윤미의 연애 사진도 놓칠 수 없는지 데이트 현장까지 카메라를 목에 걸고 따라갔다. 딸의 데이트를 아버지와 함께 간다는 게 말도 안 되는 일이라는 걸 본인도 알기는 했는지 금세 돌아오긴 했지만. 이 특이한 행동조차 아버지가 딸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어찌나 아꼈는지 엿볼 수 있는 일화이다.


1989.4

윤미의 짧은 연애 시절이었지만 그 행복한 한 때를 기록하고 싶었다. 몇 미터 그들 뒤를 따르면서 나대로 사진을 찍을 테니 아빠를 의식하지 말 것, 평소대로 행동할 것을 약속하고 하루를 할애받았었는데 두 시간 만인가 나는 먼저 집으로 돌아와 버렸다. 너무나 방해가 되는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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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1989년 6월, 윤미가 결혼했다. 이날도 마찬가지로 카메라 렌즈에 윤미를 담고 싶던 마음에 신부입장을 하는 순간까지 카메라를 들고 입장하겠다고 주장했다. 이내 그의 주장은 아내에게 기각되면서 다른 이에게 사진을 부탁했지만 말이다. 그리고 이후 윤미는 결혼 생활을 위해 미국으로 이민가게 된다. 이민을 간 미국에서 자신을 찍은 사진집이 출간된 소식과 책을 받아보면서 그녀는 눈물지었다고 한다.

이 책이야말로 결혼 후 낯선 이국땅에서 적응하던 그녀에게 아버지가 주는 용기와 사랑이라는 생각에.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다시 마주한 <윤미네 집>은 사진 하나, 글 한 자가 모두 그리움이었다. 그렇게 가족의 추억 집합체이자 멀리 떠나간 딸에게 응원과 격려가 되고자 한 아버지의 사랑은 많은 사람의 가슴에 와닿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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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의 아버지가 촬영한 동생


전몽각 선생처럼 많은 아버지가, 부모가 자식의 추억을 어떤 형태로든 남기려 한다. 그처럼 사진일 수도, 일기일 수도 있고, 영상일 수도 있다. 필자의 아버지는 비디오테이프에 딸의 어린 시절을 새겨 놓았다. 당시 90년대는 집마다 비디오테이프와 그것을 재생하는 VHS가 있어 홈 비디오를 찍는 것이 흔했다. 그렇게 어린 딸의 모습을 녹화해둔 여러 개의 비디오테이프는 그 딸이 자라 화면 속 소녀가 자신인지 알게 되었을 때 비로소 선물로 다가왔다. 그러나 몇 번의 이사를 거치며 그것들이 분실되었고 VHS의 시대도 끝이 났다.

더 이상 찾을 수 없는 어린 시절의 기록은 머릿속에서만 재생되고 있지만, 그 후 아버지는 두 딸과 나들이를 갈 때마다 일회용 필름카메라를 꺼내 들었다. 필름 하나를 하루 안에 모두 찍으면 집에 가는 길에 사진관에 들러 인화를 맡기는 것이 일종의 루트였다. 덕분에 더 어린 날의 비디오는 잃었으나 책장 한 코너를 두꺼운 사진앨범으로 채울 수 있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아버지는 딸의 성장과정을 남겨두려 노력했고 그것이 그 나름의 사랑 표현이었다.

워낙 무뚝뚝해 같이 찍은 사진 한 장 찾기 힘들고 사진을 배운 적이 없어 흔들린 사진도 여럿이지만, 그 모든 게 딸을 향한 사랑이었다. 그걸 이제야 깨닫는다. 왜 항상 그때엔 알지 못했을까, 왜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되는 것일까, 아빠의 사랑은.


나에게는 시간만 생기면 김포 쪽 하늘을 멍하게 바라보는 좋지 않은 습성이 생겼다. 곧 윤미가 돌아올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런데 그쪽 하늘에서는 웬 비행기가 그토록 수시로 뜨고 내리는지.

- 윤미네 집 中





사진 출처
윤미네 집 - 전몽각, 네이버 지식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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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재이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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