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그리 우스리] 뮤지컬에 담긴 해학, 그리고 우리의 인생을 돌아보다

글 입력 2014.07.07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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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주그리 우스리'_



최근 얼마 간, 음악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었던 나에게 돌연 찾아온 한 편의 연극, '주그리 우스리' 처음에 제목만 듣고는 이게 무슨 내용인지 잘 감이 오질 않았다. 예전에는 제목만 들어도 어떤 내용이겠구나 딱 떠올랐는데, 이제는 그런 감도 시들해졌나보다. 아무튼 어떤 연극인지 궁금한 마음에 검색을 해 보았다. 뮤지컬 '주그리 우스리'는 휴먼코믹장르로 지난 2012년 대구에서 처음 소개되어 특유의 상상력과 재기발랄함으로 전통 소재를 재미있게 풀어냈다는 호평을 받은 바 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맞이하게 되는 죽음이라는 어두운 소재를 다양한 사연을 가진 채 삶을 마감한 후 저승차사가 되어 현대 사회에 찾아 온 베테랑 저승차사 천왕과 신입 저승차사 지왕, 그리고 다양한 형태의 죽음을 준비하는 주인공들을 통해 유쾌하고 즐겁게 풀어냈다. 이 뮤지컬의 설명을 보고 있자니, 예전에 한창 즐겨봤던 한 웹툰이 생각났다. N사에서 연재된 '신과함께'라는 웹툰인데, 한국의 전통 신들과 주인공들의 관계를 통해 보는 세상 풍자, 그리고 신과 인간의 운명을 재치있게 그린 바 있다. 전체적인 줄거리나 구성, 흐름을 보니 이 웹툰과 유사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렇게 보면 또 완전히 새로운 장르는 아니었다. 죽음이라는 소재를 그저 어두운 것으로만 보지 않고 유쾌하게 풀어냈다는 점은 좋았지만, 이미 온라인상으로 대대적인 인기를 누렸던 어느 한 웹툰의 전체적인 스토리와 유사한 맥락에 있는 것 같아서 '완전 색다르고 새로운 창작 뮤지컬'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무리는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아직 관람 전이기 때문에 분명 이 뮤지컬만의 특징이 있겠지만, 놀랄정도로 신선한 소재는 아니어서 다소 긴장감이 떨어지는 경향은 있다. 그래도 배우들이 직접 호흡하는 모습을 보며 느낄 전율을 떠올리며 두근대는 걸 보니, 역시 좋은 문화생활의 기회라는 생각도 든다. 특히 이번 공연에는 '사랑해도 될까요?'라는 작품의 연출을 맡은 배우 '안신우'가 함께 한다고 하니, 연기력 뿐 아니라 연출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기대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뮤지컬에 대한 설명 중, 이러한 에피소드가 일어나는 장소가 '딜쿠샤'라고 되어 있는 것을 보았는데, 이에 대한 세세한 설명이 없어 그곳이 어떤 곳인지 직접 찾아보았다. 


■ 서울의 근현대 새겨진 ‘행촌동 벽돌집’ 딜쿠샤

1920년을 전후한 어느 봄날, 벽안의 젊은 부부가 서울 성곽 순례에 나섰다. 앨버트 와일러 테일러와 메리 린리 테일러. 1917년 서울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한 테일러 부부에게 본격적인 첫 서울 나들이였다. 


외국인이 20㎞에 달하는 성곽길을 걷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도 언덕을 오르고, 구불구불한 산길을 열심히 걸었다. 두 사람은 성곽길에서는 가장 높은 북악산 정상 ‘쌀바위’에도 올랐다. 그곳에서 내려다보는 서울은 그야말로 절경이었다. 북악산에서 인왕산 쪽 성벽을 따라 내려오던 두 사람은 높이 30m가 넘는 거대한 은행나무와 마주하게 된다. 그들의 눈에 성벽 아래 언덕에 우뚝 서있는 거목은 아름다움을 넘어 성스럽게 비쳤다(조선시대 권율 도원수가 심었다고 전해지는 이 나무는 현재 서울시 보호수로 지정돼 있다).


두 사람은 은행나무에 완전히 마음을 빼앗긴다. 특히 메리는 이를 ‘우리 나무’라고 부르며 남편 앨버트에게 “은행나무 옆에 집을 갖고 싶다”고 말한다. 그 뒤 메리는 몇 달 동안 틈만 나면 은행나무가 있는 곳을 찾아가 서울을 내려다보곤 했다. 은행나무가 있는 언덕은 메리의 신혼집이 있는 서대문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 은행나무 옆의 딜쿠샤

꿈은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마침내 은행나무가 있는 땅이 매물로 나왔다. 앨버트는 시세보다 비싼 10만원에 땅을 구입했다. 1만평이 넘는 넓은 부지였다. 두 부부는 지체없이 집짓기에 나섰다. 건축 설계는 식민제국 일본이 정한 건축법을 따라야 했다. 서울의 모든 건축물은 남산 중턱의 조선신궁보다 낮아야 한다는 규정은 반드시 지켜야 했다. 인왕산 언덕배기였지만 문제는 없었다. 지하 1층, 지상 2층의 대저택으로 설계를 했다. 거실, 침실, 서재, 드레스룸, 욕실, 부엌, 창고, 식품저장실, 실내 화장실은 물론 여러 하인들의 방까지 갖추어야 했기 때문이다. 방이 10개가 넘었으며 제일 큰 1층 거실은 폭이 14m나 되었다. 당시 조선에서 제일 큰 개인 벽돌 저택이었다. 벽돌과 대리석 등 건축 자재는 독립문 쪽에서 지게와 소달구지를 이용해 운반했다. 


외국인이 당산목인 은행나무 옆에 저택을 짓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인근 마을 사람들이 격하게 반발했다. 그들은 외국인이 신령한 땅에 무엄한 짓을 저지르고 있다고 분개했다. 무당은 “지신님이 복수할 것이다” “화마가 집을 삼킬 거다”라며 테일러 부부에게 저주를 퍼붓기도 했다. ‘은행나무골’로 불린 그곳은 옛날부터 주민들의 성황당 기도처로 여겨져 왔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테일러 부부는 일본 경찰의 보호를 받으며 집을 지어야 했다. 건물이 완공된 것은 1923년이었다. 


테일러 부부는 집의 이름을 ‘딜쿠샤’라고 지었다. 딜쿠샤는 힌두어로 ‘기쁜 마음의 궁전’ ‘이상향’이라는 뜻으로, 결혼 전 연극배우로 활약했던 메리가 세계 순회공연을 할 당시 방문했던 인도 러크나우 지역에 있는 궁전의 이름이다. 메리는 그때 집을 갖게 되면 딜쿠샤로 이름 붙이겠다고 마음먹는다. 테일러 부부는 대리석 추춧돌에 ‘DILKUSHA 1923’이라는 집의 이름과 건축연도를 새기고 성경 구절 ‘PSALM CXXVII-I’(시편 127장 1절)을 새겨넣었다. 



앨버트 테일러 아들 브루스 테일러가 2006년 서울시에 기증한 사진이다. 신문 기사는 딜쿠샤 화재사건을 보도한 1926년 7월27일자 매일신보.


■ ‘기쁜 마음의 궁전’ 그리고 화마

테일러 부부에게 딜쿠샤는 이름 그대로 ‘기쁜 마음의 궁전’이었다. 딜쿠샤의 2층 복도에 서면 창밖으로 저 멀리 관악산이 ‘거대한 수탉의 볏처럼’ 보였고, 뒤로는 인왕산이 버티고 있었다. 현관문을 열어젖히면 서울의 시내 전경이 펼쳐졌다. 은행나무가 서 있는 진입로와 양쪽 잔디밭에는 가을이면 노란 낙엽이 카펫이 되어 깔렸다. 집 주위에 있는 감나무에는 감들이 주렁주렁했다. 감나무 밖으로는 포플러가 집의 보초를 서듯 둘러서 있었다. 


집 안은 중세 귀족의 집을 떠올리게 할 정도로 화려했다. 거실의 뒤쪽 벽 가운데에는 벽난로를 설치했고, 양옆에는 등받이가 있는 나무의자를 놓았다. 거실 안쪽 모퉁이에는 얼음 저장통을 두었다. 얼음은 한겨울 하인들이 한강에 가서 떼어다가 소달구지에 실어왔다. 난로 반대편에는 커다란 앤틱 사이드보드가 놓였다. 벽에는 유난히 큰 괘종시계가 걸려 거실 전체를 조망하는 듯했다. 부엌 바닥에는 돌을 깔았고 석탄 화덕을 이용해 요리를 했다. 각 방의 창문과 여닫이문은 아치형으로 만들어 조형성을 높였다. 응접실에는 앨버트가 골동품점에서 사들인 고려청자, 백자, 항아리 등 각종 자기와 예술품들을 진열해 놓았다. 


테일러 부부의 일상은 잘 꾸며진 저택과 정원에 걸맞게 우아하고 고상했다. 그들은 종종 조선에 와 있는 서양인들을 초청해 만찬을 가졌다. 주말에는 정동의 서울유니언클럽(경성구락부)에 가서 서울 주재 영사, 선교사, 사업가 등과 예배를 올리거나 테니스와 수영, 볼링을 즐겼다. 당시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였지만, 테일러 부부와 같은 외국인들에게는 거의 모든 영역에서 치외법권이 주어졌다. 


‘언덕 위의 작은 궁전’ 딜쿠샤에도 불운은 있었다. 1926년 7월26일 서울에 폭우가 쏟아지면서 딜쿠샤가 벼락을 맞아 건물 일부가 불에 탔다. 딜쿠샤의 화재는 이튿날 동아일보와 매일신보가 주요 기사로 보도할 만큼 화제가 됐다. ‘행촌동 산상에 폭우 중 큰 불’이라는 제목의 매일신보 기사는 다음과 같다. “이십육일 오전 여덟시 오십분경에 폭우와 동시에 낙뢰가 4면에 요란할 때 서대문 밖 행촌동 일번지에 벽돌 2층으로 지어놓은 미국인 테일러의 집 2층에 불이 일어났는 바 시내에 있는 각 소방대는 전부 출동하였으나 행촌동 산꼭대기 아래 수도가 6정(町) 밖에 있으므로 도저히 물을 끌어들일 수 없게 되어 약 한 시간 반까지 지붕과 그 밑 목재는 전부 타게 된 후 겨우 수도가 연결되어 동 열시 오십분경에 진화되었다.”


신문은 이어 딜쿠샤 화재로 경찰 추산 약 3만원의 손해를 봤으며, 그 집에는 2만원의 보험에 가입돼 있었다고 전했다. 화재 당시 테일러 부부는 신병 치료차 미국으로 떠나 있어 화를 면했다. 화재로 파괴된 집은 곧바로 복구되어 이전의 모습을 되찾았다.


경향신문 발췌



딜쿠샤가 가상의 공간이 아니라, 실제로 기쁜 마음의 궁전이라는 의미를 가진 실재하는 공간이라는 점이 특이했다. 보통은 어떠한 장소 등을 상징하기 위해 비슷한 이름 등을 차용하여 쓰는 경우가 많은데, 주그리 우스리에서는 실재 존재하는 '행복을 위한 공간'을 무대로 끌어들여 옴으로써 너무 현실과 동떨어지지는 않은 느낌을 주고 있었다. 이렇듯 장소나 공간, 캐릭터들에 하나하나 제대로 된 의미를 담고 있기에 기대할 만한 가치가 있는 뮤지컬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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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수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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