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새로운 예술을 꿈꾸는 사람들

글 입력 2018.04.22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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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새로운 예술을 꿈꾸는 사람들


글을 쓸 때, 나는 직접적으로 글을 쓰는 시간보다 글의 주제를 정하고 내용을 구상하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리는 편이다. 조각 조각 생각의 꼭지들을 엮어서 하나의 주제로 만들어 나가는 방식으로 글을 쓰는 편인데, 이건 마치 퍼즐을 맞추는 것과 비슷하다. 한 조각 한 조각을 우선 찾아내고 그 뒤에 그들을 여러 방식으로 엮으면서 큰 그림을 완성하는 방식이다. 덧붙이자면 이 과정에 딱히 정해진 규칙이 있는 것은 아니다. 보통 퍼즐을 맞출 때 위에서부터, 혹은 오른쪽에서부터 등, 규칙을 정해서 맞추지 않듯 그때 그때 생각나는 연결고리들을 엮어서 큰 그림을 그려낸다. 그리고 어떤 순서로 퍼즐을 맞출 지 대충 그려낸 다음 퍼즐을 맞추기 시작하면 대부분은 –쉬운 경우에는- 직접적으로 퍼즐을 맞추는 행위는 간단하게 끝이 난다.

문제는 이 퍼즐이 굉장히 복잡하거나 퍼즐을 맞출 연결고리들이 전혀 이어지지 않을 때다. 특정한 주제에 대해 글을 쓰려고 할 때, 그 주제에서 연상된 글의 조각들이 매끄럽게 이어지지 않을 때가 글을 쓰면서 마주하는 가장 당황스럽고 곤란한 상황이다. 이 경우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두 가지다. 조각 조각들을 그 상태 그대로 풀어서 흘러가게 내어두거나, 매끄럽진 않아도 이들을 어떻게든 엮어보거나. 이 두 가지 방법 모두 물 흐르듯 유려한 논리 전개는 불가능 하다는 전제하에서, 나는 대부분 첫 번째 방법을 선택하는 편이다. 억지로 엮어서 꽉 막힌 인상을 주느니, 짧은 조각 조각 글들이라도 그 조각들 자체로 진실하게 전달하는 것이 낫다는 이유에서다.
 
서론이 길었는데, 오늘 리뷰할 이 책이 바로 그런 경우다. 『새로운 예술을 꿈꾸는 사람들』. 퍽 오랜만에 읽는 미학 서적이자, 한동안 미술관을 방문하지 못했던 나를 글로나마 달래준 책이다. 사실 책의 머리에서 꽤 철학적인 메시지들이 언급되어 있어서 –예를 들어 니체의 디오니소스와 아폴론 등- 처음엔 이 책을 제대로 소화하는데 시간이 조금 걸리겠구나 생각을 했었다. 나름 전공 강의 시간에 여기저기서 주워들었던 철학 지식들을 떠올리며 책을 읽어야지 결심을 하고 있었는데, 막상 본 내용으로 들어가니 그 염려들은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작품을 매개로 전달되는 저자의 생각과 인문학적 배경들은 전혀 위화감을 주지 않았고, 오히려 가볍게 읽혀 살짝 놀랄 정도였다. 흥미로운 부분들이 곳곳에서 튀어나왔는데 이 리뷰에선 각 부분들을 언급하고 그에 대한 나의 코멘트를 달아보는 방식을 써보려고 한다. 부디 모자이크 방식의 글이 하나의 그림이 되기를 바라며 인상 깊었던 부분들을 몇 가지 짚어본다.





[1]
예술 안에서의 언론, ‘예술적’ 큐레이팅
_< In the Still Epiphany >


“이곳에서 선보인 <정적인 현현 속에서> 전은 ‘퓰리처’가 상징하는 ‘언론’이 미술 전시에 어떻게 유비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언론의 주된 기능은 의미 있는 사실을 포착하여 그 안에 내재한 진실을 꿰뚫고, 왜곡 없이 전달하는 것일 게다. ‘전시’라는 행위도 예술품들에 도사린 예술적 핵심을 포착하고 그것들을 하나의 관념적 끈으로 꿰어 유통하는 것이다.” (p.50)


이 구절은 내가 걸쳐있는 언론이라는 분야와 관심을 가지는 예술이라는 분야의 공통성을 독특하게 꼬집어내는 내용이다. 현대미술의 장르 중 하나인 Ready-made는 이미 만들어져 일상생활에 익숙하게 자리잡은 기성품에 작가가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여, 독특한 맥락을 가진 예술품으로 재탄생 시키는 장르이다. 뒤샹이 변기를 예술품으로 전시한 것처럼, 대중들이 흔히 떠올리는 현대미술의 대표적인 이미지 중의 하나인 이 ready-made 장르는 우리에게 익숙한 사실을 포착하여 새로운 프레임을 부여한다는 특징을 지닌다. 그리고 이 특징은 고스란히 언론에도 나타난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여러 일들에 심지어 매일 매일 일어나 익숙해져버린 수많은 일들 중 특정한 사건을 골라 프레임을 부여하고 이들을 중요한 사건으로 만든다. 기성품이 예술작품이 되는 것처럼, 일상의 일이 뉴스거리가 된다. 언론과 큐레이팅의 연관성을 전혀 떠올려본 적 없는 나에게 이 구절은 꽤나 신선한 생각거리를 던져주었다.

* Epiphany: 현현(epiphany)평범하고 일상적인 대상 속에서 갑자기 경험하는 영원한 것에 대한 감각 혹은 통찰을 뜻하는 말. 원래 'epiphany'는 그리스어로 '귀한 것이 나타난다'는 뜻이며, 기독교에서는 신의 존재가 현세에 드러난다는 의미로 사용되어 왔다.


[2]
완벽한 작품, 완전한 삶


완벽(完璧): 흔히 완전무결(完全無缺)하다는 뜻으로 사용(使用)되는 말이지만, 원래(原來)는 고리 모양(模樣)의 보옥을 끝까지 무사(無事)히 지킨다는 뜻 [출처: 네이버 한자사전]

  
이 책의 ‘완벽한 작품, 완전한 삶’이란 챕터에서는 영화인들이 보여주는 예술의 완벽성과 이를 완성시키는 관객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완벽’이란 단어의 어원을 끌어온다. 영어 단어인 perfect의 어원은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상학에 기초하며, 한자어 完璧의 어원은 인상여라는 인물의 기지로 욕심쟁이 진나라의 조양왕으로부터 무사히 조나라로 ‘완전하게 돌아간 옥벽’ 이야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직접적인 예술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완벽이란 단어의 어원을 한 번도 반추해본 적이 없었던 지라, 이 설화에 유난히 눈길이 갔다. 이 고전 이야기의 비유는 영화의 완벽성을 완성시키는 단계에서 관객의 중요성을 논할 때, 관객들을 옥돌을 알아봐주는 사람으로 표현하는 비유로 이어진다. 이 부분은 사실 미술사적, 혹은 미학적 의미보다는 표현 그 자체가 인상깊었던 부분이다.


[3]
팝의 여왕 마돈나: ‘인간’의 성적 주체성


“하지만 의상이 달랐더라면 이 농염한 <라이크 어 버진> 공연은 이처럼 ‘전설’로 회자되지 못했을 것이다. 무대 위의 마돈나는 검정 망사스타킹 위에 금빛 코르셋을 입었다. 코르셋을 졸라매는 끈들은 더 이상 고통을 감수하며 허리를 조이는 데 쓰이지 않는다. 마돈나의 근육질 몸 위로 찰랑거리는 금실들은 자기표현의 액세서리가 된다.” (p.106)


이 구절은 기존의 여성 억압의 상징이던 코르셋이 마돈나라는 아이콘을 만나 여성의 성적 주체성을 표현하는 도구로 탈바꿈한 사실을 보여준다. 이 구절을 읽으며 나는 이 책에서 다루는 콘텐츠가 단순히 미술관 안의 작품들만이 아니라 우리 대중들이 즐기는 그 문화 자체임을 다시 깨달았다. 작가는 예술의 경계를 굳이 짓지 않는다. 무용부터 대중 가요, 가수들의 퍼포먼스 등 어떤 장르든 예술이 될 수 있으며 여기서 문화적인 통찰을 보여준다. 코르셋이라는 상징의 의미를 완전히 뒤바꿔버린 마돈나의 이야기도 대단하지만, 그 내용뿐만 아니라 이 이야기를 통해 파악할 수 있는 작가의 가치관 역시 인상 깊었다.


[4]
미래주의와 파시즘


“35년, 긴 시간이다. 삶의 전성기를 맞는 사람, 평생 쓸 생각의 틀이 왜곡되도록 교육받는 사람, 현재와 저항하다 죽음을 맞는 사람 등 다양한 개인들이 그 시간 속에서 명멸할 것이다. 그러나 오직 하나의 길이 제시되는 사회, 극단의 시대가 오래가면 아무도 행복할 수 없다. 그 하나의 길은 우리를 폐허로 안내한다.” (p.136)


1900년대 초반, 세계를 전쟁으로 내몰았던 집단주의와 군국주의, 파시즘을 요약한 구절이다. 집단과 개인은 분명히 같이 공존하지만 동시에 공존할 수 없다. 개인의 값이 커지면 공동체의 몫은 적어지고, 공동체가 커지며 집단이 강조될수록 그 안의 개인들은 그 존재감을 상실해간다. 이탈리아 학자들을 중심으로 발전된 속도주의는 삶의 모든 존재들을 속도로 재단하고 빠른 속도를 지향하며 효율성이라는 이름 아래 개인의 존엄성을 지워버렸다. 푸른 빛 색채와 큐비즘에 속도를 더한 듯한 화풍의 속도주의는 빠르게 변해가는 시대와 그 시대에 적응하기 위해, 중요한 것들을 뒤로하고 속도에 몸을 실은 채 휩쓸려가는 당시의 사람들을 보여주는 듯하다. 하나의 미술 사조에도 각각 역사적, 철학적 배경이 녹아있음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구절이었다.





이 외에도 직접 꽃가루를 모아 생명력을 작품으로 만드는 작가, 다양한 공연을 소장하려는 아트리움들, 종잡을 수 없는 미국의 현대미술을 정의하려는 노력 등 다양한 소재의 예술 이야기를 만날 수 있었다. 내가 이 많은 내용들을 다 소화해냈다고는 확신할 수 없지만, 이 책을 읽는 동안 현대미술을 직접 보는 듯한 현대미술의 도끼에 찍힌 느낌을 간접적으로나마 받은 것은 확실하다. 이 책은 책으로서도, 현대예술의 해설로서도 도끼의 역할을 충분히 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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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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