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사막 속의 흰개미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

부패한 권력과 무너지는 고택, 경고하는 흰개미
글 입력 2018.11.25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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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패한 권력과 무너지는 고택, 경고하는 흰개미"


사막 속의 흰개미
- 서울시 극단 S 시어터 개관 기념작 -


[세종] 서울시극단_사막속의 흰개미_포스터_ver.final.jpg
   


Intro. 내용에 앞서


지난 18일 개관 40주년을 맞은 세종문화회관이 새로운 극장을 개관했다. 새 건물의 페인트 냄새와 낯선 구조가 괜히 기뿐을 들뜨게 하였다. 실험적이고 도전적인 예술작품을 기획하고 제작할 수 있는 300석 규모의 블랙박스 공연장으로 'Special, Space, Story'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전통을 가진 권위적인 대형 공연장이라는 세종문화회관의 이미지를 탈바꿈 할 수 있는 좋은 변환점이 될 것 같다.


IMG_3659.jpg
 


런웨이를 보는 듯한 무대만의 매력


지난 9일부터 개관 기념작으로 시작한 '사막 속의 흰개미'는 무대만으로도 관객들에게 색다른 경험을 선사하였다. 가장 눈에 들어온 것은 아무래도 '무대'의 모양이 아닐까. 개막 때 소개했던 무대와 오픈 후 형태가 달라졌다. 마치 런웨이를 보는 듯한 긴 무대는 한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또한 무대의 세 면과 2층에도 객석을 배치하였다. 지난 연극 <비평가>를 보았던 두산아트센터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갔다.

찾아보니 이러한 형태를 '수납형 객석'이라고 부른다. 무대와 객석이 분리된 기존 공연장과 달리 다양한 형태로 무대를 바꿀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예컨대 객석을 자유롭게 배치하여 작품에 따라 무대를 3면이나 4면으로 바꿀 수 있다고 하였다. 앞으로 비단 연극뿐만이 아닌 다른 장르도 자유롭게 수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들었다.

소극장에서 하는 연극을 많이 본 영향 때문이었을까 긴 무대와 더불어 1층과 2층으로 나누어진 객석은 낯설고도 신선한 경험이었다. 좌석에 따라 연극을 보는 것도 달라진다. 황정은 극작가는 "블랙박스 무대를 염두에 두고 극본을 쓰지는 않았다"라고 하였지만 오히려 이런 구조 때문에 개관 공연과 이 공간의 이색적 매력이 어필된 것 같았다.

필자는 2층 객석에서 앉았음에도 불구하고 고개를 좌로, 우로 돌렸어야 했는데 1층에서 본다면 배우를 따라 계속 시선과 고개를 돌려야 해서 약간은 더 정신없지 않을까 싶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층은 아마 안전상의 이유이겠지만 난간과 좌석 사이의 거리도 멀고 좌석 의자도 편하지 않았으며 뻗어 올라온 나무 무대 소품으로 인해 시야가 방해된다는 느낌을 계속 받았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무대의 긴 동선은 극 전체를 파악하기에 다소 버거운 감이 있어서 아쉬웠다.
   

서울시극단_사막속의흰개미_석필_태식.jpg
 


무엇이 100년 된 고택을 무너지게 하였는가?


사막에서 주로 발견되는 '페어리 서클(Fairy cicle)'이란 것이 있다. 흰개미가 주변의 수분과 양분을 끊임없이 빨아들여 밀집된 페어리 서클 안으로는 흰개미의 생태계가 형성된다. 대신 페어리 서클 밖은 건조하고 황폐해진다. 겉보기엔 축복이라도 받은 듯한 이 저택은 속으로 썩어가고 있다. 미스터리하고 신비한 이 자연현상은 마치 겉으로는 아름다우나 그 내면을 살펴보면 온갖 불의로 점철된 연극 속 주민들을 은유적으로 표현한다.

'사막 속의 흰개미'는 아버지에게 교회를 물려받은 공석필 목사가 아버지가 저지른 죄악으로 고통을 겪는 얘기다. 100년 된 고택은 교회를 지탱한 믿음을 상징하는데, 흰개미의 습격으로 껍데기만 남은 상태다. 무엇이 영원할 것 같았던 이 100년 된 고택을 무너지게 만든 것일까? 지금까지 축적한 부와 권력은 그들을 몰락에 이르게 하는 그 자신의 '적'이다.

고택의 몰락은 우리의 믿음, 아니 맹신에 대한 몰락이다. 공연 중 흰개미 떼의 날개짓 소리, 천장에서 쏟아지는 모래, 고택이 무너지는 과정을 우리는 가까이에서 생생하게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모든 퍼즐이 맞춰지고 연극이 끝나갈 때가 되어서야 길고도 넓은 무대가 비로소 황량한 마당처럼 느껴졌다.



살면서 어떤 믿음을 가졌는지, 어떤 믿음으로 살아가는지


인터미션이 없이 90분이라는 러닝타임의 연극인 만큼 심오하고 어려운 내용을 다룰 것이라고 예상은 하였다. 아니 프롤로그만 읽었던 프리뷰 당시부터 느꼈다. 첫 오픈하는 공연장에서의 실력 있는 배우들 그리고 '페어리 서클'이라는 신비로운 소재를 다룬 점도 색달랐다. 하지만 무거운 주제를 다루는 만큼의 복잡한 갈등이 왜 하필, 그리고 굳이 성폭행이었을까는 아쉬운 점으로 남았다.

물론 성폭행 범죄는 계속 사회적으로 매우 중요한 이슈였음은 분명하다. 또한 표현의 자유도 있는 것은 맞다. 하지만 이러한 가볍게 소재로 사용하는 작품이 늘어나고 있는 모습은 불편하며, 적어도 이 작품에서는 성폭행이라는 자극적인 요소가 아닌 충분히 다른 부분에서 갈등과 이야기를 만들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개인적인 아쉬움이 남았다.

황정은 극작가는 "살면서 어떤 믿음을 가졌는지, 어떤 믿음으로 살아가는지, 내가 서있는 믿음이 과연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라며 우리에게 일상이 된 신념, 당연하다고 여겨왔던 믿음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였다. 90분에 모든 갈등과 이야기를 풀어내기에는 부족했을 것이다.


[장혜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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