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한국이 싫어서

글 입력 2017.10.22 14:30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왜 한국을 떠났느냐. 두 마디로 요약하면 ‘한국이 싫어서’지. 세 마디로 줄이면 ‘여기서는 못 살겠어서.’ 무턱대고 욕하진 말아 줘. 내가 태어난 나라라도 싫어할 수는 있는 거잖아. (10p)
   
내가 여기에서 못 살겠다고 생각하는 건…… 난 정말 한국에서는 경쟁력이 없는 인간이야. 무슨 멸종돼야 할 동물 같아. 추위도 너무 잘 타고, 뭘 치열하게 목숨 걸고 하지도 못하고, 물려받은 것도 개뿔 없고. (11p) 

“어짜피 난 여기서도 2등 시민이야. 강남 출신이고 집도 잘 살고 남자인 너는 결코 이해 못해.” (61p)
 
 
  ​한국에서 나는 어떤 특별한 것도 갖고있지않다. 부모님의 재력을 물려받은 것도 아니고, 얼굴이 예쁘지도, 몸매가 좋은 것도, 머리가 특별하게 좋은 것도 아니다. 그저 길거리 보도블록처럼 흔한 존재일 뿐이다. 나는 결코 한국에서 행복해질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한국이 싫어서, 한국을 떠났다. 한국을 떠나 도착한 호주에서도 나는 기대와 다르게 살아간다. 영어를 잘 못해서 몸으로 때우는, 의사소통이 필요 없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어쩌다가 호주에서 쫓겨날 뻔한 일을 겪기도 한다.
 
“빌딩 꼭대기에서 떨어지는 게 훨씬 더 위험해. 높은 데서 떨어지는 사람은 바닥에 닿기 전에 몸을 추스르고 자세를 잡을 시간이 있거든. 그런데 낮은 데서 떨어지는 사람은 그럴 여유가 없어. 아차, 하는 사이에 이미 몸이 땅에 부딪쳐 박살나 있는 거야. 높은 데서 떨어지는 사람은 낙하산 하나가 안 펴지면 예비 낙하산을 펴면 되지만, 낮은 데서 떨어지는 사람한테는 그럴 시간도 없어. 낙하산 하나가 안 펴지면 그걸로 끝이야. 그러니까 낮은 데서 사는 사람은 더 바닥으로 떨어지는 걸 조심해야 해. 낮은 데서 추락하는 게 더 위험해.”(124-125p)
    

  ​나는 지명이의 프로포즈를 받아 잠깐 한국으로 돌아온다. 동생 예나의 연애상대가 베이시스트라는 것을 알고는 지명의 부모가 자신을 대했던 것처럼, 그들의 연애를 마냥 축하해주지 못한다. 그러면서 ‘베이스 캠프’에 대해서 설명한다.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사람과 낮은 곳에서 떨어지는 사람 중 위험한 사람은 낮은 곳에서 떨어지는 사람이다. 낮은 곳에서 떨어지는 사람은 떨어질 준비를 할 시간이 없다고. 아마도 계나는 예나가 지금 한국에서의 신분이 높은 것이 아닌데, 더 낮아질 것이 염려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지명의 부모가 자신을 바라본 것처럼, 타인의 시선에서 자신을 바라보게 되고, 생각을 한다. 자신이 한국에 있었더라면 자신이 떨어질 때, 모든 것을 잃게 될 것이라고. 떨어지면 다시는 재기할 수 없는 한국에서.

 
우리는 뭐랄까, 전래 동화의 의좋은 형제 같은 처지에 빠져있었지. 지명이는 나를 아껴. 나도 걔를 위하고.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우리 사이에 개선되는 건 아무것도 없고, 밤에 서로 상대 몰래 볏짚을 나르느라 몸만 피곤한 상황이었지.
언젠가는 우리가 달빛 아래 볏짚을 든 채 마주치게 돼 있었어.(154-155p)
 

   나는 지명과 동거를 시작한다. 지명이 기자가 되고나서 한국에서의 신분상승을 꿈꾼다. 돈도 호주에서보다 풍족했다. 하지만 나는 행복하지 않다. 매일 밥 먹듯이 야근을 하는 지명과는 매일 의무적으로 각자 자신들을 희생하겠지만, 의좋은 형제 같은 관계만 지속될 것이고, 자신의 직업을 진짜 직업으로 인정받지 못한 채, 자신의 삶이 아닌 아내, 엄마로 살아가야 할 자신의 모습을 상상했다. 전혀 행복하지 않은 삶일 것이다.


“똑같은 하와이에 왔다고 해도 그 과정이 중요한 거야. 어떤 펭귄이 자기 힘으로 바다를 건넜다면, 자기가 도착한 섬에 겨울이 와도 걱정하지 않아. 또 바다를 건너면 되니까. 하지만 누가 헬리콥터를 태워 줘서 하와이에 왔다면? 언제 또 누가 자기를 헬리콥터에 태워서 다시 남극으로 데려갈지 모른다는 생각에 두려워하게 되지 않을까? 사람은 가진 게 없어도 행복해질 수 있어. 하지만 미래를 두려워하면서 행복해질 순 없어. 나는 두려워하면서 살고 싶지 않아.”
 
 
   결국 나는 한국을 떠났다. 돈만 많으면 신분이 상승하고, 그러면 행복할 수 있다고 믿었는데, 속았다. 나는 호주의 생활에 적응해나가고 있다. 제법 회계사의 일도 하고 있고, 봉사활동도 하고 있다. 나중의 삶이 행복할 것인지, 아닌지는 상관없다. 행복해 질 거라는 희망을 갖고 있으니까.


[오지영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8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