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사.인] 시즌 4. 쉼표를 닮은 음악으로, 루시드폴 8집

쉼표에 담긴 그의 이야기 '모든 삶은, 작고 크다'
글 입력 2017.11.07 0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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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사.인] 시즌 4.
쉼표를 닮은 음악으로, 
루시드폴 8집 리뷰

쉼표에 담긴 그의 이야기
'모든 삶은, 작고 크다'


꾸미기_lucid-fall-8th.jpeg
 

쉬어가는 나무 같은 음반,
다정히 안부를 묻는,
한번 숨을 들이키고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쉬이 마침표를 찍지 못하는 사람의 조심스러운 망설임이 담긴,



루시드 폴,


나는 쉼표를 많이 쓰는 편이다.
평상시에 글을 쓸 때도 다시 읽어보며 과하게 많이 찍힌 쉼표를 지우곤 하고, 메신저로 말을 전할 때에도 쉼표를 세 개씩은 붙인다. 

"귤 1+1 같이 사실 분,,,"

이렇게.

보통 쉼표를 쓰는 이유는 읽는이가 쓰고 있는 나와 같은 호흡으로 이 글을 읽길 바라기 때문이다. 또한 쉼표는 문장 사이사이에 호흡을 주어 그 사이 감정과 여운이 끼어들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기 때문이다. 같은 문장이라도 한결 더 여유로워지는 느낌이랄까.

8집으로 돌아온 루시드폴의 음반 제목에도 쉼표가 있다.
'모든 삶은, 작고 크다'

짐짓 철학적인 생각까지 이어지는 저 문장에 문법적으로는 쉼표가 굳이 필요치 않다. 하지만 저 꼬리달린 검은 점은 이 앨범의 분위기를 그대로 표현한다.


lucid-fall-recording2.jpg


 
쉼표, 쉬어가기


귓가에 들리는 음표는 자연스러운 '쉼'을 선사한다. 또박또박 들려오는 편안한 음색은 그저 흘러가는 물처럼, 불어오는 바람처럼 편안하게 귓가에 맴돈다. 수면유발 음악의 대가라는 장난스러운 묘사처럼 그의 음악은 자연스럽고 은근하게 주위에 머문다.

그의 음악을 들으면 나는 어디에 있든 호흡을 가다듬고 숨을 천천히 내뱉게 된다. 8집에 담긴 루시드폴의 음악이 전부 느린 것은 아니지만 템포와 관계 없이 이번 앨범 속 그의 음악은 휴식같은 느낌이다. 쏟아지는 비와 몰아치는 폭풍 속에서도 누군가의 집이 되어주고 싶다는 그의 노랫말처럼.



쉼표, 조심스러운 망설임을 담아


4번 트랙 '그 가을 숲속'에서 루시드폴은 삼나무 숲길에서 쓸쓸히 죽어있던 새 한 마리를 위로하는 삼나무의 소리를 닮은 노래를 들려준다. 그는 바람 속에 흔들리는 삼나무의 소리가 새를 위로하는 느낌이었다고 회고했다. 루시드폴은 대부분의 노래에서 조용히 천천히 노랫말을 읊조린다. 하나의 음도 글자도 섣불리 보내주지 않겠다다는 다짐처럼 천천히.

모든 삶은, 작고 크다는 그의 제목에서 나는 작가의 '삶'에 대한, '생명'에 대한 애정을 읽는다. 제주에 살기 훨씬 이전부터 카페트를 짜던 중동의 소녀를 걱정하던 그는 검은 개, 연둣빛 꽃에 대한 애정과 희망을 노래해왔다. 모든 삶은, 작고 크다는 그의 문장은 자칫 지나치게 철학적인 말이 될까 염려하면서도 생명에 대한 사랑을 숨기지 못하는 그의 마음을 보여준다. 직설적이기보다는 조심스러운 망설임을 담아서.


lucid-fall-main.jpg
 


쉼표, 다정한


자기 전, 침대 위에 바로 누워 앨범을 전체 재생을 누른 뒤 나는 첫 트랙부터 반가운 목소리의 다정함을 만났다.


"안녕, 그동안 잘 지냈나요
나는 잘 지내고 있어요
다시 이렇게 노래를 부르러
그대 앞에 왔죠
(...)
세상이 달리는 속도보다는 더
느리게 자랐게지만
나의 이 노래를 
당신에게,
당신에게"


익숙하고 다정한 목소리의 안부 인사는 따뜻하고 상냥하고 사랑스러웠다. 고마웠던 사람들, 동물들, 그리고 노래를 듣는 사람들까지 하나하나 챙기며 노랫말에 담은 그 다정함이 좋았다. 꾸며내는 이야기 하나 없이 지금 그대에게 노래를 보내고 있다는 이 정직한 가사는 루시드폴 특유의 음색과 발음으로 색과 온도를 띤다. 책으로 치면 작가의 말처럼 꾸밈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소개하는 듯한 첫 트랙을 타이틀곡으로 했다는 것도 그의 음악, 이야기와 무척 잘 어울렸다.

첫 트랙의 제목은 '안녕,'이다. 그는 문장을 끝내지 않고 잠시 쉬어가며 상대에게 말을 건넨다. 따뜻한 애정이 담긴 다정함으로.


루시드폴공식.jpg


 
쉼표, 그리고 다시


그가 갑작스럽게 섬으로 이사를 했다고 이야기를 알려온 지도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그는 어느새 프로 농부가 되어 까다롭기 그지없다는 유기농 인증도 받았고, 나무 오두막을 지어 그 속에서 음반 작업도 진행했다. 2년이라는 길지도, 짧지도 않은 시간동안 그는 쉼없이 자신의 길을 걸었고 어김없이 짠, 음반을 발표했다. 음반, CD라는 매체에 대한 고민을 담아 이번에는 에세이북과 함께 앨범을 발매했다. (귤은 수확량이 적어서 함께 판매에 실패했다고..)

마종기 시인과 주고받은 이야기 속에서 그는 기타를 만드는 나무들을 보았다면서 즐거워하며 편지를 쓴 적이 있다. 기타를 만드는 재료로서의 나무에 대한 관심에서 그는 이제 나무, 열매, 열매를 팔아 만든 돈, 그 돈으로 다시 기타, 나무 - 이러한 순환 속에 있다. 그리고, 어떤 생명을 위해 다른 생명을 죽여야 하는 모순 속에서 그는 최선의 방법을 찾아 고민한다.
 

나무를 닮은, 생명을 닮은, 쉼표를 닮은 그의 8집이 반갑고 편안하다. 숨을 쉬고 다시 나아가는 쉼표같은 그의 이야기는 듣는 이를 응원하는 듯하다. 다시 한 번, 다시 출발. 다정하고 편안하게 말을 건네며 다시 나아갈 힘을 준다. 2년 후의 이야기는 어떻게 변해있을까.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까. 그 음악을 듣는 2년 후의 당신은 어떤 사람일까. 루시드 폴 8집 '모든 삶은, 작고 크다'에 담긴 따뜻한 말들을 들을 수 있어 편안해지는 11월의 밤이다.








김나연 서명.jpg
 

[김나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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