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view] 연극 ‘이방인’이 기대되는 세 가지 이유

연극 < 이방인 > 프리뷰
글 입력 2018.08.16 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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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고전을 넘어 신화가 된 작품, 카뮈의 ‘이방인’이 연극으로 다시 태어났다. 매우 독창적이고 특이하며 때로는 괴상하기까지 하지만, 동시에 인간의 보편적인 감수성을 찌르는 이 작품. ‘이방인’은 프랑스 내에서만 누적 733만부가 판매되고 연평균 판매부수가 19만부에 달하며, 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백한 개 언어로 번역될 정도로 고장 프랑스에서나 전 세계적으로나 널리 사랑받는 현대의 고전이다. 차갑고 건조한 문체가 이글거리는 태양을 묘사하고, 지나친 뜨거움과 지나친 무심함이 공존하고, 우리가 당연시하는 것들이 단숨에 뒤집어지는 작품. 이처럼 모순이 가득하지만 그 모순을 꿰뚫는 단 하나의 철학이 강인하게 지탱하고 있는 작품. 그래서 한 번 더 모순적인 이 작품을 읽는 순간 나는 단숨에 매료되었다.

‘이방인’을 사랑하는 한 명의 애독자로서, 그러나 이번 연극 앞에서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다. 원작을 먼저 접한 이에게 원작을 각색한 2차창작물은 흔히 실망을 안겨주기 마련이다. 더군다나 이번 작품은 이미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고전이요 걸작이다. 이런 작품을 잘못 각색할 경우 원작보다도, 그리고 같은 장르의 다른 일반적인 작품들보다도 못한 결과물이 나올 위험이 있다. 각색된 작품으로 인해 원작에 대한 인상까지 망칠까봐 걱정되는 마음이 적지 않았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카뮈 자신이 ‘이방인’을 연극으로 각색하는 것에 대해 이미 논한 바가 있다는 것이다. 소설이 출간된 지 10여 년 후인 1954년에 한 독일 독자가 카뮈에게 ‘이방인’을 연극으로 각색하는 계획을 제시했는데, 이에 대한 카뮈의 답신에서 ‘이방인’의 연극화에 대한 그의 생각을 알 수 있었다(민음사, '이방인'의 부록 참조). 편지에서 그는 몇 가지 우려되는 점을 지적하기는 하지만, 결론적으로는 연극 각색을 허락하면서 자신이 생각하는 작품의 핵심을 덧붙이고 있다. 카뮈가 2018년 대한민국에서 공연되는 연극 ‘이방인’까지 직접 허락한 건 물론 아니겠지만, 이 허락의 편지가 연극 앞에서 망설여지던 나의 걱정을 어느 정도 누그러뜨리는 효과를 낸 건 맞는 듯하다.

더불어 이번 공연에 확신을 갖게끔 한 몇 가지 중요한 요소들이 있다. 이번 작품과 맺고 있는 나의 개인적인 인연이라고 말하고 싶은데, 사실 이번 작품을 성공 반열에 올려놓은 요소들이기도 하다. 연극 '이방인'의 배우, 극단, 그리고 원작 이 세 가지를 짚어보고자 한다.



배우, 전박찬


사실 고민하던 나의 마음을 결정적으로 붙잡은 건 배우 캐스팅이었다. 이번 극에서 주인공 뫼르소 역을 맡은 전박찬 배우의 이름을 보자마자 연극을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박찬 배우의 연기는 이미 다른 작품에서 한 번 접했었는데, 바로 올해 초에 열린 연극 ‘에쿠우스’이다. 개인적으로 매우 좋아하는 작품인데 거기에 주인공 역을 맡은 전박찬 배우의 훌륭한 연기가 더해져 금상첨화였다. 그때의 ‘에쿠우스’는 나의 두 번째 관람이었는데, 첫 번째 관람에 비해 그 충격과 감동이 조금도 옅지 않을 정도로 연기가 강렬해서 아직도 인상 깊게 남아있다. 작년에 초연된 ‘이방인’에서도 뫼르소 역을 맡았다던 전박찬 배우가 다시 한 번 연기하는 뫼르소라고 하니, 소설 속 주인공과 어떻게 같고 또 어떻게 다를지 기대가 크다.



극단, 산울림


극단 산울림은 ‘고도를 기다리며’로 나와 연을 맺었다. 아트인사이트 문화초대로 관람한 작품인데, 나중에 보니 ‘고도를 기다리며’는 극단 산울림의 대표작이자 내년에 초연 50주년을 맞는 긴 역사를 가진 작품이라고 한다. 원작 희곡을 안 읽어본 나로서는 그때가 ‘고도를 기다리며’와의 첫 만남이었는데, 이 난해한 작품을 흥미롭게 그리고 깊이 있게 다룬 극단 산울림에 좋은 인상을 갖게 된 계기가 되었다.

이번에 올리는 ‘이방인’은 극단 산울림의 2017년 신작으로, 당시 전석 매진의 기록을 세울 정도로 흥행에 성공한 작품이라고 한다. 이번 앙코르 공연을 통해 단지 흥행 성공을 넘어 ‘고도를 기다리며’를 잇는 대표작으로 ‘이방인’을 내세우고자 하는 극단 산울림의 야심이 느껴진다. 덧붙여 또 하나 새로이 알게 된 사실은, ‘고도를 기다리며’와 ‘이방인’이 공연되는 소극장 산울림은 극단 산울림의 자체 전용극장으로서 40여년의 긴 역사를 가진 극장이라 한다. 좋은 공연, 독창적인 무대를 고집하는 극단 산울림의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또 하나의 지점이라 할 수 있겠다.



작품, 이방인


앞서 언급했듯이 원작이 워낙 대작이라 '믿고 보는' 연극이 될 수도 있고 반대로 실망하는 연극이 될 수도 있을 듯 싶다. 그러나 '이방인' 자체가 작품성 이상으로 내게 특별했던 소설이라는 점이 나를 극장으로 이끌었다. 사실 ‘이방인’은 아트인사이트 에디터 지원 당시 썼던 오피니언에서 소개한 작품인데, 그만큼 내가 깊은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오피니언 제목이었던 ‘낯설음에 대한 낯익은 이야기들’이라는 말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나는 ‘이방인’이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해진 ‘삶’을 낯설게 바라보는 작품, 낯선 의문이지만 인간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던져보는 그 낯익은 의문을 다루는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실존에 대한 철학적 문학서라는 나의 생각은 지금도 크게 변하지 않은 듯하다.

당시 글에서도 썼듯이, ‘이방인’은 철학 이론이 아닌 문학적 언어를 사용해 철학 이론보다 더 효과적으로 철학적 문제를 다룬다는 점에서 훌륭하다. 그랬기에 내가 ‘이방인’을 단지 소설로 읽는 데서 그치지 못하고, 카뮈의 철학적 사색에도 관심을 갖고 ‘페스트’나 ‘시지프의 신화’ 등 그의 다른 서적들도 찾아 읽게 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철학의 매력에 빠져들어 철학도가 된 계기 중 하나도 '이방인'을 비롯한 카뮈의 작품들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여기서 정면으로 공격받고 있는 대상은 윤리가 아니라 재판의 세계입니다.
재판의 세계란 부르주아이기도 하고 나치이기도 하고 공산주의이기도 합니다.
뫼르소로 말하자면 그에게는 긍정적인 그 무엇이 있습니다.
그것은 죽는 한이 있더라도 거짓말을 하지 않겠다는 결연한 거부의 자세입니다.

- 카뮈, “이방인”에 대한 편지 中


연극 각색에 대한 답신에서 카뮈는 ‘이방인’이 삶에 뿌리내린 신화라고 말한다. 가장 사실적인 삶에 뿌리내린 가장 반사실적인 신화, 더없이 정확한 표현이다. 끊임없이 나와 다른 이를 재단하고 재판하는 이 사회에서, 그 어느 강요도 윤리도 규범도 무기력하게 답습하지 않고 본래의 ‘정직한’ 삶을 사는 뫼르소는 가장 날것의 삶에 뿌리내린 인물이지만 이 세상에는 존재하기 힘들다는 점에서 신화적이기도 하다. 나를 매료시켰던 그 특유의 무심한 정직성을, 카뮈 자신의 말처럼 “햇볕이 내리쬐는 곳의 돌이나 바람이나 바다처럼” 존재하는 뫼르소를 이번 연극이 잘 그려냈으면 하는 바람을 담으며 기대평을 마친다.





<공연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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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랑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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